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석의 직설 - 좌에서 묻고 우에서 답하다
강용석 지음, 박봉팔 엮음 / 미래지향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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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늦깍이 독서맨이다. 조금만 더 일찍 책을 읽었더라면 후회가 막급하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부와 독서는 기본이다. 저자 강용석의 학습 능력은 참으로 탁월하다. 이런 공부의 내공이 쌓여서 아마 스스로 한 나라의 지존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 곳곳에 강용석의 명석한 두뇌임을 입증되고 있다. 어떤 분야든 막히지 않았다. 내가 읽으면서 전혀 무뇌한인 그런 분야까지 꿰뚫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참으로 똑똑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외에도 강용석의 인물됨을 살펴보자.

 

정치가이면서도 유머와 재치는 남다른데가 있다. 말재주가 애드립을 넘어 심도 있는 대담들이 오가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철저히 계산된 발언과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깃든 행보들이다. 방송을 하는 것, 최효종을 고소한 것, 직설을 서슴없이 가하는 것 등등은 일반으로서는 말재주로만으로는 불가능한 부분들을 거침없이 해 내고 있다. 유머까지도 앞을 내다보고 하는 치밀한 사람임을 보고 가히 놀랍다가 못해 현대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공부 능력은 그의 학력으로 충분하다. 경기고, 서울대, 하버드 대학원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거기다가 변호사, 34세에 국회의원 더 이상 뭘 볼 것인가? 이 책에서 그냥 공부만으로 국회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되었다. 각 분야에 상당한 공부를 했음이 입증되었다. 정치, 외교, 국제 정세, 한반도 정세, 역사적 관점, 앞으로의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미래, 중국 역사, 세계 역사 등등은 정치를 할 만한 충분한 재능을 갖추었다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자란 환경이 또한 정치하기에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3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아버지의 이력과 그나마 17세에 아버지를 잃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서 자수성가한 산전수전을 겪은 인생의 내공이 쌓인 인물이라 생각된다. 곱게 자란 사람은 서민들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 힘들텐데 상당한 장점이라 생각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고,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많은 돈이 드는 미국 유학까지 감행해 결국 하바드라는 세계 최고 학부를 졸업하는 영광을 얻은 것은 개천에서 용난 본보기를 보여준 인물임에 틀림없다. 정치가로서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소년등과>라는 말이 있다. 너무 젊어서 성공하면 나중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강용석도 소년등과에 속하지만 국회의원 낙선이라는 쓴맛을 보았으니 실패 중에 성공이라 볼 수 있다. 강용석에게는 스스로 말하기를 운이 따라야 한다는데 낙선이 그에게는 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낙선은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멘토로 여기는 처칠, 대처도 젊어서 쓴맛을 많이 본 인물들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아직 30대니 장래가 창창하다. 차차기 대권을 생각하는데 더 멀리 보는 것은 어떠할지 모르겠다.

 

한국인의 정서는 어떠한가? 관자는 나라의 통치는 법으로서가 아니라 예라고 한다. 미국은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녀 간에도 법으로 정한다. 법으로 뭐까지 정할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우리나라도 점점 닮아가고 있다. 인간 관계를 어떻게 불완전한 법으로 정할 수 있는가? 인간이란 성문으로 다 규정지을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인데 어떻게 다 규명할 것인가? 가장 좋은 통치 방법은 서로간의 예로 다 되면 더 이상 뭐가 필요할 것인가? 그래서 법은 단순할수록, 적을수록 좋은게 아닌가? 이와 같은 원리로 생각해 보면 나라의 통수권자가 머리가 좋은 사람이 필요할 것인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인가? 계산을 잘하고, 치밀한 성격이 필요할 것인가? 그렇게 보면 제갈 공명이 나라를 짊어졌을 것이다. 유방이 아니라 조조가 이겨먹었을 것이다. 유방에게 제갈 공명이 들러붙었다. 제갈 공명에게 유방이 따른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의 정서는 그릇을 요구한다. 감을 바란다. 대통령감, 최고 통수권자가 될 만한 그릇을 바란다.

