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살인 - 폭주하는 더위는 어떻게 우리 삶을 파괴하는가
제프 구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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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에 대한 얘기는

1, 2년 사이에 급부상한 게 아니다.

제법 오랜 시간에 걸쳐서 단계적인 얘기가 나왔으나

그 심각성에 대해서 느끼기 시작한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2023년 여름의 더위는

역사상 가장 무더웠던 날씨로 기록이 됐다.

'무더위'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했고

정말 들끓는다는 느낌, 바깥에서 잠시라도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

미적지근한 바람이 남아있고

다가올 시원한 날씨를 기다리고 있을 때

"2023년은 가장 시원했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라는 뉴스에 아찔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더웠는데, 앞으로 더 더워진다니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했다.


한 여름에 올라간 기온으로

밭이나 야외에서 일하던 노령층이

열사병으로 사망을 했다거나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밖에서 연신 부채질을 하는 뉴스를 보았다.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그 일들은

어쩌면 내가 지금은 운이 좋아서 겪지 않았을 뿐

닥쳐올 더 강해질 폭염 앞에서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마주하게 될

현실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는 온실효과라든가 지구온난화

정도로 표현되었던 현상이

이제는 기후 위기를 넘어 끓는 지구로 표현되고 있다.

산업화 시대 때보다도 더 높은 기온 상승은

마지노선인 2℃에 거의 임박한 1.5℃ 상승으로

위기감을 더욱 나타내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 위기 상황에서도

내가 직면한 문제가 아니어서인지

전해지고 있는 지구촌의 신음 앞에서도

위기의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제대로 최후통첩이 떨어졌다.


최전선의 기후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이 쓴 《폭염 살인》이다.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에너지 문제에 대한

언론인으로 자리 잡은 저자는

극한 더위가 인간의 신체와 일상,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하게 파헤쳐 쓴

기후 재난 탐사서다.

직접 조사하고 인터뷰하고 살펴보며 쓴 이 책은

기록적인 더위의 2023년을 예견한

책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단순히 무더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 개개인의 삶과 사회에 미칠

영향, 앞으로의 모습까지 언급하면서

더욱더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연일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

6월 초이지만 우리나라도 한낮 기온이 벌써

30도를 넘어섰고, 어느 지역에서는 이미 열대야가,

낮에는 폭염주의보 안전 문자가 쏟아지곤 한다.


이 폭주하는 더위는 마지노선에 다다른

지구의 몸부림이 담긴 비명이자,

우리들이 다잡아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의 행동 촉구를 하고 있다.


더위로부터 비롯된 태풍이나 비로

피해를 입는 지역들이 늘어나고,

해마다 반복될 문제임을 알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더우면 에어컨을 켜면 되지"라는 생각은

그 뜨거운 열기를 다시 내뱉고 그로 인해

지구는 더 뜨거워지는 악순환의 연속임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걸까?


아직은 감당할 수 있는 전기나 자원 상황,

혹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안전함 속에 있다 하더라도

1년, 3년, 아니 10년 후에도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언제까지고 안전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폭염 앞에서 아스러져 가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보며 상대적으로 안전함 속에 있는

나의 현재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역시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일 수 있다는 생각에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불과 5년, 10년 전과 비교해도

우리의 일상이 많이 달라졌다.

기상이변이 이토록 밀접하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고,

아니 예상했던 범주를 벗어나서

더욱 당황스러운 요즈음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냉정한 현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을 읽으며, 안전함에 안주하지 않고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벌써 이만큼 다가오고 있는 더위,

작년의 더위도 너무 무서웠는데

올해는 또 내년에는 어떤 더위가 찾아올지

정말 숨이 턱 막힌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알아가는 것부터

개선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환경의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어야겠다.


"이 글은 웅진지식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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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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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의 빈곤'

넘치는 자원과 방대한 양의 데이터,

부족한 것이 없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부족하고 아쉬운 게 많았던 과거와 같은

낭만이나 정은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쉽곤 하다.


