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홍신 세계문학 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채수동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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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니게 되는 관념의 저변에는 도덕과 양심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고, 이것이 이성이라는 힘과 결부되어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때로 저지르게 되는 무모하고 충동적인 여러 행위들을 비록 간접적이긴 하지만 강력하게 제약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생각해보면 오늘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죄들을 저지르고 살아간다. 그러한 것이 하나의 의미 없는 작은 시기나 질투에서 비롯되었던 혹은 타인으로부터 입게 된 깊은 상처였든지 간에, 결코 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 내면의 존재하는 양심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말이다. 그리고는 어리석게 생각되는 그러한 행동의 결과를 두고 왜 그랬을까 하는 끝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학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도 잠시, 아이러니 하게도 인간은 어느새 또 합리화라는 편리한 방법을 통해 자신을 변호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애초 의도적인 것도 아니었으며, 그 상황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행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정당방위임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위안하게 된다. 이런 점을 유심히 생각하다보면 인간이 과연 선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신뢰의 그 밀도를 지금보다 점점 줄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가 가지게 되는 여러 모순 덩어리들이 딱히 해결되는 것도 아닐듯해서 문득 답답해짐을 느낀다. 한때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에는 이 책에 짙게 깔려 있는 유물론 사상이나 인간의 본연적인 부분 즉, 선과 악의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내면적 문제들에 대해 다각적인 부분까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불충스런 독서가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번에 다시 손에 쥐게 된 그의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불안한 사회상에 맞물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우리들의 이중적인 모습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퍽이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진보적인 사상을 지닌 가난한 어느 젊은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 사회적 배경이나 제도 등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도덕이나 법이 정한 이치에 준하지 않는 자신의 신념에 따른 과오적인 행위에 대해, 그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고민하는 한 인간의 극적인 삶이 잘 드러나 있어,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겪게 되는 자신의 양심과의 내면적인 갈등의 부분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하는 것과, 또한 한 여인의 숭고한 삶으로 인해 느껴지는 휴머니즘적인 요소들을 가슴 깊이 감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간을 내어 누구나 한번쯤 읽어두면 좋은 작품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무엇에도 구속 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궁핍하고 가난한 환경으로 인해 좌절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고, 한때 자신이 이용했던 전당포의 주인인 구두쇠이자 탐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어느 노파를 살해하기로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시행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일종의 사회악으로 치부되는 것을 제거한 것이기에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한편, 우연하게 술집에서 만나 알게 알코올 중독자인 마르멜라도프라는 남자의 딸인 소냐의 희생적이며 종교의 덕목을 바탕으로 순수한 삶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그러한 그릇된 행동은 분명 단죄 받아야 한다는 것에 심각한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결국 그는 노파를 죽였다는 죄책감이 점점 자신의 목을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그녀를 찾아가 자신의 죄를 털어 놓고 용서를 빌며 자신을 내치지 말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경찰에 자수하게 된다.

이 작품은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인간내면의 복잡한 심리와 성격들을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상당해서 눈여겨 볼만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이 저지른 행동이 아무리 인도적인 차원이라 하더라도 죄를 범한 것에 대한 처벌의 문제를 두고 이를 우리가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와, 작중 인물인 소냐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서 더럽혀진 주인공의 인생이 새롭게 정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죄는 미워하데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당시의 모습과 대비하여 지금 우리들의 그 본질적인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사회가 설사 비록 말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하고 부패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그래도 세상이 살아갈만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 중 누군가는 타인을 위한 희생적이며 순교적인 삶을 실천해가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휴머니즘의 정신을 강조하기에 앞서, 우리가 이를 지지하고 또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보아주느냐에 대한 우리의 시각의 문제다. 즉 정의와 도덕에 따른 혹은 종교에서 말하는 순수한 삶을 지향하는 것을 두고, 우리가 존중하고 실천하기보다 마치 바보와 같은 인생으로 취급되는 웃기는 현실에 우리가 존재하는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보지 않으려 하고 순수를 순수 그자체로 인식하려 아니할 때, 이 책 주인공이 범하는 과실의 문제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복되어질 것이고, 그가 번민하고 고뇌했던 것처럼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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