 

나는 대학원 졸업 후 25년이 넘도록 모이는 모임이 있다. 돌아가면서 회장을 수행하였다. 그 후에는 감이 되는 사람이 회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다. 나는 늘 총무 아니면 회계다. 왜? 나는 가볍다. 말이 많다. 유머나 농담을 잘 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있는데 수행능력이 딸린다. 행동보다는 말이 앞선다. 그래서 그런지친구들이 인정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말을 아끼고, 가볍게 보이지만 않았으면 회장 여러번 했을 텐데하는 후회도 한다. 내가 회장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작은 모임에도 감, 그릇이 있다. 사람은 번뜻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보다는, 똑똑하게 보이는 사람보다는 듬직함, 뭔가 있을 것 같은 이미지를 바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것이 한국의 정서다. 강용석이 이 부분만 숙고한다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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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흔적을 찾아서
바바라 해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영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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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논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할 것이다. 존재 여부를 비롯하여, 어떻게 보여지며,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등등이다. 과거에는 존재 여부는 그저 논쟁은 있으나 증명은 어려웠다. 그저 주장만 할 뿐 믿고 믿지 않고는 개인의 선택에 불과했다. 물론 아직도 이 부분은 별반 다를게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양자물리학, 뇌과학 등이 발달하면서 신의 존재와 임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되었다. 그런면에서 저자는 냉철하고도, 객관적으로 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인물, 즉 모든 종교를 구분없이 수용하고, 각 종교 지도자들 중에 거장들을 찾아 그 증거를 찾고자 애를 썼다. 어떻게 찾아갔으며, 어떻게 결론이 날지 궁금하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을 받는 독자들의 반응 또한 제각각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가능하면 객관적이려고 부단히 노력한 면을 본다면 우리 또한 이 객관적 사실들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그릇이 필요한 것 같다.

 

