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길은 여름으로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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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무옆의자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떤 기억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한 사람을 괴롭힌다.

벗어나야지라고 이내 다짐하지만,

발목을 잡히고 끌려다니는 걸 알면서도 이내 엉키는

벗어날 수 없는 악연 같은 기억은

'나'라는 사람을 이전과 떼어놓거나 잊고 방치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게 할 정도이다.


상처와 번민, 가족으로 이어진 굴레,

평행선을 달리는 타인과의 관계, 감정 등

지친 각자의 삶 속에서 고뇌하는 사람들은

기대와 사랑으로 빛날 계절을 다시 꿈꾼다.


인생이라는 시계는 그렇다.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가혹하다가도 다정하게

못 견디겠다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이만하면 버틸 수 있게

삶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과 타인의 인생을 바라보며

그 여름의 아련함을 느껴본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과거에 다시 얽매이는 것 같았던 고향에

도망치듯 다시 돌아오게 된 주인공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과 상처들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향에서

다시금 서로를 향해 날선 상처를 주게 한다.


누군가는 잊고 싶었고,

누군가는 도망치듯 벗어났던 그 공간에서

과거의 추억과 시간을 함께 공유한

주인공들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서로에게 날선 말을 던지며,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던 주인공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통해

외면하고 있던 과거의 나를 바라보게 되고,

그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조금씩 과거의 상처에서도 벗어나 보고자 한다.


세계문학상과 사계절문학상 수상 작가

채기성의 신작 소설 〈우리의 길은 여름으로〉은

상처뿐인 도시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자신을 찾아, 쉴 곳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고등학교 동창인 등장인물들은

과거 친구이자 추억을 공유한 인물들이다.

설레는 첫사랑의 기억이기도 하고

아직은 서툴렀던 마음을 미숙하게 삼켰던

그래서 서로에게 미련이자 원망이 남아있는 그들은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멀어졌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만난다.


일을 통해 건조하게 서로를 대하지만,

상반된 성격이나 일을 마주하는 모습에서 대조하는 모습은

그때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은

숨겨진 그때의 일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자책이자 원망 등을

현재의 시간과 겹쳐 보이며 펼쳐놓는다.


따스하고 화목한 가족과의 관계조차

제대로 성립되지 못했고,

사랑하기에 아끼기에 모진 소리를 내뱉었던 말들은

씻지 못할 상처로만 남았다.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벗어나지 못한 채

방황하던 주인공들은

현재의 시간에서 그때의 시간을 조금씩 어루만지고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돌보게 된다.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도피하듯 외부로 돌렸던 눈은

타인에 대한 손길에서 마음으로,

그것은 다시 돌고 돌아 과거의 시간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계기로 다가온다.


고정된 형태로 남아있던 각인된 감정들은

이내 기대와 사랑으로 다시 피어오른다.

상처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이해하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으며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의 깊이가 더욱 더해진 것이다.


다른 이를 어루만지며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된 이들이

마음속에 품어놓은 사랑을 꺼내놓는다.

폭풍과도 같았던 감정들이 잠잠해지고,

그 속에 숨겨진 진심이 떠오르듯이

태풍이 훑고 지나간 뒤에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의 태양처럼

그들에게도 따뜻한 기대와 사랑이 넘치게 된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작가는 얘기한다.

타인과의 관계라는 굴레 안에서 상처받으면서도

기대와 사랑으로 삶을 채워간다고,

타인과 불과하면서도 또 타인에게 헌신하고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거라고

그런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글을 쓰며 찾았다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정된 자신의 감정에서 벗어나

비로소 타인을 이해하고 서로를 품는다.

타인을 이해하고 구하면서 비로소 품을 수 있었던 것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였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기대와 사랑은 자라나기 시작한다.


어리숙한 마음이 진심만 있다면

언젠가는 닿을 거라 생각하던 때가 나 역시 있었다.

