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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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궐 영역이었으며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며

궁궐로서의 모습을 잃기 시작한다.

급기야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어 궁궐이 아닌

공원화가 되어 훼손이 되기 시작하는데,

왕족들만 출입하는 궁궐이 아닌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시민공원으로 바꾸고,

왕족이 머물던 공간에 동물을 들이며

그 권위를 저해하고자 한

일제의 만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 유럽식 온실이자

식물원 지구의 중심에 위한 대온실은

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는데

일제 강점기 이후 6.25를 겪으며 폐원한 창경원,

그리고 폭격으로 인해 일부 훼손된 대온실은

1980년대에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되는 과정에도

철거하지 않은 채 남아있다가

2017년 보수공사 끝에 다시 개방하게 된다.


이 소설은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 30대 여성 영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석모도 출신으로 중학교 시절 창덕궁 담장을 따라

형성된 원서동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창경궁'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서늘해지며 그 일을 맡기를 꺼리게 된다.

그리고 창경궁과 함께 '낙원하숙'에서 지냈던

과거의 일을 회상하게 되는데,


묻어두었던 과거의 수리와 마음속에 넣어두고

꺼내보지 않았던 과거의 상처가 겹쳐져 펼쳐지며

연관성이 없었던 것 같은 조각들은

다른 듯 같은 이야기로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단청에 새겨진 섬세한 무늬처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마음을 수놓는 작가 김금희가 선택한

이번 소설은 일제강점기의 상흔이라고 할 수 있는

창경궁에 위치한 대온실,

그곳에서 발견된 미스터리한 지하공간의

비밀을 파헤쳐 가며

묻어 놓았던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마주 보고

그것을 치료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사랑으로 모든 것을 끌어안는 성장과

미완에서 벗어나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더욱 빛나는 진실을 담고 있다.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고

찾아가 만나게 된 일은 다름 아닌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작성하는 것.

공사를 진행하는 이들은 따로 있지만,

워낙 깐깐하고 업무협조가 쉽지 않은지라

빡빡한 공문 작성을 담당해 줄 이를 찾다가

영도에게 연이 닿은 것이다.

자신이 담당하게 될 일이 그녀의 인생에

상처와 얼룩을 남겨진 그곳 가까이인 것을 알았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로 하고

익숙하고 한때는 사랑했던,

그리고 상처를 받았던 그곳을 향한다.


창경원을 구성하는 식물원과 동물원,

그리고 작품의 가장 핵심이 될 대온실까지

실제 있는 장소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이 소설이 만들어낸 허구가 아닌

마치 실제의 이야기라고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내주었다.

조용한 섬마을에 살던 시골 소녀가

서울로 유학을 와서 느꼈던 어색함이나 외로움은

넓고 큰 궁궐과 그 궁궐에 이어진 담벼락을 따라

형성된 새로운 세상 앞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외롭거나 답답할 때, 또 자신의 현실에 타협하며

내밀고 싶지 않은 손을 내밀어야 했을 때도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곳이

바로 창경원이기도 하다.

그녀의 상처와 아픔을 바라보던 그곳은

현재의 그녀가 마주하게 된 보수공사 앞에서

이번에는 반대로 그 자신이 품고 있는

숨겨진 과거의 비밀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 동네 이름만 들어도, 창경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잊고 싶은 과거가 떠올라 외면했던 영도는

이제 대온실의 보수공사 앞에서도

또 함께 연결되어 떠오르는

자신의 과거와 상처 앞에서도 마주 서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믿지 않을 때도

따스한 손을 내밀어 주던 낙원하숙의 할머니,

그리고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도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득히 혼재되어 독자들의 마음속을 떠다닌다.


