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변호사 홍랑
정명섭 지음 / 머메이드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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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법 앞에서는 공정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법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고
피해를 호소하며 그에 따른 처분을 받기도 한다.
헌법이 제정된 이후 법으로 다스리는
다양한 사건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오래전 조선시대에는 과연 어땠을까?
그때도 재판이나 법으로 다스리는 일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자유로이 낼 수 있는 오늘과 달리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있고,
그것이 대물림되어 이어진 조선시대에도
과연 억울함을 가진 이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해 줄 근거가 있었는지 말이다.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최대한 법에 근거해 판결과 처벌을 내렸다고 한다.
신분제도가 있기는 했지만,
임금이라도 하더라도 사형집행과 처벌을
대신들과 의논했다고 하니
법치국가로서의 기틀은 그때부터 다져왔던 것 같다.
이런 조선시대의 법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구성한 소설을 만났다.
《조선변호사 홍랑》이다.

변호사라는 표현을 당시에는 쓰지 않았고
외지부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송사를 담당했던 조선변호사,
당시에는 더욱이 보기 힘들었을 여성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은 '홍랑'이라는 인물을 통해
법을 악용하는 이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와
사건들에 대한 추리,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까지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작품을 쓴 작가는 대기업 출신으로
바리스타를 거쳐 현재 전업 작가로
다양한 작품들로 이미 탄탄한 팬층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정명섭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기존에도 2016년 《조선변호사 왕실 소송사건》
을 통해 조선시대의 송사를 다뤘고,
이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도 받았다고 한다.

이번에 읽게 된 《조선변호사 홍랑》에서도
홍랑이 외지부를 맡으며 담당하게 된
사건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배경이
다양하게 펼쳐져서 시리즈물의 영상화가
되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전의 작품들도 천천히 만끽해 보며
작가의 세계관을 즐겨봐야겠다.

한 집안의 외동 딸로 태어나
역관 일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족함 없이 원하는 책을 읽으며
세상에 대한 걱정 없이 지내던 홍랑은
호기심도 많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다.
몰래 구해온 법 관련 문서들을 익히며,
알음알음 마을에서 문제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돕곤 했는데
그런 그녀의 집에 송사가 걸리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역관 일을 하는 아버지는
어머니의 친정인 처가댁에서 받았던
노비 가족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다.

역관이 되며 선물로 받았던 노비문서는
'여자라서' '딸이라서'
대를 잇는 자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돌려주어야 하는
송사에 휘말리게 하는 씨앗이 되곤 하는데,
억울하지만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온
외가 쪽 사촌 한훤덕과 그의 외지부인 송철로 인해
그녀의 집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건강하던 아버지도 한순간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집을 급히 정리하고 큰아버지가 있는
수원으로 떠난 어머니를 뒤로하고
홍랑은 몸종인 고단이와 단둘이 서울에 남아
아버지의 원한을 갚고 억울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외지부'가 됨으로써
실천하게 되는데

과거 기생출신이자
홍랑처럼 억울한 사람들을 기꺼이 돕는
금용을 통해 본격적인 외지부로써 거듭나기 위해
대송노 덕환에게 송정에 필요한 것들을
배워나가고, 다양한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본격적인 조선변호사 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여러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성장하는
홍랑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복수와 아픔을 넘어
타인을 돕고 어루만지려 하는
그 순수하고도 진실한 마음의 힘이
그녀를 많은 한계와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유리천장이라 불리는
법조계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조선시대에는 지금보다 더하면 더 했을 텐데
여성이기 이전에 나라에 속한
한 명의 국민, 한 사람의 사람으로서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는 그녀의 모습을
절로 함께 응원하게 되었다.

자신만의 방법과 해석으로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홍랑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원수 같은
한훤덕과 송철이 엮인 사건을 담당하며
절정에 이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현장에 대한 묘사를 한 문서만 보고도
사건에 대해 이만큼 다가가는 홍랑의 통찰력과
주저함이 없이 모험하는 기세는
지금 시대의 변호사에게도 필요한 점이 아닌가 싶다.

되돌릴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이었지만,
결국에 자신의 힘으로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복수는 끝이 났지만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홍랑의 앞길은
얼마나 탄탄하게 다져질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나아가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는
시리즈물로써 속편이 나올 수 있다면
새로운 재미가 될 수도 있겠다.

