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는 천국에 있다
고조 노리오 지음, 박재영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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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근처의 성 같은 엄청난 저택.

무인도인가 싶게 주변에는

그 어떤 사람도 찾을 수 없고

집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마지막 살해될 때의 기억만을 가진

여섯 사람뿐이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

오전 6시면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집 앞에 도착하는 신문은 7월 20일의 날짜로

시간만 한 시간씩 달라지는 매시 신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아무 일도 없기에

이 천국이라 불리지만 갇혀있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6명의 사람들은

각자 추리를 통해 자신들이 살해당한 이유와

살인범을 찾고 이곳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살인자는 천국에 있다》는

천국 저택에서 발견된 6구의 시체와 관련된

사건의 진실을 따라, 죽음 이후

살인 현장과 똑같은 모습의 저택이 있는 천국에서

깨어난 6명의 피해자들이

사건에 대해 진실을 파헤쳐 가는

추리과정을 담고 있는

신감각 특수 설정 미스터리 소설이다.


제9회 신초미스터리대상 최종 후보작에 오르며

데뷔한 작가는 모두가 사망한 뒤 천국에서

펼쳐지는 추리극이라는 참신한 설정으로 극찬을 받으며

데뷔작으로는 이례적으로 발매 즉시 증쇄가 결정되었다.


전생에서의 기억이라곤

사고 당할 당시만 남아있고

그 외에 자신의 이름, 얼굴, 직업 등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천국에 도착한 이들은 각자 시차를 가지고

도착하게 된 천국이라는 공간에서

나름대로 별명을 짓고, 규칙을 확인해가며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를 적응할 뿐 아니라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메이드, 요리사 등의 복장을 한 이들은

자신의 직업적 특성을 드러내는 의상을 통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지만

주인공인 수염남은 차림새도 평범하고

꽃미남이라 불릴 법한 외모를 가졌지만

그 어떤 정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배달되는 시보일보에는

한 시간씩 달라지는 시간 차이로

기사 속에 묘사된 사건에 대한 정보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어 이것만으로는

추측할 수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


6명의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범은 누구인지, 왜 죽게 되었는지

그들은 매일 배달되는 매시일보의 기사와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들을

퍼즐 맞추듯이 조립해가며 유추해갈 뿐이다.


메이드, 요리사, 아가씨, 파우치, 조폭, 수염남 등

각자의 모습과 특징을 바탕으로 별명을 짓고,

그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천국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는 그들은 천국 저택이라 불리는

이 집과 천국의 시스템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면, 천국에서도

그때처럼 다시 똑같은 죽음을 겪게 되고

기합을 넣으면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걸 알게 된 그들은

각자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진실에 대해 서로를

의심하기도 하고 실험을 해가며 조금씩 살인범에 대해

다가가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은 무슨 이유로 살해당했을까?

이들을 해친 범인은 누구일까?


사후에 도착하게 되는 천국은

쉴 수 있고 편안하면서도 고통이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천국이라는 공간에 대해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을 뒤집으며 시작한다.


매일 자연스럽게 비워지는 휴지통,

늘 같은 재료들이 채워지는 냉장고,

지저분해져도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말끔해지는 옷 등

꽉 닫혀있는 천국은 그들에게 자유의 공간이 아닌

굴레 없는 감옥 같은 느낌으로 다가간다.


사건의 피해자들로 모여진 그들이지만

그들은 서로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신의 기억이 '인식된 기억'이지 진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천국 안에서도 벌어지는 현상들에 대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추리를 해 나간다.


주인공인 수염남의 시선을 따라 함께 추리를 하고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과정은

굉장히 흥미진진하면서도

지속적인 궁금함을 가져오게 했다.


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보다도

'누가 살인범인가?'에 포인트가 맞춰졌던 소설은

막바지에 이르면, 천국에서의 익숙해진 시간만큼

서로가 편해지고 가까워진 등장인물들이

더욱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진실을 꼭 알아야만 할까?'라는 생각에 이른다.

변하지 않고 무한하게 채워지는 이곳에서

적당히 지금처럼 서로 함께 어울리며

보낼 수 있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자신의 죽음,

그리고 모두의 죽음에 얽힌 커다란 물음표 앞에서

진실을 알기를 선택한다.


