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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의미 ㅣ 생각의힘 문고 1
김경렬 지음 / 생각의힘 / 2013년 11월
평점 :
‘시간이 없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시간을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시간이 금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등등 시간에 대한 말은 무수히 많다. 그만큼 시간에 관심이 많다는 말일 것이다. 최근 한병철박사의 ‘시간의 향기’란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일만을 위한 시간에는 향기가 없다.’고 한다. ‘시간은 사색을 해야 향기가 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간이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지금의 일분 60초, 한 시간 60분,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 일년 12달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늘 궁금했던 것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만들어졌는가? 늘 시간 속에 살면서 그 시간의 역사와 의미에 대하여 몰랐던 것을 알아보자.
아주 오래 전에는 시간이란 각각 나라별로, 지역별로, 민족별로 달랐다. 우리만해도 불기, 단기를 써왔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서기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달력을 카렌다라고 한다. 이 카렌다란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매 달에는 초승달이 나타나는 초하루를 가리키는 ‘칼렌데K', 달의 운행 주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날인 ’논, NON(5일 또는 7일)‘, 그리고 보름달이 나타나는 ’이두스, EIDUS(13일 또는 15일)‘라는 특별한 세 날을 정하였으며, 이들을 이용하여 날짜를 세었다. ’칼렌데‘는 ’부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칼라레‘에서 온 것으로 ’달력(Calendar)'의 어원이 되었다. 율리우스력은 이런 저런 2% 부족함에도 이전의 모든 달력을 통합하여 새로운 시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 버린 컴퓨터의 어원은 ‘계산하다.’라는 뜻의 콤푸타레(computare)‘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옛 로마에서 부활절을 계산해 내는 일을 ’콤푸투스(computus)'라고 하였으며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성직자를 두고 있었다. 이는 사육제, 사순절, 오순절까지의 여러 교회의 축일들이 부활절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당시 이 일이 매우 중대한 일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활절을 계산한다는 뜻에서 지금의 컴퓨터라는 말이 나왔다.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부활절 날짜를 정할 수 있는 독자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유대력에 의존하지 않고 초봄에 오는 부활절의 정확한 날짜를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예를 들면 춘분을 알아내기 위해 태양을 관측하였는데, 이것은 관측자의 지방시에 따라 달랐다. 알렉산드리아는 3월 21일을 춘분으로 여겼으나 로마에서는 3월 25일을 춘분으로 보았다. 결국 이러한 여러 난제를 피하기 위해 궁리해 낸 방법은 직접적인 천문 관측을 피하고 여러 가지 주기를 이용하여 천체 현상을 예측하는 짜 맞추기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부할절을 정하는데 있어서 유대교에서 개종한 신도나 소아시아의 다른 종교 출신의 개종자들은 니산달 14일을 중요시한 반면, 니산 14일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절로 생각하였던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도들 사이에서는 해석의 차이가 있었다. 이들 사이의 부활절 논쟁은 기독교 내부에 많은 불화를 일으켰으며,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에서 부활절을 ‘춘분 뒤 첫 만월 후의 첫 일요일’로 정하는 하나의 통일된 원칙을 이루어 낸 것이다.
0년이 없다. 0년이 없는줄도 몰랐다. BC와 AD는 각각 1년만 있지 그 중간의 0년은 없다. 왜 0년이 없을까? 6세기 유럽에서는 아직 0이나 음수의 개념, 이 개념이 일반화되는 데는 수백년이라는 세월이 더 있어야 하였다. 21세기의 시작도 2000년이 맞느냐? 2001년이 맞느냐의 논쟁이 있었다. 그래서 뉴밀레니엄을 2000년을 맞이하는 날로 할 것이냐? 2000년을 지내고 2001년 1월 1일 0시로 할 것이냐?의 논쟁이 있어서 결국 2000년에 한 번, 2001년에 한 번 더 한 것이다. 유럽에 가면 엘리베이터에 0층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0층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1층은 땅에 붙어 있으니 0층이 맞고, 한 층을 올라가니 2층이 1층이 아니겠는가? 숫자의 개념, 문화의 차이다.
