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아이러브유
스미노 요루 지음, 김현화 옮김 / 사유와공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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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유와공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만약 세계가 멸망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하고 싶을까?

누구든 인생의 끝을 미리 알지 못한 채

마침표를 찍게 되는 우리들은

'끝'이라는 것이 분명히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기에

그것을 때로는 잊고 사는 것 같다.

이따금씩 마주하는 위기의 상황 앞에서

마지 순리처럼 돌아오는 '끝'을 새삼스럽게 체감하며

두려움에 떨고 마는 것이다.


인기가 없는, 그래서 슈퍼 챗을

채 500엔 밖에 받지 못하는 유튜버가 있다.

그는 '세계 멸망'을 예고하며 생방송을 보는 이들과

의견을 나누곤 하는데,

그녀에게는 '세계 멸망'을 알리는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있다.

그녀는 생방송을 통해 자신의 방송을 보는 이들에게

세계 멸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고,

그 멸망에 맞서 건배를 건넨다.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알 수 없다.

멸망이 오면 그대로 방송은커녕 모두 사라질 것이고,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각자에게 달려있지만

그녀의 방송을 통해 멸망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마지막을 앞두고 최후의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송을 하는 코너룬 외에도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 '멸망'을 예고하는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어떤 정형화되거나 공통된 모습이 아니고,

홀로 마주하기에 멸망을 앞둔 그들에게는 더욱

혼란스러우면서도 미스터리함으로 다가온다.

각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쉴 새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마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생각도

또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 대해서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멸망'이 오기 전

털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나 싶게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멸망'을 마주한 그들에게는 두려움보다는

멸망에 대한 묘한 '기다림'이 느껴진다.

이윽고 찾아올 모두가 맞이할 마침표 앞에서

무엇을 더 하겠다거나 변화시키겠다거나

타인에게 더 많이 알리겠다는 것보다는

마치 원래부터 정해진 마침표를 의연하게 받아들인 듯,

남아있는 버킷리스트를 해치우는 것처럼

일상을 보내고 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는 어떤 희열마저도 느껴지기도 했다.

표지에서 마주한 기쁨 가득한

소녀의 묘한 표정처럼,

또 어울리지 않는 파이프를 손에 든 것처럼

그들은 멸망을 인식하고 기다리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기쁨을 발견하기도 한다.


서로가 전혀 관련 없는 듯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읽다 보면 그물망처럼 얼기설기 엮여 있는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코너룬은

자신의 방송을 통해 '멸망'을 마주하며 느낀 감정들을

허심탄회하게 생방송 청취자들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멸망이 오든 오지 않든,

자신의 인생과 마주하며 살아가자며

이윽고 품어온 진심을 내비친다.


어쩌면 이것은 정말 '멸망'을 알리거나

소멸에 대한 예고라기보다는

'멸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간절함이나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내포하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마음속 폭발의 도화선을 긋는 역할,

꼭 '멸망'이라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생에서 그런 굴곡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변화를 갖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로맨틱, 청춘물을 잘하는 작가로 인식했던

스미노 요루의 색다른 매력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던

그런 작품이었다.

전작들에서 어쩌면 조금씩 내비쳤던

그의 '놀라운' 포인트들이 이번 작품을 통해서

제대로 선보이지 않았나 싶다.


세상의 끝에서 발견한 진심!

응집된 그 진심의 힘이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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