누군가에게는 빛바랜 과거의 추억일 거라고,

부럽지 않은 지난 영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2000년대에 성인이 되어

DOS와 윈도우, 피처폰과 스마트폰을

모두 사용해 온 MZ 세대의 막차를 타고 있는 나는

아날로그 시대만이 주는 낭만과 따스함이

그립고 더 좋다고 느낄 때가 많다.


불편한 점도 있었고, 이로 인한 에피소드가 있을 만큼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이 주었던 사소한 즐거움들은

지금의 내가 가진 감성을 이루는데 좋은 씨앗이 되었다.


나만큼이나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들 만큼이나

잊히고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던 저자는

우리가 그 시절에 두고 온 100가지 추억을

나열하며 지금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이다.


뉴욕타임즈 북리뷰 편집장인 패멀라 폴은

섬세한 감각으로 지나간 삶의 파편을 더듬어 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보냈던

그때의 시간들은 불편함이 없고 더 편리해진

지금의 세상에서 더욱 큰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말하는 100가지의 추억들은 나라가 다르고

처했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조금씩 다르게 느낄 수는 있지만 공감할 수 있는

많은 추억들도 담고 있었다.

단순히 100가지 과거의 것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감상 등을 더하고 공감을 일으킴으로써

잠들어 있던 추억을 일깨워주고 있다.


저자가 얘기하는 100가지 중에서

나에게도 겹쳐지는 추억들이 제법 있었다.

지루함, 실패한 사진, 생일카드, 종이신문,

지도, 손편지, 취침전 독서, 사회 교과서, 글씨체,

도서관의 서지카드 등이 바로 그것인데

그중에서도 '사회 교과서'에 대한 것은

여름휴가가 맞물리는 시기가 때면

늘 떠오르는 기억이기도 하다.


지금의 교과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사회 교과서는

학습내용이 담긴 메인 교과서와

지도가 있는 '사회과 부도'로 나뉘어 있었다.


사회과 부도에는 학습과정에 포함된

다양한 학습자료의 사진을 포함해

역사적 의미가 있는 유물, 국보 등을 표기한

각 지역별로 상세한 지도가 있었다.


한 학년이 끝나고 나면 교과서를 모아서

한꺼번에 버리곤 했는데,

"사회과 부도는 버리지 말고 남겨둬"라는

아빠의 당부가 있었다.


당시에는 네비게이션도 없고

지도와 도로의 표지판에 의지해

운전을 했는데, 이 사회과 부도에 있는

상세한 지도는 휴가 가서 볼거리를 찾아 이동할 때나

미리 여행 루트를 정할 때도 굉장한 도움이 됐던 것!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지도에 표시해 두었던

장소들을 휴가를 가며 다시 찾아보는 기분,

학교에서는 교과서였지만

방학, 그것도 휴가를 떠날 때 중요한 자료로

변신하는 그 모습이 너무 즐거워서는

동생과 나의 책 중 서로 자신의 것을 남기겠다고

다툼 아닌 다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지도를 보는 사람도 잘 없고

여행 코스를 정할 때도 지도를 보는 게 아니라

SNS나 방송을 탄 어떤 장소들을 포인트 삼아

간편하게 핸드폰이나 네비게이션에

장소를 등록만 하면 자동으로 경로가 완성되고

안내 음성을 따라 교통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면 되니

지도가 상세하게 있다 한들 그것을 굳이

보관할 일은 없겠지만

새로운 교과서를 받을 때면

또 언젠가의 휴가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었던

그때의 시간들은 지금도 즐거운 추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이 좋은 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따스한 추억과

즐거움이 남기 때문이 아닐까.

빠르고 편해졌지만 사람의 체온이 덜 느껴지는

요즘의 편함은 마냥 편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그래서 더 상대적으로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읽으면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맞아, 이런 게 참 좋았어'라는 아련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보다 '더' 좋다가 아니라,

지금도 좋지만 그때'도' 좋았다는 말로

겨우 설명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었다.


더 나아질 세상의 풍요로움이

더 부족함과 고립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

세상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이렇듯

계획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일상들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릴 날도

머지않았겠지.