이윽고 밝혀지는 가슴 아픈 진실과

자신의 과거를 이겨내고 사랑으로 나아가는

영도의 모습은 더 이상 눈물을 삼켜야 했던

어린 소녀가 아닌 한 명의 어른으로서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성장과 자유 앞에서

과거와 얽힌 새롭게 태어난 창경궁 대온실을

있는 그대로 만나며 홀가분한 모습을 보이는

영도를 통해 '결국 살아내었다'는 생존감과

완전히 묻히는 진실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간절함은 진실이 가진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지난한 역사의 흐름 속에

우리가 그토록 기억해야 할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음을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왕실에 한정되었던 궁궐이라는 공간을

국민들을 위한다는 포장으로 무너뜨렸던

일제의 만행, 그리고 그 속에서 주어진 역할에 따라

그것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역사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되돌아가 자리를 되찾은 창경궁의 한 가운데,

이국적인 대온실이 전하는 것은

그날의 상처와 아픔을 잊지 말자는

어떤 다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대중에 공개되었다가 다시 복원 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어우러진 궁궐을 보며

시간은 이것을 또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 본다.

대온실이라는 공간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이렇게 독자들의 마음에서부터

오랜 역사의 시간으로 쭉 이어지게 된다.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어받은 것이기를, 또 우리가 전해 받은 그것을

잘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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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하라다 히카 지음, 권남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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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남편으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은 사야카.

매일 남편을 위해 정성껏 요리를 준비하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남편은 집이 아닌 거리의 정식집에서

맥주와 함께 끼니를 채우고 돌아오며

그녀의 식탁을 벗어난다.

그 사소한 삐걱거림의 시작은

바로 '술'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 차이!


식사 이후 취하지 않을 만큼,

고급스러운 술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그녀와 달리

남편은 밥과 함께 맥주를 동시에 들이키곤 한다.

자극적인 맛의 음식에 그것도 술과 동시에 삼키는

그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야카는

(어쩌면 조금은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눈빛으로 보던)

남편이 집과 자신의 식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남편은 이미 늦었다며 완강히 거절을 하고 집을 나간다.

분명 남편의 이혼 요구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가 즐겨 찾았던 정식집 '자츠' 를 찾아간 사야카는

그곳에서 직원을 모집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자츠에서 일하며 이혼의 이유를 찾고자 한다.


무뚝뚝하고 말수도 없으며

달고 짠 간으로 된 평범한 메뉴들을 정식으로

판매하고 있는 노처녀 주인장.

그곳에서 자츠의 메뉴들을 배우고 손님들을 마주하며

사야카는 조금씩 자신이 단단하게 세워놓았던

기준을 허물고, 타인들의 삶을 바라보며

때로는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또 자신의 미래를 제대로 바라보기도 한다.


전업주부로 남편 아래 안락하게 유지해오던

가정의 범위에서 벗어나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고

또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고 음식을 하며

비로소 고정돼 있던 스스로에게도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정식집을 운영하는 70대 조우씨와

갑작스레 이혼 통보를 받은 30대 사야카.

서로 어울리지 않고 교집합이 없을 것 같은 그들의 조합은

시간이라는 간이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딱 좋은

어우러짐으로 변하게 된다.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아닌 듯 챙겨주는

무심한 따뜻함은 나이를 뛰어넘은 두 여성의 연대로

그 어떤 조합보다도 단단하고 따스했다.


자츠에서의 첫 식사 때,

달고 짜게만 느꼈던 모난 사야카의 시선이

자츠에서 일하고 조우씨의 손맛을 배우고

음식에 대한 진심을 깨달으며

'맛있게' 그리고 '감사하게' 자츠의 음식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을 보는 과정은

어떤 의미에서의 사랑과 공감 같았다.


음식에 대한 탁월하고 간결한 묘사를 하는

작가 하라다 히카답게,

매일 그때그때의 재료에 맞추어 달라지는

자츠의 메뉴들과 조리과정을 담으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물론 음식을 눈으로 맛보는

재미까지 더해 주었는데,

맛깔스러운 자츠의 음식들을 보고 있자니

사야카와 부딪치며 밖으로 도는 남편이

그토록 자주 찾았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을 하다 보면 한 번에 간이 딱 맞는 경우는 없다.

