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지옥 해방일지 - 집안일에 인생을 다 쓰기 전에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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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을 이루고 살아가는 살림이라는 것에는

먹고 입고 치우고 하는 모든 일들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이들이 '독립'을 하기 전까지

청소나 빨래, 식사 등을 전담하는

살림에 대해서 나의 몫이 아닌

부모님의 역할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살림의 몫을 (가족이지만 내가 아닌)

당연하게 타인에게로 돌리고 의지했던 것 같다.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맞벌이를 하는 가정에서도 '집안일'이

여성에게 많이 치우쳐져 있다.


최근 들어서는 집안일도 정해서 나누어 하는

가정도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집안일의 빈도와 관여도에서

여성, 엄마에게만 몰려있는 것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성인 4인으로만 구성된 우리 집의 경우

대놓고 역할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몫으로 어느 정도씩 가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집안일을

생각하면 '이 살림 지옥에서 모두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1인 독신가정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런 집안일에 쏠린 힘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살림지옥에서 해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미니멀라이프 에세이가 있다.

아프로켄(폭탄머리)로 SBS 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에 출연하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 《살림지옥 해방일지》를 만났다.


일본을 대표하는 언론사인 아사이신문사를

50살의 나이에 그만두고 나서

'나오지 않는 월급'을 이유로 큰 맨션에서 벗어나

작은 집으로 옮기게 된 저자가

이사와 더불어 극단적인 정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주한 살림과의 전쟁이 이곳에 펼쳐진다.


퇴사와 함께 '수익이 줄었다면 덜 쓰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그녀의 미니멀라이프는

가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까지도 단순화하여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덜 소유한다'라는 미니멀라이프가 아닌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긴다'라는 의미의 미니멀라이프로

가장 중요하고 좋은 선택을 남김으로써

그동안 입고 먹고 쓰고 치우느라 사용했던

에너지들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글쓰기를 하며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는

2011년 도쿄에서 일어났던 대지진을 겪으며

더욱이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생각이 커졌다고 한다.


전작인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서 언급했듯이

대지진을 겪으며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게 됐고,

이로 인해 절전을 시작하게 된 얘기도 책으로 남겼는데

자원에 대한 절약과 자원 없이도 사는 삶에 대한

얘기를 주로 다루었던 지난 책이라면

이번 책에서는 절약과 절전에서 나아가

보다 심플한 삶으로 자리 잡은

자신의 미니멀라이프를 소개하면서

시간을 내어 치우고 먹고 청소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는 '나를 돌보는 집안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하고 있었다.


자신을 돌보는 일 = 집안일이라고 정의한 작가는

집을 치우고 청소하는 일,

빨래와 밥 차리기 등

최대한으로 간소화한 자신의 일상을 통해

이것이 주는 편리함과 만족감을 한껏 드러낸다.

'이렇게 극단적으로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데

참고하는 용으로는 좋지 않을까 싶다.


이름있는 회사에 다니며 많은 월급을 받고

남부럽지 않은 고급 맨션에서

여러 벌의 옷을 입고 다채로운 이국의 음식을

해먹으며 '화려한' 생활을 했던 그녀가

작고 단출한 집에서 한두 가지의 살림으로

최대한 간단한 음식으로 스스로를 대접하며

집안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벗어나

진정한 즐거움을 깨닫는 과정은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어떤 향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 역시도 최근 들어 '최대한 간단히'를 목표로

집과 방, 소유하는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치우면 치울수록 계속해서 나오는 짐들을 보며

도리어 지치고 추리는 것조차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후회를 했었다.


선택지가 한 가지라면 고민할 필요 없는데,

선택지를 10개, 20개씩 가져가며

선택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너무 많은 물건을 소유하며 다 쓰지 못할

그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수납장이나 용품을 마련하고

집을 넓히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수 있었다.


100에서 한순간에 1로 만들 수는 없지만

줄여가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자유로움과

살림에 대한 즐거움만으로도

이 책이 주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나아가 단출하고 간단해진 살림을 운영함으로써

나이 들어서까지도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을 것은 없겠다.


어떤 유행이나 스타일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환경 내에서

빠른 결정과 실현을 하고 있는 작가의 대범함이

이토록 안정적인 지금을 만들어 온 것 같다.