오늘의 사소한 일상을 기쁘게 맞이하며

만끽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이 글은 생각의힘 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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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그녀
왕딩궈 지음, 김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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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권의 문학작품은 가까운 지리적 거리와는

상대적으로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다.

비슷한 정서와 문화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읽지 못하다가 최근에 들어

한 두작품씩을 만나보고 있다.


이번에 읽게 된 《가까이, 그녀》는

대만 작가 왕딩궈의 작품으로

그는 열일곱에 글쓰기를 시작해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며 대만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 작가이다.


서른에 절필을 선언한 후에

2004년 다시 문단에 복귀를 하였는데,

복귀 이후 출간된 작품 들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까이, 그녀》는 57세의 류량허우라는

남자의 시선에서 그의 인생과 사랑,

만났던 두 명의 여인과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전하고 있다.


류량허우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그가 감방에 있다가 가석방에서 풀려나며 시작된다.

아내인 쑤의 죽음과 관련된 그의 감방생활,

그는 가석방 이후에도 냉랭한 아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해명이나 대화를 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와

'치매'라는 적당한 핑곗거리 속에서

그만의 형벌을 평생토록 받으며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려고 한다.


감방에서 함께 있었던 라이쌍과의 재회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던 종잉에 대한 기억과

감정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출세를 열망했던 그는

또래 아이들이 학업에 열중하는 동안

경제활동을 택하게 된다.


뒤늦은 학구열에 대한 아쉬움은

10살 차이가 나는 대학 동기들 사이

표현조차 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어색했던 첫사랑의 기억으로도 남아있는데


생계를 위해 벌어야 했던 시계 가게에서

우연히 만났던 쑤와 대학교에서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종잉 두 여자는

그의 인생을 채우고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가로막혀,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독재에 반대하는

두 여인의 분투는 다른 듯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찍이 어린 누이를 떠나보냈던 류량허우는

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품고 있는데

그에게 쑤와 종잉은 그런 그가 품고 있던

미안함과 죄책감을 바탕으로 지켜주고 싶고

바라보고 싶게 해주는 여성들이었다.


체제와 타고난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다치면서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려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류량허우는

그 시대의 여느 남성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만의 사랑은, 쑤의 마지막 선택에 있어서도

끝끝내 그녀의 명예를 지키고자,

자신의 삶의 방향이 흔들리는 것도 감내하게 했고

감방에서 편지를 통해 종잉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그녀를 돕고자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여성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류량허우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시대에 갇힌 여성들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누구보다도 순진하고 솔직했던 쑤와 종잉뿐 아니라

사랑 앞에서 최선을 다했던 류량허우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 또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 사람의 시선을 통해

시간을 오가며 건네는 인생의 이야기는

들쭉날쭉한 진행을 보였지만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퍼즐처럼 맞춰가는

과정이 더욱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지독히도 힘들었던 시대,

그 속에서 목소리를 더욱 내기 힘들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남성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절필한 시간 동안 더욱 깊은 내공을 쌓아

돌아온 그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소설이었다.


"이 글은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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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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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사랑하기 때문에》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으로 프랑스를 넘어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기욤뮈소.

"한국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다"라고

인터뷰할 만큼 작가 본인도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낼뿐더러

작품 속에서도 한국인이나 한국이 등장하기도 한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국내에서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고

우리나라 정서에도 잘 맞는 그의 소설은

지금까지도 그 인기를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만나보게 된 《브루클린의 소녀》는

그가 2016년에 쓴 13번째 소설로

사라진 약혼녀를 찾다가 마주한

충격적인 사건들을 풀어가는 과정을 담은

스릴러 소설이다.


기욤뮈소의 경우 데뷔 후 20년 가까이

작가로 활동하면서 거의 매해 한 권씩

소설을 내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초기에는 로맨스와 판타지가 결합된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스릴러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

《브루클린의 소녀》는 2016년 출간된 이후

이번에 리커버 판으로 재출간 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욤뮈소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한번 결혼의 실패를 겪은 소설가 라파엘은

3주 후 결혼을 하기로 한 안나에게

부부가 되기 전 서로에게 비밀은 없어야 한다며,

서로 가진 비밀을 모두 털어놓자고 제안을 한다.

