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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흔적을 찾아서
바바라 해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영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신에 대한 논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할 것이다. 존재 여부를 비롯하여, 어떻게 보여지며,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등등이다. 과거에는 존재 여부는 그저 논쟁은 있으나 증명은 어려웠다. 그저 주장만 할 뿐 믿고 믿지 않고는 개인의 선택에 불과했다. 물론 아직도 이 부분은 별반 다를게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양자물리학, 뇌과학 등이 발달하면서 신의 존재와 임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되었다. 그런면에서 저자는 냉철하고도, 객관적으로 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인물, 즉 모든 종교를 구분없이 수용하고, 각 종교 지도자들 중에 거장들을 찾아 그 증거를 찾고자 애를 썼다. 어떻게 찾아갔으며, 어떻게 결론이 날지 궁금하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을 받는 독자들의 반응 또한 제각각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가능하면 객관적이려고 부단히 노력한 면을 본다면 우리 또한 이 객관적 사실들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그릇이 필요한 것 같다.
먼저 저자는 신의 존재가 인간의 삶에 무단으로 침입한다고 보았다. 신이 임재할 때 사람의 마음이 악한데서 선해지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첫째가 꼴지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신의 임재가 이토록 사람들을 통째로 바꿔 놓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신은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는데 특별히 인간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병을 고치기도 하고,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일들에 대한 증명은 수도 없이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당연히 받아들인 후에 그렇다면 신이 인간에게 다가오는 방식, 통하는 연결 인자는 무엇이 있으며, 인간의 어떤 인자들을 자극하는가 등이 궁금증이었다. 즉 무엇인 신을 만나는 도화선이 되는가가 주된 관심사였고, 이 부분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신이 임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신이 임재한 상태가 아니라 신이 임재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인간이 희열, 기쁨, 치료, 행복, 환희 등이 목표가 되어 신을 체험하고자 하지만 이런 현상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신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신을 체험하는 흥미로운 촉매제이다. 그건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삶의 목적이 필요합니다.”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있는 웨스트몬트 대학교의 심리학자 레이 팔루치언이 말했다. 인간의 제한적인 삶을 잘되게 하는 것만을 주기 위해 신이 임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현상들은 신이 임재하는 체험에 불과하고 더 깊은 것을 주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신을 더 잘 감지하는데 특별한 요소가 있는가? 신은 어떻게 인간에게 자극하는가?를 찾아 나섰다. 신을 더 잘 감지하는 유전자가 있는가? 부모가 영적인 자녀는 다분히 영향을 받아 영적인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런 현상이 더 잘 나타나기는 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유전자로만 신이 임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은 화학자인가? 신은 인간의 뇌의 화학물질을 자극해서 그런 통로로만 임재하는가를 생각하고 연구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꼭 그런 통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밝혀졌다. 신은 전기 기술자인가? 로렌시언 대학교의 마이클 퍼싱어 박사는 ‘신 헬멧’을 만들었다. 이 헬멧은 약한 자기장을 이용해 뇌의 특정부위, 즉 측두엽을 자극한다. 그러면 이론상으로는 ‘감지되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 헬멧을 써본 2천여 명의 실험 대상자 가운데 족히 80%는 현기증, 전율, 어지러움, 환영뿐만 아니라 가지되는 존재를 느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가 직접 경험해 본 결과 자신의 측두엽을 자극함으로써 이미지를 불러일으켰었다. 그리나 자신이 기억한 것들이 옛날에 들은 것들이 다시 상기되는 것인지, 그 순간 신이 말한 것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저자는 신의 임재 체험을 증명하기 위해 각 종교의 영적 거장들을 찾았다. 교회 목사, 티베트 불교 승려들, 프란체스코회 수녀들, 시크교도, 오순절파 기독교도 등등 온갖 종교의 영성 전문가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이 명상할 때 뇌를 스켄했더니 상당히 많은 변화로 인정할 수 있는 15%정도의 활동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기도할 때 신체나 마음이나 언어의 변화로 인한 전두엽의 활동인 매우 원천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즉 신이 임해서 나타나는 뇌의 변화로 볼수도 있지만 그런 상태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의해서 나타나는 전두엽의 변화라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이자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무신론 철학자인 앤터니 플루도 2004년에 신의 논리에 귀의했다. 팔순이 가까워지면서 플루는 자기 업적의 기반이었던 무신론을 포기했다. 지적인 생명은 무작되로 생겨날 수 없으며, 조물주의 손길에 의해 다듬어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을 발견하기까지 나의 여정은 이성을 통해서였다. 