부활절 연대표를 율리우스력에 맞추어 부활절을 정하는 과정에서 매년 발생하는 약 11분의 오차가 문제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것이 누적되면서 봄의 시작을 알려 주는 춘분이 점점 겨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16세기에 이르러서는 3월 21일이 되어야 할 춘분이 달력상으로는 10일 정도나 앞당겨져 3월 11일 정도에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에서 사용되는 달력상 한 해가 더 이상 태양년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누구나 느끼게 된 것이다. 당시 해마다 변동하는 부활절 날짜를 산정하던 대부분의 성직자들도 이를 알고 있었으나 거의 체념한 상태였다. 시간은 신으로부터 온 것이며, 달력도 신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감히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베이컨같은 몇몇 학자들이 달력의 개혁을 주장하였지만 제대로 된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이를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마침내 1528년 달력에서 10일을 없애버리는 정말로 과감한 달력 개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레고리력이 싫어서 시간과 달력을 바꿔보려고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는 전제군주제를 탈피하고 공화정을 세우고, 탈종교화하려는 의지를 강력히 담기 위해 십진법으로 하루 20시간 즉 오전 10시간, 오후 10시간, 1시간 100분의 시계를 만들기도 했었으나 국민들의 익숙치 않음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소비에트연방에서 5일 1주로 하여 토요일, 일요일을 사라지게 하였다. 공업 및 행정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5일 중 4일을 번갈아가며 근무하는 다섯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끊임없는 생산력 강화라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이 달력은 실제로는 쉬는 날이 전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가족들이 함께 쉬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자 결국 2년 뒤인 1931년 폐지되었다.
원래 달력은 달력일 뿐이었다. 주란 개념은 없었다. 그러나 바빌론과 유대교 사람들은 7일을 주기로 안식일을 지키며 보냈다. 7일 일주일은 하나님이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하고 7일째 휴식을 취하셨다고 전하는 창세기가 인정하는 주기였다. 히브리인들은 7일째 바빌론 포로 시기에 더 이상 성전에서 기도를 드릴 수 없게 되자 7일 중 하루를 하나님께 바치는 방식으로 시간을 통하여 공간적 상실감을 상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일주일이라는 시간 단위는 곧 소아시아,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로마로 퍼져 나갔으며, 인도에서는 5세기경에 이를 받아들였고, 9세기에 이르러서는 극동 지역에까지 전파되었다. 이렇게 하여 7일 1주의 단위를 통하여 ‘휴식과 노동’, ‘일반적인 날과 특별한 날’이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 냈다. 이 리듬은 사회생활에 매우 유용한 것으로 판명되면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반화되었고, 인류의 아주 뿌리 깊은 전통이 되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라 한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이동 중에 있는 사람이 시간을 재면 그 시간은 상대적인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1916년 아인슈타인은 엄청난 질량을 가진 물체는 공간을 휘게 하며 시간마저도 느리게 흐르도록 한다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였다.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이다. 시간의 느끼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시간은 느려지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적 시간이라고 한다. 첫째, ‘시간의 경과에 대한 주의’를 할 때에는 느리게 느껴진다. 둘째, ‘경화 시간 중에 일어난 사건의 수’가 많으면 늦어진다고 느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나는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질문을 한 사람에게 이를 설명하려고 하자 나는 시간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뭘까? 내가 답해본다면 나는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산물이다.” 왜? 만약 초, 분, 일, 주, 년이 없다면 사람들의 삶은 죽음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뭘 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고, 그냥 막 살거나, 삶을 허비하였을 것이다. 올해도 벌써 반 달 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새 해를 더욱 힘차게, 보람 있게, 남을 위해 유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생각을 하며 살겠는가? “시간을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