생각지 못했던 반전, 맞춰지는 퍼즐 속에서

하나 둘 떠오르는 죽음과 관련된 기억들,

그리고 소원을 이루고 마지막에 성불하기까지

그들의 시간을 쫓아가며

함께 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천국'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6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살인사건에서

사건의 잔혹함보다도

'누가? 왜?'에 초점을 맞추며 추리해나가는 과정들,

그리고 천국 저택의 시스템을 통한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반전 추리소설로서

작가의 능력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며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또다시 확인하는 과정,

마지막 사건의 진실이 가진 반전까지

멈출 수 없이 숨 가쁘게 달릴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살인사건'이라는 흉흉하고 무서울 수 있는 소재를

바닷가 저택의 모습을 한 저택에서

이토록 여유롭고 흥미롭게 풀어갈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 글은 하빌리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나는 누구지?"
기억이 사라졌다. 머릿속에는 살해당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 그외의 정보, 이를테면 이름이나 직업 같은 기억들이 전부 사라졌다.

"천국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낸 세계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집단이 공유하는 인식이나 감각, 소원이 투영된게 바로 천국이라는 이야기를요."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이 상황은 뭐야."
살인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저택. 진상을 파헤쳐야 벗어날 수 있는 세계. 그건 백번 양보한다고 치자. 아니, 한 백만 번쯤 양보한다고 치자. 아무리 그래도 이런 대접은 이해할 수 없다. 어제도 음식을 차려 주고 목욕을 권하며 개인용 방을 준비해 줬다. 마치 고급 호텔에 머무는 기분이다. 그러나 메이드 또한 용의자 중 한 명이다.

이 세계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 같다. 당장은 확인할 수 없고 확인하고 싶지도 않지만 아마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나이가 드는 일조차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영원한 감옥이다.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범인을 찾아내는 방법밖에 없다.

조폭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계속 말했다.
"영문을 모르겠네. 대체 왜들 나서지 않는 거야? 범인이라고 해도 이런 장소에는 있고 싶지 않을 거 아냐. 이미 살인은 끝났어. 이 세계에는 경찰도 없다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밝혀도 잃을 게 전혀 없단 말이야. 오히려 밝히는 편이 뭔갈 얻어도 얻겠지."

"누가 습격했는지 기억나?"
"잠이 덜 깬 탄인지 기억이 흐릿해. 습격당한 것만 알겠어."
"그렇군··· 그래도 일단 무사해서 다행이네. 죽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안심이야."
파우치는 사근사근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조폭이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다음 말을 재촉하듯이 물었다.
"무슨 뜻이죠?"
"목을 베이는 건 당연히 죽을 만큼 아파. 이런 일을 반복해서 당해 봐. 즉사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야. 이미 고문이라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당은 여전히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일대일일 때는 모두 평범하게 이야기하지만 여섯 명이 모이면 도중에 말이 끊겼다. 조폭이 언짢아 보이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 서로서로 견제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건 범인을 경계하는 거라기보다 누가 먼저 시작할까, 그런 식으로 사정을 살피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 세계에서 우리의 상태는 정신에 의존하고 있어요. 기합을 넣은 것만으로 되살아나니까 확실하죠. 기합으로 되살아난다면 그 반대도 같아요. 우리는 죽었을 때를 강하게 떠올리면 죽는 겁니다."

조폭 살해 사건이 해결된 후 파우치가 비디오카메라를 소망하자 창고에 그 바람대로 비디오카메라가 나타났다. 내가 겪은 알람 시계와 여벌 열쇠가 나타난 현상도 함께 고려하면 창고에는 마음 속으로 바라는 물건이 나타난다는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해변으로 돌아가자 모두가 나를 박수로 맞아 줬다. 요리사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메이드의 부재에 대해 묻기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면서 먼저 방으로 돌아갔어요."
그러자 활기찬 분위기가 살짝 누그러들었다.
파우치와 아가씨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국에서도 컨디션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네."
"정신의 영향을 받기 쉬우니까 오히려 몸이 쉽게 안 좋아질 수 있어요."
맞는 말이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세계. 그런 까닭으로 이 세계에서는 사고나 병보다 정신을 제어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여기는 소원을 들어주는 세계야. 미련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천국이라고. 그건 감각적으로 확정 사항이라는 걸 이해하지? 그리고 우리는 진상을 밝히는 것만이 소원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좀 더 큰 꿈을,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는 소원 그 자체도 이 세계에 포함된 게 아닐까?"