작가가 추천한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도

함께 읽어보며 미니멀라이프에 대하여

더욱 단단한 근육을 키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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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방학의 꿈 - 계절 앤솔러지 : 여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8
남세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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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2~3주 남짓, 길게는 한 달여 정도

뜨거운 계절을 한껏 소화하는

여름방학을 지나고 학교에 돌아오면

뜨거웠던 계절만큼이나 탄 얼굴과 함께

갑자기 키가 자라서 전과 같은 얼굴이지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반 아이의 모습에 흐른 시간을 체감하곤 한다.


학교에 나가지 않으니 지루하고 심심하기도 했고,

휴가를 다녀와 색다른 경험에 즐겁기도 했다.

어느 날은 괜찮았고 어느 날은 안 괜찮았던

일기장에 체크하는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러웠던

추억들을 삼킨 방학.

아련하면서도 까무룩 해지는 그 기억을

다시 찾아오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떠올린다.


지난봄에 읽었던 자음과모음의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의 여름 편이 나왔다.

시작과 새 학기를 다룬 봄의 설렘을 다룬

봄 시리즈를 시작으로

두 번째 시리즈인 '여름'에서는 방학을 맞이해

꿈처럼 신비롭고 재미있었던 이야기의

조각을 다섯 명의 작가가 모았다.


이유리 작가의 《선물은 비밀》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에 사는 '내'가

월드 오브 에브리싱이라는 게임에서 만난

지구의 소녀 서윤을 만나기 위해

지구로 짧은 여행을 떠나며 시작된다.

지구 아닌 행성에 산다는 사실을 숨긴 채

평범한 지구, 서울에 사는 소녀인 것처럼

자신을 예은이라는 이름으로 속이고

서윤과 만나게 되는데

항공 우주연구소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서윤은

'우주를 좋아한다'라는 공통점 하나로

순수히 마음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왜 그랬는지 모르게 자신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나, 그리고 그걸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믿어주는 서윤은 행성을 넘어선

우정을 나눈 친구로 거듭나게 되는데...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뒤로

첫 만남 이후 끊어진 연락,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며

아련한 추억을 곱씹는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이'로부터 시작되는

친구라는 관계. 사소한 약속을 잡고 어울리며

평범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친구가 되면

서로의 존재 자체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친구'라는 의미에 대해서

'그래, 이게 바로 친구였어'

라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


전앤 작가의 《여름밤의 초대장》은

갑작스럽게 기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홀로 자취를 하며 원룸에서 지내게 된 보리가

낯선 풍경의 집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과

홀로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 사이,

이 집에 예전에 살았었던 김소민이라는 여자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며 얽히게 된 이야기가 담긴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 함께한 율무와 콩이라는 친구,

늘 같은 길을 걷고 함께할 것만 같았는데

집안 사정에 따라 사는 곳도 멀어지고

학원도 그만두게 되며 외로움과 고립감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까무룩 잠에 들었다가 옆에서 느껴진

낯선 사람의 체온에 잠에서 깬 보리는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사라진 낯선 사람의 흔적이자

그에 대한 정보가 있는 지갑을 줍게 되는데,

지갑의 주인이자 침입자인 김소민의 흔적을 따라

그녀에 대한 추적을 하던 중

집 바로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직원이

그녀임을 알게 된다.

그녀를 엿보다 대화를 나누게 되고,

마치 초대장처럼 문제집 한편에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알려주는 그녀.

과거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과거를 다시 사는 기분이 들어서

자꾸 보리의 집을 찾게 된다고 했다.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툭 털어놓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 또한 하고 싶은 보리.

힘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이겨내고픈

의지와 용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


남세오 작가의 《비와 번개의 이야기》는

조금 색다른 접근으로 다가온다.

반항이 가득한 시기,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진은

미리 계획했던 부산 여행이 폭우 소식으로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조용히 짐을 싸고 집을 나와

빗속에서의 여행을 강행한다.

언제나 계획을 세우고 뭉그적거리는 주혁이

여행 동반자로 나서게 되는데,

우비까지 챙겨 입고 쏟아지는 빗속의 기차

부산이 아닌 대전에서 하차한 그들이

섬광을 따라 이동하던 중 날개가 있는

낯선 존재를 만나고 그와 미스터리한 대화를 나눈다.