하지만 서툴렀던 표현으로는 담기지 않는

표현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진심도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변화를 마주하며,

그 잔잔한 파고를 들여다보며

나 역시 여름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서 빛날 그 길을 따라

잔잔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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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씨의 포옹
정은혜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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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야기장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개교 3년 차 신생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일반 고등학교에 특수반(사랑반)을 설치해서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통합교육을 실시했었다.

예체능 수업 시간에 한해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교실에서 동일한 수업을 받으며 또래들과 어울렸는데,

아마도 그때가 장애인과 어울린 최초의 기억인 것 같다.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나 발달장애, 다운증후군 등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친구들이 2명씩 한 반에 배치되어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꼭 같은 반이 아니어도 (인원수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등하교 때나 쉬는 시간 등 틈틈이 마주하는 이들을 통해

장애인과 어울리는 방법을 익히곤 했다.

수업을 앞두고 교실에 올라오는 사랑반 친구들을 위해

책상 자리를 비워둔다거나,

몸이 불편한 친구를 데리러 가는 일,

갑자기 불편함을 느끼고 돌발행동이 나타나도

당황하지 않고 이해하는 일은

그들이 결코 다르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모두 같은 학생으로서 누려야 할 학업에 대한 배려이자

이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교복을 입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똑같은 수업을 듣는

사랑반 아이들을 보며 기뻐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더러 이미 성인이 된 나이에 학교에 온 아이들도 있었다.

특수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수는 극히 일부니까)

자식을 생각하는 우리 부모님과 다르지 않은 사랑에

그들에 대해 적어도 여기에서만큼은 '다르게' 여기지

않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사랑반 친구들은 '순수' 그 자체였다.

있는 그대로 반 친구들을 바라보고 좋아하며

감정 표현도 즉각적, 좋고 싫음이 분명한 표정까지.

누군가의 모습이나 조건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순간의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사춘기의 학생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포인트가 있었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였던 건 언제였더라? 하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순수한 사랑을 가진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어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다르다'라고 판단되며 배척되는 현실에서

한 번씩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하며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데,

남들처럼 태어나 '평범'이라는 범주에 있다는 이유로

그들과 선을 그을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마주하기 불편하거나

무조건 양보해야 해서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모습이 낯설어서 무서워하는 이들도 있고,

그냥 그 자체로 싫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길에서 장애를 가진 이들을 쉽게 볼 수 없는데,

장애인의 비율이 낮다기보다 그들이 나올 수 없는

환경임을 알고 나면 그 진실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그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는지 새삼스럽게 체감한다.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닌데, 근래에 봤던 드라마 중

<우리들의 블루스>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잘 알려진 여러 배우들이 등장하는 옴니버스식인데다가,

극 중에서 한지민 배우의 쌍둥이 언니로 나온

실제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정은혜 작가의 등장 때문이기도 했는데,

비밀이 많고 자신을 숨기는

한지민 배우의 극 중 역할도 역할이었지만,

비장애인이 장애인 역을 맡는 게 아닌

실제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등장하는 씬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극 중 내용을 이해하고

대사를 외워 연기를 한다'라는 것은

비장애인만이 가능하다는 나의 편견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소극적이라 생각한 선입견이

얼마나 기울어진 시선인지를

드라마는 사정없이 부숴버린다.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정은혜 작가에게

시선을 옮겨가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순수한 시선과 세상을 품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은혜씨의 포옹>은 정은혜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와

그림, 사랑이라는 날 것의 마음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사진을 찍을 때면 상대와의 빈틈없이 꼭 끌어안는 그녀는,

그렇게 세상을 품고 사랑한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예쁘다고 할 수 있는

강한 용기를, 누구보다 약한 그녀는 가득히 쥐고 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좋아' 하면서 웃고 이내 품어버리는 이 커다란 사랑을

우리는 왜 잊어버리는 걸까?


'저를 한눈에 봐주세요.

첫눈에 반해주세요.'라고 하며

정은혜라는 이름을 크게 내보인다.