라파엘의 설득에 안나는 고민을 하다

자신의 비밀을 알아도

변함없이 자신을 사랑해달라며 당부를 하는데,


어떤 얘기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던 라파엘은

그녀가 보여준 휴대폰의 사진을 보고는

충격적인 과거에 그녀의 어떤 설명이나 얘기를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벗어난다.


정신없이 차를 몰아 달리던 그는

문득 '이렇게 떠나서는 안된다'라는 생각과

이대로 떠나는 건 무책임하고 유치한 짓인지

깨닫고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만

안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


연락도 되지 않고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그녀의 아파트에서 그녀의 짐들을 살펴보다

우연히 엄청난 금액의 현금이 든 가방,

그리고 그녀의 사진이 있는

위조된 신분증 두 장을 발견한다.

과거 열여덟 살 즈음 발급받은 것으로 추측되는

각기 다른 이름의 위조 신분증을 보니

더욱 그녀와 그녀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데


이웃사촌이자 전직 형사인 마르크와 함께

그녀의 행적을 찾아 나선 라파엘은

생각지 못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듯 펼쳐지는

사건의 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과연 그는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그녀가 숨기고자 했던 과거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소설의 줄거리와 초반 부를 읽으며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화차》 가 생각이 났다.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약혼녀,

위조된 신분으로 살고 있었던 그녀의

과거를 찾아 전직 형사와 함께 한다는

설정이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비슷한 구조를 가진 이야기는

허를 찌르듯 다른 방향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 나간다.

어울리는 친구나 주변인도 없고

부모님도 없다고 했던 안나와 관련된 인물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연관되는 사건의 규모는 커지고

라파엘은 소설가만의 시선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여러 단서를 바탕으로 재조립해간다.


숨겨진 사건의 진실,

그리고 끝난 줄 알았던 마지막에 다시 한번

허를 찌르는 이야기는 기욤뮈소라는 작가를

로맨스 장르로 익숙했던 독자들에게

반전을 느끼게 해줄 수 있었던 작품으로 다가간다.


기욤뮈소는 어머니가 사서였지만

본인은 책을 멀리하다가

애거서 크리스티와 에밀리 브론테에

빠지게 되었고 본격적인 소설가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그 애정의 뿌리가 있어서인지

로맨스와 스릴러, 추리하는 과정이

굉장히 맛있게 버무려진 한 편의

엄청난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숨기고 싶은 과거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감출 수 있는 과거,

사건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힘 있는 자들이 저지른 과거의 문제들을

그 힘을 이용해 무마시키고, 은폐되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시간이 지나고 떠오르는 진실들의 씁쓸함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친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건지

소설보다도 더 극적인 현실의 모습이

씁쓸해질 뿐이다.


최근에도 많은 이들에 의해 관심을 받고 있는

어떤 사건의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들의

뻔뻔함에 치를 떨었다.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그 씁쓸함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지는 진실과

진심이 전하는 힘은 우리에게는 언제나

환한 빛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리커버로 새로운 표지로 찾아온 이 소설을

과거에는 읽지 못하고 이번에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여전히 엄청난

흡입력으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힘을 미치고 있는 기욤뮈소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던 소설이었다.


"이 글은 밝은세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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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이순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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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해도 울컥 눈물을 차오르게 하는 이름.

엄마라는 사람의 여자이다.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미워하고

그 강한 생활력을 닮아야지 하면서도,

당신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엄마의 딸로 태어나 엄마가 되어 딸을 키우는

가족사 한가운데서 엄마의 속마음을

막연히 생각해 본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는 많지만

대부분 나와 비슷한 또래가 이야기하는

엄마의 이야기가 많았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가족들은 평범한 듯

특별한 그들만의 사연이 있었고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있지만

각자에게는 자신들만의 사연이 있기 때문에

에세이를 읽으며 어떤 특별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아, 이런 가족이 있구나' ' 아, 이런 사연이 있구나'


그런데 이번에 읽은 이 에세이는

제목부터 '엄마'가 들어가서였을까,

아니면 작품을 쓴 작가가

무려 우리 엄마보다도 한 살은 더 많은

60대의 신예 작가라는 점이 눈에 들어와서 였을까?