성심당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에서

케일이라 불리는 존재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화 미련, 용기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놓인 무수한 선택지에 앞길에 선

방황하는 이들에게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방향 표시판이 되어줄 만한 그런 이야기였다.



유영민 작가의 《엘리자베스 칼라》는

보호 종료 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동남아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인 P는 부모님의 사망으로

보육원에서 자라며,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다른 모습에 많은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여덟 살 생일

갔었던 놀이공원에서의 행복한 하루.

상처를 보호해 주는 엘리자베스 칼라처럼

놀이공원에서 들었던 멜로디는 P에게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일하게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데릭과 만나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P.

새로운 친구 데릭과의 시간은 P에게

새로운 엘리자베스 칼라가 되어준다.

각자 가진 어둠에서 벗어서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데릭과 P의 시간을 전하며

'함께한다는 것이 주는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


전건우 작가의 《그날 밤, 우리가 갔던 흉가》는

여름이면 세트처럼 다가오는 으스스한 체험,

모험을 즐기는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학 진학을 앞둔 고3 수험생인 나와 경수, 대호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폐가에 가보게 된다.

그곳에 나오는 귀신을 보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소문에 간절함 때문인지

모험감 때문인지, 함께한다는 무모한 용기 때문인지

그들은 자욱한 먼지와 냄새로 가득한 폐가를 둘러보며

'교복 입은 귀신'을 찾는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따라 올라간 2층에서

우연히 마주한 거대한 곰 같은 형상을 보고

도망치듯 내려오다 지하실까지 떨어져

고인 물에 빠지게 된 나.

물속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알 수 없는 존재에

공포를 느끼며,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모험담 같은 그 일은 친구들 사이에서

'그날 우리들만의 비밀'이 되어버리고

그 뒤로 대학 진학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비밀로 붙이며

작가는 마지막까지 독자들과의 밀당을 하는데~

작가가 직접 겪지 못했던 고3 생활에 대한

로망에서 비롯된 이 소설은

무모하면서도 용감한 그때의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는 점에서 아련함을 더한다.


때로는 과장되고 편향된 시선에서 전하는

뻔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 입을 통해 옮겨진다.

'내가 방학 때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들은 얘기 중 무서운 얘기가 있는데..' 하면서

여름의 열기를 가득 담은 청량한 조각들은

그렇게 하나 둘 서로에게 옮겨지면서

여물고 계절의 향기를 가득 품는다.


각기 다른 이야기이지만 '여름방학'이라는

설렘과 추억, 기억을 담았다는 점에서

이렇게 하나의 큰 선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앤솔러지 소설의 장점인 것 같다.


각 작가들이 그리는 여름의 조각들을

품고 있는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여름이 다시 떠올려지기를 바란다.


"이 글은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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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 매드앤미러 1
아밀.김종일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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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신혼, 죽음에서 돌아온 남편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행복해야 할 신혼부부, 죽음에서 돌아온 남편이
전과 다르게 낯설게 느껴진다는 설정에서
시작한 두 가지 다른 이야기가 있다.

국내 대표 호러 창작 집단 매드클럽과
국내 최대 장르 작가 공동체 거울의 조합으로
탄생한 '매드앤미러'시리즈의
《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를 만나보았다.


같은 한 줄의 문장을 바탕으로 만든
두 가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매드앤미러 시리즈는
두 작가가 서로의 파트를 가져와 반영하는 등
여느 소설과는 다른 색다른 시도를 하여
그 읽는 재미가 더해졌는데
이전에 먼저 읽었던 매드앤미러 시리즈 2편인
《사라진 아내가 차려준 밥상》의 경우
각기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아예 다른 전개가 이어졌다면
《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는 주인공들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남편과 아내 둘이 서로 의심을 하고 숨기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맥락이 비슷하게
진행되는 부분이 있어서 신기했다.


결혼식 이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신혼부부에게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인데, '죽음'에서 돌아온 이후
다른 사람처럼 바뀐 배우자를 대하는
혼란스러움이 묘한 공포감을 더하기도 했다.


첫 번째 작품인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은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미학자 은진과
소설을 쓰는 남편 동우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들만의 결혼식을 치르고 부부가 된다.

