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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는 천국에 있다
고조 노리오 지음, 박재영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5월
평점 :


바닷가 근처의 성 같은 엄청난 저택.
무인도인가 싶게 주변에는
그 어떤 사람도 찾을 수 없고
집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마지막 살해될 때의 기억만을 가진
여섯 사람뿐이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
오전 6시면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집 앞에 도착하는 신문은 7월 20일의 날짜로
시간만 한 시간씩 달라지는 매시 신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아무 일도 없기에
이 천국이라 불리지만 갇혀있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은 6명의 사람들은
각자 추리를 통해 자신들이 살해당한 이유와
살인범을 찾고 이곳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살인자는 천국에 있다》는
천국 저택에서 발견된 6구의 시체와 관련된
사건의 진실을 따라, 죽음 이후
살인 현장과 똑같은 모습의 저택이 있는 천국에서
깨어난 6명의 피해자들이
사건에 대해 진실을 파헤쳐 가는
추리과정을 담고 있는
신감각 특수 설정 미스터리 소설이다.
제9회 신초미스터리대상 최종 후보작에 오르며
데뷔한 작가는 모두가 사망한 뒤 천국에서
펼쳐지는 추리극이라는 참신한 설정으로 극찬을 받으며
데뷔작으로는 이례적으로 발매 즉시 증쇄가 결정되었다.
전생에서의 기억이라곤
사고 당할 당시만 남아있고
그 외에 자신의 이름, 얼굴, 직업 등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천국에 도착한 이들은 각자 시차를 가지고
도착하게 된 천국이라는 공간에서
나름대로 별명을 짓고, 규칙을 확인해가며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를 적응할 뿐 아니라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메이드, 요리사 등의 복장을 한 이들은
자신의 직업적 특성을 드러내는 의상을 통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지만
주인공인 수염남은 차림새도 평범하고
꽃미남이라 불릴 법한 외모를 가졌지만
그 어떤 정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배달되는 시보일보에는
한 시간씩 달라지는 시간 차이로
기사 속에 묘사된 사건에 대한 정보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어 이것만으로는
추측할 수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
6명의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범은 누구인지, 왜 죽게 되었는지
그들은 매일 배달되는 매시일보의 기사와
조금씩 떠오르는 기억들을
퍼즐 맞추듯이 조립해가며 유추해갈 뿐이다.
메이드, 요리사, 아가씨, 파우치, 조폭, 수염남 등
각자의 모습과 특징을 바탕으로 별명을 짓고,
그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천국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는 그들은 천국 저택이라 불리는
이 집과 천국의 시스템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면, 천국에서도
그때처럼 다시 똑같은 죽음을 겪게 되고
기합을 넣으면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걸 알게 된 그들은
각자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진실에 대해 서로를
의심하기도 하고 실험을 해가며 조금씩 살인범에 대해
다가가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은 무슨 이유로 살해당했을까?
이들을 해친 범인은 누구일까?
사후에 도착하게 되는 천국은
쉴 수 있고 편안하면서도 고통이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천국이라는 공간에 대해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을 뒤집으며 시작한다.
매일 자연스럽게 비워지는 휴지통,
늘 같은 재료들이 채워지는 냉장고,
지저분해져도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말끔해지는 옷 등
꽉 닫혀있는 천국은 그들에게 자유의 공간이 아닌
굴레 없는 감옥 같은 느낌으로 다가간다.
사건의 피해자들로 모여진 그들이지만
그들은 서로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자신의 기억이 '인식된 기억'이지 진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천국 안에서도 벌어지는 현상들에 대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추리를 해 나간다.
주인공인 수염남의 시선을 따라 함께 추리를 하고
기억의 조각을 맞추는 과정은
굉장히 흥미진진하면서도
지속적인 궁금함을 가져오게 했다.
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보다도
'누가 살인범인가?'에 포인트가 맞춰졌던 소설은
막바지에 이르면, 천국에서의 익숙해진 시간만큼
서로가 편해지고 가까워진 등장인물들이
더욱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진실을 꼭 알아야만 할까?'라는 생각에 이른다.
변하지 않고 무한하게 채워지는 이곳에서
적당히 지금처럼 서로 함께 어울리며
보낼 수 있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자신의 죽음,
그리고 모두의 죽음에 얽힌 커다란 물음표 앞에서
진실을 알기를 선택한다.
생각지 못했던 반전, 맞춰지는 퍼즐 속에서
하나 둘 떠오르는 죽음과 관련된 기억들,
그리고 소원을 이루고 마지막에 성불하기까지
그들의 시간을 쫓아가며
함께 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천국'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6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살인사건에서
사건의 잔혹함보다도
'누가? 왜?'에 초점을 맞추며 추리해나가는 과정들,
그리고 천국 저택의 시스템을 통한 비밀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반전 추리소설로서
작가의 능력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며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또다시 확인하는 과정,
마지막 사건의 진실이 가진 반전까지
멈출 수 없이 숨 가쁘게 달릴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살인사건'이라는 흉흉하고 무서울 수 있는 소재를
바닷가 저택의 모습을 한 저택에서
이토록 여유롭고 흥미롭게 풀어갈 수 있음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 글은 하빌리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나는 누구지?" 기억이 사라졌다. 머릿속에는 살해당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 그외의 정보, 이를테면 이름이나 직업 같은 기억들이 전부 사라졌다.