먼저 저자는 신의 존재가 인간의 삶에 무단으로 침입한다고 보았다. 신이 임재할 때 사람의 마음이 악한데서 선해지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첫째가 꼴지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신의 임재가 이토록 사람들을 통째로 바꿔 놓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신은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는데 특별히 인간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병을 고치기도 하고,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이런 일들에 대한 증명은 수도 없이 너무 많아 다 열거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당연히 받아들인 후에 그렇다면 신이 인간에게 다가오는 방식, 통하는 연결 인자는 무엇이 있으며, 인간의 어떤 인자들을 자극하는가 등이 궁금증이었다. 즉 무엇인 신을 만나는 도화선이 되는가가 주된 관심사였고, 이 부분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신이 임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신이 임재한 상태가 아니라 신이 임재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인간이 희열, 기쁨, 치료, 행복, 환희 등이 목표가 되어 신을 체험하고자 하지만 이런 현상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신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신을 체험하는 흥미로운 촉매제이다. 그건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삶의 목적이 필요합니다.”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있는 웨스트몬트 대학교의 심리학자 레이 팔루치언이 말했다. 인간의 제한적인 삶을 잘되게 하는 것만을 주기 위해 신이 임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현상들은 신이 임재하는 체험에 불과하고 더 깊은 것을 주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신을 더 잘 감지하는데 특별한 요소가 있는가? 신은 어떻게 인간에게 자극하는가?를 찾아 나섰다. 신을 더 잘 감지하는 유전자가 있는가? 부모가 영적인 자녀는 다분히 영향을 받아 영적인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런 현상이 더 잘 나타나기는 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유전자로만 신이 임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은 화학자인가? 신은 인간의 뇌의 화학물질을 자극해서 그런 통로로만 임재하는가를 생각하고 연구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꼭 그런 통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밝혀졌다. 신은 전기 기술자인가? 로렌시언 대학교의 마이클 퍼싱어 박사는 ‘신 헬멧’을 만들었다. 이 헬멧은 약한 자기장을 이용해 뇌의 특정부위, 즉 측두엽을 자극한다. 그러면 이론상으로는 ‘감지되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 헬멧을 써본 2천여 명의 실험 대상자 가운데 족히 80%는 현기증, 전율, 어지러움, 환영뿐만 아니라 가지되는 존재를 느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가 직접 경험해 본 결과 자신의 측두엽을 자극함으로써 이미지를 불러일으켰었다. 그리나 자신이 기억한 것들이 옛날에 들은 것들이 다시 상기되는 것인지, 그 순간 신이 말한 것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저자는 신의 임재 체험을 증명하기 위해 각 종교의 영적 거장들을 찾았다. 교회 목사, 티베트 불교 승려들, 프란체스코회 수녀들, 시크교도, 오순절파 기독교도 등등 온갖 종교의 영성 전문가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이 명상할 때 뇌를 스켄했더니 상당히 많은 변화로 인정할 수 있는 15%정도의 활동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기도할 때 신체나 마음이나 언어의 변화로 인한 전두엽의 활동인 매우 원천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즉 신이 임해서 나타나는 뇌의 변화로 볼수도 있지만 그런 상태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의해서 나타나는 전두엽의 변화라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이자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무신론 철학자인 앤터니 플루도 2004년에 신의 논리에 귀의했다. 팔순이 가까워지면서 플루는 자기 업적의 기반이었던 무신론을 포기했다. 지적인 생명은 무작되로 생겨날 수 없으며, 조물주의 손길에 의해 다듬어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을 발견하기까지 나의 여정은 이성을 통해서였다. 나는 논쟁이 나를 이끄는 대로 따라왔고, 자체적으로 존재하며 변치 안고 빗물질적이고 전지전능한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미국의 권위 있는 유전학자이며, 국립보건연구원이 주관하는 인간의 유전적 지도를 만들어낸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이끌었던 프랜시스 콜린스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증명할 수는 없지만, 무신론 보다 더 개연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적인 논쟁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논쟁들을 따라오다가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그는 우주와 생명을 창조한 정신으로 자신을 이끈 ‘신이 존재한다는 단서들’을 몇 가지 들었다. 하나는, 인간이 살고 있는 우주처럼, 전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뭔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빅뱅이다. 우주의 시작이 있다면 ‘시간과 공간의 법칙에 제약을 받지 않는, 퓨즈에 불을 붙인 창조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는 ‘말할 수 없이 효율적인 수학’이다. “우리의 상상을 불허하는 수학적 능력을 가진 정신이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수학을 사랑하고, 존재들이 복잡성을 통해 지적인 생명으로 진화해서 뭔가가 더 존재하는지 궁금해하는 그런 우주를 원하는 신의 존재를 믿게 됐다”고 했다. ‘신’은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망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주의 수학을 통해 내려진 결론일지 모른다. 행성으로 하여금 궤도를 돌게 하고 우리가 숨을 쉬는 데 적합한 분자들로 공기를 구성한, 무한하고 지적인 존재 이 지적인 존재는 편협한 근본주의자들의 상상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가장 뛰어난 과학적 두뇌들이 내린 결론이다. 이러한 신이 바로 내게 설득력 있는 신이자 새로운 과학실험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신이다.

 

신1.0이란 말은 래리 도시가 1989년 자신의 저서 <영성 회복>에서 처음 만든 단어이다. 의사이자 저술가인 래리 도시는 신을 비국지성 정신이라고 부른다. ‘비국지성’이란 물리학에서 가장 난해한 분야 가운데 하나인 양자역할에 단골로 나오는 개념이다. 과학의 첨단에 있는 래리와 다른 과학자들에게 ‘비국지적 정신’이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의식을 말한다. 래리는 “비국지성은 단순히 무한함을 좀 더 어렵게 풀이한 말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겠죠” “의식이 비국지적이라면 시간과 공간적으로 무한하다는 뜻이 되죠. 공간적으로 무한한 존재라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겁니다. 시간적으로 무한하면 영원한, 불멸의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비국지적 정신이라는 개념에는 시작부터 신학적 의미의 폭탄이 장착되는 겁니다.”

