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종소리 - 김하나의 자유롭고 쾌락적인 고전 읽기
김하나 지음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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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시대와 사람을 반영한다.

문학작품 속에서 보이는 수많은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기도 하고

과거의 어떤 시간, 혹은 먼 미래의 언젠가를

상상한 모습이기도 하다.


해석하기 나름인 작품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시대를 넘어선 어떤 파장을 우리 마음에

남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파장은 읽히는 시간에 따라

다르게 울리기도 하며

어떤 작품은 발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 엄청난 사랑을

받기도 하니 이 파장을 찾아, 이 울림을 찾아

우리는 '고전'이라 불리는 것을 읽는 것 같다.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을 떠올리면

대학교 신입생 시절 우연히 방문했던

동기의 자취방 책장에 가득했던 책들이 생각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세계문학은커녕 교과서 및 권장도서로만

일컬어지던 한국 현대 문학에만 익숙했었는데

색색의 어여쁘기도 하고 어려워 보이는 책들이 가득한

동기의 책장을 보고 있자니

책을 파먹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는 내가

이렇게 책을 안 읽었다니 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마치 금자탑처럼 느껴지는 그 아이의 책장이

절로 나에게 도전의식을 불태웠던 것 같다.


하지만 고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워낙 오래전에 쓰인 작품들이기도 하고,

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도 필요했기에 나는 재빠른 후퇴를 결심했다.

너는 너, 나는 나. 각자의 취향이 있듯

나에게는 나에게 충분히 즐거움을 주는 책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잔뜩 흘려보내고

어느덧 40대를 코앞에 둔 나이가 되고 나니

'언제까지 읽고 싶은 책만 읽어서 되겠나'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전은 어렵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때마침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인

김하나 작가의 고전 읽기에 대한 책이 나와서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라는 생각에

기꺼이 즐겁게 읽게 되었다.

세계문학이라는 거대한 도시로의 여행을

이끌어줄 가이드 '김하나'가 쓴

《금빛 종소리》이다.


김하나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문학을 담당했던

신참 남자 선생님의 일화와

고전 읽기의 미덕에 대해서 얘기하며

특유의 위트가 가득한 프롤로그를 써냈다.

다들 읽으라고만 했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고전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지 얘기하지 않았는데

부담 없이 편하게 언제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며

흔들리는 동공을 하고 운전대를 쥐는

초보운전자를 가리키는 능숙한 연수 선생님처럼

김하나 작가는 우리에게 고전으로 진입하는

매끄러운 윤활유를 톡톡 쳐주고 있었다.


책 속에서는 5가지의 고전이 등장한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까지

다섯 작품에 대한 소개와 함께

김하나 작가만의 터치가 더해지며

이 작품을 가볍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요약하기도 싫고, 시간도 아깝고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를 편집본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또 호흡이 긴 소설의 경우

내가 직접 보거나 읽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 책(영화, 드라마) 얘기 좀 해봐'라고 했을 때

유난히 맛깔스러운 느낌에 혼자서라면

절대 읽거나 보지 않았을 작품을 펼쳐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고전이 어려웠던 내게 이 책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고,

읽고 쓰며 말하는 사람 김하나가 전하는 고전은

마치 몰랐던 매력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편집해 주는

PD 직캠 파일을 보는 듯 흥미롭고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즐기고 향유한다는 뜻이 있는 스페인어

'디스프루타르'라는 동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

아우라를 통해서는 김하나 작가와 함께

멕시코시티의 한 거리로 여행하게 된다.

녹색과 붉은색으로 점쳐지는 작품,

멕시코 바로크 양식을 그려지게 하는 작품의 배경은

마치 가보지 않은 도시에 대한 매력에

푹 빠지게 하는데 충분했다.


'시선'이라는 시각을 느끼게 한

순수의 시대는 또 어떤가.

남성과 여성, 어떤 계급을 나누는 편견과 시선에서

각 인물의 모습을 새로이 풀어나가는 모습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문학작품마다 고유한 리듬을 담은

유르스나르의 작품을 통해서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읽는 순간

책에 대해 가져온 마음과 같다고 느꼈다고 한

김하나 작가의 고백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지인들에게서 마흔 넘어서 읽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던

맥베스에 대해서는 작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게 된 이야기를 담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연극적인 요소에 대한 설명까지 더해져 더 재미있었다.

최근에 맥베스가 연극으로도 시작되었는데,

연극을 보기 전 김하나 작가의 이 해석을 보고

작품을 본다면 더욱 즐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책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카프카의 대표적 작품인 변신에서는

벌레로 변한 외판원의 이야기를 통해

문학만이 가능한 웃픈 현실을 전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해충이 되었다는 한 가지

판타지적 사건 말고는 다른 요소들이 매우

사실적이고 진지한 맥락을 따르는

이 작품만이 가진 차이점을 통해

카프카가 만들어낸 기가 막힌 문학적 초현실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친절한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읽지 않는 작품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더 이상 고전에 대해서

펼쳐보기에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열고 멈출 수 있는, 그리고 다시 펼쳐보고

두터운 베개로도 사용하고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세계로의 진입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방대한 고전 세계로의

한 발자국 나아갔다고 생각한다.


막연하게 어려웠던 고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면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고전 읽기를 하고 싶다면

고전 읽기의 가이드 김하나와 함께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이 글은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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