그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세상과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행복한지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세상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는 가장 순수하고도 강한 힘,

'사랑'이라는 그 힘을 자신의 가장 큰 강점으로 내보인다.

잊고 있던 가장 소중함을 일깨우는 순수한 포옹,

결국 모두가 같은 사람이고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은혜씨의 포옹> 이었다.


책을 읽으며, 20여 년 전 고등학교 때의 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다정한 눈빛으로 이름표의 글자를 훑으며

부르고 손을 내밀었던 그 얼굴들,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진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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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 일본 요괴
조영주 지음, 윤남윤 그림 / KONG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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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전에 만들어진 유적지나 유물을 바라보며

막연하게 그때의 어떤 이야기를 상상해 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아주 먼 시간이 떨어진

누군가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마주할 때면,

특히나 그 물건의 형태가 아주 잘 보관되어

마치 어제까지 사용했던 것 같을 때는

그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과거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조선 궁궐 일본 요괴〉 역시 그런 하나의 실마리에서

상상의 씨앗이 자라나 펼쳐진 세상을 담고 있다.


경복궁 경회루 근처에 오이밭 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왜 궁궐에 다른 것도 아닌 오이밭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새로운 이야기 한편으로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그를 통해

막연한 상상 속에 있었던 인물들의 우정을

독자들에게 직접 느낄 수 있게 한다.


여러 차례 대규모 공사를 통해

복원되었던 경복궁 경회루,

그곳에서 2000년도 더 된

일본 양식의 작은 접시가 발견된다.

그곳에서 발견된 접시에 대하여

'왜'라는 궁금증은 끝내 해소되지 못한다.


이윽고 이어지는 소설의 시작,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때에

너무 오래 살아 심심함을 느낀 갓파가

조선으로 건너와 왕이 살던 궁에 숨어들었다가

경복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에서 머물게 된다.

화재로 인하여 파괴된 경복궁의 경회루 수리를 위해

왕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각기 다른 '소망'이 있는 선조와 갓파는

함께 서로의 '소망'을 위해 함께 어울리다

친구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나약하고 힘없는 왕의 모습으로 보였던

선조의 색다른 면이 소설 속에서는 보인다.

아끼고 걱정되는 친구 갓파를 위해

그를 위한 오이밭을 기꺼이 경회루 근처에 만들며

다른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갓파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습은

가장 평범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누리고 싶었던 우정을 왕이 됨으로써

포기하고 있던 선조가 누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자 변주 같기도 했다.

화려한 궁궐, 힘없는 왕의 모습 뒤에 숨겨진

서로에게만 내보일 수 있는 진실한 모습은

서로의 모습이나 위치를 떠나

존재 대 존재로서의 가치를 주고받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아름다운 궁궐의 모습과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그림은

마치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소설을 더욱 다채롭게 꾸며주고 있었다.

머리에 접시가 있고,

그 접시가 마르면 안 되는 일본의 요괴.

갓파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갓파와 왕의 우정이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고,

갓파에 대해서 모르던 이에게는

경회루와 더불어 일본의 갓파전설까지

찾아보게 되는 시야의 확장을 가져온다.


두 나라의 역사와 전설 캐릭터가 만나 펼쳐지는

마치 '드림팀'같은 느낌의 소설은

허무맹랑한 과장이 아니라

'어쩌면 혹시?' 하는 환상을 가질 수 있는

SF 픽션으로 다가온다.


여느 SF 픽션과 달리,

실제 사실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더욱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왕'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나약했던 왕으로, 가장 큰 시련의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비난을 받았던 왕인 선조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선조에 대한 평가는 최근에 재조명되기도 해서,

그런 부분까지 포함해서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는다면

또 하나의 색다른 재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았던 소설,

'말도 안 돼'라고 하면서도 어딘가 믿고 싶어만 지는

그런 귀여운 역사소설

〈조선 궁궐 일본 요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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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부지런한 행복 - 출근길의 아득함을 설렘으로 치환하는 힘
김지영 지음 / 포르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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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포르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창 바쁘던 직장인 시절,

한 시간 반 남짓의 퇴근길을 거쳐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빨라도 7시 반,

저녁을 먹고 나면 시계는 밤 9시를 향했다.

