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피라예 - 가장 최고의 날들
자난 탄 지음, 김현수 옮김 / 라이프맵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아닌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의 무대에서 주연이 되는 자신을 밀어 버리고, 굴종이나 구속과 같은 강요된 삶을 살기를 요구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만 그것과 관련하여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자신이 선택하고 걸어간 인생의 과정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터키의 대표적인 국민여성작가로 일컬어지는 ‘자난 탄’의 장편소설로, 발간되자마자 이미 800만이 넘는 자국 내의 독자들은 물론, 세계 각국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으며, 현재는 원작을 바탕으로 드라마가 예정되어 있는 화제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결혼 이후 가족이라는 틀에 묶여 순종적이고 정체적인 삶을 요구받게 되는 이슬람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찾기 위한 고뇌와 시련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는데, 작품 내용을 통해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불합리한 인습과, 그에 따른 편견으로 인해 억압된 현실을 살아야 하는 오늘 이슬람 여성들의 단면을,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된다.

우선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피라예는 터키의 국민시인이라 불리는 나짐 하크메트의 연인 하티제 피라예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주인공 이름만으로도, 이 작품의 밑바탕에 이슬람 여성들의 여권 신장을 위한 저항의식이 깊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피라예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스스로 주체가 되는 자유로운 삶의 꿈꾸고자 하는 도시여성이다. 그녀는 멋진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권유로 치과의사로서 평생을 살아 온 아버지를 이어 같은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후 대학 생활 동안 그녀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른 연애와 관련하여 세 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성향적인 면에서는 동질감을 느끼게 되지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태도를 지녔던 첫 번째 남자 아리프와, 사랑의 감정을 가졌으면서도 겉으로 이를 표현하지 못해 우정인지 사랑인지 모를 우유부단함을 보였던 외메르와는 긴 인연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러던 중 시골 지주의 아들로 학교에서 제법 인기가 많았던 하심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되면서, 마침내 결혼을 하기에 이른다.

피라예는 결혼 전 남편 하심의 집안이, 가부장제나 일부다처제와 같은 오랜 전통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고, 자기는 이와 같은 방식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면서, 이점을 유념해 주기를 바라며 남편 하심도 그러한 인습에 얽매이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짐한다. 그러나 그녀의 실제 결혼 생활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될 줄 알았던 그녀는, 남편의 집안으로부터 결혼한 여자가 가정에 머무르지 않고 직업을 갖는 다거나, 임신의 강요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 그리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은연 중 강요받게 된다. 결국 그녀가 첫아이 딸을 낳고 이후 임신 불가능 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후, 대를 잇기 위해 시부모 집안에서 암암리에 진행했던, 우리나라로 이야기하면 후처를 들여 씨받이가 이루어지면서, 영원할 줄 알았던 이들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보이지 않는 앙금이 쌓이게 된다.

이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결혼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와 유사한 부분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 독자들이 주인공 피라예의 삶을 통해 여러 가지 면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녀의 남편 하심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인습에 얽매이는 부모들과는 달리, 깨어 있는 의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될 때면, 부부 간에 이루어져야 할 대화를 통한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보다는 이를 회피함으로서 결국 파경에 이르는 원인을 제공함으로서, 사랑으로 유지되어야 할 부부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다. 반면에 피라예는 부유한 남편 집안으로 인한 물질적인 혜택보다는, 조금은 가난해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 소설은 결혼 후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가정 내에서의 문제, 즉 고부간의 갈등과 가부장제에 의해 소외되는 여성의 모습을 심층적으로 다루면서도, 결과적으로 이혼으로 끝나게 되는 불행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불합리한 인습으로 인한 굴종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희망을 꿈꾸는 한 여성의 의지를 담고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 않나 싶다. 특히 이 작품에서 핵심이 되고 있는 결혼 이후 가정에서의 부부 간의 역할과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점을, 표면에 드러내어 이를 깊이 인식해보고자 했다는 점은 주목해 볼만하다. 어떤 이의 인생도 겉으로 보면 단조롭고 평범한 삶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를 깊게 들여다보면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이 추구해왔던 삶의 목적을 버리고, 의미 없는 인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작품 속 피라예의 모습에서 보듯 내가 없으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의 중심 바로 그곳에 우리 자신이 있음을 기억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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