"아키오 씨, 번거롭게 빙 돌려서 말하는 건 이제 그만하시죠? 곧 성불할 거니까요."
"성불하기 때문에 더 그러는 거라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찬찬히 바라봤다. 그 후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죽기 전에 이렇게 재미있는 걸 봐서 다행이야. 여러 가지 소원이 뒤얽히면 이렇게 되는구먼. 하루토, 듣고 있느냐? 네가 아무리 저항하고 몸부림쳐 봤자 축복우 찾아오지는 않을게다. 난 이제 떠나마. 최대한 괴로워하거라. 자, 아직 시간이 남은 모양인데 자네들과 장난칠 마음은 없으니 이만 잠을 자야겠네."

대화가 멈추지 않았다. 모두 적막을 두려워했다. 방심하면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만다. 지금까지는 진상만 밝히면 모든 일이 잘 수습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과정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야 할 가능성이 컸다. 누군가에게는 떳떳하지 못한 과거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살해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을 받아들이기에 여섯 명은 지나치게 친해졌다.

"맞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메이드 씨는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잊고 싶다‘고 바란 거예요. 이곳은 소원을 들어주는 세계고, 우리는 기억을 잃는다는 소원을 이미 이뤘어요. 하지만 잊으면 잊는 대로 이번에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죠. 정말 제멋대로네요."

"···천국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소원이 있어요. 그 소원을 이뤘을 때 사람들은 천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계시이고 진리이며 법칙입니다. 그럼 소원이란 무엇일까요? 먼저 모두에게 공통된 소원이 있습니다. 바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또 저마다의 개인적인 소원도 있지요. 이 저택의 주인인 구니사와 아키오는 이미 그 두 소원을 모두 이뤄서 무사히 성불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나한테는 더 이상 미련이 없어. 만족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이제 곧 일주일이 지나려고 하는데 도무지 천국에서 벗어날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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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김지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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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나 털어놓기 힘든 문제가 있을 때

가까운 사람 보다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오히려 툭 털어놓기가 편한 경우가 있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커뮤니티에

그래서 이런 고민들이 올라오는지도 모르겠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민이나 문제에도

공감하고 함께 들여다봐주며 이런저런

의견들을 남겨주기도 하며, 그 의견이나 위로에서

더 큰 힘을 얻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이 동명의 뮤지컬로

6월 1일부터 대학로 후암씨어터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뮤지컬, 연극 등 공연화나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화되는 작품들이 종종 있는데,

워낙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작품인데다가

전 세계 13개국으로 판권이 수출된 작품을

공연으로 만나보기 전 원작 소설을 읽어보기로 했다.


연남동의 오래된 주택가를 배경으로

그 사이에 자리한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을

찾는 손님들이 빨래방에 놓인 연두색 다이어리에

각자의 고민을 남기고 위로를 주고받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은 밀리의 서재

신진작가 플랫폼인 밀리 로드에서

연재가 되었던 작품으로 연재 첫 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독자들의 요청으로

전격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함을 글로 담아보겠다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는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자

혹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었는데

가족 간에 어긋한 관계, 빠듯한 살림살이,

꿈을 향한 도전에서 맞이한 실패,

연인과의 비뚤어진 관계, 갚고 싶은 복수의 마음까지

연남동과 빨래방의 손님들의 사연을 통해

서로를 서로가 위로하고 도와주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마음에 진 고민이라는

얼룩을 깨끗하게 지워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빨래방에 온 손님들이 빨래방에 놓인

'연두색 다이어리'를 통해 소통하는 과정은

잊고 있었던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속마음까지 툭 털어놓는 고민은 마치 대나무숲에서

지르는 허심탄회한 이야기처럼 후련함을 더해주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진돌이와 메아리의 역할도

톡톡 튀게 귀여움 요소이기도 했다.


내가 가진 고민 앞에서는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홀로 살 수 없는 인생인데, 가진 고민을 타인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별로 없기에 어쩌면 쉽게 풀어갈 수 있는

고민들도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내 고민 앞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힘든 사람도,

타인의 고민 앞에서는 이성적이면서도 현실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줄 수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빨래방을 방문한 손님들은 서로에게

그런 고민 해결의 열쇠가 되어주고 있었다.


