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정신과 영수증 - 2만 장의 영수증 위에 쓴 삶과 사랑의 기록 정신과 영수증
정신 지음,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이야기장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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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카메라의 등장, 그리고 친구들과 연결되는

관계형SNS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싸이월드는

2000년대 초반을 시작으로 이른바

'핫하면서도 2000년대만의 감성'을 가득 담아내며

많은 이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카드보다는 현금 사용이 대부분이었고,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감성이 혼재되던 그때에는

디지털 사진도 인화해서 보관을 하였으며

관계형 SNS에서는 자신만의 감성 가득한

글을 남기는 이들도 속속 등장하곤 했다.


한창 이맘때 도서관에서 만나

나를 푹 빠지게 한 책이 있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던지라 공강시간이나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오가며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골라보거나

발견하기 위해 채굴(?) 하는 게 또 다른 재미였는데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다소 특이한 이 책은

제목부터 한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물건을 살 때면 자연스레 손에 쥐어지는 영수증을 모아

영수증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진과 함께

자신만의 감성 넘치는 글을 담아낸 이 책은

너무나 '싸이 감성'이었고,

따라 하고픈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인터넷 사용이 익숙해졌다지만

무언가 손으로 기록하고 남기는 아날로그가

아직은 편했던 그때에 만났던 <정신과 영수증>은

너무나 따라 하기에 좋은 교습서 같은 느낌이랄까


24살의 정신이 자신의 영수증을 바탕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은 이 책은

한순간 내 마음에 들어왔고,

순식간에 책을 읽어버리고는 언니와 동생에게도

추천하게 했던 나의 20대의 추억 같은 책이었다.


그 뒤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 책은 절판되었다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한 번씩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정신과 영수증, 그 정신은 지금 뭐하고 살까?' 하는

궁금증을 해결해 줄 새 책이 나타났다.

무려 처음 책이 나왔던 2004년으로부터

11년 만에 찾아온, <40세 정신과 영수증>이다.


처음 <40세 정신과 영수증>의 출간 소식을 듣고는

"미쳤다"라고 외치며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더욱이 초판 작업을 함께했던 사이이다(사진),

공민선(디자인)도 이번 출간에 함께한다니

마치 무한도전 토토가를 통해 추억 속의 90년대 가수들

무대를 다시 보는 듯 설레는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40세 정신과 영수증은

2018년부터 2025년에 이르기까지

40대가 된 정신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24세였던 정신은 40대가 되었고,

여전히 글을 쓰고 기도를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고, 사랑하고 싶어 했다.


국내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범위에서

결혼할 사람을 찾겠다는 생각은

그녀를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하게 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이전에 쓴 <정신과 영수증>을

중학교 때 읽었다는 독자와 만남을 갖고,

그녀의 독자이자 연애 선생님이 되어준

아그네스의 조언에 따라 본격적으로

결혼 상대 찾기에 나선다.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며 성경을 읽고 녹음하며

기도하던 순간들,

늘 한결같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 등

하루하루의 순간은 영수증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록으로 탄생하며 그녀의 인생에 쌓여간다.


지금도 여전히 영수증을 모은다는 정신은,

무려 2만 장의 영수증을 모았다고 한다.

그 영수증들은 그녀가 부지런히 살아내는

매 순간의 발자취이자 그녀 자신으로 남아있었다.

기록은 남기고 또다시 돌아볼 때 의미가 되는데,

남들은 가볍게 버리거나 혹은 아예 받지도 않는 영수증이

그녀에게는 인생의 전체를 이루는

소소하고 무수한 점이자, 하나의 특별함인 것이다.


포클랜드를 거쳐 뉴욕으로,

또 중간중간 한국에서의 기록으로

정신의 영수증을 따라 우리는 그때 그 시간의

그녀 곁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커피를 마시며,

아이스크림을 잊고 녹아버릴 정도로 빠져들게 된

남자와의 만남도 함께 바라본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마음에 새겨진 확신도,

가족이 되는 순간의 기록까지도 그녀는 정신답게

영수증과 글로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긴다.


'그래,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이런 사소한 일상이었어'

'이런 담백한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지고 싶었어'

'그때도 이런 게 좋았어' 하며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정신' 그 모습 그대로인

그녀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지금이야 기록하는 이들 사이에서 흔해져 버린

지출 기록이나 영수증 일기 등도 사실은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사람들은 알까?


퍽퍽해지고 차가워진 것만 같은 요즘의 감성에

여전한 자신만의 모습으로 그녀는 큰 파장을 던진다.