간을 보며 소스를 더하고,

때로는 시간이라는 기다림이 필요하기도 하다.

인생도 여러 감정들과 사람들을 더하고

시간을 더한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의 요리 같은 것이 아닐까?

작가는 정식집 자츠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간을 알맞게 맞추고 다시 데우자고

그렇게 독자들에게 따스한 한 끼를 차려낸다.


음식으로 전하는 따스한 위로,

어그러진 삶의 간을 맞춰주는 든든한 한 끼 같은 소설,

<마음을 요리합니다, 정식집 자츠>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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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의 사랑 달달북다 12
이미상 지음 / 북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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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달달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북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에서 우리는 꿈을 꾸곤 한다.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理想) 일수도,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허무한 기대나 생각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큰 꿈을 위해 잠에 들기도 하고,

누군가는 허튼 꿈을 꾸지 않기 위해 잠들기도 한다.


잠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은 지극히 '휴식'에 가깝다.

하루 동안 활동하느라 지친 신체와 정신을

잠이라는 행위를 통해 온전히 쉬게 하고

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충전한다는 점에서 '잠'은 나에게 휴식이자 안도,

무방비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잠에 대한 것도

불면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꿈이라는 비현실을 통해 현실을 잊고자 하는

어떤 수단일 수도 있겠다.


모든 감각이 예민한 아버지가

하루의 끝 유일한 안식처라고 생각하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취하는 휴식은

어머니와 세 누나, 그리고 주인공인 '나'에게는

지옥 같은 곳과 숨 막히는 시간으로 다가온다.


아버지를 위해 소등 감시원을 한다거나

오감이 예민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들은

비로소 아버지의 사망 이후 고삐가 풀린 듯

모든 버튼을 '강'으로 바뀐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행동과 모습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한 나.

유일한 집안의 남성이어서 였을까?

아니면 아버지에게서 물려 내려진 것이었을까?

아버지처럼 예민해져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던 나는

엄마가 친척에게 샀다는 구옥으로 도피를 한다.


독립된 그곳에서 드디어 편안한 잠의 세계로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

순간의 평화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쉴 새 없이 울어대는 개 소리에

그는 항의를 하러 윗집으로 찾아가게 된다.


그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선숙이 누나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파양된 경험 때문에 혼자 있으면 짖는다는 얘기를 하며

그녀는 개를 그에게 맡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작된 그들의 연애.


잠에 빠져들어 모든 현실에서 벗어나

도피를 하려던 그를 선숙이 누나와 개는

현실에 머무르게 한다.

그녀 덕분에 현실의 삶을 살고 때로는 일을 하며,

연애를 하고 함께 목욕을 하며

평범한 삶을 사는 듯싶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현실 앞에서

그는 지루함을 느끼고 다시 잠으로 회피를 한다.


그렇게 끝나버린 그들의 연애,

모든 것에서 회피하려 했던

지극히 '잠보'였던 그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를 도피에서 벗어나 현실에 머무르게 했던

선숙이 누나가 그에게 남긴

연애의 흔적은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사랑의 모양과

새로운 로맨스 서사를 제시하는

북다의 달달북다 시리즈

로맨스X비일상은 이번에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 〈잠보의 사랑〉을 통해

지독한 회피형 인간인 '나'의 연애 이야기로

회피형 생활방식과 연애를 돌아보게 한다.


사랑이 과연 누군가를 변화 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사랑을 가능한지

우리는 잠보인 나와 선숙이 누나의 연애를 통해

질문을 던지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회피형이 연애에 있어

가장 나쁜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외면한다고 달라지지 않는 데,

문제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면서도 통제하지 않는

선숙이 누나에게 끌렸던 그는,

매력 포인트였던 점들을 걸고 넘어가며

'귀찮음'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외면하고

도피 속으로 자신을 이끈다.


