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방학의 꿈 - 계절 앤솔러지 : 여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8
남세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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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2~3주 남짓, 길게는 한 달여 정도

뜨거운 계절을 한껏 소화하는

여름방학을 지나고 학교에 돌아오면

뜨거웠던 계절만큼이나 탄 얼굴과 함께

갑자기 키가 자라서 전과 같은 얼굴이지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

반 아이의 모습에 흐른 시간을 체감하곤 한다.


학교에 나가지 않으니 지루하고 심심하기도 했고,

휴가를 다녀와 색다른 경험에 즐겁기도 했다.

어느 날은 괜찮았고 어느 날은 안 괜찮았던

일기장에 체크하는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러웠던

추억들을 삼킨 방학.

아련하면서도 까무룩 해지는 그 기억을

다시 찾아오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떠올린다.


지난봄에 읽었던 자음과모음의 계절 앤솔러지

시리즈의 여름 편이 나왔다.

시작과 새 학기를 다룬 봄의 설렘을 다룬

봄 시리즈를 시작으로

두 번째 시리즈인 '여름'에서는 방학을 맞이해

꿈처럼 신비롭고 재미있었던 이야기의

조각을 다섯 명의 작가가 모았다.


이유리 작가의 《선물은 비밀》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에 사는 '내'가

월드 오브 에브리싱이라는 게임에서 만난

지구의 소녀 서윤을 만나기 위해

지구로 짧은 여행을 떠나며 시작된다.

지구 아닌 행성에 산다는 사실을 숨긴 채

평범한 지구, 서울에 사는 소녀인 것처럼

자신을 예은이라는 이름으로 속이고

서윤과 만나게 되는데

항공 우주연구소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서윤은

'우주를 좋아한다'라는 공통점 하나로

순수히 마음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왜 그랬는지 모르게 자신이 지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나, 그리고 그걸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믿어주는 서윤은 행성을 넘어선

우정을 나눈 친구로 거듭나게 되는데...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뒤로

첫 만남 이후 끊어진 연락,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리며

아련한 추억을 곱씹는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사이'로부터 시작되는

친구라는 관계. 사소한 약속을 잡고 어울리며

평범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친구가 되면

서로의 존재 자체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친구'라는 의미에 대해서

'그래, 이게 바로 친구였어'

라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


전앤 작가의 《여름밤의 초대장》은

갑작스럽게 기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홀로 자취를 하며 원룸에서 지내게 된 보리가

낯선 풍경의 집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과

홀로 외로움을 견디는 시간 사이,

이 집에 예전에 살았었던 김소민이라는 여자가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며 얽히게 된 이야기가 담긴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 함께한 율무와 콩이라는 친구,

늘 같은 길을 걷고 함께할 것만 같았는데

집안 사정에 따라 사는 곳도 멀어지고

학원도 그만두게 되며 외로움과 고립감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까무룩 잠에 들었다가 옆에서 느껴진

낯선 사람의 체온에 잠에서 깬 보리는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사라진 낯선 사람의 흔적이자

그에 대한 정보가 있는 지갑을 줍게 되는데,

지갑의 주인이자 침입자인 김소민의 흔적을 따라

그녀에 대한 추적을 하던 중

집 바로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직원이

그녀임을 알게 된다.

그녀를 엿보다 대화를 나누게 되고,

마치 초대장처럼 문제집 한편에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알려주는 그녀.

과거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과거를 다시 사는 기분이 들어서

자꾸 보리의 집을 찾게 된다고 했다.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 자신의 이야기를 툭 털어놓는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 또한 하고 싶은 보리.

힘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이겨내고픈

의지와 용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


남세오 작가의 《비와 번개의 이야기》는

조금 색다른 접근으로 다가온다.

반항이 가득한 시기,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진은

미리 계획했던 부산 여행이 폭우 소식으로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조용히 짐을 싸고 집을 나와

빗속에서의 여행을 강행한다.

언제나 계획을 세우고 뭉그적거리는 주혁이

여행 동반자로 나서게 되는데,

우비까지 챙겨 입고 쏟아지는 빗속의 기차

부산이 아닌 대전에서 하차한 그들이

섬광을 따라 이동하던 중 날개가 있는

낯선 존재를 만나고 그와 미스터리한 대화를 나눈다.

성심당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에서

케일이라 불리는 존재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화 미련, 용기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놓인 무수한 선택지에 앞길에 선

방황하는 이들에게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방향 표시판이 되어줄 만한 그런 이야기였다.



유영민 작가의 《엘리자베스 칼라》는

보호 종료 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데서 출발했다고 한다.

동남아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인 P는 부모님의 사망으로

보육원에서 자라며,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다른 모습에 많은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여덟 살 생일

갔었던 놀이공원에서의 행복한 하루.

상처를 보호해 주는 엘리자베스 칼라처럼

놀이공원에서 들었던 멜로디는 P에게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일하게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데릭과 만나

놀이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P.

새로운 친구 데릭과의 시간은 P에게

새로운 엘리자베스 칼라가 되어준다.

각자 가진 어둠에서 벗어서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데릭과 P의 시간을 전하며

'함께한다는 것이 주는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


전건우 작가의 《그날 밤, 우리가 갔던 흉가》는

여름이면 세트처럼 다가오는 으스스한 체험,

모험을 즐기는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학 진학을 앞둔 고3 수험생인 나와 경수, 대호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폐가에 가보게 된다.

그곳에 나오는 귀신을 보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소문에 간절함 때문인지

모험감 때문인지, 함께한다는 무모한 용기 때문인지

그들은 자욱한 먼지와 냄새로 가득한 폐가를 둘러보며

'교복 입은 귀신'을 찾는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따라 올라간 2층에서

우연히 마주한 거대한 곰 같은 형상을 보고

도망치듯 내려오다 지하실까지 떨어져

고인 물에 빠지게 된 나.

물속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알 수 없는 존재에

공포를 느끼며,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모험담 같은 그 일은 친구들 사이에서

'그날 우리들만의 비밀'이 되어버리고

그 뒤로 대학 진학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비밀로 붙이며

작가는 마지막까지 독자들과의 밀당을 하는데~

작가가 직접 겪지 못했던 고3 생활에 대한

로망에서 비롯된 이 소설은

무모하면서도 용감한 그때의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는 점에서 아련함을 더한다.


때로는 과장되고 편향된 시선에서 전하는

뻔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 입을 통해 옮겨진다.

'내가 방학 때 말이야,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들은 얘기 중 무서운 얘기가 있는데..' 하면서

여름의 열기를 가득 담은 청량한 조각들은

그렇게 하나 둘 서로에게 옮겨지면서

여물고 계절의 향기를 가득 품는다.


각기 다른 이야기이지만 '여름방학'이라는

설렘과 추억, 기억을 담았다는 점에서

이렇게 하나의 큰 선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앤솔러지 소설의 장점인 것 같다.


각 작가들이 그리는 여름의 조각들을

품고 있는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여름이 다시 떠올려지기를 바란다.


"이 글은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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