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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인간 - 내 인생 좀먹는 인간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법
베르나르도 스타마테아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알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떤 모임에만 가면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 내가 어떤 의견이나, 말을 하면 꼭 토를 달아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무시하거나, 희석시키면서 말을 끝낸다. 그거도 알 듯 모를 듯 하면서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그 모임에 갔다오면 늘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를 늘 고민하게 된다. 또한 내가 무슨 의견을 말하면 반대를 한다. 그리고 해내지도 못하면서 말만한다는 말투로 비웃음을 웃는다. 말할 때마다 기분이 나쁘지만 가족이라 어쩔 수 없다. 이 책에서도 가족은 어쩔 수 없지만 친구나 대인 관계는 철저히 본인이 선택해서 나에게 유해한 인간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때까지 넓은 아량으로 사람들은 포용하고, 용서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들만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그런 사람들을 내 주위에서 철저히 배척해야 내가 살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읽어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살아야 남도 용서하든, 포용하든 할 것이 아닌가? 나를 죽이는 유해인간을 멀리 보내 버리고, 내가 살자. 그리고 유해인간을 변화시켜 무해인간, 유익인간으로 만들자.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유해인간인가?
13가지의 유해인간을 소개 하고 있다. 어떤 유해인간이 가장 해로운가? 아마 각각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제1장의 죄의식을 강요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뭘 하든지 죄의식을 심어주고, 스스로 죄의식을 가지면서 남까지 죄의식에 빠지게 만든다. 뭐든지 자기가 다 책임이라는 특이한 생각,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가족들, 지인들에게까지 이런 죄의식을 심어주어 마음으로부터 평안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슨 세상 짐을 혼자 다 질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이런 죄의식을 심어주는 사람들 대부분이 물귀신작전을 쓴다. 절대 혼자 부담을 지지 않는다. 자기 혼자 불행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 옆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잡아채 무거운 짐을 지우고, 함께 지고 갈 것을 강요한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 “너는 행복해질 자격이 없어!”하면서 나팔을 불어 댄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피해자다. 이런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질수록 유익하다. 그러나 이런 죄의식을 심어주는 사람이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제6장의 사이코패스, 즉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는 유익이 있다. 우리가 가끔은 이런 나르시스트나, 사이코패스 증상이 나타나 자기 우월감에 빠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1자녀만 두는 가정에서 태어나 오직 자기만 바라봐주는 환경에서 자라 그런 현상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나는 5남매의 셋째로 태어나 전혀 그런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사이코패스, 나르시스트의 경향이 있기에 아마 내 주위에 죄의식을 강요하는 사람이 붙어 있나 보다.
나도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지만 더 강한 사람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이 때 쓰는 좋은 방법을 찾아내었다. 기본적으로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일에 추호도 관심을 보이지 말라. 무관심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무시와 무관심은 다르다. 그들을 무시한다는 것은 당신이 그들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허락하는 행위다. 무시가 아니라 무관심으로 그들을 근절시켜야 한다. 사이코패스가 우리 인생을 비집고 들어오도록 허용한 우리 탓이다. 당신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먼저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 화가 나더라도 그들을 용서하자. 당신의 감정을 조종하는 유해인간을 머릿속에서 몰아내고 긍정적 인간관계를 만들어라. 사이코패스들은 언젠가는 결국 스스로 망하니 걱정하지마라. 사이코패스가 당신이 주변 사람들과 맺는 인간관계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라. 당신의 프라이버시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그들이 당신의 사생활과 감정을 절대로 해치지 못하게 하라. 때론 큼직한 포스터를 붙여도 좋다. “출입금지!”
나는 이 책의 결과로 보면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다. “나보다 잘난 꼴이란 정말 못 봐주겠어” 정말 이런 심정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잘 된 것은 다 요행이라 생각된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하지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을 사람들이 몰라준다는 착각에 산다. 바닷게를 팔 때 일본산 바닷게 통은 그물로 덮어두고, 아르헨티나 산은 열어둔다. 왜? 일본산은 열어두면 서로 힘을 모아 통을 빠져 나오지만 아르헨티나 산은 서로가 탈출 못하도록 붙잡는 바람에 결국 한 마리도 못나온다는 것이다. 질투심이 많은 사람의 침묵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카릴 지브란- 건전한 질투란 없다. 모든 질투는 건강하지 않다. 스페인의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도는 “질투는 기근보다 천 배나 더 끔찍한 영적인 기근이다.” 또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질투는 열등감의 선언’이라고 단언했다. 다른 사람의 인생, 즉 제 3자의 성공에만 몰두한 채 정작 자신의 삶 앞에 펼쳐진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자신의 삶은 뒷전인 채 다른 사람의 인생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는 많은 것을 인내하고 극복해 성공에 도달할 만한 능력이 있는가? 그들은 자신이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정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노력, 열정, 일, 집중력, 시간, 헌신, 연구, 준비, 투철한 목표의식 그리고 치밀한 전략을 따라갈 수 있을까? 스페인 속담에 “내 성공을 보려거든 내 희생도 보아라” 그렇다. 이제부터 나만 보자. 혹 남이 성공했다면 그들의 행운이 아니라 수고를 보자. 그리고 그들을 닮아 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