'원가족'과는 다른 가족이 될 거라 선언한 그들은
결혼식 이후 친구들을 초대한 집들이에서
친구들을 바래다주러 간 남편을 찾으러 나갔던
은진이 우연히 남편이 통화하는 것을 엿듣게 되고,
한없이 자신에게 다정하고 사랑을 쏟던 남편이
친구에게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이 통화에 대해 얘기를 하다
다툼으로 번지고, 오해라며 그녀의 화를 풀려던
동우를 거절하다 은진은 우발적으로 그를 죽게 한다.
사랑하는 남편을 살리고 싶어 하던 은진은
길에서 만난 노파의 도움을 받아 그를 살려내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죽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피를 흘리고 고개가 꺾이며, 시체처럼 차가운 피부로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것.

자신의 환각일 거라고 생각하며,
이제 완벽해진 그들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려
애쓰던 은진은 일도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자신과 달리
승승장구하는 동우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줄곧 가지고 있던 신념마저 흔들리게 되는데
남편이 죽었었다는 기억을 일깨우면 안 된다는
노파의 조언대로 은진은 끝까지 비밀을 지킬 수 있을까?
변해버린 남편의 모습을 그녀는 언제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작품인 〈해마〉는 교통사고 이후
악몽에 시달리는 웹 소설 작가 회영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녀만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의사 남편 시광은
과거 그녀가 엄마에게 받았던 상처까지
잊을 수 있을 만큼 그녀에게 헌신적인데,
실제 사고의 사실과 다르게 회영의 악몽 속에서는
사고의 모습이 다르게 묘사된다.

남편이 소개해 준 정신건강 전문의를 만나며
자신의 '해마'가 다른 이들보다 2배는 큰 사이즈며,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길
그녀를 쫓아오는 검은색 SUV 차량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후 강의 자리에서 불편한 질문을 하던 여자가
지난날 자신을 쫓던 검은색 SUV 차랑의
주인임을 알게 되고 용기 내어 그녀와의 대화를 갖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인 줄 알았던 그녀는
알고 보니 회영과 남편 시광이 피해자였던
지난 교통사고의 가해자 여자친구로
그 차량에서도 동승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남편이 진짜라고 믿으세요?"라며
질문을 던지는 그녀의 말에 흔들리는 회영.
이어지는 여러 가지 의심스러운 상황들 앞에세
남편 시광의 모든 것들이 전과 다르게 낯설기만 하다.
사고 이후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남편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에 대해
정보를 알려주겠다는 탐정사무소까지 찾아간 회영.
과연 남편의 진짜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일어났던 사고와 무슨 연관이 있을지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반전이 흥미진진했다.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가족이 되어 서로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이 필수다.
이전에는 몰랐던 부분을 결혼 이후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어?' 하며 그 모습에
실망도 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무엇이 진짜 모습이고 가짜 모습인지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던 모습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
그것을 발견하고 느끼는 상대방의 마음 차이가
'변했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이 차이에서 비롯된 미스터리 비함을 극대화한 게
바로 이번 매드앤미러 시리즈의 첫 번째
《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이야기 모두 배경이
지금 현재를 다룬 데다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서 생기는 신뢰의 금을
극대화한 스토리의 전개가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예측하고 빗나가고
다시 또 반전이 생기는 과정이 여느 소설집보다도
더 진한 여운을 만들었던 것 같다.
매드앤미러 시리즈마다 등장하는 '매미'와
작가들이 서로 바꾸어 채택한 서로의 구절까지,
다음에 나올 시리즈의 새 작품이 기대됐다.
한 여름에 어울리는 으스스함과 추리를 모두 담은
그런 소설이었다.

"이 글은 텍스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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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 아일랜드
김유진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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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꿈을 가지게 되는 건

어떤 사소한 계기에서 비롯된다.

가지고 태어난 재능에서 시작된 선택일 수도,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마음일 수도 있는데

꿈이라는 것이 원한다고 모두 이룰 수 있는 건

아닌 데다가 그 꿈을 향해 달리는 여정에는

다양한 변수와 시련이 있기에 더욱 다다를 때의

기쁨은 배가 된다.


꿈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는 그들만의 아우라가 있다.