'조선시대에 변호사가?'로 시작했던 질문은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통해
'실제 있었던 사건 기록'을 바탕으로
각색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놀랐는데,
낯선 조선시대의 송사 과정과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까지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던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역사소설이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처럼
'희망'이라는 것을 잃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이 글은 레뷰를 통해 머메이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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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에이저
신아인 지음 / 한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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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중범죄를 저지르는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아직은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나이'라는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았던 그들은
스스로 반성과 개선의 노력은커녕
'촉법소년'에 속하는 나이라는 점을 노려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잘못을 느끼지 못하거나
고의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촉법소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는데,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나이를 현 만 14세에서
더 낮추어야 한다거나
나이에 관계없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들에 대한 처벌만이 문제해결이나 예방의
방법이 될 수 없고, 나날이 다양해져가는
촉법소년들의 범죄 앞에서 무엇이 효율적인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커져갈듯하다.

이런 십 대들, 법령의 저촉되는 행위를 했지만
아직 형벌 처벌을 할 수 없는 십 대들의 범죄와
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시선을 담은 추리소설을 만났다.
《킬 에이저》라는 작품으로 출간 전부터
영상화 문의가 쇄도할 정도로 탄탄하면서도
끝까지 추리를 이어가게 하는 반전이 독특했던 작품이다.

범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사건을 분석하는
프로파일러 일을 하고 있는 해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라는 불리한 지위에서도
'주목받는 한국의 여성 리더 10인'에 선정되고
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달려드는 전형적인 워커홀릭.
이혼을 하고 친정이 있는 대치동으로 돌아와
자신이 졸업한 명문 고등학교에
아들 도윤이를 전학시킨 후
좀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들이 걱정스럽지만
여느 엄마들처럼 유난스러운 교육열을 보이지는 않고
늘 아이 같았던 아들을 아끼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있다.

사춘기를 맞이하며 늘 품 안에 있을 것만 같았던 아들에게
전과는 달라진 포인트들을 발견하고, 아들이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여자친구 '태은'이라는 이름에 관심이 생긴다.
학부모 상담을 통해 방문했던 학교에서
우연히 태은과 태은의 엄마를 알게 되고,
그녀를 통해 전혀 알지 못했던 에이스 클리닉을 운영하는
'입시 컨설턴트' 승리를 소개받게 되는데,
학원도 아닌 병원 같은 모습의 클리닉에서
마시기만 하면 '달라진다'라는 약을 알게 되고,
해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지만
몇 년째 약을 먹어왔다는 태은의 얘기와
승리의 이야기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전학 후 적응기였던 도윤이 급작스럽게 회장 선거에
태은과 함께 출마하게 되고, 경쟁 후보이자
태은과는 좀처럼 좋아 보이지 않는 준우와의 만남,
작은 투닥거림이 있던 어느 날.
교내에서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는 다름 아닌 준우.
프로파일러로써 이 사건을 맡게 된 해수는
사건의 증거들과 자신의 추측을 통해
범인으로 태은을 의심하게 된다.
사건을 따라가던 중 연이어 발생하는 사건과
자꾸만 변해가는 도윤, 그리고 사건의 증거들이
자꾸만 아들 도윤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 같은데,
직업적 사명감과 아들을 둔 엄마의 입장에서
아들이 범인임을 인정하지도, 마냥 부정할 수도 없는 그녀.

그런 와중에 해수가 도윤이 나이대였던 학창 시절,
'공범'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마지못해 응해야 했던
과거의 어두운 기억까지, 진실들이 서로 엉켜있다
풀려가며 밝혀지는 반전을 추리하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소설 속에서 자신이 범인이라 하는 '킬에이저'로
불러달라 하는 이가 등장한다.
그는 메일과 편지, 때로는 증거들로
사건을 향하는 해수의 방향을 어지럽힌다.
소설을 읽으며 내내 등장하는 아이들을
'어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다 보니
진짜 중요한 포인트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범죄라는 행위 자체, 그 행위에 대한 이유를 찾아
실마리를 찾아 따라가다 보니
사건의 결말은 생각과 다른 반전으로
충격을 주며 다가왔다.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 선상에 올라
조사를 받는 아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
또 발생하는 사건들의 내용을 보며
이들 '촉법소년'이 어디까지 용서받을 수 있을지
나의 생각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이들이 서로 얽힌 관계들이
순식간에 펼쳐지며 이들의 관계를 정리하며
다시 읽는 과정은 이야기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날로 대담해져가는 소년들의 범죄,
그들을 바르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 어른들이 가져야 할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벌만이 완전한 해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처벌 없이 일상 속에 숨어들 촉법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그들의 미래는 어떨지,
앞으로 우리가 그려나가야 할 사회상을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글은 한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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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낙원
김상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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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인데도 ‘기억‘이라는 감성의 부분을 담았다는 점에서 새롭게 다가올것 같아요. 과학을 연구하는 작가가 그려낼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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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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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

청소년기는 그런 시기가 아닌가 싶다.