"천국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낸 세계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집단이 공유하는 인식이나 감각, 소원이 투영된게 바로 천국이라는 이야기를요."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대체 이 상황은 뭐야." 살인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저택. 진상을 파헤쳐야 벗어날 수 있는 세계. 그건 백번 양보한다고 치자. 아니, 한 백만 번쯤 양보한다고 치자. 아무리 그래도 이런 대접은 이해할 수 없다. 어제도 음식을 차려 주고 목욕을 권하며 개인용 방을 준비해 줬다. 마치 고급 호텔에 머무는 기분이다. 그러나 메이드 또한 용의자 중 한 명이다.
이 세계는 변화를 거부하는 것 같다. 당장은 확인할 수 없고 확인하고 싶지도 않지만 아마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나이가 드는 일조차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영원한 감옥이다.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범인을 찾아내는 방법밖에 없다.
조폭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계속 말했다. "영문을 모르겠네. 대체 왜들 나서지 않는 거야? 범인이라고 해도 이런 장소에는 있고 싶지 않을 거 아냐. 이미 살인은 끝났어. 이 세계에는 경찰도 없다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밝혀도 잃을 게 전혀 없단 말이야. 오히려 밝히는 편이 뭔갈 얻어도 얻겠지."
"누가 습격했는지 기억나?" "잠이 덜 깬 탄인지 기억이 흐릿해. 습격당한 것만 알겠어." "그렇군··· 그래도 일단 무사해서 다행이네. 죽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안심이야." 파우치는 사근사근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고 조폭이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다음 말을 재촉하듯이 물었다. "무슨 뜻이죠?" "목을 베이는 건 당연히 죽을 만큼 아파. 이런 일을 반복해서 당해 봐. 즉사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야. 이미 고문이라고."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식당은 여전히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일대일일 때는 모두 평범하게 이야기하지만 여섯 명이 모이면 도중에 말이 끊겼다. 조폭이 언짢아 보이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 서로서로 견제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건 범인을 경계하는 거라기보다 누가 먼저 시작할까, 그런 식으로 사정을 살피는 느낌에 가까웠다.
"이 세계에서 우리의 상태는 정신에 의존하고 있어요. 기합을 넣은 것만으로 되살아나니까 확실하죠. 기합으로 되살아난다면 그 반대도 같아요. 우리는 죽었을 때를 강하게 떠올리면 죽는 겁니다."
조폭 살해 사건이 해결된 후 파우치가 비디오카메라를 소망하자 창고에 그 바람대로 비디오카메라가 나타났다. 내가 겪은 알람 시계와 여벌 열쇠가 나타난 현상도 함께 고려하면 창고에는 마음 속으로 바라는 물건이 나타난다는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해변으로 돌아가자 모두가 나를 박수로 맞아 줬다. 요리사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메이드의 부재에 대해 묻기에 나는 짧게 대답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면서 먼저 방으로 돌아갔어요." 그러자 활기찬 분위기가 살짝 누그러들었다. 파우치와 아가씨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국에서도 컨디션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네." "정신의 영향을 받기 쉬우니까 오히려 몸이 쉽게 안 좋아질 수 있어요." 맞는 말이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세계. 그런 까닭으로 이 세계에서는 사고나 병보다 정신을 제어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여기는 소원을 들어주는 세계야. 미련을 없애기 위해 만들어진 천국이라고. 그건 감각적으로 확정 사항이라는 걸 이해하지? 그리고 우리는 진상을 밝히는 것만이 소원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 좀 더 큰 꿈을,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고 싶다는 소원 그 자체도 이 세계에 포함된 게 아닐까?"
"아키오 씨, 번거롭게 빙 돌려서 말하는 건 이제 그만하시죠? 곧 성불할 거니까요." "성불하기 때문에 더 그러는 거라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찬찬히 바라봤다. 그 후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죽기 전에 이렇게 재미있는 걸 봐서 다행이야. 여러 가지 소원이 뒤얽히면 이렇게 되는구먼. 하루토, 듣고 있느냐? 네가 아무리 저항하고 몸부림쳐 봤자 축복우 찾아오지는 않을게다. 난 이제 떠나마. 최대한 괴로워하거라. 자, 아직 시간이 남은 모양인데 자네들과 장난칠 마음은 없으니 이만 잠을 자야겠네."
대화가 멈추지 않았다. 모두 적막을 두려워했다. 방심하면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만다. 지금까지는 진상만 밝히면 모든 일이 잘 수습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과정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야 할 가능성이 컸다. 누군가에게는 떳떳하지 못한 과거가 있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살해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을 받아들이기에 여섯 명은 지나치게 친해졌다.
"맞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메이드 씨는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잊고 싶다‘고 바란 거예요. 이곳은 소원을 들어주는 세계고, 우리는 기억을 잃는다는 소원을 이미 이뤘어요. 하지만 잊으면 잊는 대로 이번에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죠. 정말 제멋대로네요."
"···천국에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소원이 있어요. 그 소원을 이뤘을 때 사람들은 천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계시이고 진리이며 법칙입니다. 그럼 소원이란 무엇일까요? 먼저 모두에게 공통된 소원이 있습니다. 바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입니다. 또 저마다의 개인적인 소원도 있지요. 이 저택의 주인인 구니사와 아키오는 이미 그 두 소원을 모두 이뤄서 무사히 성불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나한테는 더 이상 미련이 없어. 만족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이제 곧 일주일이 지나려고 하는데 도무지 천국에서 벗어날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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