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반의 기다림이면 충분하지 않나.
이제는 찾아야만 했다. 찾아서 사랑이든 연민이든, 발밑을 기든 뭐든 이 불안을 해소해야만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야 고장 난 아힌의 시계가흘러갈 수 있었다.
- P366

‘비비 특유의 향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멍하니 생각하던 아힌이 이내 바람 새는 웃음을 흘렸다. 기어이 비비를 그리다 미쳐가는 모양이었다.
- P390

- 내가 점점 미쳐 가나 봐."
한참 후, 아힌은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를 내며 검지로내 코를 톡 눌렀다.
"흰 토끼를 볼 때마다 비비인지 아닌지 확인하게 되고" - P413

"죽일 뻔한 걸 어떻게 용서해 달라고 하겠어."
억눌린 듯 말하는 저음 속에 많은 감정이 묻어났다. 엎드린 몸을 뒹굴 굴린 나는 앞발로 머리를 쓰다듬던 아힌의 검지를 잡았다.
내가 무서웠던 만큼 너도 무서웠을 걸 알아. 떠나는 사람보다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이 더욱 불안하고 무서운 것을 아니까.

툭, 붉은 눈에서 넘친 눈물이 아힌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매끄러운 뺨 위로 물줄기가 지나간 흔적이 그려졌다.
2"
눈을 비빈 후에 다시 확인했으나, 그의 턱 끝에 매달린물방울은 허상 따위가 아니었다.
이불로 가슴팍을 가린 내가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앉았다.
- P418

...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요."
목을 뻣뻣하게 세운 나는 턱으로 이불을 가리켰다. 그를 따라 이불을 내려다본 후, 다시 나를 마주한 아힌이 눈가를 야살스럽게 접었다.
"굳이 입을 필요도 없잖아."
"하긴이 아니지.
하마터면 자연스레 수긍할 뻔한 내가 이불을 꽁꽁 싸맸다.
"안 그래?"
- P432

비비설명을 이으려 했으나, 아힌이 한 박자 더 빠르게 말문더 이상 그런 일 없을 거야. 설령 그런 순간이 오게 되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
그러니까 다시는 사라지지 마."
그때는 네 말대로 진짜 빌어먹을 맹수가 돼 버릴지도몰라, 잠긴 저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 P440

여기서도 비비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는데."
눈가를 반달로 접은 아힌이 나른한 음성으로 이어 말했다.
"필요하면 교수진보다 뛰어난 강사도, 원하는 서적도구해 줄게."
그러니까 여기 있어, 실제로 아힌이 말하진 않았지만목소리가 되어 귀에 꽂히는 듯했다.
- P453

사실 꽃은 관심도 없고, 비비가 주는 선물이기에 웃었을 뿐인데,
굳이 정정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한 아힌은 점점 걸음을 빨리했다. 걸음 끝에 비비가 있을 거란 생각이 발걸음에 조급함을 더했다.
- P589

이제는 사라진 불안을 오랜만에 상기한 내가 입술을여닫았다.
"그건 갑자기 왜..?"
"나도 그래."
"주워 온 토끼가 은혜는 다 갚았다며 떠나 버릴까 봐."
은혜 갚는 토끼도 아니고 그게 뭐야.
"일 년 반 전처럼, 눈을 떴는데 네가 사라져 버릴까봐"
"그건.....
"이제는 덩치가 너무 불어나서 주머니에 가둬 둘 수도없는데, 그래서 하루하루가 무서워."
- P614

스륵, 아힌은 내 머리에 제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작게말했다.
"버리지 마."
일순 심장이 튀어나오다 못해 궁 아래로 떨어졌다.
다 가진 주제에 뭐가 부족해서 나 하나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명치에 몽글몽글 얽혀 있던 마음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다.
살며시 아힌 쪽으로 머리를 기울인 나는 그에게 마음을 완전히 내주는 계기가 되었던 말을 되돌려줬다.
"..내가 아힌을 어떻게 버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말이 당시의 내게는 얼마나 큰위안이었는지 알기나 할까.
- P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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