유난히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엄마' 치트키 앞에서는 이제는 보기만 해도

울컥하며 촉촉해지는 눈가를 만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 엄마 또래가 말하는 엄마와 가족의 이야기는

내 엄마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하기도 했고

또 엄마의 엄마, 즉 할머니를 떠올리는

새로운 구실이 되어주기도 했다.


1958년에 태어나 딸 셋이 있는 집의 둘째 딸로 자란

작가는 60대에 첫 작품으로

《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를 썼다.


인터넷 매체에서 고요히 연재되다가

젊은이들이 단문을 공유하는 SNS에서

수많은 유저들에게 폭발적으로 공유되며

입소문을 타며, ‘눈물 나는 글맛’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비슷한 시대를 살아오며 가난을 겪어온

어른 세대뿐 아니라 퍽퍽한 삶에 지쳐 다정한

진심을 그리워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게 된다.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세대인 60대라면

대부분 그러했듯이 늘 배고프고 가난이 익숙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은 비록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따스한 밥상과 품으로 자식들을 안아주는 엄마와

엄마처럼 돌봐주는 어른들이 있었기에

살만한 세상이었다.


경제활동을 하며 '나'로 살 수 있는

지금의 엄마들과는 조금 다르게

그때의 엄마들은 집안일을 하랴, 자녀를 돌보랴,

없는 살림을 쪼개서 돈 모을 궁리를 하랴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 희생을 했다.

작가의 엄마 역시 남북전쟁 이후 홀로 남한에

정착한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키우며

또 숱한 남편의 바람과 여자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들을 위해서 변함없이 노력하는

우직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모성애란 무릇 그런 것일까?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나는

그 무한으로 뿜어져 나오는 엄마들의 '희생' 앞에

때로는 미안함이, 때로는 답답함이,

때로는 안쓰러움이, 때로는 고마움이

솟아오르며 나는 언제쯤 그 감정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 한 가족의 가정사 앞에서

이토록 함께 가슴을 치며, 어떤 페이지에서는 웃으며,

어떤 페이지에서는 겹쳐지는 내 엄마의 모습에

속상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며

잔뜩 몰입해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달라도 '엄마'라는 존재의

무한한 사랑 앞에서 그저 엄마의 아기인 우리는

그 사랑을 평생 갚지 못하고 받기만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순리인지도 모르겠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엄마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로 태어나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

여자가 되고 또다시 엄마가 되는

그 연결되는 고리들은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자

무엇보다 강인한 힘인 것 같다.


배우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누구보다 엄마다운 엄마가 되었고,

그런 엄마에게서 나온 우리들 역시

언젠가는 엄마가 되어 그 고리를 이어갈 것이다.


엄마의 손맛이 가득 담긴 추억의 맛

음식들도 함께 소개되었고,

엄마뿐 아니라 엄마 같은 역할을 해주었던

이모, 할머니를 비롯해 이웃들의 이야기는

가슴한켠을 아랫목처럼 따끈하게 데워주었다.


고만고만한 삶을 살아간 내 엄마의 그 시간들은

얼마나 더 깊은 마음을 품고 있을까?

가족들을 위해 맏딸로 태어나 많은 것을

양보하고 희생했던 엄마가

최근에 새로운 도전을 하며 즐거워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에

'이게 뭐라고 이렇게 늦게 해줬는지'라는 후회를 한다.


요즘은 복리로 모아 나중에 잘해야지 보다

순간순간 꾸준히 잘해야지 싶다.

양보와 눈물, 인내로 점쳐졌던 엄마의 인생을

매일매일 꽃으로 수놓아 주겠다는 다짐을 하며,

할머니를 한창 그리워하는 엄마에게도

이 책을 선물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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