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면 간편해서 좋다.
잘 살던 사람도 죽어 버리면 물체일 뿐이다. 꼭 종교의 힘을빌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인의 덕을 기리고 추억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굳이 아오야마 장의장이나 사찰 같은 데서 요란하게장례식을 치를 필요가 없지 않을까. 부의금이 목적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 P239

그래서 그날 밤 별채에 묵게 되었지요.
‘왜 남자들은 이런 시시한 여체 따위에 열중하는 걸까."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그녀는 마흔다섯 살인데, 죽은 남편의 외도로 일 년 내내 마음편할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꿈의 책 한 권을 구할 때까지는 동정을 지키련다‘라고 쓴내 수필을 읽은 뒤 불쑥 장서를 처분할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더군요.
- P51

이번 여행은 친목을 도모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한국 출판계상황을 시찰하고 그 참에 일본에서는 구하기 힘든 사본 같은 것을 발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즈니스 목적도 있었다.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귀중한 고서를 많이 잃었다. 그러나 국토가 다 불타 버린 것은 아니다. 고서도 절반 이상 남아 사찰이나 명문가 창고에 잠들어 있으리라는 것이 가사이 기쿠야의 의견이었다.
- P115

하하하.
의심이 마귀를 낳는다는 말도 있지만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어요.
그러나 진짜배기 책 도둑은 살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 P229

아무리 안달하고 초조해도 안 되는 시기에는 안 된다.
하지만 당사자는 이를 알지 못하고 슬럼프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 때일수록,
슬럼프가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차분히 지켜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슬럼프에 빠진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편이 낫다.
실력 있는 자라면 반드시 재기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 P268

자신의 보물과 껍질을 제공해서 책 한 권을 장정하고 싶다는겁니다.
이유요?
아마 십 년 동안 인피를 찾아 미친 듯이 돌아다닌 탓이 아닐까요?
세계적으로도 전대미문의 시도일 겁니다.
페니스와 고환의 가죽으로 장정한 책이라니…….
사도 씨는 자기 물건을 절단할 작정입니다.
- P275

나나 여기 사도 씨나 로젠바흐는 아니지만, 책벌레, 책의 악마가 골수까지 파고들었어요.
이제 이 사람이나 나나 방법이 없어요.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결혼할 수 없는 여자한테 빠진 거나 마찬가지죠, 하하…..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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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라 히데키
다하라 가나
다하라 치사

어디있지? - P83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대답이 없다. 어쩌면 의식을 집중해서알아내려고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실례지만..…." 그녀가 여전히 조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세쓰코 씨가 누구신가요?"
헉! 내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쓰코를 우리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바로 그녀가 아닌가.
- P141


"받지 마세요."
역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아내일지도 모릅니다. 마코토 씨일지도 모르고, 세쓰코 씨를 병원으로 데려간 노자키 씨가 걸었을지도 몰라요.
이 스마트폰은 통화 중 대기를 할 수 없습니다. 일단 표시를 확인하고…."
"그것이에요. 받지 마세요."
"하지만…."
"그것이에요. 받지 마세요."
그녀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사무적으로, 무표정하게.
이상하다.
- P142

"다하라 씨, 제 말 듣고 있어요? 다하라 씨?"
"대답하지 마세요, 다하라 씨."
"지금 당장 움직이세요, 시간이 없어요."
"다하라 씨, 아직 시간이 있어요. 저 말 듣지 마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번갈아 집 안을 날아다녔다. 지금 들은 목소리는 누구일까? 조금 전에 들은 목소리는? 어느 쪽이 진짜마코토의 언니일까?

"만약 아이가 안 생기면 어떡할 거야?"
남편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금세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이어졌다.
K역이 보이는 순간.
"그때는 말이야." 남편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상큼한 표정을 지었다.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 자기가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 P166

하지만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항상 집을 나오는 건 여자인가. 엄마인가. 아내인가.
이유는 명백하다. 집이라는 물건은 남편, 즉 남자의 소유물이라는 가치관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여자는, 그리고 아이는 그곳에 얹혀사는 것에 불과하다.
- P200

"네. 밝고 편하고 즐겁게 지내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지요, 좋은 쪽으로 굴러가는 거죠."
- P204

"산으로 가요."
- P218

든지 할 수 있다든지, 불륜 상대인 여대생이 너무 집착이 심해서 헤어지고 싶은데 결국 그날도 했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적이 없었나? 괜히 시간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나? 눈앞에서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듯이 술주정하는 천박한 놈들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던 적이 없었나? 정말 지긋지긋해! 예전 친구마저 그런 천박한 놈이 되었다니! 나도 아이 하나, 여자 하나쯤은 저주할 권리가 있잖아!"
- P265

사람을 납치하는 요괴, 그것이 필요했던 마을노인과 아이가 부담스러웠던 마을.
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줄여야 했던 마을 사람들,
그런 사회가 예전 일본의 여기저기에 있었다.
- P324

사람이었던가, 어린아이였던가. 입을 줄이기 위해 마을에서데려간 아이들이 이렇게 변한 것인가.
치사가 이를 드러내더니 천천히 입을 벌렸다. 장난 같은 몸짓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나도 모르게 주춤거렸다.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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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런 건가 봐요. 고작 몇 시간 같이 있었는데도며칠은 함께한 것처럼 기억이 커지고.."
그러나 쉽게 질문을 유추한 룬이 고저 없이 답했다.
"별거 아닌 거에 의미를 두고, 신경 쓰이고, 딱히 만난횟수에 비례하는 감정은 아니더라고요."
물 흐르듯 말한 룬이 휙휙 손을 내저었다. 저런 말을한 것치곤 놀라울 만큼 무료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보내 줄 때 빨리 가는 게 좋을걸요."
비비가 그랬잖아요, 맹수들은 다 변덕이 심하다고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몰라요.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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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반의 기다림이면 충분하지 않나.
이제는 찾아야만 했다. 찾아서 사랑이든 연민이든, 발밑을 기든 뭐든 이 불안을 해소해야만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야 고장 난 아힌의 시계가흘러갈 수 있었다.
- P366