자신에 대한 무한한 탐구와 생각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흐르는 시간만큼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자라나니까 말이다.


이따금씩 흔들리는 그 시기에

"너답지 않게 왜 그래?"라는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나다운 게 뭔데?

진짜 내 모습도 모르면서!" 하면서

'나답다'라는 것에 대한 생각에 빠지게 되고 말이다.


아름답다는 말에서 '아름'이라는 것은

나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다운 것이 즉 아름답다는 것인데,

이런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고

또 무엇이 나다운지를 깨닫기까지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나 어떤 계기도 계기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너무나 상반된 두 청춘이 서로의 민낯을 마주하고

스스로를 증오하고 망가뜨리는 대서 벗어나

비로소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시간을 담은 작품

《파도가 닿았던 모든 순간》이다.


어려서부터 서핑을 좋아하며

파도를 타는 그 순간을 좋아하는 미쓰히데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농담도 잘하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너무나 좋아 보이는 무난한 모습이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 이혼을 한 부모님,

그 뒤로 폭군 같은 아버지 아래서 자라며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이만큼 커져있는 상태이다.

급기야 아버지는 암 투병 중으로,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아버지를 일주일에 한 번씩 간호하며

자신에게 유일한 낙이자 의미인 '서핑'만을

생각하는 굉장히 조용한 소년이다.


큼직한 키, 짧은 머리와 시원시원한 눈매.

학교에서 공부든 운동이든 모든 면에서 뛰어나

모범생으로 통하고 있는 후지사와 에리.

에리는 둥글둥글 여성스러워지는

자신의 몸을 보며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얼핏 바른 생활 같은 가족들도,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집을 떠난 큰오빠 때문에

원하지 않던 가업을 이어받으며 함께 살게 된

작은오빠 식구들을 비롯해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여자를 보면 마음이 동하지만, 신체적으로는

여성으로써 남자에게 반응을 하는 그녀는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착한 아이'로 행동하는

자기 자신을 증오하게 된다.


바다가 보이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서로에게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장마다 이야기의 화자는 미쓰히데와 에리가

번갈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이윽고 둘의 마주함이 생기면서부터

같은 이야기를 두 가지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남들과 다르다'라는 사실에 자신을 극도로 증오하는

에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또 모범생인 척 주변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는 자신에게

미움을 표현하기 위해 극단의 방법으로 택한 것은

처음 알게 된 남자와 하루를 보내는 것.


집에도 거짓말을 하고 낯선 도시로 떠나

길에서 만난 낯선 샐러리맨과 관계를 맺게 되는 데,

기대하고 생각했던 게 아닌

허무하고 불쾌했던 기분을 느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길,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곳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미쓰히데를 만나게 된다.


모범생으로 타인에게 알려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킬까 봐,

이런저런 둘러댐을 할까 고민하는 에리에게

미쓰히데는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엄마 아빠의 이혼, 그리고 아버지의 투병까지.

남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자연스러운 일도 막상 본인에게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며

누구나 당사자밖에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는 게

바로 그런 거일 거라며

자신은 누구에게도 에리의 일을

얘기하지 않을 거라는 미쓰히데.


그 뒤로 모종의 거래를 하게 된 두 사람.

원할 때에 언제든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마음이 아닌 신체만의 교류를 한다는 점.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민낯의 자신을

가깝지 않은, 아니 오히려 가장 멀다고 할 수 있는

가장 먼 접전의 서로에게 보이며

그들은 그들만의 관계를 이어나간다.


에쿠니 가오리, 미야베 미유키와 더불어

일본 3대 여성작가로 물리는

무라야마 유카는 위태하고 불안한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자신만의 문체로 담아내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두 청춘의 관계'를 아름답게 펼쳐냈다.


10년 만에 복간한 이 책은

작품 속에서 미쓰히데와 에리의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문제적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많은 이들의 열광을 끌어내기도 했다.