잊고 있던 그렇지만 그리웠던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나는 그녀의 책을 보며 그녀를 처음 봤던 그때의

나의 시간으로 돌아가 소녀처럼 기뻐하게 된다.


모두들 온통 흔들어놓을 정신의 이야기,

너무나 궁금했던 정신의 이야기.

11년 만에 만난 정신과 그의 영수증,

<40세 정신과 영수증>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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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에밀리 오스틴 지음, 나연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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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클레이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잘하고 싶은데 생각과 다르게

자꾸만 엉키고 꼬여버리는 일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괜찮아요', '제가 죄송해요' 등

저자세로 납작 엎드려, 그저 지금의 이 순간이

어떻게든 흐르고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쩌면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싶은 현실 앞에서 그저 흘러가듯

되는대로 살아가다가

그 와중에 무언가 해보겠다고

용기 내어 손을 대 보았는데

나비효과처럼 부풀어진 문제가

내 인생 전체를 뒤흔든다면

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토록 찌질하고 안 풀리는 캐릭터가 있을까 싶은

스물일곱의 무신론자 레즈비언 여성,

길다의 요절복통 이야기를 다룬 소설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는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웃픈 상황에 처한 청춘에 대한 공감과 탄식,

또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도리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청춘의 불안과 우울을 독특한 시선과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려내는 소설가인 에밀리 오스틴은

데뷔작인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를 통해

죽음, 종교, 정신건강, 퀴어 정체성 등

복잡한 주제를 유쾌하고 코믹하게 풀어내며

젊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나 틱톡에서는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길다의 불안한 심리에 공감하는

독자들의 추천으로 이 작품이 더욱

빠른 입소문을 타며 아마존 베스트북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도

유머를 더하는 그녀의 글은 현대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 경험담을 담은 친구의 리얼한 글을 보는 듯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위트가 있는,

작품을 통해 느껴지는 작가의 모습은

굉장히 '요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려낸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나라에 관계없이 현재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청춘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있었는데,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로 병원 직원들이 다 알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찾는 길다.

직장 생활도 오래 하지 못하고

내키지 않으면 출근을 며칠이고 하지 않으며

가족들과의 관계도 위태롭기만 한 그녀가

서점에서 해고를 당하고

우연히 연체된 고지서들 사이에서

'무료 정신 건강 상담'을 해준다는

광고지를 발견하고 이를 따라 방문했다가,

구인광고를 보고 방문한 것으로 오해한 신부님에게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해 그대로 면접을 보고

성당에서 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앞으로 나올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자,

그녀의 인생을 뒤흔드는 나비효과 같은 계기가 된다.


무신론자이자 레즈비언인 자신을 숨기고

성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길다.

자신의 전임자였던 그레이스가 세상을 떠나고

공백이 된 자리를 이어받아

성당의 이메일 등을 관리하게 되는데,

그동안 쌓인 이메일에는 그레이스의 사망 소식을 모르는

오랜 친구가 보낸 메일이 포함되어 있다.


얼굴도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친한 친구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이로 인해 슬퍼할 상대방을 생각하니

어쩐지 울컥한 기분이 든 길다는,

그 일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예상하지 못한 채

그레이스인 척 답장을 보내게 된다.


그 뒤로 이어지게 되는 메일,

그녀의 정체성을 모르는 성당 사람에게 받게 된 소개팅,

일도 관계도 엉켜 자꾸만 소홀하게 되는 여자친구,

전임자인 그레이스의 사망과 관련되어 생기는 의혹,

그리고 경찰의 등장까지.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길다는 모든 사건의 중심 속으로 뚜벅뚜벅 들어간다.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의 착한 마음이,

그녀를 위기 속으로 점점 끌고 간 것이다.


이런 그녀의 불안과 공황 속에는

어렸을 때 겪은 키우던 토끼의 죽음 이후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죄책감이 있는데,

자신의 이런 모습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길다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까웠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처럼

그녀 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문제들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 앞에서

그저 거절하지 못하고 무너진 길다가

'전부 내 탓'이라고 자책하게만 한다.

그저 사람들이 슬프지 않았으면 했고,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서 비롯된 일이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올 줄이야


죽고 싶지만 죽음의 두려움 앞에

자신을 죽이지도 못하는 길다가

할 수 있는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는 걸

과연 사람들은 알아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 마주했을 때

'잘될 거야, 힘내'라는 위로보다도

나처럼 실제 힘든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통해서

더욱 큰 힘을 얻는다.


