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궁리를 해도 대를 끊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이건 칠판이지 그냥 목판이 아니거든요. 열병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선생님들이 글씨를 쓸 칠판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설령 제가죽고나서 관을 짤 나무가 없게 된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공부할 때 사용할 칠판을 없앨 수는 없지요." - P351

그러고는 다가가 링링을 안아 의자에서 내렸다. 링링을 안아 침대에 눕히고는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벗겼다. 옷을 벗기고 보니 그녀의 하얗고 윤기가 흐르던 몸은 이미 메말라 있었다. 겨울풀같은 색깔로 변하고 말았다. 얼굴에는처량하고 서글픈 걱정이 가득했다.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P443

"삼촌, 오늘 우리 집에 와서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엄마가 세상을 떠났누군가 또 소리쳤다.
"형님, 오늘은 형님이 우리 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주셔야겠어요. 지난번에 형님 댁에 상사가 있었을 때는 제가 사흘이나 일을 도와드렸잖아요. 형님은 오늘 하루만 우리 집일을 도와주시면 돼요."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늘에 수백수천 개에 달하는 해가걸려 불에 타듯이 내리쬐고 있었다. - P517

관은 일찌감치 마련되어 있었다.무덤 역시 사람들이 죽기 전에 다 파놓았다.
날이 너무 무더워 사람이 죽은 다음에 무덤을 파면 이미 때가 늦기 때문이었다. 하루만 지나면 시신이 부패되어 지독한냄새가 났기 때문에 미리 관을 준비하고 무덤을 파놓았다가사람이 죽으면 후다닥 순식간에 매장해버리는 것이었다. - P521

그러므로 먼저 독자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소설이 가져다줄 고통에 대해 모든 독자들께 사죄의 말씀을올리고 싶다. - P624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죽은 듯이 대답이 없었다. 어디선가쥐만 두 마리 찍찍거리며 나타나서는 할아버지를 비스듬히쳐다보다가 다시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다음 집에 가봤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알고 보니 딩씨 마을에는 사람이 없었다.
딩씨 마을에는 원래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열병이 대규모로 폭발한 뒤로 세상을 떠나야 할 사람들은 전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P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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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런, 내가 학교에서 도장을 찾아 자네에게 돌려주는 걸세. 아무도 도장을 훔치지 않았어. 바로 자네 침대 머리말 틈새에 떨어져 있었다네."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는 손을 리싼런의 눈으로 가져가 가볍게 두 눈을 어루만졌다. 그제야 리싼런의 눈이 감겼다. 벌어져 있던 입도 마침내 다물어졌다.
눈이 감겼다. 입도 다물어졌다.
눈이 감기고 입이 다물어지자 혐오스럽기만 하던 리싼런의 얼굴도 금세 변했다. 몸은 비록 비쩍 말라 있었지만, 그의얼굴에는 편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부족한 것도, 여한도 없는 평안한 모습이었다.
리싼런은 몸과 마음이 두루 평안해졌다. - P209

"그래, 아무 의미도 없는 삶이야. 하루를 살면 하루의 의미가 생겨날 뿐이지." - P234

"선생님보다 더 잘 해내겠다고 약속할게요. 저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큰아들 딩후이가 상부에서 우리에게제공한 관을 전부 팔아치우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듣자하니 그는 돈을 좀 더 벌면 이사를 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둥징으로 가든지 아니면 현성으로 간다고 합니다. 게다가 먹의 둘째아들 딩량은 간통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그 상대가바로 자기 사촌동생의 아내였어요. 그런데도 선생님께서 계속이 마을의 일을 관리하고 학교의 모든 일들을 처리한다는것이 과연 적합한 것인지 말씀해보시지요."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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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매혈 우두머리들이 채혈 기계를 들고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피를 수매했다. 집집마다 찾아가 피를 수매하는 모양새가 마치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못쓰게 된쇠붙이나 헌신짝을 사들이는 것 같았다.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집 안에 앉아 있으면 오래지 않아 "피삽니다. 피파실 분안 계세요?"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머리카락을 바늘과 바꿔주는 사람이나 채소 장수, 폐품 수집하는 사람이 외치는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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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장기를 두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 외에도 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하고, 먹고 싶은 건 뭐든지다 먹읍시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곳에 와서 먹고 자게 된 이상, 열병에 걸리긴 했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 남은 날들을 최대한 즐겁게 보내자는 겁니다. - P125

버렸다. 온통 아득하게 하얀빛으로 물들어버렸다. 문밖에서한줄기 차갑고 신선한 한기가 밀려들어와 교실 안의 혼탁한열병의 냄새와 마주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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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바로 이런 유황 맛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유황맛은 낮이나 밤이나 코를 자극했고 귀를 때렸으며 눈을 찔렀다.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마을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황 맛 속에서 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유황 맛 속에서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모두 피를 팔았다. - P41

"다른 현들은 일찌감치 미친 듯이 피를 팔아서 마을에 한채 한 채 건물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의 딩씨마을은 해방된 지 수십 년이 지났고, 공산당이 지도한 지수십 년이 지났으며, 사회주의가 실행된 지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마을 여기저기에는 초가집이 이어져 있을 뿐이지요. - P62

딩씨 마을은 피를 팔면서 점차 피에 미쳐갔다. 평원에서피를 팔면서 피에 미쳐갔다. 십년 후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내리는 궂은비처럼 열병이 쏟아져 내렸고, 피를 팔았던 사람들은 모두 열병에 걸렸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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