 

래리는 ‘국지적’ 정신을 개인용 컴퓨터라고 하자. 여기에는 아 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파일과 자료가 저장되어 있다. ‘비국지적’ 정신은 인터넷 같은 것이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고 수십억명의 인간들이 이 정보를 공유하며 개개인의 정신을 통해서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다. 국지적 정신과 비국지적 정신은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이 우주나 신과의 ‘일체감’을 느꼈고, 무한함, ‘내면의 신성’을 느꼈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원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의식이 어떻게 비국지적으로 행동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과학자들은 중보기도를 통해 비국지적 역사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에게는 금기사항이었다. “문제는 이겁니다. 데이터에 메시지가 입력이 안 됐어요. 데이터는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겁니다. 의사인 래이라 개업의를 시작한했였고,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에서 멀어져 불교서적에 심취하기 시작했던 때였다. ”한 환자는 검사를 한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검사 결과가 어떨지 미리 보였어요. 다음 날 사무실에 가보니 내가 그대로 나온 거예요. 이건 시간을 초월해서 의식이 비국지성이 발현된 겁니다. 이런 현상을 초심리학적 현상이라 합니다. 이런 현상만 보아도 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딘 라딘은 지력과학연구소의 과학자다. 그는 말하기를 “과학은 새로운 작업입니다. 우리는 이제 막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우주를 거의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정신 나간 겁니다.”고 했다. ‘신’에 대해 전부 안다고 하는 것보다 더 오만한 게 있을까. 하지만 과학이 진보하면서 순수하게 유물론적인 패러다임이 풍미하던 시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많은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물질만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패러다임을 반박하는 증거들이 쌓이고 있고, 이러한 증거들은 명상, 기도의 작용, 임사체험과 같은 보다 혁신적인 연구들에 의해 보강되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다. 사실 과학은 우주를 관장하고 생명을 창조한 존재와 공존할 수 있다. 유물론자들이 과학의 조종실을, 그와 더불어 확인 가능한 진실을 수 세기 동안 통제해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유물론자들은 10,500개의 다른 우주에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어쩌다보니 생명에 적합한 우주에 안착하게 된 엄청 운 좋은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주의 수학자가 우주를 창조했고 그 우주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도록 했다는 설명 또한 개연성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더 단순하고 우아한 설명 아닌가? 저자가 객관적으로 열거했듯이 나 또한 있는 그대로를 줄여 요약하는 것으로 서평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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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철의 여인들처럼 - 역사를 이끈 위대한 철의 여인들에게 배운다
김병완 지음 / 북씽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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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다. 최근 남북관계를 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유세중 얼굴에 자상 테러를 당했을 때 첫 마디가 “악!”하는 비명이 아니라 “대전은” 하며 다음 유세지를 걱정했다고 한다. 여성이지만 강하고, 국가의 부름에 답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성이 여성 성향을 보이는게 1/5이고, 여성이 남성 성향을 보이는게 1/5라고 한다. 아마 <여자, 철의 여인들처럼>에 등장하는 여성 리더들은 대부분 남성 성향을 가진 여성들이라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각각의 인물들의 특징을 보고 배워보려 한다.

 

1. 패션으로 여성을 해방시킨 20세기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 코코 샤넬

코코 샤넬은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한 여성이다. 그의 성공의 포인트는 남과 다름을 추구하고 세상의 관습을 거부한데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모든 게임의 법칙을 파괴했고,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스스로 만들었던 그런 여성이었다. 남들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줄 알았고, 남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것들을 상상해 내고 그것을 실천해 낼 줄 알았던 그런 여성이었다. 자신의 삶이 누구와도 같지 않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자신만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했고,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줄 알았다. 그녀가 패션계의 여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퍼스널 마케팅의 귀재였기 때문이다. 그녀만의 마케팅 방법은 개인적인 마케팅과 신비주의 마케팅이었다.