반짝이는 눈, 한껏 꿈을 향해 쏠리는 몸,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그 뿌듯함에서 오는

특유의 초롱초롱함은 그냥 하는 사람과

즐기면서 꿈을 향해 하는 사람을

한눈에도 달라 보이게 한다.


그래서인지 꿈을 향한 여정을 담은 이야기에는

이만큼 설렘이 따른다.

아직 영글은 어른이 되지 않은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이런 여정마저도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 센트 아일랜드가 있다.

섬 가운데 보라색 퍼플산이 자리하고 있고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센트 그룹이 만든

첨단 시설이 어우러져 더욱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곳은 연구 단지와 관광단지,

그리고 연구 단지에서 일하는 직원 거주지를 비롯해

향보리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공간과는 분리된데다가

다양한 향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하고

상품을 만드는 등 전 세계 향기 산업의 핵심 집합체이자

복합 연구 단지라고 할 수 있다.


타고난 후각을 가진 다린은 센트 아일랜드에서

모집하는 '인턴 연구원' 선발에 지원하게 된다.

다린의 엄마는 1차 합격 소식에

과거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었다며

센트 그룹의 회장과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며

다린이 그곳에 가는 것에 염려를 한다.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센트 아일랜드에서의 연구원이 되기 위해

다린은 2차 시험에 응모하러 떠난다.

2차 시험은 센트 아일랜드 내에서 진행되며,

난생처음 부모님과 떨어져 낯설고도

설레는 곳 '센트 아일랜드'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1차 시험을 통과한 100명의 인원 중

시험에서 최종 합격하는 인원은 5명,

다린은 과연 2차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인턴 연구원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토록 센트 아일랜드에 가는 것을

반대한 엄마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글로 만나는 이야기에서

이토록 '향'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있었나 싶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향의 묘사에

어쩐지 코 끝에 그 향이 스치는 것만 같았는데,

그중에서도 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다린이

엄마를 생각하며 만든 향이 너무나 궁금했다.


'인턴 연구원'으로 신청할 수 있는 건

19살의 동갑내기 아이들.

아직 어른이 되지는 않았고, 아이보다는 자란

어른과 아이 사이인 그들이 꿈을 향해

시험을 치르며 서로 어울리기도 하고

경쟁을 하면서 오해를 하기도 하고 풀기도 하며

문제의 해결책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

단 며칠간의 2차 시험 기간이라는 시간을

굉장히 짙은 향으로 진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열망을 키우며

풀린 오해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담아

사과를 하고 그 마음을 받아주는 과정들이

굉장히 따스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향기'를 주된 기술로 끌어가는 이 가상공간이

굉장히 신비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져

꿈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더욱 빛나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꿈을 향해 도전을 하다가 중간에 실패를 해도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도전하고자 하는 그 마음,

또 꿈을 향한 진심까지

각각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향의 마음들이

바로 이런 센트 아일랜드의 원동력으로

자라날 것 같았다.


이야기의 끝에 더불어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풀리지 않은 다린 엄마의 과거 이야기는

속편이나 프리퀄 작품을 기대하게 했고,

자신의 마음속 꿈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을 통해

꼭 성장기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도전을 앞둔 누구 나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성장소설이었다.


환상적인 공간 센트 아일랜드에서 펼쳐지는

꿈을 향한 여정!

'아직 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꿈을 이뤄야 할지 모르겠어' 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은 한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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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종소리 - 김하나의 자유롭고 쾌락적인 고전 읽기
김하나 지음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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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시대와 사람을 반영한다.

문학작품 속에서 보이는 수많은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기도 하고

과거의 어떤 시간, 혹은 먼 미래의 언젠가를

상상한 모습이기도 하다.


해석하기 나름인 작품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시대를 넘어선 어떤 파장을 우리 마음에

남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파장은 읽히는 시간에 따라

다르게 울리기도 하며

어떤 작품은 발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 엄청난 사랑을

받기도 하니 이 파장을 찾아, 이 울림을 찾아

우리는 '고전'이라 불리는 것을 읽는 것 같다.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떠올리면

대학교 신입생 시절 우연히 방문했던

동기의 자취방 책장에 가득했던 책들이 생각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세계문학은커녕 교과서 및 권장도서로만

일컬어지던 한국 현대 문학에만 익숙했었는데

색색의 어여쁘기도 하고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 가득한

동기의 책장을 보고 있자니

책을 파먹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내가

이렇게 책을 안 읽었다니 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마치 금자탑처럼 느껴지는 그 아이의 책장이

절로 나에게 도전의식을 불태웠던 것 같다.


