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동해 - 동해 예찬론자의 동해에 사는 기쁨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2
채지형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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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본 바다!

동해는 나에게 '깊고 푸른'이라는 수식어로

책에서 보고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처음으로 경험한 짜릿한 여름을 선물한

'태초의 바다'라는 이미지로 남아있다.


뜨겁게 달궈진 모래사장,

각기 다른 색으로 물들인 텐트들,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에 찰싹찰싹 나를 치는 파도,

입에 들어오는 짭조름한 바닷물의 맛까지

'아! 이런 게 여름이구나! 휴가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 태초의 바다인 동해는

그렇게 '여름'과 '휴가'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그래서 점점 날씨가 뜨거워지고 여름이 다가오면,

'어디로 휴가를 갈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반사적으로 동해를 떠올린다.

하늘과 연결된 듯한 그 깊고 푸른 바다와

한적하면서도 생동감이 있는 그곳 말이다.


이런 동해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 보면

휴가 때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사는 기분은 어떨까?'

'사람들이 파도처럼 들고나가는 이곳에서

일상을 보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물음표를 띄우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런 여행자의 입장에서 출발해

이제는 어엿한 동해의 시민으로

묵호의 지킴이로 여행 같은 일상을 보내는 이가 있다.

바로 여행작가이자, 여행 책방 잔잔하게를 운영하는

a.k.a 명랑쿠키 채지형 님이다.


일상에 지친 이들을 위한 작은 쉼표이자,

나만의 속도로 도시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기록을 담은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의 2번째 이야기인

〈언제라도 동해〉는 동해의 매력과 사계절을

꽉 채워 담은 책으로,

강연을 위해 이곳을 여행자의 입장으로 방문했다가

그 매력에 푹 빠져 정착하게 된

명랑쿠키님의 동해 예찬기라고도 할 수 있다.


1장에서는 동해와의 첫 만남,

한 달 살기의 추억을 담았고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묵호에 정착을 하며

여행책방 잔잔하게를 오픈하고 만나게 된

묵호의 소중한 인연들과의 이야기가 있다.

3장에서는 묵호에서 더 나아가

동해의 다양한 볼거리와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들이 준 추억이 잔뜩 배어있으며,

마지막 4장에서는 책을 읽고 동해 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동해를 여행하는 10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묵호라는 한적한 동네가

최근 들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따스한 정이 있고

소박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볼거리들,

그리고 그곳을 여전히 지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재작년 가을에 방문했던 묵호의 기억은

너무나 즐겁고 의미 있어서,

수시로 묵호 가는 기차표나 숙소를 검색해 보며

다시금 방문해 볼 날을 손꼽게 하는데,

〈언제라도 동해〉를 읽고 있자니

그때 묵호를 방문했던 추억들이 방울방울 떠오르며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플랫폼을 걸어 나와

작은 간이역 같은 느낌의 묵호역을 벗어나면

아기자기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묵호를 만날 수 있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킨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감각으로 새로움을 칠하고 있는

젊은 사장님들도 있다.

이런 전통과 새로움이 어우러지는 게

사람들을 자꾸만 이끄는 묵호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지난번 방문 시 명랑쿠키님을 따라

묵호와 동해를 둘러보며

나 역시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좋은 것을 하나라도 놓칠 새라

마치 생선 살의 가장 맛있는 부분을 발라내어

밥그릇에 올려주는 부모님의 마음처럼

묵호의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는 쿠키님의 모습에서

묵호와 동해에 대한 진심과 애정,

그리고 이 좋은 것을 소중한 사람과 나누고픈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고

살아있다는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는 바다,

그런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에 있던 근심 걱정, 시름은 어느새 잊게 된다.

어디 그뿐만 일까?


전국 3대 오일장에 든다는

북평민속오일장의 규모와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는

눈과 입을 모두 즐겁게 해주었고

시장 속에서 어우러지는 이웃들의 모습은

자꾸만 귀를 기울이고 웃게 만들어주었다.


함께 거닐었던 추억의 장소들을

책을 통해 다시 함께 쿠키님과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늘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보내는

쿠키님의 진심과 애정이 가득 담긴 이 책은

그 자체로 동해였다고 할 수 있다.


좋은 것을 다른 이들과 기꺼이 나누고픈

순수한 마음을 함께 만끽해 본다.