하루를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쉽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지쳐버려서

뭐라도 하겠다고 컴퓨터를 켜고 TV를 보다 보면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쁜 평일의 피로는 주말에 허리가 아플 때까지

몰아서 자는 취침으로 풀고자 했고,

덥고 추운 것을 느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방 같은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순식간에 한 해 두 해 지나갔다.


분명 퇴근하고 맞이한 자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퇴근길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내가 선택하고 돈을 벌고 있는 일인데

출퇴근하는 사이에서 뭐가 이렇게 아깝고 억울한지"

눈물이 절로 주르륵 흐르곤 했다.


네모난 건물의 네모난 책상에 앉아서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던

회색 같았던 일상 속에서

다채로운 행복을 찾고 싶었던 마음과의 격차는

짙은 아쉬움으로 그렇게 눈물을 흐르게 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소확행'이라든가

'아보하'라는 말속에서 나와 맞는 결을 찾기 시작했다.

대단하진 않아도 나에게 잘 맞고 행복하며

나의 삶의 균형을 찾아주는 것 같은

작은 일상의 조각들은 오히려 대단한 것이 아니기에

쉽게 가지거나 행할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은 마음속의 자양분이 되어

나라는 사람을 '씩씩하게' 자라게 했다.

직장을 나와서야 비로소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그때의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나에게 선사했다면

조금은 덜 힘들고 즐거운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13년 차 직장인이기도 한 작가는

동아일보에서 2030세상이라는 지면에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느슨하게 부지런한 행복〉은

이 지면에 연재해온 칼럼과

새로운 글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한 명의 직장인이자 여성으로 지내며

삶이 불안할 때 행해 온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부지런함은

'시작해 봤다'라는 의미로

한껏 부지런함의 문턱을 낮춰준다.

지킬 수 없는 완벽한 루틴 대신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리듬을 택해서,

마음을 다한 순간순간이 자신의 삶을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믿는 작가는

지난한 사회생활에 마모된 자신을 위해

작은 행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일상을 부지런히 그리고 느슨하게 느끼며

하루하루를 기대감으로 채우는 힘을 만들어 낸다.


그런 작가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담긴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나의 리듬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일상 속에서 행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일터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에서 시작해

무기력과 월급의 기쁨 사이를 오가는 밥벌이,

나를 지키는 생활 습관, 관계의 온도를 조율하는 법,

그리고 삶의 끝과 다시 시작을 담은 이별 프로젝트까지

생생한 경험담으로 채워진 각 장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나이들 것인지'

더 나아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묻는다.


그중에서도 3장인 '나를 지키는 일상 프로젝트'의

「혼자의 교실」 부분이 가장 와닿았는데,

매일 출근 전 2시간 일찍 카페에서

나름의 학기제를 운영하며 공부를 하며 느낀

황홀함에 대한 얘기는 '공부'라는 것 자체가

학생 때에만 해당하고 피곤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직장인에게

강렬한 자극제로 다가올 것 같다.


배우고 싶었던 것이나 공부하고 싶었던 것들을

적절한 보상을 배치해서 즐기는 그 마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기꺼이 나서서 하는 공부란 얼마나 즐거울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희소성으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함께하는 가족, 친구에 대한 애정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작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평범한 이름의

평범한 사람이 쓰는 평범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다가간다.


나만의 색을 찾아가고픈

무채색의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지루한 출근길을 기대감으로 채울 수 있는

힘에 대하여 말하는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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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지구인 마음이 자라는 나무 46
이혜빈 지음 / 푸른숲주니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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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레뷰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은 다하고 있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내가 원하는 일인지 잘 모르겠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갈 힘을 잃은 채 멈추게 된다.

몸도 맘도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번아웃은 꼭 직장인이나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이다.


우주 명문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멋진 전시관을 만든 나왈 행성인인 쇼쇼.

