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들이여회개하라!
심판의 날이다가왔노라!
다가왔노라! 33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다가왔노라!다. 그가 땅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저 사내의 뇌속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야"라는 생각을 1만 번 되풀이했던 것일까?
저런 것은 신념이 아니다. 마비 상태라고 해야 옳다. - P29

칠흑 같은 우주 벌레가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아가리를 연 것처럼, 원형의 어둠이 천구의 태양 반대편에서 자라나는 광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다. TV로는 물론 100번은 더 보았다. 각각 다른10여 개의 지점에서 관찰된 영상이었지만, TV로 보았을 때는 아무리보아도 싸구려 중에서도 가장 조잡한 특수 효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 P30

<버블>을 자연 현상의 하나로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어 내려고 악전고투한 용감한 이론가들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지만,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결국 하나밖에는 없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진보한 외계 종족이 태양계를 우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만들어 낸장벽이라는 설명이다.
문제는 ‘왜?‘였다.
- P34

 이것들의 변주에 해당하는 덜 드라마틱한 각양각색의 가설도 제기되었다. 〈버블>은 인류의 허약하고 원시적인 문화를 항성 간 교역의 가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는지도 모른다. 태양계는 은하계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 P35

마음의 병은 천년왕국의 신봉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버블열>이라는 것이 돌았다. 지구부피의 8조 배에 달하는 공간에 갇혔다는 생각이 야기하는 히스테리컬하며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폐소공포증적인 반응이 나타났던 것이다.  - P38

다수 사람들이 <버블>을 받아들임으로써 상황에 적응했고, 정상적인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버블>이 야기한 히스테리, 온갖무명 종교 집단의 모든 종파, 기괴한 집단 정신병의 온갖 형태가 또다시 부활할 것임을 확신이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 - P54

컴퓨터 처리된 정보는 양자론적 진공이나 마찬가지로 덧없는 존재이며, 끊임없이 출현과 소멸을 거듭하는가상 진실과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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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이틀째 날, 빅토르는 보건실에서 여자 아기의 탄생을 목격했다. 너무나도 끔찍한 부상과 갖가지 모습을 띤 죽음을 목도했지만, 삶의 출발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갓난아기가 어머니 품에 안겼을 때 빅토르는 눈물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 P181

"빅토르, 삶과 죽음은 늘 손잡고 다니네요." 로세르가 울컥해서 말했다. - P182

"로세르, 전쟁이 임박해 있어. 이념과 원칙의 전쟁이 될 거야 세상과 삶을 이해하는 두 방식 사이의 전쟁이고, 나치와파시스트와 맞선 민주주의의 전쟁이고, 자유와 권위주의가맞선 전쟁이지." - P185

"달콤한 조국, 너의 성단에서 칠레가 맹세한 소명을 맞이한다. 너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무덤이 되리라. 아니면 억압에 맞선 피난처가 되리라" - P192

 이제는 예전의소녀가 아니라 꽤 흥미로운 젊은 여자였다. 친동생만 아니라면 오펠리아가 꽤 미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 P201

펠리페가 말해 준 바에 의하면 로세르는 그녀보다 두 살 많았을 뿐이지만, 세 가지 삶을 살았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서태어나 패배한 전쟁에서 살아남아 망명의 비참함을 겪었다.
그녀는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바다를 건너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용감하게 남의 나라에 도착했다. 오펠리아는 품위 있고, 강하고, 용감해지고 싶었다. 로세르처럼 되고 싶었다.  - P208

로세르는 사랑이란 단 한 번 오는 것인데, 자기 몫은 이미끝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P218

빅토르와 로세르는 성격이 정반대라 오히려 서로 잘 통했다. 로세르는 이민자들의 감상주의에 빠지는 법이 없었고, 뒤 돌아보는 법도 없었으며, 이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이상화하지도 않았다.  - P219

하지만대안은 더욱 두려웠다. 노처녀로 남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아버지와 펠리페 오빠에게 의존하고, 사회적으로 최하층이된다는 의미였다.  - P223

"비냐델마르로 돌아가야 해요. 기사가 기다리고 있어요."
오펠리아가 별 확신 없이 말했다.
"기다리라고 하세요. 우리는 얘기를 해야 해요."
"빅토르, 나는 결혼할 거예요."
"언제요!"
"무슨 상관이에요? 당신은 이미 결혼했는데."
"바로 그 점에 대해 우리가 얘기해야 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당신에게 설명할 수 있게 해 주세요" - P225