'오늘날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한 그의 연애는

선숙이 누나를 통해 한 뼘 성장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언제든 도피를 할까

여전히 미지수를 그려내게 한다.


일상 중 가장 비일상적인 '연애'라는 감정에 대해

담고 있는 소설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토록 다양한 모양을 가진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가 감히 어떤 모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로맨스 서사의 무한한 확장을 가져온 시리즈를 통해

나의 마음속 시야도 더욱 넓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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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자는 고백 - 십만 권의 책과 한 통의 마음
김소영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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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야기장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떤 조건에 적합한 대상을 책임지고

소개를 한다는 의미의 추천.

나는 이 추천이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무언가 책임을 지지 않고 이끌리고 싶은

기본적인 나의 본능도 있거니와

그것을 먼저 경험해 본 이가 권하는 말은

그만큼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만

비로소 와닿을 수 있기에

'누군가의 추천'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를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신뢰하는 이들이 전하는 추천을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처음 가보는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무엇보다 그곳을 잘 알고 아끼는 주인에게

'이곳의 추천 메뉴' 혹은 '밀고 싶은 메뉴'를

물어보고 부러 그것을 주문한다거나,

좋아하는 대상이 추천하는 책이나 영화,

음악을 듣는 것은 모두 공감할 만한 포인트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보다 많이, 다양한 책을 읽는 분들이 많기에)

워낙 애독가로 주변에 알려져 있다 보니

한 번씩 책을 추천해 달라는 얘기를 듣는다.

거기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국문학을 부전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치 문학의 흐름을 모두 파악하고 있을 것 같아서인지

책 추천에 대한 요청이 점점 많아지는데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기 나름인지라

이 책 추천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책 추천을 그것도

매달 북클럽멤버들에게 따뜻한 책편지와 함께

'같이 읽자'는 고백을 담아 전하는 이가 있다.

아나운서이자, 큐레이션 서점 책발전소를 운영하는

김소영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책발전소북클럽을 통해

한 달에 한 권씩 큐레이션한 책을

회원들에게 발송해 주는데

책발전소 큐레이터인 김소영 픽과

이달의 큐레이터가 고른 책 중 선택할 수 있다.

책은 블라인드로 어떤 책이 발송될지는

받아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같이 읽자는 고백〉 그동안 책발전소북클럽을 통해

이달의 큐레이터로 선정되었던 작가들이

책과 함께 발송하는 책편지를 엮은 책으로,

작가들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그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보다 가까이서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추천해 주는 서비스들은 여럿 있지만,

그 책을 추천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쉽지 않다.


생일이나 mbti에 맞춘 추천 책이라든가

혹은 주제를 고른 후 전해지는 추천은 있지만,

일명 한국문단계의 어벤져스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과 명사들이 추천하는 책을

또 어디서 이렇게 직접 그 얘기를 들으며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큐레이션을 담당하는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너무나 설렐뿐더러,

좋아하는 작가나 눈여겨봤던

명사들이 있어 더욱 반갑기도 했다.

마치 '내 취향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골랐지?' 싶게

추천하는 이들 모두 눈에 들어왔으니

이 책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추천 책' 목록에

올라갈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작가들은 자신이 추천하는 책에 대해서

또 책과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꺼내놓는다.

마치 가까운 친구에게 전하는 속삭임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 담아 만든 한정판처럼

조심스럽게 하지만 자신 있게 '같이 읽자'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있자니 안 그래도 가득히 찬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끝도 없이 늘어났다.


마치 언젠가 아련한 과거에

좋아하는 노래들을 직접 선곡해서

한 장의 CD로 만들어 표지와 편지를 더해

유일한 단 한 장의 앨범을 만들었던

그때의 추억과 같은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만약 '이달의 큐레이터'가 되어

북클럽멤버들에게 단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어떤 책을 고를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됐다.

