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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에밀리 오스틴 지음, 나연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이 글은 클레이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잘하고 싶은데 생각과 다르게
자꾸만 엉키고 꼬여버리는 일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괜찮아요', '제가 죄송해요' 등
저자세로 납작 엎드려, 그저 지금의 이 순간이
어떻게든 흐르고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쩌면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싶은 현실 앞에서 그저 흘러가듯
되는대로 살아가다가
그 와중에 무언가 해보겠다고
용기 내어 손을 대 보았는데
나비효과처럼 부풀어진 문제가
내 인생 전체를 뒤흔든다면
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토록 찌질하고 안 풀리는 캐릭터가 있을까 싶은
스물일곱의 무신론자 레즈비언 여성,
길다의 요절복통 이야기를 다룬 소설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는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웃픈 상황에 처한 청춘에 대한 공감과 탄식,
또 마치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도리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청춘의 불안과 우울을 독특한 시선과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려내는 소설가인 에밀리 오스틴은
데뷔작인 〈전부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를 통해
죽음, 종교, 정신건강, 퀴어 정체성 등
복잡한 주제를 유쾌하고 코믹하게 풀어내며
젊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나 틱톡에서는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길다의 불안한 심리에 공감하는
독자들의 추천으로 이 작품이 더욱
빠른 입소문을 타며 아마존 베스트북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하면서도
유머를 더하는 그녀의 글은 현대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 경험담을 담은 친구의 리얼한 글을 보는 듯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위트가 있는,
작품을 통해 느껴지는 작가의 모습은
굉장히 '요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려낸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나라에 관계없이 현재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청춘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있었는데,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로 병원 직원들이 다 알 정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찾는 길다.
직장 생활도 오래 하지 못하고
내키지 않으면 출근을 며칠이고 하지 않으며
가족들과의 관계도 위태롭기만 한 그녀가
서점에서 해고를 당하고
우연히 연체된 고지서들 사이에서
'무료 정신 건강 상담'을 해준다는
광고지를 발견하고 이를 따라 방문했다가,
구인광고를 보고 방문한 것으로 오해한 신부님에게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해 그대로 면접을 보고
성당에서 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앞으로 나올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자,
그녀의 인생을 뒤흔드는 나비효과 같은 계기가 된다.
무신론자이자 레즈비언인 자신을 숨기고
성당에서 일하기 시작한 길다.
자신의 전임자였던 그레이스가 세상을 떠나고
공백이 된 자리를 이어받아
성당의 이메일 등을 관리하게 되는데,
그동안 쌓인 이메일에는 그레이스의 사망 소식을 모르는
오랜 친구가 보낸 메일이 포함되어 있다.
얼굴도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친한 친구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이로 인해 슬퍼할 상대방을 생각하니
어쩐지 울컥한 기분이 든 길다는,
그 일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예상하지 못한 채
그레이스인 척 답장을 보내게 된다.
그 뒤로 이어지게 되는 메일,
그녀의 정체성을 모르는 성당 사람에게 받게 된 소개팅,
일도 관계도 엉켜 자꾸만 소홀하게 되는 여자친구,
전임자인 그레이스의 사망과 관련되어 생기는 의혹,
그리고 경찰의 등장까지.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길다는 모든 사건의 중심 속으로 뚜벅뚜벅 들어간다.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는 그녀의 착한 마음이,
그녀를 위기 속으로 점점 끌고 간 것이다.
이런 그녀의 불안과 공황 속에는
어렸을 때 겪은 키우던 토끼의 죽음 이후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와 죄책감이 있는데,
자신의 이런 모습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길다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까웠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는 것처럼
그녀 앞에 펼쳐지는 수많은 문제들은
'도대체 왜'라는 질문 앞에서
그저 거절하지 못하고 무너진 길다가
'전부 내 탓'이라고 자책하게만 한다.
그저 사람들이 슬프지 않았으면 했고,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에서 비롯된 일이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올 줄이야
죽고 싶지만 죽음의 두려움 앞에
자신을 죽이지도 못하는 길다가
할 수 있는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는 걸
과연 사람들은 알아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 마주했을 때
'잘될 거야, 힘내'라는 위로보다도
나처럼 실제 힘든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통해서
더욱 큰 힘을 얻는다.
길다는 그런 청춘들에게
'이토록 짠하고 찌질한 나도 일어났다,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라는
공감의 힘을 전한다.
힘들고 벅찬 상황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길다의 모습이
지친 청춘들에게 공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아가자고,
용기를 권해주는 따뜻한 손 같았다.
투머치토커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길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 나를 꽉 잡아줄
위로가 필요하다면
길다의 이야기를 보며 용기를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