과감하고 담대한 표현은 책을 읽는 내내

어쩐지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주위를 살피게 하곤 했는데

처음엔 서로에게 일부러 날선 말을 하고

상처를 주며 긁어대던 두 인물이,

반복되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또 상대를 품어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면서

'육체적인 관계'를 넘어 '정서적 유대감'까지

갖게 된 이들이 비로소 마음까지 주고받으며

새로운 관계로 거듭나는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른 생활을 하는 모범생의 이미지,

서핑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가진

두 사람이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틀을

흔들리고 넘어서면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납득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그래도 한 뼘 나아갔으니 됐다' 라는 생각과 함께

솔직해진 그들의 진심을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단히 복잡한 일도 아닌데

유난히 크고 어렵게 다가오는 시간이 있었다.

매일 마주하는 나인데도,

내가 밉거나 이해할 수 없다가도

가족이나 타인과의 관계 사이에서는

기대에 어긋나기 싫어서 무난한 척

괜찮은 척 무리한 적도 있고 말이다.


마주할 수 없었던 자신과 제대로 설 수 있고

계속 치고 또 치는 파도를 넘어서

그 위에서 파도를 즐기는 모습은

어리기에 무모하게 할 수 있고

또 그때만이 가진 뜨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책을 덮으며 미쓰히데와 에리의

앞으로 펼쳐질 많은 날들을 가만히 생각했다.

그들은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까?

한결 단단해진 그 마음속에는

그래도 자신을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던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담대한 묘사에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풍경과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던

그런 시간이었다.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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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트 베어스 - 곰, 신화 속 동물에서 멸종우려종이 되기까지
글로리아 디키 지음, 방수연 옮김 / 알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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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를 넘어 기후 위기 시대가 되면서

인간들이 사는 환경에도 변화가 커졌다.

열대야가 연일 이어지며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폭우로 인해 도시가 물에 잠기고 농사를 망치는 등

우리 삶에 코앞으로 다가온 이 현실을 겪으며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지구에서 가장 최상위 포식자라 할 수 있는

인간이 마주한 현실이 이 정도인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그 위기가 얼마나 더 크게 다가갈지

짐작만으로는 현실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기후 위기 앞에 마주한 동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녹아가는 빙하 속에서

먹이를 먹지 못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간 '북극곰'이다.

북극곰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잘 알려지기도 했고 먼 극지방, 꽁꽁 얼고 추운

이곳에서도 지구온난화의 여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북극곰의 모습에서 미안함과 슬픔,

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북극곰 외에도

멸종 위기에 처한 곰들이 있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곰의 종류가

몇 종류나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머릿속에 그려지는 곰들을 떠올리면

우리가 '곰'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종들은

동물원에서 본, TV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본

한정된 종의 한정된 장소에 있는 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군신화에서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던,

만화 영화 속에서 익살스러운 친구 같던,

언제나 곁에 두고 있는 포근한 인형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곰들은 신화 속에서 내려오고

인간이 만들어낸 가공적인 모습으로

현실의 곰과는 거리가 있었다.


현재 지구상에 남아있는

곰은 여덟 종이 있다고 한다.

안경 곰, 느림보 곰, 대왕 판다, 반달가슴곰,

태양 곰, 미국 흑곰, 불곰, 북극곰

저자는 이 멸종 위기에 처한

여덟곰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와 중국, 베트남을 넘어

미국과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터전을 살펴보며

멸종 위기에 처한 곰들의 현실을 알림과 동시에

지구에 공존하는 생명체로서

우리가 해야 할 몫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했다.


이들 곰들은 각기 다른 종이자

사는 지역도 다르고 습성과 모습도 다르지만

파괴되는 환경 속에서

'곤경에 빠져있다'라는 공통점이 있다.


각기 다른 종들이 가진 특징을 비롯해

산과 숲속 깊숙이 살던 이들이

점차 인간이 사는 지역과 가까워지며

문제를 일으키기도, 피해를 당하기도 하며

종 자체의 존재 위기에 처해있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신화 속에서 등장할 만큼 가치 있는

또 그만큼 사랑을 받고 있던 이들이

어째서 인간들과 부딪치게 됐는지,

또 인간 사회의 변화가 이들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며

단순히 '기후 이상' '환경파괴'를 넘어

인간이 만들어 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에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으로서

이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남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안경곰은

운무림에 거주하고 있다.