그런 쇼쇼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으니

바로 영혼이 메마르며 머리 위의 꽃이 점차 시들고 있는 것.

의사는 영혼이 메마르면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며

늦기 전에 치유하라며 '작은 휴식'을 권하지만,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쇼쇼는 이를 무시하고

휴식을 차일피일 미룬다.

남들에게는 시든 꽃과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일에만 몰두하던 쇼쇼에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주 공화국 위원장이 선물한 폭죽이

어린 우주인들의 장난으로 터지며

쇼쇼의 전부였던 전시관이 엉망이 되고,

전시관의 공사기간 동안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위원장이 건네주었던 '지구인으로 살아 보기 대회'에

참여해 우승 상품인 지구의 특별한 물건을 받아

다시 전시관에 전시할 계획을 세운다.


15세 소년의 모습으로 지구에 가게 된 쇼쇼는

대회에 참여한 다른 외계인들과 함께

주어지는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하려고 하는데,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주어진 미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미션 '지구인에게 밥 사 주기'

두 번째 미션 '지구인에게 감사의 온도가 10인

고맙습니다 라는 말 듣기'

세 번째 미션 '지구에서 5일의 시간 동안 50만 원 벌기'


지구인에게 정체를 들켜도 탈락,

자신이 가진 능력을 쓴 순간

자기 본래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어서

조심조심하며 지구에서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쇼쇼.


그런 쇼쇼가 우연히 휘말리게 된 '앤'이라는

15세 소녀를 통해 쇼쇼는 자신이 겪고 있는

'번아웃' '지침'이라는 상황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쇼쇼의 정체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앤이지만,

둘은 서로의 우승화 방학 동안의 일탈을 도우며

협력하기로 하고,

앤의 버킷리스트와 쇼쇼의 미션을 함께 수행하며

잊을 수 없는 둘만의 추억을 쌓아간다.


바쁘게 일만 하며, 다른 외계인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쇼쇼에게

앤은 누구보다 가깝고 이해해 주는 친구이자,

힘과 의지가 되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지구의 15살 소녀 앤이 마주하고 있는

학업 스트레스와 꿈에 대한 내용,

또 '빛바랜 구역'이라 불리는 빈민 지역에서 자라

성공궤도를 달리게 되었지만

늘 타인과의 비교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소중했던 친구와의 거리가 멀어졌던 과정 등

쇼쇼는 자신이 왜 지쳤는지를

지구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쇼쇼의 미션이자,

앤의 꿈이었던 '전시회 열기'를 통해

자신들의 진심을 가득 담은 시간을 내보이며,

그들은 가두어진 자신들의 한계를 벗어나

한 층 성장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멋진 우정을 보여준다.


과연 쇼쇼는 대회의 마지막까지 정체를 들키지 않고,

계획대로 우승해 특별한 상품을 받을 수 있을까?

몰래 가출해서 일탈을 즐기던 앤의 진심을

부모님은 이해할 수 있을까?


외계인과 지구인의 우정이라는

상상할 수 없었던 독특한 소재로

15세 청소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공감하며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SF 소설이자

청소년 소설인 〈오늘부터 지구인〉이었다.


처음에는 지구의 생활이나 지구인들에 대해 잘 몰라서

어색하게 앤의 모습을 따라 하던 쇼쇼가

어느새 지구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소중한 친구를 챙기는 모습은

종족을 넘어선 진한 진심으로 다가왔다.


늘 완벽함만을 추구하고, 휴식보다는 달리기만 해왔다면

진정한 나의 멋진 '인생'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번아웃에 지친 외계인과 지구인의 만남.

협력 속에서 꿈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우정까지

따스한 변화와 성장의 감동까지 느낄 수 있었던

〈오늘부터 지구인〉을 통해

서로가 함께 만들어가는 추억의 힘을 만날 수 있었다.

서로를 그리워하며 다시 만날 시간을 기다리는 주인공들이

꿈을 이뤄 서로를 기쁘게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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