길다는 그런 청춘들에게

'이토록 짠하고 찌질한 나도 일어났다,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라는

공감의 힘을 전한다.


힘들고 벅찬 상황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길다의 모습이

지친 청춘들에게 공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아가자고,

용기를 권해주는 따뜻한 손 같았다.


투머치토커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길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나를 꽉 잡아줄

위로가 필요하다면

길다의 이야기를 보며 용기를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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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생 3 - 언제나 그 자리에 오늘의 인생 3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새의노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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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하루를 마치고

일기장을 펼쳐 날짜와 그날의 날씨,

오늘의 착한 일과 나쁜 일 등을 채워 넣고

빼곡한 줄 위로 가장 기억에 남는

오늘의 일과 생각을 적을 때면

무얼 적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학교를 다녀오고

집에 돌아와서는 학원이나 숙제,

기껏해야 엄마 심부름을 하다가

TV를 보거나 친구들과 노는 것이

하루 일과의 패턴이었는데

매일 같이 채워야 하는 일기의 줄은

그런 나의 일상에 비해 너무나 많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았다던가, 동네에서 무슨 일이 났다거나

가족들의 생일 같은 이벤트가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추리는 것은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런 하루의 결이 조금은 '지루하다'라고 느꼈던 것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 마주했던

코로나의 한 가운데였다.


유례없는 전염병 앞에서 매일 보내던 일상은

산산조각 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누기도 꺼려졌으며

마스크는 서로를 향한 표정을 숨겼다.


학교나 식당, 마트를 비롯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도 집합 제한이 생겼고,

전쟁통에도 열렸다는 학교는 빗장을 건 채

아이들은 온라인상에서 바둑판 같은 배경 아래

까만 점처럼 보이는 화상수업으로

학교에서의 교육을 대신했다.

가족들끼리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

그마저도 가족들과 떨어져사는 1인 가구들은

그 고독감을 더욱 톡톡히 느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반복되는 하루.

전날의 확진자 수와 전염병의 추이,

마스크 판매 5부제는 오늘은 태어난 해의

뒷자리가 몇인 사람들이 최대 몇 장의 마스크를

살 수 있는지 알릴 뿐이다.


그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되었고,

그렇게 반복되는 심플한 하루를 보내다 보니

그 속에서 작은 변주를

엄청난 크기의 변화로 체감하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괜찮아 질까?'

'코로나로 놓치게 된 것들은 뭐가 있을까?' 등을

헤아리다가도 그 시간이 1년, 2년을 넘다 보니

우리는 바뀐 일상에 익숙해졌고

그 속에서도 꾸준하게 주어지는 매일의 '오늘'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그날 몫의 인생을 완성하게 되었다.


〈오늘의 인생 3〉 이런 코로나 시대 속에서

매일매일 주어진 일상의 기쁨과 충만함을 담아낸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한참 바이러스가 퍼지던 2020년부터

점차 바이러스가 종식되며

이전의 일상을 되찾기 시작하던 2023년까지

매일 꾸준하게 쌓아간 '오늘의 인생' 들을 소개하며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

바이러스로 단절된 세상 속에서도 느낀 온기를

마스다 미리만의 그림으로 전하고 있었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는 만화 속 일상들에서도

확인한 차이로 다가왔다.

인물들의 표정이 마스크로 가려져 버렸는데,

코로나 시대에 태어나 자라난 아이들이

마스크에 가려진 입과 표정 때문에

언어발달이 더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최대한

눈으로 마음으로 전하려 했던 따스함이 떠올라

이전으로 돌아가 되찾은 오늘의 소중함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잃어버린 일상도, 무언가를 얻은 일상도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우리의 인생에 쌓인다.

지우고 싶다고 지울 수 없는 인생인 것처럼

매일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오늘'이라는 선물을

우리가 어떻게 기대하고 뜯어보며 만끽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는 마음가짐도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스다 미리 다운,

공감하며 웃을 수밖에 없는 포인트들이 있어 즐거웠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전하는 위로는

'그래, 결국 인생은 그대로 살아가는 거지'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했다.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의 별다를 게 없는 하루들도

시간이 지나 바라보니 아련하고 포근한,

대수롭지 않지만 대수롭지 않아

더욱 소중한 시간이 된 것처럼

지금의 시간들도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꺼내보면

그때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시간으로

반짝이지 않을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우리들의 인생.