무한하다는 생각이 드는 바다, 동해처럼

또 느리고 조용한 동해처럼

언제나 그곳에 가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쿠키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조만간 다시 또 묵호에 찾아가

'저도 바다가 너무 그리웠어요,

그리고 여전히 보고 싶었어요'라고 전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미처 몰랐던 동해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기를,

또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은 그 기쁨을

소중한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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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동해 - 동해 예찬론자의 동해에 사는 기쁨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2
채지형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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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대한 로망과 추억을 가득히 채워주는 책. 묵호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꼭 읽어보세요! 여행같은 일상을 읽으며 대리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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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아이러브유
스미노 요루 지음, 김현화 옮김 / 사유와공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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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유와공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만약 세계가 멸망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하고 싶을까?

누구든 인생의 끝을 미리 알지 못한 채

마침표를 찍게 되는 우리들은

'끝'이라는 것이 분명히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기에

그것을 때로는 잊고 사는 것 같다.

이따금씩 마주하는 위기의 상황 앞에서

마지 순리처럼 돌아오는 '끝'을 새삼스럽게 체감하며

두려움에 떨고 마는 것이다.


인기가 없는, 그래서 슈퍼 챗을

채 500엔 밖에 받지 못하는 유튜버가 있다.

그는 '세계 멸망'을 예고하며 생방송을 보는 이들과

의견을 나누곤 하는데,

그녀에게는 '세계 멸망'을 알리는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있다.

그녀는 생방송을 통해 자신의 방송을 보는 이들에게

세계 멸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그 멸망에 맞서 건배를 건넨다.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알 수 없다.

멸망이 오면 그대로 방송은커녕 모두 사라질 것이고,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각자에게 달려있지만

그녀의 방송을 통해 멸망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마지막을 앞두고 최후의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송을 하는 코너룬 외에도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 '멸망'을 예고하는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떤 정형화되거나 공통된 모습이 아니고,

홀로 마주하기에 멸망을 앞둔 그들에게는 더욱

혼란스러우면서도 미스터리함으로 다가온다.

각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쉴 새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마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생각도

또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 대해서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멸망'이 오기 전

털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나 싶게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멸망'을 마주한 그들에게는 두려움보다는

멸망에 대한 묘한 '기다림'이 느껴진다.

이윽고 찾아올 모두가 맞이할 마침표 앞에서

무엇을 더 하겠다거나 변화시키겠다거나

타인에게 더 많이 알리겠다는 것보다는

마치 원래부터 정해진 마침표를 의연하게 받아들인 듯,

남아있는 버킷리스트를 해치우는 것처럼

일상을 보내고 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어떤 희열마저도 느껴지기도 했다.

표지에서 마주한 기쁨 가득한

소녀의 묘한 표정처럼,

또 어울리지 않는 파이프를 손에 든 것처럼

그들은 멸망을 인식하고 기다리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기쁨을 발견하기도 한다.


서로가 전혀 관련 없는 듯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읽다 보면 그물망처럼 얼기설기 엮여 있는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코너룬은

자신의 방송을 통해 '멸망'을 마주하며 느낀 감정들을

허심탄회하게 생방송 청취자들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멸망이 오든 오지 않든,

자신의 인생과 마주하며 살아가자며

이윽고 품어온 진심을 내비친다.


어쩌면 이것은 정말 '멸망'을 알리거나

소멸에 대한 예고라기보다는

'멸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간절함이나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내포하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마음속 폭발의 도화선을 긋는 역할,

꼭 '멸망'이라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생에서 그런 굴곡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변화를 갖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로맨틱, 청춘물을 잘하는 작가로 인식했던

스미노 요루의 색다른 매력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작품이었다.

전작들에서 어쩌면 조금씩 내비쳤던

그의 '놀라운' 포인트들이 이번 작품을 통해서

제대로 선보이지 않았나 싶다.


세상의 끝에서 발견한 진심!

응집된 그 진심의 힘이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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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없는 마음 - 양장
김지우 지음 / 푸른숲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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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출판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최근 들어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처우나 시선, 편견은

당사자들이 체감하기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며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장애인을 만나기 힘든 건

우리나라의 장애인구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주거지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기 힘든

배경 때문이라는 것을 늘 망각한다.


울퉁불퉁한 보도, 훼손된 점자 안내판,

저상버스라고는 하지만 휠체어는 물론

유모차도 탑승하기 힘든 분위기,

지하철 역사나 건물의 엘리베이터도 양보는커녕

'몸이 불편한 게 유세냐'라던가

'한창 바쁜 출퇴근 시간에 휠체어라니' 하는

비뚤어진 마음들은 그들의 다름을 틀림이라 말하며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점점 더 들리지 않는 곳으로 밀어낸다.