세기말이면 5도 상승하리라고

예상되는 기온 속에서

이미 고지대에 살고 있는 곰들은

더는 갈 곳이 없어진다.

습한 저지대를 이용하는 이들이

주로 섭취하고 거주하는 이 서식지를

잃게 된다면 이들의 내일 또한 없을 것이다.


길을 내기 위해 베어지는 나무들,

이렇게 만들어진 길은 외떨어진 생태계에서

외부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고,

멸종 위기의 야생동물들은 그 길에서

밀렵과 밀거래에 노출되곤 한다.

또한 길이 숲을 조각내면서

야생동물들을 교란된 가장자리를 따라 살게 하고

연결성을 끊으며 동물들의 유전적 건강이

해쳐지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이다.


이렇게 인간 사회와 가까워진 곰들이

사람과 마주하며 벌어지는 사고 속에서

누군가는 피해를 입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며

곰 자체에 대한 복수심이나 배척으로

비뚤어질 수도 있다.

서식지 손실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곰들을 죽이기만 한다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개체 수만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식인 동물이 아닌 곰이 인간을 공격하는 데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까?

이런 공격성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늘어나는 인구로 공존할 수 없는 종들은

좁은 숲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고,

서로 거주지가 겹치지 않았던 종들은

서로 충돌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다다르면서 이 문제는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이어지는 문제로 제기된다.


중국의 대왕판다처럼

종 유지를 위해 인공 포육 및 인공수정 등

보호를 위한 경우도 있지만,

이들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와 보전도 좋지만

사는 서식지와 산림을 보호함으로써

이들이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대왕판다 부분은 읽으면서는

친선외교라고 일컬으며 임대하여

에버랜드에서 키우며 자연번식 성공 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 판다 '푸바오'를 떠올렸다.


푸바오가 있는 환경과 돌보는 방식에 대한

많은 팬들의 관심과 염려는 판다에게

더 많고 편한 거리를 제공하라고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인간의 손이 탄 장소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판다 보육 방식이

과연 종 유지라는 가치를 생각했을 때

가장 최우선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나조차 그것이 맞다고 확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동물은 자연에 있어야 하고, 자연 속에 있는

자연과 가장 비슷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갇혀있고 막혀있는 곳은 그저 사육환경에 불과하다.

이들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환경을

판다 외교로 벌어들인 돈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고유한 종을 보유한 중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또한 비정상적으로 채취되어 판매하고 소비되는

웅담에 대한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동물농장이라는 이름 아래,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웅담 채취를 위해 키워지는

반달가슴곰과 태양곰의 이야기는

주로 아시아권에 해당되는 제도적인 개선과

이들 역시 한때는 야생 곰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인식할 필요가 있겠다.


곰 농장을 탈출해 도심 속을 누비다가

사살당한 곰들의 이야기는 멀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비정상적인 사육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를 원하는 소비자가 없어야

이를 채취하고 만드는 이들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는 기온이 올라가며

겨울잠을 자지 않는 곰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들의 터전이 사람들과 가까워지며

수많은 사고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캠핑장에서 마주한 곰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에 대한 얘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멸종 위기에 처한 이들 곰들의 적정 개체 수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무엇이 옳은가?라는 고민은 계속되기도 했다.


극지방에 사는 북극곰들이

점점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다른 종들은

환경 변화, 개발 등으로 인하여

이들이 사는 터전이 파헤쳐 지고

직접 인간과 마주하는 문제가 있다면

북극곰이 위기에 처한 것은

인간 위주의 지리적 편향 때문이다.

우리가 얼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을

신경 쓰지 않고 지구 대기에

온실가스를 끊임없이 내보내는 동안,

녹아가는 북극은 저 멀리 뒷전으로 밀려나버렸고

그곳을 터전으로 하고 있는 북극곰은

자연스레 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비효과'라고 해야 할지,

인간이 지구를 누리며 살아가는 수많은 시간 속

편리함을 주었던 발전과 변화는

지구 곳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종들에게는

멸종 위기에 다다를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존재 자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써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 다가왔다.


사라져도 마땅한 곰은 없다.

신화 속에서 영화나 만화 속에서

혹은 늘 품고 있는 인형 등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가까이에 하고 있고 친근하게 생각해 온

이 종이 처한 위기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에이트베어스 #곰 #멸종위기 #멸종우려 #멸종 #기후위기 #동물권리 #알레


"이 글은 알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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