어쩌면 인생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오롯이 서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을 보며 생각한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대로 괜찮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책망을 했다면

〈오늘의 인생〉을 보며 나름대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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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채팅이고요, 남편은 일본사람이에요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이람 지음 / 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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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달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태어난 환경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누군가를 만나고 연애는 할 수 있지만,

그를 넘어서 누구보다도 가까운 '가족'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결심과 계기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도 언어도 다른

국제결혼 부부들을 볼 때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언어도 정서도 문화도 다른 두 사람이 가족이 된다니,

"과연 어떤 모습에서 '이 사람이다' 하는

확신이 들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는지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국제결혼, 가깝지만 먼 나라인 앙숙과도 같은 일본.

그것도 상대와는 무려 채팅으로 만났고,

1년 만에 결혼까지 이르렀다니...

그들의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그들의 만남은 어떤 시작이었는지

호기심이 비눗방울처럼 떠올랐다.


각을 잡고 쓰는 작가의 글이 아닌,

이웃의 평범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만의 맛깔난 글솜씨를 보이는 이들이 많은

브런치 서비스에는 정말 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있다.

각자 가진 사연들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어지간한 소재와 글로는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것 같고

자신감이 떨어져서인지 나 역시도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몇 편 글을 작성하다가 멈춘 지가 몇 년이다.

하지만 이 바늘구멍 같은 브런치북의

종합 부문 대상작을 수상한 이가 있다.


채팅으로 만난 일본인 남편과의

연애부터 결혼, 그리고 J-시댁에서의

파란만장한 절연기까지 담아낸

김이람 작가의 연애 에세이

〈취미는 채팅이고요, 남편은 일본 사람이에요〉이다.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갔다가

지쳐서 다시 한국으로 복귀.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도쿄의 향기를 잊을 수 없어

다시 일본으로 날아간 그녀는,

낯선 타국에서 외국인이자 여자로

외로우면서 쓸쓸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팍팍하던 일상 속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반사적으로 들어가던 채팅 앱에서도

이런저런 나만의 기준을 정할 정도로

데이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의무 휴가로 쉬게 된

3월의 마지막 금요일

약속도 없이 홀로 익숙한 곳을 돌아보며 시간을 때우다

벚꽃 사진을 채팅 앱의 프로필로 변경하게 된다.


그리고 그 벚꽃에 반응한 한 남자와

나만의 규칙을 깨고 라인으로, 전화로,

만남으로 이어지게 되고 어느덧 1년 만에

그 남자와 국제결혼이라는 마침표를 찍기에 이른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자란 두 사람은

그만큼이나 기본적인 생각 방식이나

상대방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부딪치는 부분이 있을 때면 '일본인이라서 그런가'

하며 날선 반응을 보이던 자신의 모습에서

외국인이라 차별하던 주변인들의 못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로지 '나를 사랑하는' 이 남자는 언제나

묵묵하게 기다려줬고 이해해 줬으며,

그녀의 입장에서 헤아려줬다.

가장 힘든 시기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주는 존재'라는 확신과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둘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둘이서 열을 올리며 보는 한일전이나,

'독도는 어느 나라 땅?',

'8월 15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등

자칫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도

이들 부부는 유쾌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문화에서 오는 차이도 기꺼이 사랑으로 녹여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고려하며

그들은 누구보다도 가깝고 잘 아는

서로에게 완벽한 '가족'이 되어주고 있었다.


타국에서의 신혼생활 속

삐걱거리는 시댁 식구와의 관계는

떨어져 있는 친정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과 견주어

더욱 그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사랑받지 못하던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신에 대한 무시까지 더해지며

과감하게 시댁과의 절연을 선언한

당찬 외국인 며느리의 모습에서는

마치 한일전을 응원하듯 주먹을 불끈 쥐게 되기도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터전을 남편이 살던 시골로 옮기며

무력감을 느낄 때 그녀에게 찾아온 '글쓰기'의 시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솔직하고 예쁘게

담아내며, 하고 싶었던 작가와 책 출간이라는

목표에도 도달하게 된다.

사랑과 꿈을 모두 잡은 작가는

진정한 위너가 아닌가 싶다.


일본 생활에 대한 외국인으로서의 시선과

일본 남자와 채팅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사건,

그리고 그와 결혼을 결정하고

신혼집을 준비하며 느낀 따스한 '가족'이라는 의미 등

작가는 자신을 채운 연애와 결혼의 기억을

차근차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유튜브나 SNS 등을 통해서

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색다른 환경에서 지내서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외롭겠다는 마음에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

김이람 작가의 내일이 기대된다.

