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일기는 1978년 10월 초에 끊어졌다가 이듬해 6월말부터 다시 이어졌다. 그사이에 첫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봉제공장 일을 그만뒀다. 서울에서 아버지는 딱히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시댁이 있는 대전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타향살이지만 함께 일하는 또래 직장동료들이 있었던 서울과 달리, 대전은 어머니와 아무런 연고가없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낯선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 P105
1979년 6월 25일 월요일 혜진이에겐 돈이 너무너무 귀하다. 난 지금 돈이 너무 없어서아기를 유산하고 직장에 다닐 생각까지 하고 있다. 돈이 없으니까 더욱더 괴롭고 쓸쓸하다. 아기를 가지니 시원한 과일이먹고 싶다. 살구와 복숭아가 먹고 싶다. 소고기 불고기도 먹고싶다. 배가 고픈데 집 안에 먹을 것이 없다. 하지만 돈이 없다. 그 사람한테도 돈이 없다. 먹고 싶은 게 많은데 돈이 없어서 너무슬프다. - P107
어머니는 늘 불안했던 거다. 자식에게 언제 다시 간장 비빈 밥만 먹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다. 일기를 노트북으로 옮겨 적는 내 손이 어머니를 향한 연민으로 떨렸다. - P110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아버지는 기분파였다. 마음보다 행동이늘 앞섰다. 바깥에선 인심이 좋아 주위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호인이었지만, 집 안에선 독불장군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좀이쑤셨던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늘 사람들과 함께 산으로 강으로바다로 떠돌았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 P113
하지만 아기는 11월 11일 일요일, 병원에서 퇴원한 그날 저녁아홉 시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그렇게 죄가 많은 여자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기는 지금 얼어붙은 땅속에서 얼마나 추울까. 가엾어라. 가엾어라. 아기야, 넌 지금 얼마나 춥겠니. 이 못난 엄마를 용서해줘. 엄마는 영원히 너를 기억하고 사랑할 거야. - P115
형을 임신했을 당시, 어머니는 불안한 미래와 생활고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른 임신부들처럼 먹고 싶은 음식을제대로 먹지 못했고, 몸이 불편한 와중에도 시어머니의 병시중까지 들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지못했다. 건강한 아이를 낳기에는 어머니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열악했다. 제왕절개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돈이 없어서 생명의위험을 무릅쓰고 자연분만을 해야 했고, 그렇게 낳은 아이를인큐베이터에 한번 넣어보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와 숨이 끊어지는 모습을 봐야 했다. 당시 어머니의 참담한 심정은 일기에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P116
나는 이십 년 만에야 그때 어머니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게됐다. 어린 나이에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한 남자를 만나 아무런 준비 없이 세 아이를 낳고 한 아이를 잃은 여자. 아무도 그녀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쳐야하는지 일러주지 않았다. 자식 양육에 필요한 인내심을 배우기에는 그 어떤 환경도 그녀를 받쳐주지 못했다. - P136
어머니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에서 벗어나는 길을 선택했다. 어머니가 살면서 오직 자신만을 위해 결정한 처음이자 마지막선택이었다. 온몸으로 새장과 부딪쳤던 어린 새는 죽음으로써새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노트북으로 어머니의 일기를옮긴 뒤 경선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어머니를 AI로 되살려 자살의 이유를 묻겠다던 내 계획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음을깨달았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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