읽는 사람들만이 아는 '읽는다는 기쁨'을

함께 아는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책이라니

오늘따라 '추천'이라는 말에 담긴 무게감이

굉장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책발전소북클럽의 이달의 큐레이션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매달 달라질 큐레이터들의 진심 또한

책처럼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고,

또 그 고백들은 큰 울림이 되어

많은 독자들을 다시금 책 앞으로 불러 모으지 않을까?


책이라는 우주에 함께 할

수많은 존재들에게 전하는

가장 순수한 고백,

〈같이 읽자는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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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 이곳은 도쿄의 유일한 한국어 책방
김승복 지음 / 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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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공자의 논어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무언가를 향한 발걸음에서

그것을 오롯이 즐기는 사람은

어떤 노력이나 타고난 실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로,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입니다'

라는 가삿말처럼 우리는 매사에서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자연스레 그것을 꾸준히 오래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지속 가능한 일'을 꿈꾸는 나 역시 그런 점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왔고 말이다.


일본이라는 가깝지만 먼 이웃나라에서

그것도 하나의 거대한 서점이라 불리는

도쿄 진보초에서 유일한 한국어 책방이 열렸다.

'한국책과 작은 카페'라는 설명과 함께

학교를 다닌 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책거리'라는 이름을 한 이곳은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 책을 읽고자 하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학과 문화를 전한다.

도쿄의 유일한 한국어 책방,

21세기 조선통신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책거리의 이야기를 담은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를 만났다.


서점을 다니다 보면 여러 나라의 원서를

취급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언어 공부를 위해 부러 원서로 된 책을 찾아읽거나

혹은 전공서적 등 전문지식을 다루는 경우

번역본이 없거나 원서가 의미를 더 잘 전달하기 때문에

원서를 찾아보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고 일부러 다른 나라의

문학작품들을 원서로 찾아읽는 것은 흔치 않기에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책방, 서점이 있다 하면

'과연 수지 타산에 맞을까?'

'그래서 어떻게 운영이 될까?'라는

생각부터 할 것 같다.


하나의 사업체이기는 하지만

여느 매장과 책을 다루는 책방은

접근 방식이 다른 것 같다.

책방을 하는 이들 중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책방을 하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오히려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

부가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니

이런 사랑을, 이런 움직임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랑'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지 않을까?


그저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 믿고 떠난 일본에서

한국의 시와 소설을 출판하고 그것을 알리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작가는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하는 일은

결국 다 좋아서 하는 일이고

미쳐서 하는 일이다."라고 말하며

책거리와 그곳에서 하는 일을 설명한다.


좋아서 하는 일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그 마음 하나 만으로도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엄청난 원동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진보초의 책거리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점장을 맡은 직원들,

그리고 그들이 한마음으로 열어낸

K-BOOK 페스티벌까지

좋아하는 마음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 광활한 세계를 보여준다.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진심'이라는 일렁임을 전하며

'당신은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라고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회색 빌딩 숲 닭장처럼 빼곡하게 늘어선

책상에 앉아 주어지는 일을 하던 회사를 벗어나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우리들이 함께 해보자'는

마음 하나로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책거리가 맞이한 10년을 바라보며,

우리의 10년과 우리의 일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또 그동안 우리와 함께한 고객들과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분명히 힘든 시간도 있었고

(책거리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코로나 때 참 힘들었다)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하며

스스로도 놀랄만한 성장을 하던 때도 있었다.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며

매너리즘에 빠진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책거리처럼 우리를 버티고 지속 가능한 일로

이것을 계속하게 했던 것은

결국은 '좋아하는 마음' 이었다.


책이나 책방이라는 주제를 넘어

책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대입하고 보니

사실은 모두에게 통하는 세상만사의 이치가

그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나 『토지』 완역판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그 긴 시간에 많은 이들의 진심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울컥하기도 했다.

그렇게 진심을 더한 그 책의 가치는

분명히 독자들에게 전달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아득하고 다정한 사랑의 이야기,

좋아하는 것이 이토록 나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이야기로 다가왔던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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