 

2. 미국 역사상 행정부의 가장 고위직에 오른 여성: 메들린 올부라이트

울부라이트는 나이 40에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평범한 직장생활에서 39이라는 늦은 나이에 정계에 입문했다. 늦었지만 착실히 준비했고, 그녀는 강인함과 도전정신으로 일관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난민 출신인 그가 국무장관이 된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는 이런 시련 속에서도 강인함, 도전정신을 절대로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시련은 더 강해지는 도구일 뿐이었다. 그는 편안한 삶보다는 거친 삶을 선택한 여성이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반면에 그녀는 도전, 또 도전하는 정신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어떤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변화인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바란다면 당연히 도전하는 정신과 이를 극복하는 인내와 지혜가 절대적인 것이다.

 

3. 나이 마흔에 등단한 전업주부, 다섯 아이의 엄마,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박완서

박완서님의 소설은 몇 편 읽었다. 그의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그의 삶의 이야기였다. 그의 질곡있는 삶의 이야기를 우리들의 치료제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은 치유소설이라 일컫는다. 그는 전업주부에서 나이 40에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그녀가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지 주제에 무슨 소설은 소설”할 정도로 옆에서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운명처럼 그를 잡아 당기는 그 무엇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아들을 잃는 아픔, 남편을 먼저 보내는 고통 등을 글을 쓰면서 치료 받은 그런 작가였다. 그런 아픔들이 우리의 상처를 싸매고, 어루만졌던 것이다. 그는 오히려 “여자의 나이 마흔,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다”라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 주부들이 처해진 환경은 남편, 아이들, 집안 살림등에 눌려 살게 된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친구들과 밥먹으러 식당 쇼핑하고, 조금 더 여유 생기면 여행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는 새로운 길, 글쓰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성공했던 것이다. 나로 50이 넘어 글을쓰기 시작했는데 박완서님을 보면서 용기를 가져 본다.

 

4. 불가능을 가능케한 중국의 유일한 여자 황제: 측천무후

시대의 기준을 무시했던 여성이었다. 당시 여자는 족보에도 끼지 못했다. 정치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불가능 중의 불가능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달랐다. 그의 생각에는 그런 기준조차 없었다. 기준이란 누구에게도 강요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의 준비성은 대단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을 땐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준비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이뤄냈다. 당시 여자를 직접 볼 수 없던 시대에 황제가 여자를 고를 때 그림을 보고 골랐는데 화가를 매수해서 자신을 아름답게 묘사해 달라 하여 황제의 간택을 받았던 것이다. 황제의 간택을 받은 후에도 황제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능력과 실력이 있었고, 그것을 아낌없이 사용한 여성이었다. 또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었다. 궁을 떠나야 하는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준비해서 재입성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집념이 강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또한 결단력을 가진 최고의 담대한 여성으로 회자되고 있다. 사마전의 사기에 보면 ‘결단을 가지고 행하면 귀신도 겁을 먹고 피한다’는 말이 나온다. 측천무후의 결단력을 인정하는 말로 들려진다.

 

