"당신 친구 아이토르는 어떻게 됐어요?" 그녀가 물었다.
"그대로예요. 늘 총탄 속에서 흠집 하나 없이."
"그는 무서운 게 전혀 없나 봐요. 그에게 안부 전해 주세
"전쟁이 끝나면 무슨 계획이 있어요?" 빅토르가 그녀에게물었다.
"다른 전쟁을 찾아가는 것. 늘 어딘가에는 전쟁이 있거든요. 당신은요?"
"당신이 괜찮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는데." 그가 수줍음으로 목이 잠긴 채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 P23

"나는 사랑할 시간이 없어요."
"어쩌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잖아요. 우리가 다시 만날수 있다고 봐요?"
"틀림없이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요. 빅토르, 나를찾아와요.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나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에게 키스해도 될까요?"
"아니요." - P24

부두에서 일하는 짐꾼의 딸인 카르메는 수녀들의 후원을 받으며 어릴 때부터 수도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가 결혼이라는 성스러운 결합을 비웃는 무신론자에 무정부주의자요, 어쩌면 프리메이슨일 수도 있는 한량과 동거하겠다고 수녀원을 박차고 나간 것을 수녀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 P30

그 몇 년 동안 돈 산티아고가 깊은 환멸과 분노를 느꼈던
여러 이유 중에는 피후견인의 변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학내 폭도들, 특히 마르셀 류이스 달마우 교수라는 작자의 나쁜 영향을 받아 그의 로세르가 빨갱이가 된 것이다. 그 교수는 공산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 무정부주의자인가 하는, 결국에는 모두 매한가지인 악랄한 볼셰비키주의자였다 - P43

 그녀는마르셀 류이스가 가족을 스페인에서 멀리 떠나보내기 위해마련한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들 중에서망명을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랑스나 다른 어느 곳에서 그들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자기네 집과 동네와 언어와 친척과 친구를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다.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지자 그들은 단념하고, 협상된 평화와 파시스트의 탄압을 견뎌내야 할 가능성을 조용히 점쳐 보았다.  - P62

 그리고 로세르 앞에서는 동료들이 저지른 집단 처형에 대해서도 거의 인정하지않았다. 그들은 둘씩 묶은 적군 포로들을 트럭에 싣고 공터로 데려가 아무 절차도 없이 처형한 뒤 커다란 웅덩이에 한꺼번에 파묻었다. 마드리드에서만 그런 식으로 이천 명 넘게사망했다. - P62

티푸스를 앓던 최악의 순간, 고통과 두려움이라는 오물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죽을 것만 같았을 때, 그는 허우적대다가 죽지 않기 위해 절망에 가까운몸짓으로 로세르를 꽉 붙잡았다. 혼란에 빠진 그에게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유일한 나침판이고, 그녀의 강한 눈빛이 유일한 닻이었다. 그리고 그 강한 눈빛은 금세 생글거리는 순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 P65

"로세르, 뭐 하는 거야? 언제든지 어머니가 돌아올 수 있어."
"일요일이에요. 아주머니는 광장에서 사르디나 춤을 추고있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 빅토르와 얘기하기 위해 전화국에 가서 줄을 설 거예요."
"나한테 옮을 수도 있어..………."
"처음에 옮지 않았다면 이제 와서 그러기는 힘들어요. 핑계는 그만 대요. 기옘, 얼른" 로세르가 브래지어와 팬티를벗고, 침대로 그를 밀어 넣으며 재촉했다.
로세르는 남자 앞에서 벌거벗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계속 비상 상태에서 배급으로 살며 이웃과 친구를의심하고, 늘 죽음의 사신을 눈앞에 두고 살다 보니 소심함을 잃었다. 수녀들이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귀하디귀했던 처녀성이 스무 살이나 된 그녀에게는 결함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미래도 없었다. 전쟁이 앗아가기 전에 누릴 수 있는 바로 그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 P66

동료들이 무서운 속도로 쓰러졌고, 제 차례는 언제가 될지 자문하기도 했다. 비행기의 기관총 세례를 피하기 위해 부상자들은 전조등도 켜지 않은 차에 실려 야간에 이송되었다. 상태가 꽤 심각한 몇몇 부상자는 총 한 방을 쏴 주는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산 채로 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게 죽는 것보다 수천 배 끔찍했기 때문이다. 잔인한 태양 아래에서 썩은
내가 진동하기 전에 수습할 수 없는 시신들은 말과 나귀처
럼 돌로 덮거나 태워 버렸다.  - P68

 그 바스크인은 두려움을 쫓고 행운의 여신을 유혹하기 위해 꿈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다. - P73

그들은 아버지 마르셀 류이스의 죽음으로 아직 상중이었다. 그는 몇번이고 얘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말이 마음속에서 얼어붙어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세르가 출산하거나 전쟁이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 아들을잃은 카르메의 고통과 사랑을 잃은 로세르의 고통이 조금은견딜 만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P77

"카르메, 보복이 잔인합니다. 그들이 단 하나의 진정한 믿음과 조국의 가치를 교육한답시고, 어미에게서 자식을 빼앗아 수녀들이 운영하는 보육원에 위탁한다는 거 아십니까?"
"그러기에는 내 자식들은 이미 커버렸네."
"그건 한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내가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와 함께 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겁니다. 왜냐면 어머님은 혁명가들에게 글을 가르치고미사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총살당할 테니 말입니다."
"이봐, 젊은이, 나는 쉰네 살이나 먹었고, 폐병 환자처럼기침하네. 오래는 못 살 듯싶어, 망명 떠나서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나? 프랑코가 있든 없든 내 집에서 내도시에서 죽고 싶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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