다양한 연령과 성별, 각기 다른 직업과 고민을 가진

인물들이 빨래방을 매개로 엮이고 어울리게 되며,

서로의 고민 앞에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주는 과정은

퍽퍽한 현대 사회에서 따뜻하면서도 힐링이 되는

그런 시간이 되어주었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다채로웠고,

흔한 상점 시리즈의 소설에서처럼

일부 인물들끼리만 엮이는 게 아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마지막 파트에서는

손에 진땀을 쥐게 하는 짜릿함도 있었다.


'사람'이 그립고 '사람'이 필요한 모두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어주는 힐링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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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번째 우주
김아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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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모습을 가지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수없이 많은 우주,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평행선상에 있는 다른 세계.

평행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평행우주에 대해서 얘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평행우주의 세계를 믿으세요?"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 평행우주라는 것 자체가 '내가 인식하는 순간'

존재하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지게 된다.


평행우주는커녕,

하루를 살아내기에 바쁜 열아홉 살 박연우.

어린 나이에 연우를 낳아 키우다가

연우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이혼한 부모님,

그 뒤로 아빠와 단둘이 살아온 연우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을 믿을 수가 없다.

일하던 마트에서 해고를 당하고

건설 현장에서는 생초보나 마찬가지인,

고소공포증이 있는 아빠가 건설 현장에서

그것도 십오층에서 외벽 작업을 하다가

추락 사고를 당했다는 것.


엄마도 없이 살아온 연우에게 아빠도 없이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지독한 외로움을

더욱 키워가는데,


연우는 아빠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

그리고 아버지가 건설 현장에서 일하게 된

원인을 자신이 제공한 것만 같아서

후회와 원망 속에 휩싸이게 된다.


그런 연우 앞에 상조회사에서 나왔다는

'엔딩플래너' 박태영과 권마래는

장례 절차 논의 및 평행우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른 평행우주의 체험을 할 수 있는

'생전생애 체험'에 대해서 알려준다.

믿기 힘든 설명 앞에 다른 것보다도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다'라는 이유 하나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그리운 만남을 원하는 연우는

계약서에 서명을 한다.


계약 체결 이후 퀀텀폰을 이용해

평행우주로의 이동과 엔딩플래너와의 연락을

주고받게 된 연우는 아빠가 살아있는 평행우주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데...


제13회 마해송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 김아영의 장편소설 《512번째 우주》 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한 작가는

이과 출신답게 '평행우주'라는

낯선 개념을 바탕으로 SF 소설을 써나갔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세계 이외에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을 가진

평행선에 있는 무한한 우주가 있고,

그 평행우주는 우리가 인식하는 순간

'존재하게 된다'라는 가정으로

주인공인 연우가 엔딩플래너와의 계약을 통해

자신의 다양한 평행우주로의 체험을 하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며 한 번씩 기억이 잊히거나 왜곡되며

'내가 진자 그런 말을 했다고?',

'여기 와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설 속에서는 이런 상황을 평행우주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는 세계에

왔다간 것일 수도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면 내 평행우주는

그저 가능한 상태로만 존재하다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세계가 있다는 걸 인식하고

그 세계를 떠올리는 순간 다른 평행우주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며,

인식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의미를 부여하고 인식하는 순간 존재하게 된다는 것,

평행우주에 대해서 크게 인지하지 못했던

나 역시 가지게 된 생각이다.


어떤 기시감에 대한 의문이나

평행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떠난 가족 등 보고 싶은 사람,

후회되는 어떤 사건을 되돌리고 싶은 사람 등

나의 선택으로 인해 나뉘게 된

평행우주의 무수한 뿌리 앞에서

다른 평행우주로의 이동을 원하는 이들에게

'엔딩플래너'가 제시하는 생전생애 체험은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우의 삼촌임을 드러내지 않은

엔딩플래너 박태영이 숨진 비밀,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있는 평행우주를 찾다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엄마와 함께 하는 삶'의

평행우주로 가게 된 연우,

다시 마주한 '살아있는 아버지가 있는 우주'에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까지!