하지만 고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워낙 오래전에 쓰인 작품들이기도 하고,

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도 필요했기에 나는 재빠른 후퇴를 결심했다.

너는 너, 나는 나. 각자의 취향이 있듯

나에게는 나에게 충분히 즐거움을 주는 책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잔뜩 흘려보내고

어느덧 40대를 코앞에 둔 나이가 되고 나니

'언제까지 읽고 싶은 책만 읽어서 되겠나'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전은 어렵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때마침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

김하나 작가의 고전 읽기에 대한 책이 나와서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라는 생각에

기꺼이 즐겁게 읽게 되었다.

세계문학이라는 거대한 도시로의 여행을

이끌어줄 가이드 '김하나'가 쓴

《금빛 종소리》이다.


김하나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문학을 담당했던

신참 남자 선생님의 일화와

고전 읽기의 미덕에 대해서 얘기하며

특유의 위트가 가득한 프롤로그를 써냈다.

다들 읽으라고만 했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지 얘기하지 않았는데

부담 없이 편하게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며

흔들리는 동공을 하고 운전대를 쥐는

초보운전자를 가리키는 능숙한 연수 선생님처럼

김하나 작가는 우리에게 고전으로 진입하는

매끄러운 윤활유를 톡톡 쳐주고 있었다.


책 속에서는 5가지의 고전이 등장한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까지

다섯 작품에 대한 소개와 함께

김하나 작가만의 터치가 더해지며

이 작품을 가볍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요약하기도 싫고, 시간도 아깝고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를 편집본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또 호흡이 긴 소설의 경우

내가 직접 보거나 읽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 책(영화, 드라마) 얘기 좀 해봐'라고 했을 때

유난히 맛깔스러운 느낌에 혼자서라면

절대 읽거나 보지 않았을 작품을 펼쳐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고전이 어려웠던 내게 이 책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고,

읽고 쓰며 말하는 사람 김하나가 전하는 고전은

마치 몰랐던 매력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편집해 주는

PD 직캠 파일을 보는 듯 흥미롭고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즐기고 향유한다는 뜻이 있는 스페인어

'디스프루타르'라는 동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

아우라를 통해서는 김하나 작가와 함께

멕시코시티의 한 거리로 여행하게 된다.

녹색과 붉은색으로 점쳐지는 작품,

멕시코 바로크 양식을 그려지게 하는 작품의 배경은

마치 가보지 않은 도시에 대한 매력에

푹 빠지게 하는데 충분했다.


'시선'이라는 시각을 느끼게 한

순수의 시대는 또 어떤가.

남성과 여성, 어떤 계급을 나누는 편견과 시선에서

각 인물의 모습을 새로이 풀어나가는 모습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문학작품마다 고유한 리듬을 담은

유르스나르의 작품을 통해서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읽는 순간

책에 대해 가져온 마음과 같다고 느꼈다고 한

김하나 작가의 고백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지인들에게서 마흔 넘어서 읽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던

맥베스에 대해서는 작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게 된 이야기를 담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연극적인 요소에 대한 설명까지 더해져 더 재미있었다.

최근에 맥베스가 연극으로도 시작되었는데,

연극을 보기 전 김하나 작가의 이 해석을 보고

작품을 본다면 더욱 즐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책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카프카의 대표적 작품인 변신에서는

벌레로 변한 외판원의 이야기를 통해

문학만이 가능한 웃픈 현실을 전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해충이 되었다는 한 가지

판타지적 사건 말고는 다른 요소들이 매우

사실적이고 진지한 맥락을 따르는

이 작품만이 가진 차이점을 통해

카프카가 만들어낸 기가 막힌 문학적 초현실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친절한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읽지 않는 작품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더 이상 고전에 대해서

펼쳐보기에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열고 멈출 수 있는, 그리고 다시 펼쳐보고

두터운 베개로도 사용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세계로의 진입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방대한 고전 세계로의

한 발자국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막연하게 어려웠던 고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면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고전 읽기를 하고 싶다면

고전 읽기의 가이드 김하나와 함께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이 글은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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