이런 현실 앞에서 장애를 가진 이들은 자신의 이 '다름'을

죄스러움이나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늘 '죄송합니다' 나 '미안해'를 입에 올리며,

주어진 권리나 역할을 누리기보다는

그저 눈에 띄지 않도록, 타인에게 어설픈 도움이나

동정을 받지 않도록 자신을 더 작게 만들곤 한다.


선천적인 장애로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삶을 살았던

구르님은 이렇게 늘 정체된 일상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자신을 이끈다.

혼자서 해보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나 부담이 더 무거워서 였을까,

용감하게 내디딘 발걸음은 그녀의 걱정이나 두려움보다

더 따스한 환대로 그녀를 받아준다.


때로는 좌절이 오는 순간도 있었고,

지치고 힘든 상황에 가장 가깝고 편한 이들과

날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넓은 세상에서 그녀가 느낀 건

그녀의 생각보다 사람들은 열려있고, 기꺼이 도움을 주며, 

자기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비로소 낯선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서야,

이방인이 아닌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순간들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작가는 자신이 느낀

오롯이 나로 존재했던 시간들의 기록을 통해

'타인' 특히나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돌봄과 도움, 그들을 향하는 시선을 올바르게

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이것은 다르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한 개인의 여행기 일 수도 있고,

여행을 통해 마음속 두려움에서 나아가는

한 인간의 평범한 성장기 일 수도 있다.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것이,

또 여행지에서 기차와 버스와 트램을 타고

어려운 상황에서 나 아닌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이토록 특별한 시선이 되어야만 했을까?

기울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타인과 다르게

작가는 자신을 '나'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이 여행의 의미를 성장과 도전, 변화로 이야기한다.


진짜 다른 것은 정작 누구인지,

틀린 시선을 가진 건 누구인지

책을 읽으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하고 개척해 간

용기 있는 여행자의 도전기!

구르님은 그렇게 자신을 가로막는 수많은 벽들을

하나씩 차분히 뛰어넘는다.

그리고 힘에 부치거나 어려울 땐

기꺼이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하며

도움요청아티스트가 된다.


이토록 의심 없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너와 나의 다름을 틀림으로 왜곡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붐비는 대중교통 앞에서 자신을 앞질러가는

많은 사람들의 다리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두 바퀴들의 쓸쓸한 시선을 떠올린다.

울퉁불퉁하고 끊긴 노란 길 앞에서

허공을 휘젓는 하얀 지팡이를 떠올린다.


타인에게 허락되지 않아 개척되지 않은 그들의 영역을

더 크고 넓게 펼쳐내어 함께 누릴 세상을 꿈꿔본다.

그런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우리의 내일이 되기를,

이 다름이 결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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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은 꿈꾼다
하라다 히카 지음, 최윤영 옮김 / 모모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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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팬하우스(모모)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돈으로 모든 행복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돈'이라는 것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어른이 되면

당연한 수순으로 누구나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으며,

그렇게 열심히 벌다 보면 집도 차도, 가지고 싶은 것들도

차례로 다가온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리던 시절에는 이른바 '잘 사는' 부유한 집이

동네에 한두 집 정도였고, 대부분은 고만고만하게

열심히 먹고사는 평범한 집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점점 머리가 커져 가면서,

비슷한 줄만 알았던 이집 저집의 사정이 각기 다르고

지갑의 두께와 생활의 방식이 다름을 알게 되었다.

'돈'이라는 것이 가진 무서움을 비로소 알게되었달까?


온전히 자랐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이로는 성인이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용돈을 받아쓰며 지불하는 생활비 없이 누리던

과거의 나의 '편리함'이

부모님의 보호 아래 얼마나 걱정 없이 누리던

행복이었는지를 깨닫는 데는 오래지 않았다.

'돈'의 어려움, 소중함 등을 깨달으며

그렇게 소녀는 어른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카드를 대부분 사용하는 지금과 달리,

현금을 주로 사용하던 20대 때를 떠올리면

늘 지갑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엄마의 가르침이 겹쳐진다.


서비스직에 근무했던 엄마는

돈을 만질 일도 많고, 여러 사람과 돈을 상대하며

나름의 철칙이랄까 원칙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갑 안은 항상 깨끗해야 하고,

지갑 안의 돈도 깔끔하게 사용해야

복福도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지폐는 앞에서부터 뒤로 갈수록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로 배치하고,

구겨지지 않도록 접지 않고 잘 펴서 넣는다.

