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홍 글자
너대니얼 호손 지음, 박계연 옮김 / 책만드는집 / 2013년 7월
평점 :
최근 내가 하는 어떤 분이 자녀의 결혼으로 혼담이 오가다가 결국 없었던 일로 결말지었다고 한다. 원인은 혼수 문제였다고 한다. 상대방은 여의사, 집안이 빵빵하니 결국 혼수는 이정도는 되야지 하는 문화가 결국 소통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정도의 관계로는 사람들의 관계, 특히 부부나 가족관계를 이어가기에는 너무 접착력이 약하다.
사람들은 함께 산다. 함께 이어져 산다. 사람들이 함께 이어질 수 있는 접착력은 무엇인가? 혈연, 이익, 동향 혹은 동족. 물론 그런 것들이 사람들을 이어준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어느 시점에 가면 시들해버리고 관계는 이내 힘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요소들을 뛰어 넘어 절대로 끊은 수 없는 관계성 유지의 원인은 무엇일까? 가족의 소중함,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끊지 못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건과 출신과 문화와 인종을 초월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주홍 글자>의 스토리는 이렇다. 한 여인이 불륜으로 아이를 갖게 되고, 주변의 청교도들은 그의 불륜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붉은 글씨로 [A]를 새겨 가슴에 단다. 그 불륜의 결과로 아이를 낳는데 생김새와는 별개의 아름다운 이름 [펄]이라고 지어준다. 아이와 가까스로 산 속 오두막을 짓고 겨우 살아간다. 한편 지역의 학문과 인성과 독서와 경건에 있어서 존경받는 설교에 감동을 주는 목사가 있다. 원인 모를 이유로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을 한다. 그 원인을 직감으로 목사의 죄를 파헤치는 의사가 목사를 추궁한다. 목사는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존경과 감동적인 설교로 목사직을 수행한다. 주홍 글자를 가슴에 단 헤스터 프린은 여전히 주변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한다. 견디다 못한 목사는 주홍 글자의 여인을 찾아 가게 되고 자신의 죄에 대한 자책감을 털어 놓는다.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자신이 주홍 글자를 가슴에 달고 모든 것들을 짊어지고 가는 헤스터 프린 앞에 굴복하게 된다. 헤스터 프린은 자신이 그 사실을 밝힐 때에 목사가 당할 위협과 불행한 미래를 생각하며 끝까지 비밀을 고수한다. 그러나 결국 목사는 사형 집행장에서 헤스터 프린과 딸 펄과 자신이 함께 한 자리를 마련하고 헤스터 프린과 딸을 가슴으로 안는다. 그리고 스스로 사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한다. 목사의 죄를 추적하던 의사도 결국 그 사건 이후 급격한 건강 악화로 시름시름 앓다가 1년 만에 생을 마감한다. 그 의사는 자신의 재산의 상당부분을 헤스터 프린의 딸 펄에게 물려준다.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직감을 하면서도 두 관점을 가진다. 죄가 있으니 당연히 죽어야지, 죄를 고백하고 당당하게 죽으니 존경스럽다는 생각들이다. 결국 헤스터 프린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주홍 글자를 가슴에 달고 의연히 살아가는 희생의 삶 때문에 목사는 교회와 성도를 이끌 수 있었다. 목사로 인해 많은 성도들은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었다. 한 여인의 죄를 짊어지는 희생이 많은 사람을 선으로 인도함을 보여주고 있다.
너새니얼 호손의 감성 깊은 작품을 보게 된다. 기독교 정신의 제 일 원리 사랑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이고, 희생이고, 용서다. 그러나 정작 청교도들이 주장하는 성결은 용서가 아닌 또 다른 율법을 정하여 사람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용서 없는 율법은 의미가 없다. 희생 없는 용서는 있을 수 없다. 종교심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남는 것은 행위와 율법만 남는 것이 사람의 심성이라고 한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의 본질인 용서를 날마다 닦고 갈지 않으면 기독교는 힘을 잃을 것이다. 주홍 글자는 이 깊은 본질적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정말 감동적인 작품을 다시 한 번 읽게 되어 기쁘고 행복했다. 읽는 내내 내 죄를 돌아보게 되었고, 내가 누구를 정죄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었다. 더 나아가 누구를 품어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깊이 돌아보게 하는 영성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