연우는 무수한 가능성을 가진 평행우주 앞에서

각기 다른 삶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과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결국 내가 마주해야 할 '현실'을 깨달으며

진짜 '나'를 알게 되고, 성장을 하게 된다.


생전생애 체험을 넘어 엔딩플래너로

활동하게 된 연우의 모습과

타인의 평행우주까지 들어가게 된 모습은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말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았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이 만들어낸

무한한 수의 평행우주.

평행우주의 존재 자체뿐 아니라,

인생의 선택이라는 과제 앞에서

내가 만들어낸 수많은 가능성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 큰 빅뱅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평행우주를 오가며 연우가 느끼고 생각하게 된

결심들은 오늘날의 연우를 한 뼘 더 성장시킨다.

상상만 했던 다른 선택의 결과가 나를 어떻게 바꿀지

궁금하고 미련이 남았던 이들에게

'오늘의 선택'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얘기해 주는 소설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가진 가능성 역시

인식하는 순간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막연한 선택으로 나뉘는 세계가 아닌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너무나도 의미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으로 지금 세계에서 진정한 의미의 성장과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연우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향한 진한 응원도 할 수 있었다.


"이 글은 자이언트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인식이 존재를 결정합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면 나의 평행우주는 그저 가능한 상태로만 존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아버지가 살아 계신 우주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데요. 연우 님이 아버지가 살아 계신 우주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두 세계는 나뉘고 연우 님은 아버지가 살아 계신 우주로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연우는 그런 복잡한 말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아버지만 만나면 된다. 아니, 아버지가 살아 있는 곳으로 갈 수만 있으면 된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이 어떻게 건물 십오층에서 외벽 작업을 한 건지 아버지에게 물어봐야 했다.

도대체 이 엔딩플래너는 얼마나 울었던 걸까.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다. 엔딩플래너도 참 극한 직업 같다. 자기 가족도 아닌데 장례식 때마다 저렇게 울어대면 얼마나 괴로울까. 직업의식이 대단해 보이지만 감정소모도 엄청날 것이다. 자신은 절대 엔딩플래너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연우는 말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생전생애 체험을 통해 현재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우주로 가보고 싶어하죠. 혹은 자신의 선택이 맞았다는 걸 확인하려고 일부러 불행한 우주로 가보기도 해요. 그렇지만 곧 알게 돼요. 다른 선택을 했다 한들 그 이후의 삶도 내가 기대한 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갈, 결국 그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요."

마래는 운명이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연우에게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태영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태영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은 지울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이 내린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어 두렵기도 했다.

감정이 북받치는 듯 영혜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차만 홀짝거렸다.
"제가 하지 않았던 선택의 결과를 확인해본들 뭐가 달라지겠어요. 인제 와서 저렇게 살면 좋았겠다는 후회만 남겠죠."

생전생애 체험은 의식이 다른 우주로 원격 전송되는 경험이다. 의식이 안정적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회원이 전송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강제로 전송되면 의식이 원래 몸으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마래는 가능한 한 지수가 스스로 돌아가려고 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계약된 시간이 다 끝나가도록 지수는 이 우주를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 이야기를 믿어주시면 좋겠지만 믿기 어려우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굳이 구름이 평행우주에 따라와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건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고 싶어서예요. 제가 사는 세계의 지은 님이 미처 전하지 못한, 구름이가 다 보고 들었지만 알리지 못한 사실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싶었어요."

연우는 자신이 그렇게 존재감이 없는지 몰랐다. 그러다가 자신의 평행우주가 512개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유를 단번에 이해했다. 다른 사람들은 날 때부터 여러 개의 우주를 갖고 태어나 수없이 많은 우주를 만들어가는데, 연우는 단 하나의 우주에서 시작해 열아홉 살에 간신히 500개를 넘겼다.

태영은 연우에게 이 모든 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쉽사리 결장할 수 없었다. 말을 하는 동시에 자신의 평행우주는 나뉠 것이다.
물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우주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하지만 무심코 내뱉은 말과 선택이라도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때로 말 한마디와 선택 하나가 돌고 돌아 삶을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연우야, 사람이 일평생 만들어낼 수 있는 평행우주는 절대 무한하지 않아. 평행우주가 생성될 때마다 상당히 많은 양의 에너지가 소모되거든.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연우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자신의 평행우주가 마래와 클라이밍을 하러간 우주와 현지를 만나러 간 우주로 나뉘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엔딩플래너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연우의 우주는 더이상 512개가 아니었고 지금도 맹렬하게 나뉘고 있었다.

