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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옥 해방일지 - 집안일에 인생을 다 쓰기 전에 시작하는 미니멀라이프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재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평점 :

한 집안을 이루고 살아가는 살림이라는 것에는
먹고 입고 치우고 하는 모든 일들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이들이 '독립'을 하기 전까지
청소나 빨래, 식사 등을 전담하는
살림에 대해서 나의 몫이 아닌
부모님의 역할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살림의 몫을 (가족이지만 내가 아닌)
당연하게 타인에게로 돌리고 의지했던 것 같다.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맞벌이를 하는 가정에서도 '집안일'이
여성에게 많이 치우쳐져 있다.
최근 들어서는 집안일도 정해서 나누어 하는
가정도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집안일의 빈도와 관여도에서
여성, 엄마에게만 몰려있는 것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성인 4인으로만 구성된 우리 집의 경우
대놓고 역할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몫으로 어느 정도씩 가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집안일을
생각하면 '이 살림 지옥에서 모두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1인 독신가정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이런 집안일에 쏠린 힘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살림지옥에서 해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미니멀라이프 에세이가 있다.
아프로켄(폭탄머리)로 SBS 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에 출연하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 《살림지옥 해방일지》를 만났다.
일본을 대표하는 언론사인 아사이신문사를
50살의 나이에 그만두고 나서
'나오지 않는 월급'을 이유로 큰 맨션에서 벗어나
작은 집으로 옮기게 된 저자가
이사와 더불어 극단적인 정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주한 살림과의 전쟁이 이곳에 펼쳐진다.
퇴사와 함께 '수익이 줄었다면 덜 쓰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그녀의 미니멀라이프는
가진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까지도 단순화하여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덜 소유한다'라는 미니멀라이프가 아닌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긴다'라는 의미의 미니멀라이프로
가장 중요하고 좋은 선택을 남김으로써
그동안 입고 먹고 쓰고 치우느라 사용했던
에너지들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글쓰기를 하며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는
2011년 도쿄에서 일어났던 대지진을 겪으며
더욱이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생각이 커졌다고 한다.
전작인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서 언급했듯이
대지진을 겪으며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게 됐고,
이로 인해 절전을 시작하게 된 얘기도 책으로 남겼는데
자원에 대한 절약과 자원 없이도 사는 삶에 대한
얘기를 주로 다루었던 지난 책이라면
이번 책에서는 절약과 절전에서 나아가
보다 심플한 삶으로 자리 잡은
자신의 미니멀라이프를 소개하면서
시간을 내어 치우고 먹고 청소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는 '나를 돌보는 집안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하고 있었다.
자신을 돌보는 일 = 집안일이라고 정의한 작가는
집을 치우고 청소하는 일,
빨래와 밥 차리기 등
최대한으로 간소화한 자신의 일상을 통해
이것이 주는 편리함과 만족감을 한껏 드러낸다.
'이렇게 극단적으로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데
참고하는 용으로는 좋지 않을까 싶다.
이름있는 회사에 다니며 많은 월급을 받고
남부럽지 않은 고급 맨션에서
여러 벌의 옷을 입고 다채로운 이국의 음식을
해먹으며 '화려한' 생활을 했던 그녀가
작고 단출한 집에서 한두 가지의 살림으로
최대한 간단한 음식으로 스스로를 대접하며
집안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벗어나
진정한 즐거움을 깨닫는 과정은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어떤 향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 역시도 최근 들어 '최대한 간단히'를 목표로
집과 방, 소유하는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치우면 치울수록 계속해서 나오는 짐들을 보며
도리어 지치고 추리는 것조차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후회를 했었다.
선택지가 한 가지라면 고민할 필요 없는데,
선택지를 10개, 20개씩 가져가며
선택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너무 많은 물건을 소유하며 다 쓰지 못할
그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수납장이나 용품을 마련하고
집을 넓히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수 있었다.
100에서 한순간에 1로 만들 수는 없지만
줄여가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자유로움과
살림에 대한 즐거움만으로도
이 책이 주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나아가 단출하고 간단해진 살림을 운영함으로써
나이 들어서까지도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힘을 비축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을 것은 없겠다.
어떤 유행이나 스타일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환경 내에서
빠른 결정과 실현을 하고 있는 작가의 대범함이
이토록 안정적인 지금을 만들어 온 것 같다.
작가가 추천한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도
함께 읽어보며 미니멀라이프에 대하여
더욱 단단한 근육을 키워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