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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생 3 - 언제나 그 자리에 ㅣ 오늘의 인생 3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새의노래 / 2024년 12월
평점 :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하루를 마치고
일기장을 펼쳐 날짜와 그날의 날씨,
오늘의 착한 일과 나쁜 일 등을 채워 넣고
빼곡한 줄 위로 가장 기억에 남는
오늘의 일과 생각을 적을 때면
무얼 적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학교를 다녀오고
집에 돌아와서는 학원이나 숙제,
기껏해야 엄마 심부름을 하다가
TV를 보거나 친구들과 노는 것이
하루 일과의 패턴이었는데
매일 같이 채워야 하는 일기의 줄은
그런 나의 일상에 비해 너무나 많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았다던가, 동네에서 무슨 일이 났다거나
가족들의 생일 같은 이벤트가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추리는 것은
어린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런 하루의 결이 조금은 '지루하다'라고 느꼈던 것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 마주했던
코로나의 한 가운데였다.
유례없는 전염병 앞에서 매일 보내던 일상은
산산조각 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던 사람들과는
대화를 나누기도 꺼려졌으며
마스크는 서로를 향한 표정을 숨겼다.
학교나 식당, 마트를 비롯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에도 집합 제한이 생겼고,
전쟁통에도 열렸다는 학교는 빗장을 건 채
아이들은 온라인상에서 바둑판 같은 배경 아래
까만 점처럼 보이는 화상수업으로
학교에서의 교육을 대신했다.
가족들끼리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
그마저도 가족들과 떨어져사는 1인 가구들은
그 고독감을 더욱 톡톡히 느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반복되는 하루.
전날의 확진자 수와 전염병의 추이,
마스크 판매 5부제는 오늘은 태어난 해의
뒷자리가 몇인 사람들이 최대 몇 장의 마스크를
살 수 있는지 알릴 뿐이다.
그 속에서도 일상은 계속되었고,
그렇게 반복되는 심플한 하루를 보내다 보니
그 속에서 작은 변주를
엄청난 크기의 변화로 체감하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괜찮아 질까?'
'코로나로 놓치게 된 것들은 뭐가 있을까?' 등을
헤아리다가도 그 시간이 1년, 2년을 넘다 보니
우리는 바뀐 일상에 익숙해졌고
그 속에서도 꾸준하게 주어지는 매일의 '오늘'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그날 몫의 인생을 완성하게 되었다.
〈오늘의 인생 3〉 이런 코로나 시대 속에서
매일매일 주어진 일상의 기쁨과 충만함을 담아낸
마스다 미리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한참 바이러스가 퍼지던 2020년부터
점차 바이러스가 종식되며
이전의 일상을 되찾기 시작하던 2023년까지
매일 꾸준하게 쌓아간 '오늘의 인생' 들을 소개하며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
바이러스로 단절된 세상 속에서도 느낀 온기를
마스다 미리만의 그림으로 전하고 있었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는 만화 속 일상들에서도
확인한 차이로 다가왔다.
인물들의 표정이 마스크로 가려져 버렸는데,
코로나 시대에 태어나 자라난 아이들이
마스크에 가려진 입과 표정 때문에
언어발달이 더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최대한
눈으로 마음으로 전하려 했던 따스함이 떠올라
이전으로 돌아가 되찾은 오늘의 소중함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잃어버린 일상도, 무언가를 얻은 일상도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우리의 인생에 쌓인다.
지우고 싶다고 지울 수 없는 인생인 것처럼
매일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오늘'이라는 선물을
우리가 어떻게 기대하고 뜯어보며 만끽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는 마음가짐도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스다 미리 다운,
공감하며 웃을 수밖에 없는 포인트들이 있어 즐거웠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전하는 위로는
'그래, 결국 인생은 그대로 살아가는 거지'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했다.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의 별다를 게 없는 하루들도
시간이 지나 바라보니 아련하고 포근한,
대수롭지 않지만 대수롭지 않아
더욱 소중한 시간이 된 것처럼
지금의 시간들도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꺼내보면
그때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시간으로
반짝이지 않을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우리들의 인생.
어쩌면 인생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오롯이 서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을 보며 생각한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대로 괜찮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책망을 했다면
〈오늘의 인생〉을 보며 나름대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