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 홍신 세계문학 5
허먼 멜빌 지음, 정광섭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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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수중 생물 중에 가장 거대한 동물인 백경(모비딕)을 쫓아 이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 작품은, 미국 소설가 허먼멜빌에 의해 19세기 중반에 발표되었지만 당시에는 소설의 형식과 내용이 낯설다는 이유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현대에 이르러서야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고전문학의 3대 비극 반열에 올라있으며,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주의 문학으로 알려진 해양모험소설이기도하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설의 주 내용을 이루고 있는 고래사냥은 10세기경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당시에 고래잡이가 횡행했던 것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재료로 쓰이게 되는 고래로부터 얻는 기름 때문이었으며,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관계로 그 시대의 고래사냥은 선원들의 목숨을 걸어야 했을 만큼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었다. 이 작품은 포경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누비며 고래의 흔적을 쫓아 이를 포획하는 그 생생한 모험의 현장과, 육지를 벗어나 선박에서의 고독한 생활을 겪어야 하는 선원들의 애환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즐거움을 주기도 하는 반면에, 포경이라는 다소 낯선 소재에 맞춰 고래의 생태, 포경 기술, 그리고 장비 등 여러 전문적인 내용들까지 상세하게 다루어져 있어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부의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거대한 흰 고래에 맞서 목숨을 건 한판의 숭고한 대결 과정을 통해, 선과 악,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과 같은 철학적인 상상력을 일깨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한번 읽어 보면 좋을듯하다.

주인공 이스마엘은 현실에서의 우울하고 불만족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바다로 나가 선원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는 이곳저곳을 헤매며 방황하다가 어느 허름한 여인숙에서 포경선을 타고 작살 잡이 생활을 하고 있는, 미개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순박하고 믿음직한 퀴퀘그라는 친구와 하룻밤을 보내고 친해지면서 함께 같은 포경선을 타기로 약속한다. 여러 포경선을 물색하던 중, 그들은 에이허브 선장이 이끄는 피쿼드호를 타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마침내 첫 항해를 떠난다. 항해를 준비하고 승선도중에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에이허브 선장은 백경과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한때 백경을 잡으려다 실패한 후 그로인해 한쪽 다리를 잃고 이번 항해에서 오로지 백경을 잡기 위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노인이다. 이 배에는 그 외에도 침착하고 냉정한 성격의 일등항해사 스타벅과 위험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이등항해사 스터브 등 능력있고 전문적인 선원들이 고래를 잡기 위한 위험한 모험에 함께 동행 하고 있기도 하다. 피쿼드호는 인도양과 대서양 그리고 태평양을 지나는 무료한 항해 도중에도, 다른 여러 척의 포경선과 접촉을 시도하며 백경의 위치를 찾아 나서다가, 우연하게 백경을 발견하고 3일간의 목숨을 건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백경은 에이허브의 선장의 작살을 맞으면서도 반격을 통해 보트로 돌진하는 등의 이틀 동안의 숨바꼭질을 벌이다가, 3일째 되던 날 갑자기 난폭하게 변하면서 자신을 잡으려는 에이허브의 선장을 포함한 피쿼드호의 선원들을 공격하여, 이스마엘을 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결국 이 작품은 끝내 비극으로 종결 된다.

이 작품은 백경과 관련하여 이를 추적하고 사투를 벌이는 과정의 줄거리는 사실상 간단하게 그려져 있다. 대신 작품 속 상당부분은 포경의 역사나 고래의 종류와 같은 포경과 연관한 여러 전문적인 내용들이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만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조금은 독특해 보이는 소설이다. 또한 주인공 이스마엘은 작품 속 화자로 등장하면서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만, 중간 중간 일반적인 소설의 형식과는 사뭇 다른 더러 독백, 방백과 같은 극의 형태가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내용에서는 나레이터가 되기도 하는 등의 복잡다단한 변화의 양상을 띠기도 해서, 독자의 입장에서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피쿼드호의 선장이 그토록 집착하고 광기를 보이며 잡으려고 백경은 두 가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 하나는 에이허브 선장의 외침 속에서 그러하듯 백경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악의 화신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많은 포경선들이 백경을 만나 사투를 벌이지만 모두 그 앞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는 것은 물론이고, 목숨을 잃은 등의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는데, 피쿼드호 역시 그 중 하나의 희생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를 크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한 타협을 제시하거나 혹은 이를 회피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결국 백경은 악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인간의 영역 안에서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다. 또 하나는 백경의 겉모습에 나타나는 흰색이 지니는 의미인데, 이는 인간의 손에 쉽게 잡힐 것 같이 보이면서도 결코 잡히지 않는 희망으로 보이는 허상과 존재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책 속에서 이스마엘은 백색은 여러 제국에서 즐겨 사용했던 제왕의 색이며, 최고의 명예와 위엄, 권위를 나타내고 신성한 빛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설명한다. 결국 신기루처럼 보이는 백경의 모습을 보고 이를 잡기 위해 불나방처럼 달려들지만, 결국 이런 행위는 애초부터 실현불가능 했던 무리한 행동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많은 독자들이 여러 가지 많은 볼거리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진지한 철학적 물음을 제공하고 있는, 웅장하고 대단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감에 있어 스스로를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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