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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그녀
왕딩궈 지음, 김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평점 :

중화권의 문학작품은 가까운 지리적 거리와는
상대적으로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다.
비슷한 정서와 문화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읽지 못하다가 최근에 들어
한 두작품씩을 만나보고 있다.
이번에 읽게 된 《가까이, 그녀》는
대만 작가 왕딩궈의 작품으로
그는 열일곱에 글쓰기를 시작해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며 대만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 작가이다.
서른에 절필을 선언한 후에
2004년 다시 문단에 복귀를 하였는데,
복귀 이후 출간된 작품 들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까이, 그녀》는 57세의 류량허우라는
남자의 시선에서 그의 인생과 사랑,
만났던 두 명의 여인과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전하고 있다.
류량허우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그가 감방에 있다가 가석방에서 풀려나며 시작된다.
아내인 쑤의 죽음과 관련된 그의 감방생활,
그는 가석방 이후에도 냉랭한 아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해명이나 대화를 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와
'치매'라는 적당한 핑곗거리 속에서
그만의 형벌을 평생토록 받으며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려고 한다.
감방에서 함께 있었던 라이쌍과의 재회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던 종잉에 대한 기억과
감정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출세를 열망했던 그는
또래 아이들이 학업에 열중하는 동안
경제활동을 택하게 된다.
뒤늦은 학구열에 대한 아쉬움은
10살 차이가 나는 대학 동기들 사이
표현조차 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어색했던 첫사랑의 기억으로도 남아있는데
생계를 위해 벌어야 했던 시계 가게에서
우연히 만났던 쑤와 대학교에서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종잉 두 여자는
그의 인생을 채우고 뒤흔드는 역할을 한다.
가부장적인 분위기에 가로막혀,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독재에 반대하는
두 여인의 분투는 다른 듯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찍이 어린 누이를 떠나보냈던 류량허우는
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품고 있는데
그에게 쑤와 종잉은 그런 그가 품고 있던
미안함과 죄책감을 바탕으로 지켜주고 싶고
바라보고 싶게 해주는 여성들이었다.
체제와 타고난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다치면서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려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류량허우는
그 시대의 여느 남성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만의 사랑은, 쑤의 마지막 선택에 있어서도
끝끝내 그녀의 명예를 지키고자,
자신의 삶의 방향이 흔들리는 것도 감내하게 했고
감방에서 편지를 통해 종잉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그녀를 돕고자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여성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류량허우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시대에 갇힌 여성들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누구보다도 순진하고 솔직했던 쑤와 종잉뿐 아니라
사랑 앞에서 최선을 다했던 류량허우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 또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한 사람의 시선을 통해
시간을 오가며 건네는 인생의 이야기는
들쭉날쭉한 진행을 보였지만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퍼즐처럼 맞춰가는
과정이 더욱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지독히도 힘들었던 시대,
그 속에서 목소리를 더욱 내기 힘들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남성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절필한 시간 동안 더욱 깊은 내공을 쌓아
돌아온 그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소설이었다.
"이 글은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