여성 상위시대를 외친다. 진정한 상위는 실력이 말해준다. 누가 이런 여성들의 탁월함을 앞세운 리더들을 가로막고 여성이라 하여 뒷방으로 몰겠는가? 이런 리더십은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배워야 할 자세와 덕목이다. 남성으로서 탁월한 여성들의 리더십을 많이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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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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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국 운남성의 곤명에 다녀왔다. 곤명의 석림, 대리, 여강 등을 여행하는 강행군을 하는 여행이었다. 가이드에게 “나라에 정책이 있으면 우리에겐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말을 들었다. 참 재미있게 들었고 중국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말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 말이 <정글만리>에 소개되고 있어서 놀랐다. 또한 몇 년 전에 신장에 다녀왔는데 신장의 긴장된 분위기를 이야기 했더니 중국을 자주 다녀본 친구가 그런 말하면 공안이 잡아간다고 해서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아닌게 아니라 대만에서 한국 사람이 대만독립을 이야기 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서 중국을 알게 되었다. <정글만리>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중국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삼각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국에서 의료사고로 의료 활동이 막힌 서하원이 중국의 성형 열풍을 등에 업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중국행을 결심하여 전대광의 안내로 성형외과 의사로서 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후에 자본주인 중국인 샹신원이 미국으로 모든 재산을 불려준다는 미끼로 떼이고 만다. 중국이 얼마나 눈감으면 코베가는 세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모든 일이 관시, 즉 관계로 이뤄지는 곳이 중국이다. 아무리 능력이 되어도 공산당과의 관시가 열려져 있지 않으면 어떤 일이든 불가능하다. 한국의 얼마 전 모습, 아니 아직도 뿌리 깊이 남아 있는 빽 중심의 세상을 중국에서도 본다. 전대광은 한국에서 익힌 관계의 관록이 중국에서 빛을 발해 관시를 잘 한 덕에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기타 미를 중요시해 성형 열풍이 불었다는 것과 미인이 되고 싶은 마음 보다 더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더 많다는 것이 중국의 여인들의 마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국하면 생각나는 형용사는 “크고, 넓고, 많고”라고 한다. 세 번 다녀온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많이 실감했다. 관광 장소마다 중국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을 보면서 놀라다 못해 황당하고, 나중에는 불편했다. 풍광을 관광한 게 아니라 사람 구경을 하고 온 느낌이다. 중국과 한국의 교역, 한국인 사업가들이 왜 중국에서 손 털고 나오게 되는지, 중국에 왜 독일제 아우디 차량이 많은지도 알게 되었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아마 작가도 앞으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전에 중국 대사를 지낸 김하중의 중국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중국의 다양성을 역사를 짚어가며 설명한 것을 읽었었다. 설명 중심으로 읽은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소설로 재미있게 써내려간 중국은 흥미진진해서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중국의 한 성을 다녀오는데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는데도 다 보지 못했다고 하니 얼마나 넓은 땅인지 실감하고 왔다. 무엇보다 중국의 급변하는 모습이다. 너무 많이 변해서 이게 중국인가 싶은 것들도 너무 많이 있다. 그래서 중국을 다 알수도 없을뿐더러, 과거에 알았다고 해도 지금의 중국은 아닌 것이다. 미국과 나란히 G2를 외치고 있다. 앞으로는 G1이 된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중국은 필수과목이 되었다. 마침 한국을 대표하는 조정래 작가의 중국을 배경으로 한 <정글만리>는 한국인들에게 어필하는 바가 큰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국 유학생 송재형과 중국 대학생 리예링의 우정을 넘은 사랑이 결실을 본 것이다. 송재형이 전공을 바꾸어 중국사를 연구한다고 했을 때 식음을 전폐하며 시위를 벌인 엄마와 걱정어린 눈으로 본 삼촌 전대광이 있었지만 중국을 알아야 한국이 산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 같다. 송재형의 한.중.일의 근대사를 이해하는 인식도 훌륭하다. 일본이 과거사를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는 한에는 한.일, 중.일의 관계회복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은 더욱 더 고립되고 말 것이다. 중국과 한국이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함을 송재형과 리옌링의 사랑의 결실로 맺어 훈훈한 감동으로 글읽기를 마치게 되어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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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너대니얼 호손 지음, 박계연 옮김 / 책만드는집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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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하는 어떤 분이 자녀의 결혼으로 혼담이 오가다가 결국 없었던 일로 결말지었다고 한다. 원인은 혼수 문제였다고 한다. 상대방은 여의사, 집안이 빵빵하니 결국 혼수는 이정도는 되야지 하는 문화가 결국 소통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정도의 관계로는 사람들의 관계, 특히 부부나 가족관계를 이어가기에는 너무 접착력이 약하다.