그 남자는 너무나도 많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었다. 그수수께끼들을 모두 풀려면 기나긴 작업이 될 것 같았다. 망명, 군사 쿠데타, 공동묘지, 난민 수용소가 뭔지, 배가 터져서 죽은 나귀나 신생용 빵이 뭔지 알고 싶었다. 빅토르 탈마우는 마티아스 에이사기레와 거의 비슷한 또래였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해 보였다. 겉은 시멘트처럼 강하고, 안은 끌로 조각한 듯 속을 알 수 없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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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내가 그 여자는 잊으라고 했잖아요!" 그날 밤 단둘만 있게 되자 로세르가 빅토르를 나무랐다.
"로세르, 어쩔 수가 없었어. 당신이 기옘을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 기억 안 나? 그리고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것도‘ 나도 오펠리아랑 마찬가지야."
"그럼 그녀는요?"
"서로 좋아하는 거야. 우리가 드러내 놓고 절대 같이 있을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받아들였어."
"그 아이가 당신의 첩 노릇을 얼마다 참아 낼 수 있을 것같아요? 그녀는 특별한 삶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요. 당신 때문에 그 삶을 포기한다면 미친 게 분명해요. 빅토르, 다시 한번 말하는데, 이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는 발길질당하며 이나라에서 쫓겨날 거예요. 그 사람들은 큰 힘이 있어요.
"아무도 모를 거야."
"언젠가는 모두 알게 될 거예요."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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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그 나라는 어디 있어요?" 로세르가 물었다.
"내가 알기로는 세상의 발끝에." 빅토르가 대답했다.
다음 날 엘리자베트는 어제 말했던 기사를 찾아서 빅토르에게 전했다. 정부의 위임을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망명자들을 자기네 나라로 데려가기 위해 위니펙호라는 배를 정비하고 있었다. 엘리자베트는 파리행 기차를 탈 돈을빅토르에게 건네며, 그 시인과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랐다. - P165

"빅토르, 알겠어요. 내가 뭘 해야하나요?"
"미안한데, 로세르・・・・・・ 나랑 결혼해야 해."
그녀가 몹시 놀란 표정으로 한참이나 쳐다보는 바람에 빅토르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진지한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는 네루다에게 들은 대로, 가족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로세르, 너는 내 제수도 아니야."
"나는 서류도 없이, 신부의 축복도 없이 기옘과 결혼했어요"
"그런 건 이 경우에 고려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야. 간단히 말하자면 로세르, 너는 실제 과부도 아닌데 과부가 된거야. 가능하다면 오늘 당장 결혼하고, 아이를 우리 아들로호적에 올리자, 내가 아버지가 될 거야. 내가 친자식처럼 돌보고 지켜 줄게. 네게 약속할게. 그리고 그건 너한테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잖아요..."
- P170

그렇게 그들은 광장의 벤치에서 짧은 시간에 자기네 인생은 물론, 아이의 인생까지 뒤바꿔 놓을 중대 결정을 내렸다.
서둘러 피난을 떠나오다 보니 수많은 난민들이 신분증도 없이 프랑스에 왔고 신분증을 길이나 수용소에서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제대로 소지하고 있었다.
시청에서 치른 간단한 의식에 퀘이커교도 친구들이 참석해서 결혼식 증인이 되어 주었다. 빅토르는 새 구두에 광택을냈고, 빌린 넥타이로 빛이 났다. 로세르는 너무 많이 울어서두 눈이 퉁퉁 부었지만 이제 차분해져서, 가지고 있는 가장좋은 옷을 입고 봄 모자를 썼다. 그들은 결혼식을 올린 후 마르셀 달마우 브루게라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출생 신고를마쳤다.  - P171

네루다는 그나라를 하얗고 새까만 거품의 허리띠를 두르고, 바다와 포도주와 눈으로 이뤄진 기다란 꽃잎"이라고 정의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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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흘려보내자 가슴에서 뭔가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심장이 고장이 났군." 그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그는 그 말의 깊은 의미를 깨달았다. 유리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면서 자기 존재의 본질이 빠져나가서, 과거의 기억도 현재의의식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는 구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처럼 자신도 피투성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끼리 싸우는 그 전쟁은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너무나도 추악했다. 계속 죽이고 죽어가느니 차라리 지는 편이 나았다. - P106

 여자들은 모든 것을 잃은 후 체면조차 남지 않은남자 포로들과 경비병들의 성폭력으로부터 스스로 지키기위해 무리를 지어다녔다. 로세르는 모래가 섞인 매서운 북풍을 피해서 잠을 자기 위해 손으로 구덩이를 팠다. 따가운모래가 피부를 망가뜨리고 눈을 멀게 하고, 몸속 여기저기로 들어와 상처를 내고 감염을 일으켰다. 하루에 한 번 허여멀건한 렌틸콩 수프가 배급되었고, 가끔 차가운 커피가 나왔다. 트럭이 지나가면서 빵 덩어리를 던져 주기도 했다. 남자들은 빵을 잡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누군가 측은한 마음으로 나눠 주는 빵 부스러기나 받아먹었다.  - P108

다. 로세르 바로 옆 구덩이 안에서 잠들었던 여자가 오 개월된 딸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아침을 맞이하기도 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날이었다. 다른 피난민들이 아이 시신을데려가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 묻었다. 로세르는 수평선에시선을 고정한 채 눈물도 흘리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가만있는 여자 곁을 온종일 지켰다. 그날 밤 여자는 바닷가로 나가물속으로 사라졌다. 그 여자 혼자만이 아니었다.  - P109

개방적이고 처세술이 좋은 이시드로는 죄와 퇴폐의 냄새를 풍기는 강요된 쾌락 앞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아내의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고,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다른 손에는 술잔을 든 채 모든 것을 칭송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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