‘비비 특유의 향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멍하니 생각하던 아힌이 이내 바람 새는 웃음을 흘렸다. 기어이 비비를 그리다 미쳐가는 모양이었다.
- P390

- 내가 점점 미쳐 가나 봐."
한참 후, 아힌은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를 내며 검지로내 코를 톡 눌렀다.
"흰 토끼를 볼 때마다 비비인지 아닌지 확인하게 되고" - P413

"죽일 뻔한 걸 어떻게 용서해 달라고 하겠어."
억눌린 듯 말하는 저음 속에 많은 감정이 묻어났다. 엎드린 몸을 뒹굴 굴린 나는 앞발로 머리를 쓰다듬던 아힌의 검지를 잡았다.
내가 무서웠던 만큼 너도 무서웠을 걸 알아. 떠나는 사람보다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이 더욱 불안하고 무서운 것을 아니까.

툭, 붉은 눈에서 넘친 눈물이 아힌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매끄러운 뺨 위로 물줄기가 지나간 흔적이 그려졌다.
2"
눈을 비빈 후에 다시 확인했으나, 그의 턱 끝에 매달린물방울은 허상 따위가 아니었다.
이불로 가슴팍을 가린 내가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앉았다.
- P418

...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요."
목을 뻣뻣하게 세운 나는 턱으로 이불을 가리켰다. 그를 따라 이불을 내려다본 후, 다시 나를 마주한 아힌이 눈가를 야살스럽게 접었다.
"굳이 입을 필요도 없잖아."
"하긴이 아니지.
하마터면 자연스레 수긍할 뻔한 내가 이불을 꽁꽁 싸맸다.
"안 그래?"
- P432

비비설명을 이으려 했으나, 아힌이 한 박자 더 빠르게 말문더 이상 그런 일 없을 거야. 설령 그런 순간이 오게 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
그러니까 다시는 사라지지 마."
그때는 네 말대로 진짜 빌어먹을 맹수가 돼 버릴지도몰라, 잠긴 저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 P440

여기서도 비비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는데."
눈가를 반달로 접은 아힌이 나른한 음성으로 이어 말했다.
"필요하면 교수진보다 뛰어난 강사도, 원하는 서적도구해 줄게."
그러니까 여기 있어, 실제로 아힌이 말하진 않았지만목소리가 되어 귀에 꽂히는 듯했다.
- P453

사실 꽃은 관심도 없고, 비비가 주는 선물이기에 웃었을 뿐인데,
굳이 정정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한 아힌은 점점 걸음을 빨리했다. 걸음 끝에 비비가 있을 거란 생각이 발걸음에 조급함을 더했다.
- P589

이제는 사라진 불안을 오랜만에 상기한 내가 입술을여닫았다.
"그건 갑자기 왜..?"
"나도 그래."
"주워 온 토끼가 은혜는 다 갚았다며 떠나 버릴까 봐."
은혜 갚는 토끼도 아니고 그게 뭐야.
"일 년 반 전처럼, 눈을 떴는데 네가 사라져 버릴까봐"
"그건.....
"이제는 덩치가 너무 불어나서 주머니에 가둬 둘 수도없는데, 그래서 하루하루가 무서워."
- P614

스륵, 아힌은 내 머리에 제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작게말했다.
"버리지 마."
일순 심장이 튀어나오다 못해 궁 아래로 떨어졌다.
다 가진 주제에 뭐가 부족해서 나 하나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명치에 몽글몽글 얽혀 있던 마음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다.
살며시 아힌 쪽으로 머리를 기울인 나는 그에게 마음을 완전히 내주는 계기가 되었던 말을 되돌려줬다.
"..내가 아힌을 어떻게 버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말이 당시의 내게는 얼마나 큰위안이었는지 알기나 할까.
- P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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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관점과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깊이 읽기 과정에서 얻을 수있는 가장 심오한 혜택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프루스트는 읽기의 경험 속에서 일어나는 친밀한 감정을 고독속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비옥한 기적‘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우리가자신의 개인적인 세계에서 미동도 않은 채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할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은둔의 작가 에밀리 디킨슨도 읽기를 통해이런 능력(즉 자기 공간을 떠나면서도 떠나지 않는 능력)을 얻었지요. - P79

단지 기술만으로 소설을 죽이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소설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
면….…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나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잃어버리게되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야만적이고 거칠어질 겁니다. 이 말은 모두를 위해 깨어 있는 민주 사회를 구현하는 데 읽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웁니다. - P92

지식이 진화하려면 계속 배경 지식이추가되어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실 정보는 증명될 수도 없고 확증될 수도 없는 외부 원천에서 옵니다. 이런 정보를 우리가 어떻게 분석하고 활용할 것인지, 새로운 정보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계속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가 우리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배경 지식과 분석적 사고를 통한 견제와 균형이사라진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질이나 우선순위가 정확한지, 혹시 외부의 동기와 선입견이 개입된 것은 아닌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정보를 받아들이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 P97

인간이 자연의 선물로 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으로 창조한 수많은세계들 중에 책의 세계가 가장 위대하다.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의첫 글자를 석판에 휘갈기고 처음으로 글을 읽으면서 인공적이고 가장 복잡한 세계로 진입한다. 이 세계의 법과 규칙을 완전히 알고 완벽하게 실행할 만큼 충분히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어가 없다면, 쓰기가 없다면, 책이 없다면 역사도 없을 것이고 인간성도 없을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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