 

사람들은 함께 산다. 함께 이어져 산다. 사람들이 함께 이어질 수 있는 접착력은 무엇인가? 혈연, 이익, 동향 혹은 동족. 물론 그런 것들이 사람들을 이어준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어느 시점에 가면 시들해버리고 관계는 이내 힘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요소들을 뛰어 넘어 절대로 끊은 수 없는 관계성 유지의 원인은 무엇일까? 가족의 소중함,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끊지 못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건과 출신과 문화와 인종을 초월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주홍 글자>의 스토리는 이렇다. 한 여인이 불륜으로 아이를 갖게 되고, 주변의 청교도들은 그의 불륜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붉은 글씨로 [A]를 새겨 가슴에 단다. 그 불륜의 결과로 아이를 낳는데 생김새와는 별개의 아름다운 이름 [펄]이라고 지어준다. 아이와 가까스로 산 속 오두막을 짓고 겨우 살아간다. 한편 지역의 학문과 인성과 독서와 경건에 있어서 존경받는 설교에 감동을 주는 목사가 있다. 원인 모를 이유로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을 한다. 그 원인을 직감으로 목사의 죄를 파헤치는 의사가 목사를 추궁한다. 목사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존경과 감동적인 설교로 목사직을 수행한다. 주홍 글자를 가슴에 단 헤스터 프린은 여전히 주변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한다. 견디다 못한 목사는 주홍 글자의 여인을 찾아 가게 되고 자신의 죄에 대한 자책감을 털어 놓는다.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자신이 주홍 글자를 가슴에 달고 모든 것들을 짊어지고 가는 헤스터 프린 앞에 굴복하게 된다. 헤스터 프린은 자신이 그 사실을 밝힐 때에 목사가 당할 위협과 불행한 미래를 생각하며 끝까지 비밀을 고수한다. 그러나 결국 목사는 사형 집행장에서 헤스터 프린과 딸 펄과 자신이 함께 한 자리를 마련하고 헤스터 프린과 딸을 가슴으로 안는다. 그리고 스스로 사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다. 목사의 죄를 추적하던 의사도 결국 그 사건 이후 급격한 건강 악화로 시름시름 앓다가 1년 만에 생을 마감한다. 그 의사는 자신의 재산의 상당부분을 헤스터 프린의 딸 펄에게 물려준다.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직감을 하면서도 두 관점을 가진다. 죄가 있으니 당연히 죽어야지, 죄를 고백하고 당당하게 죽으니 존경스럽다는 생각들이다. 결국 헤스터 프린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주홍 글자를 가슴에 달고 의연히 살아가는 희생의 삶 때문에 목사는 교회와 성도를 이끌 수 있었다. 목사로 인해 많은 성도들은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었다. 한 여인의 죄를 짊어지는 희생이 많은 사람을 선으로 인도함을 보여주고 있다.

 

너새니얼 호손의 감성 깊은 작품을 보게 된다. 기독교 정신의 제 일 원리 사랑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이고, 희생이고, 용서다. 그러나 정작 청교도들이 주장하는 성결은 용서가 아닌 또 다른 율법을 정하여 사람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용서 없는 율법은 의미가 없다. 희생 없는 용서는 있을 수 없다. 종교심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남는 것은 행위와 율법만 남는 것이 사람의 심성이라고 한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의 본질인 용서를 날마다 닦고 갈지 않으면 기독교는 힘을 잃을 것이다. 주홍 글자는 이 깊은 본질적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정말 감동적인 작품을 다시 한 번 읽게 되어 기쁘고 행복했다. 읽는 내내 내 죄를 돌아보게 되었고, 내가 누구를 정죄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었다. 더 나아가 누구를 품어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깊이 돌아보게 하는 영성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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