앞에서부터 꺼내 쓰기 때문에

사용감이 있는 지폐들을 앞쪽으로

새 지폐는 뒤쪽으로 배치했으며,

큰 단위의 돈을 가지고 다니면

쉽게 깨서 쓰거나 헤프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갑 안에 너무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지양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엄마는 현금이 아닌 카드를 사용하더라도

카드 영수증을 모아두었다가,

카드 명세서가 나오는 날이면

날짜순으로 정리해둔 영수증과

명세서의 사용 내역을 비교하며

승인된 금액이 맞게 되었는지 확인을 거쳤고

사용하는 돈에 대해서는 가계부를 기록하며

절약하면서도 씀씀이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미신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오랜 기간 쌓여 온 많은 이들의 빅데이터인지

"빨간 지갑이 돈이 들어온다"라는 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지갑을 선물할 때는 빈 지갑을 선물하면 안 되고,

단 돈 천 원이라도 넣어줘야 한다는 속설도 있었다.


이런 지갑과 관련된 이야기는

복, 혹은 부나 돈과 관련된 이야기라서

듣고 흘리는 것이 아니라 다들 진지하게

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들었던 지갑 이야기만큼이나

지갑을 둘러싼 돈과 인생 이야기를

재미있게 담은 소설을 만났다.

음식 이야기를 맛깔나게 담는 줄만 알았던

대표작 〈낮술〉로 잘 알려진 하라다 히카의 신작

〈지갑은 꿈꾼다〉이다.


〈財布は踊る 지갑은 춤춘다〉라는 원제를 가진 이 책은

전업주부 하즈키 미즈호가 절약해

갖고 싶던 명품 지갑을 사고 MH라는 이니셜을 새긴 후

남편의 카드 빚으로 인해 사용하지도 못한

지갑을 중고로 처분한 후 지갑의 여정을 따라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인생과 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즈키 미즈호의 손을 떠난 지갑은

다단계 세일즈 맨인 미즈노 후미오를 거쳐

그의 지갑을 훔친 동창생이자 주식 투자에 빠진

노다 유이치로의 손을 거쳐

재테크 칼럼니스트인 젠자이 나쓰미,

학자금 대출로 허덕이는 사회 초년생인

히라하라 마이코와 사이타 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주어진 생활비를 아껴,

오래도록 소망했던 하와이 여행을 가고

자신이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명품 지갑을

스스로에게 선물한 하즈키 미즈호!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여행에 돌아온 이후

비정상적인 남편의 카드 청구요금에 의심을 가지다

'리볼빙 서비스'를 통해 남편이 카드 빚을

줄곧 지고 있던 것을 알게 된다.

더 이상 남편에게 기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무지함으로 인해 흔들린 가정의 경제를

단단하게 부여잡으려고 노력한다.

그 시작으로, 구매하고 사용조차 못 한

명품 지갑을 떠나보내게 되는데

중고거래를 통해 새 주인을 맞은 지갑의 여정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직면한 인생의 쓰디쓴 현실과

돈과 재테크, 부동산, 주식, 대출 등

실감 나는 경제문제에 대해서도 인식할 수 있는

경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오래지 않은 과거만 하더라도

열심히 일해서 저축을 하는 것이

이상적인 경제활동의 모습이었다.

월급을 타고 아끼며 저축해서

집과 차를 살 수 있다는 것,

노력하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던

시기였기에 그때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는 그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저축만 해서는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주식이며 코인이며 부동산까지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며

경제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며

자신의 '인생'을 더욱 '부유하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 역시

세상에 다시없는 부를 누리고자 함이 아니라,

그저 '조금 더 행복하고 여유 있게'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퍽퍽한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그들은 실패하기도 흔들리기도 하며

어찌해야 할지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 속에서도 볼 수 있었던 사례들이라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각 인물의 이야기를 거울삼아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깨달음도 있었고,

아직 경제적인 이야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소설처럼 가볍게 접할 수 있는

경제공부 시간 같기도 했다.


먹고살려면 반드시 필요한 이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서 모으고 사용해야 할지,

또 막연히 돈만 바라보고 달릴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중심을 잡아야 할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어쩐지 너무 발칙하고 물질적인 것만을 바라는

속물 같아서 쉬쉬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우리는 좀 더 건강한 마음과 시선으로

'돈'을 둘러싼 인생과 행복에 대해서

중심을 바로잡는 시야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읽기에 편안했고

하라다 히카만의 산뜻한 필체가 돋보이는

재미있는 경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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