사람들은 생전생애 체험을 통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 만나고자 했던 사람을 만나길 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꿈꿔온 백일몽과 달랐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지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보며 절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이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결국 한 사람의 운명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선택이 다층적으로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걸 선택이라고 여기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다행이라 여겼다. 그 선택의 결과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책임을 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외면했던 선택이 돌고 돌아 연우에게 묻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할래?

연우는 엔딩플래너가 된 걸 후회하진 않았다. 그 덕분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다양한 평행우주를 경험하며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제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게요."
평행우주는 사람마다 다르게 진화하다 언젠가 제각각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연우는 깨달았다.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와 작은 결정 하나가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가리라 다짐하며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고 손을 잡아볼 수도 없는 사람이 그리워서라는 걸.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저 말 한마디 건네고 싶어서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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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감탄력 - 평범한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는 힘
김규림 지음 / 웨일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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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이라는 업무를 하는 데는

색다른 시선과 남다른 생각이 필요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데,

최근에 많은 마케터들의 주목을 받고 있고

다양한 활동으로도 잘 알려진

마케터 김규림의 새 책이 나왔다.


김규림은 배달의민족 마케터로

특유의 그림과 글씨가 더해진

독립출판물 도쿄규림일기 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 책에 대한 관심이 많던 찰나에

독립출판물 관련된 소개 글을 올리는 피드에서

이 책을 보고 '읽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일반 도서관에서는 독립출판물을

취급하지 않아, 그녀의 SNS를 보게 되었고

그 이후로 다양한 일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기도 하고

예전에 회사 다닐 때가 생각이 나서

그 뒤로 쭈욱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읽어보게 되었다.


스스로를 '문구인'이라 칭하며

문구를 좋아하고 글쓰기와 그림을

꾸준히 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결심과 정성이 필요한데

지켜봐온 시간만 해도 몇 년인데

그동안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모습에

절로 숙연해진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나보다는 어린 사람에게

지식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나 과정에 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선생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 포인트가 더해져서 김규림의

SNS와 SNS를 통해 소개된

그녀의 블로그까지 도달하게 되었는데

인스타그램에서도 소개하고 있지만

매주 목요일마다 두 문단 이상의 글을 쓰는

(자유주제) '목요일의 글쓰기'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SK커뮤니케이션즈에 재직 당시

사내에서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라는 타이틀로

'해피C' 활동을 하며 매주 수요일마다

사내 블로그에 글을 쓰는 활동을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글쓰기 모임 이름도

'수요일의 글쓰기'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시간에 모여서

같이 점심도 먹고 자유주제로 블로그에 글을 쓰며

하나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과정은

'마감'이라는 게 정해져 있어서인지

확실한 결과물이 나와서 좋았고

어찌 됐든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작성하면서

스스로도 콘텐츠를 작성하는 노하우가

생겼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블로그팀 소속으로써

다양한 콘텐츠를 봐왔던 나에게

포스팅을 작성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완성된 결과물에 쏟아지는 칭찬을 들으며

조금은 으쓱해지는 경험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간된 《매일의 감탄력》은

마케터 김규림이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매주 목요일 업로드를 하던

'목요일의 글쓰기'에 작성했던

콘텐츠들을 묶은 책이다.


자유주제로 작성한 글들이지만

한 사람의 시선을 통해서 작성되다 보니

크게 4개의 주제로 나뉠 수 있었다.


일에 대한 고민, 타지에서 일을 하며

느꼈던 새로운 시선들,

사람들과의 관계 등

평범했던 일상 속에서 글을 쓰기 위해

순간순간을 돌아보며 집중하다 보니

빛났던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를

솔직하게 담아냈다.


같은 하루를 보내고도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하루의 기억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렇듯 다른 자신의 시선을 '감탄력'이라 칭했다.

평가하고 비판하기에 바쁜 요즘,

작은 것에 감탄하고 감동하는 그런 시선이

가진 힘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은

대단한 기술이나 학습이 아닌 마음가짐의 변화

만으로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요일마다

꾸준히 써 내려간 이야기들.