나는 논쟁이 나를 이끄는 대로 따라왔고, 자체적으로 존재하며 변치 안고 빗물질적이고 전지전능한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유전학자이며, 국립보건연구원이 주관하는 인간의 유전적 지도를 만들어낸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이끌었던 프랜시스 콜린스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증명할 수는 없지만, 무신론 보다 더 개연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적인 논쟁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논쟁들을 따라오다가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그는 우주와 생명을 창조한 정신으로 자신을 이끈 ‘신이 존재한다는 단서들’을 몇 가지 들었다. 하나는, 인간이 살고 있는 우주처럼, 전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뭔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빅뱅이다. 우주의 시작이 있다면 ‘시간과 공간의 법칙에 제약을 받지 않는, 퓨즈에 불을 붙인 창조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는 ‘말할 수 없이 효율적인 수학’이다. “우리의 상상을 불허하는 수학적 능력을 가진 정신이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수학을 사랑하고, 존재들이 복잡성을 통해 지적인 생명으로 진화해서 뭔가가 더 존재하는지 궁금해하는 그런 우주를 원하는 신의 존재를 믿게 됐다”고 했다. ‘신’은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망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주의 수학을 통해 내려진 결론일지 모른다. 행성으로 하여금 궤도를 돌게 하고 우리가 숨을 쉬는 데 적합한 분자들로 공기를 구성한, 무한하고 지적인 존재 이 지적인 존재는 편협한 근본주의자들의 상상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가장 뛰어난 과학적 두뇌들이 내린 결론이다. 이러한 신이 바로 내게 설득력 있는 신이자 새로운 과학실험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신이다.
신1.0이란 말은 래리 도시가 1989년 자신의 저서 <영성 회복>에서 처음 만든 단어이다. 의사이자 저술가인 래리 도시는 신을 비국지성 정신이라고 부른다. ‘비국지성’이란 물리학에서 가장 난해한 분야 가운데 하나인 양자역할에 단골로 나오는 개념이다. 과학의 첨단에 있는 래리와 다른 과학자들에게 ‘비국지적 정신’이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의식을 말한다. 래리는 “비국지성은 단순히 무한함을 좀 더 어렵게 풀이한 말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겠죠” “의식이 비국지적이라면 시간과 공간적으로 무한하다는 뜻이 되죠. 공간적으로 무한한 존재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겁니다. 시간적으로 무한하면 영원한, 불멸의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비국지적 정신이라는 개념에는 시작부터 신학적 의미의 폭탄이 장착되는 겁니다.”
래리는 ‘국지적’ 정신을 개인용 컴퓨터라고 하자. 여기에는 아 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파일과 자료가 저장되어 있다. ‘비국지적’ 정신은 인터넷 같은 것이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고 수십억명의 인간들이 이 정보를 공유하며 개개인의 정신을 통해서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다. 국지적 정신과 비국지적 정신은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이 우주나 신과의 ‘일체감’을 느꼈고, 무한함, ‘내면의 신성’을 느꼈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원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의식이 어떻게 비국지적으로 행동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과학자들은 중보기도를 통해 비국지적 역사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에게는 금기사항이었다. “문제는 이겁니다. 데이터에 메시지가 입력이 안 됐어요. 데이터는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겁니다. 의사인 래이라 개업의를 시작한했였고,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에서 멀어져 불교서적에 심취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한 환자는 검사를 한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검사 결과가 어떨지 미리 보였어요. 다음 날 사무실에 가보니 내가 그대로 나온 거예요. 이건 시간을 초월해서 의식이 비국지성이 발현된 겁니다. 이런 현상을 초심리학적 현상이라 합니다. 이런 현상만 보아도 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딘 라딘은 지력과학연구소의 과학자다. 그는 말하기를 “과학은 새로운 작업입니다. 우리는 이제 막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우주를 거의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정신 나간 겁니다.”고 했다. ‘신’에 대해 전부 안다고 하는 것보다 더 오만한 게 있을까. 하지만 과학이 진보하면서 순수하게 유물론적인 패러다임이 풍미하던 시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많은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물질만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패러다임을 반박하는 증거들이 쌓이고 있고, 이러한 증거들은 명상, 기도의 작용, 임사체험과 같은 보다 혁신적인 연구들에 의해 보강되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다. 사실 과학은 우주를 관장하고 생명을 창조한 존재와 공존할 수 있다. 유물론자들이 과학의 조종실을, 그와 더불어 확인 가능한 진실을 수 세기 동안 통제해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유물론자들은 10,500개의 다른 우주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어쩌다보니 생명에 적합한 우주에 안착하게 된 엄청 운 좋은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주의 수학자가 우주를 창조했고 그 우주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도록 했다는 설명 또한 개연성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더 단순하고 우아한 설명 아닌가? 저자가 객관적으로 열거했듯이 나 또한 있는 그대로를 줄여 요약하는 것으로 서평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