일본에서의 시간들이 이어질수록

'우리 집 일본인'의 후속편은 점점 더해지지 않을까,

또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다른 문화에서 오는

차이를 이해하고 색다른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아직 미혼인 나에게 결혼이나 혹은 외국인 배우자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카테고리였는데,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나에게 다가올 인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테나를 바짝 세워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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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한기 - 영화 [바이러스] 원작 네오픽션 ON시리즈 35
이지민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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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전 세계를 흔들어 놓았던 감염병인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면서

우리는 일상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타인과의 만남이나 접촉이 차단된 것은 물론,

집합 제한이나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그의 동선과 접촉자를 파악하여 이것을 알리는 등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한창 바이러스가 발발했을 때는

마스크를 하고 표정을 볼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마스크를 하고

지내야 할지 두렵기도 했다.

늘어나는 확진자들 사이에서

제대로 알려지는 것이 없는 정보는

혼란을 더해주기도 했다.


이런 바이러스가 다시 퍼진다면,

우리는 그때처럼 다시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국가재난에 버금가는 원인불명의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엉뚱하면서도 재미있는 소설을 만났다.

배두나 김윤석 장기하 손석구 등이 출연한

영화 '바이러스'의 원작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이지민이 쓴 소설

〈청춘극한기〉이다.


저자는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 이 작품을 썼다.

최근에 나온 책은 그 개정판으로,

코로나는 겪은 이후에 다시 보고 나니

바이러스라는 소재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청춘'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쓰다가

'바이러스' 앞에서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심어놓은

두려움과 싸우는 일이 누군가에겐 들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 아픔을 청춘의 아픈 날과 겹쳐 그리게 됐다.


소설은 연봉 삼백만 원의 시나리오 작가 택선이

친구의 소개로 삼 년 만에 나간 소개팅에서

국립면역연구소에서 일하는

분자바이러스학 박사 과학자인 남수필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했던 남수필은

소개팅 내내 자신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더니,

연구소에 일이 생겼다면서 황급히 자리를 떠나고

또 갑자기 연락을 해서 그녀의 집을 찾아와서는

밤새워 떠들고 함께 술을 마시며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동생이 가져다준 명절 음식을 나눠먹고,

그렇게 수다만 떨다가 헤어지는구나 싶었던

그들의 인연은 처음 본 번호로 걸려 온 전화가 전한

'남수필의 사망 소식'으로부터 급변하기 시작한다.


연구 중인 신종 악성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그가 사망했고, 사망 전 그와 접촉했던 이들을

조사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자신을 데리러 온 공무원들을 따라 이동하던 택선은

지난밤사이 도착한 휴대폰의 메시지 사이에서

'치료제를 먹으면 안 되고, 그들을 믿지 말라'는

남수필의 마지막 메시지를 발견하고,

자신과 함께 격리될 뻔한 첫사랑 연우와 함께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남수필이 남긴 메시지를 따라

'이균'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그가 남긴 자료들을 그에게 전달하면

이 바이러스도 해결이 될 것 만 같았다.


그랬다. 하지만, 택선은 하필 수필과 나눠 먹었던

명절 음식을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고,

바이러스의 증상은 점점 그녀를 잠식하고 마는데...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용기와 사랑의 감정이 시작된다.

미열이 나고 몽롱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그들은 앞에 마주한 사람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게 진짜 사랑인 건지, 아니면 바이러스에 감염돼

느끼는 가짜 감정인 건지

이균과 함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여정을 펼치던 택선에게는 혼란함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남수필은 왜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메시지를 남겼을까?


아프니까 사랑이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OTS 바이러스가 점점 퍼지게 된다면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옥택선과 남수필, 이균, 그리고 여기에 휘말리게 된

첫사랑 연우까지 등장인물들을 따라가는

바이러스의 여정기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도

아픈 '청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작품이었다.


시나리오 작가인 택선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투 머치 토커인 그녀의 쏟아지는 말들을 따라

정신없이 움직이게 했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이야기가

이토록 유쾌할 수 있다니,

그저 '용기가 생기고 사랑에 빠지는' 바이러스가

무슨 문제가 되는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메마른 감정을 가진 이들이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마법이 필요한 이들에게

과연 이것이 없애야 할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을지

어쩌면 이 힘든 세상 우리 모두 앞에 있는 타인을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해 보자'는 작가의

진심 어린 충고가 담긴 작품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소설을 읽고 나니,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영상으로 담아냈을지도

너무 궁금해졌다.

붕 뜬 사랑 같은 뜨거운 바이러스

너무나 귀여운 이 바이러스 이야기가 참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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