꾸준함의 힘에 한 번 놀라고,

이토록 색다른 시선으로 평범한 일상을

빛나는 하루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무려 15년 차 블로거라는 작가의 꾸준함이

농축해온 감탄력의 힘을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모두가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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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치의 시간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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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회사에 다니던 직장인 시절에는

동료들과 함께 점심시간을 앞두고

메시지를 나누며 심각하게 논의한 주제였다.


한 시간 길게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회사와 일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점심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기에

몇 가지 안되는 후보군 중에서 심도 있는

토의를 통해 결정했던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걸 먹겠어'가 아닌

날씨가 함께하는 사람, 그날의 기분이나 분위기에

어울리는 점심을 고르기 위해서

심도 있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건

비단 나만의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혼밥도 가능하고,

먹고 싶은 사람들끼리 자유롭게 먹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지만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특별한 약속이 없는 이상

팀원이 모두 함께하는 점심'이 대다수의 분위기였고,

12시에서 1시에 달하는 엇비슷한 점심시간에

붐비는 걸 피하기 위해서 11시 30분 즈음에 나가거나

부러 늦은 점심시간을 맞이하고 있을 때면

공식적인 휴식을 할 수 있는 점심시간도

업무의 연장인 것 같은 기분에 조금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구제해 주기 위해

약속이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인근 팀 동료,

입사 동기들끼리 서로를 구제해 주기도 했었다.


일부러 고른 것은 아니지만 팀장님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메뉴나 간단식,

회사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어서

걷는 시간이 필요한 식당 등이

최종 후보지가 된 것은

이런 무의식의 반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고 몇인 이상 집합 금지라든가

가림막으로 가려진 식당 이용 등으로 인해

바깥에서 밥을 먹는 시간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외출을 최소화하고 집에서 가족들과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며 '집밥'이나 '홈메이드'의

비중이 늘어가기도 하고 말이다.


이렇듯 사소한 한 끼 밥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하루의 행복과 소소한 일상, 생각을 담은

마스다 미리 만의 감성을 담은 만화 에세이가 나왔다.

바로 《런치의 시간》이다.


하루 한 끼 점심 식사에 대한 마스다 미리의 추억이

귀여운 그녀의 만화 에세이로 재 탄생했다.

이제는 워낙 잘 알려진 마스다 미리 이자,

만화뿐 아니라 에세이, 소설 등 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마스다 미리 세계의 진수는 만화에서 나오는 것 같다.


함께 일하게 된 출판사 직원들과의 식사나

코로나 시대 오랜만에 방문한 본가에서

엄마와 마주한 식사 등 다양한 상황과 기분을 담은

그날의 한 끼 식사는 '점메추'를 찾는 우리들에게도

또 음식을 통해 사소한 행복을 만끽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즐거움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기존에 책을 통해 알게 된

오사카 출신으로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인

마스다 미리의 일상들을 '점심'이라는 주제로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메뉴들도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여행을 다니지 못하면서

그 아쉬움을 담아 이국적인 요리들을

직접 해먹는 과정은 굉장히 인상적이기도 했다.

'원래의 음식 맛이 어떤지 모르니,

내가 만든 맛이 맞는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나 역시도 느껴봤지만

'그래도 뭔진 모르겠지만 맛있는 건 확실하군'하고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끝나는 식사의 경험은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콜리플라워 라이스가 들어간 카레나

금욕의 버거(비건 버거) 등

특이한 메뉴를 거침없이 선택하는 그녀를 보면서는

음식에 있어 큰 도전을 하지 않는

입맛 흥선대원군 편에 속하는 나에게는

대리만족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한 번씩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서

평소보다 배의 행복을 느끼고

'그래,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라는 생각을 한다.


돈벌이를 한다는 것 = 먹고살기 위함으로

사실은 이 맛있는 음식을 나에게 먹이고자

스스로를 먹여살리는 것이 근본적인 것인데

때로는 일을 하기 위해서 그 가장 기본적인 기쁨을

최소화하고 간단히 하며 대충 넘길 때가

너무 많았던 나에게 반성을 안기기도 했다.


'마스다 미리가 먹을 것에 이토록 진심이어서 더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번 에세이!

대단한 소재가 아니라, 누구나 매일 맞이하는

'런치 시간'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과 허심탄회한 소통을 하고자 한

마스다 미리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책이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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