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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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노원구, 경기도 광명시 등에서는

특정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인물을

'사람책(휴먼북)'으로 지정해

도서관의 책을 열람하듯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신개념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독자가 원하는 분야의 휴먼북을 선택하면

마주 앉아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휴먼북이 지닌 지혜와 이야기를 열람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나의 삶에 대한 발견과 나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새로운 원동력과 힘을 얻기도 한다.


사람책을 통해 많은 것을 얻어 가는 사람들처럼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찾게 된 여자가 여기 있다.


유능한 청소 도우미이자,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이야기 수집가,

재니스의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이다.


1년 동안 실제 삶에서 수집한 실화에 기반하여

3개월 만에 써 내려갔다는 이 작품은

작가의 첫 번째 소설로

영국에서 5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전 세계 28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한 해 동안 영국 독자가 가장 많이 읽고

가장 많이 샀으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꼽혔다고 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듣게 될 수도 있고,

대중교통이나 여럿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전혀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집중하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재니스도 마찬가지다.

케임브리지의 독보적인 청소 도우미라는

평을 받는 그녀는 청소 도우미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녀는 고객들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게 하는데

'한 명당 한 편씩'이라는 자신만의 규칙 아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마음속

도서관에 꽉꽉 채우며 한 번씩 그 이야기를 꺼내어 본다.

서가를 오가며 책을 열심히 뒤적거리지만

정작 자신의 책은 쓰지 못하는 모습처럼

재니스는 꽁꽁 숨겨둔 자신의 마음과

어린 시절의 잊고 싶은 기억을 가족을 포함해

누구에도 털어놓지 못하고 그저 타인의 이야기만을

수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만나게 된 B 부인을 통해

실화를 바탕을 한 '베키'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고,

남편을 죽이고도 처벌을 받지 않았던

베키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며

숨겨두고 싶었던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에도 마주 서게 된다.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혼자서 생각해서

오해했던 상황과 마음,

타인에게는 한없이 베풀고 맞춰주면서

열두 살 어린 자신에게는 너그럽지 못했던 재니스는

B 부인과의 만남과 베키 이야기를 통해

타인에게서 수집해 모으던 삶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삶으로 비로소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셰헤라자드처럼

이야기가 곧 삶이었던 재니스는

늘 듣기만 하던 삶이라는 이야기를

B 부인 앞에서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펼치며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주하게 된다.


항상 따스하게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재니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새 출발을

소설을 읽으며 나도 큰 소리로 응원하게 됐다.

표현하지 않아서 혼자만의 생각으로 위축되었던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재니스가

조금 더 빨리 '이야기'를 꺼내어

새로운 삶, 시작을 맞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우리는 매일 새로운 일상을 보내며

삶이라는 책,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어떤 때는 기쁜 이야기로 어떤 때는 슬픈 이야기로,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떤 책을 꺼내어 어떤 내용을 취할지는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어떤 책인지,

내가 쓰고 싶은 어떤 책인지

나에게로 향하는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큰 목소리로 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유쾌하면서도 따스한,

위로와 힘이 되는 힐링 소설이었다.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마음에 남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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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식당, 사랑을 요리합니다 고양이 식당
다카하시 유타 지음, 윤은혜 옮김 / 빈페이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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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깊었던 사랑만큼이나 마음속에 큰 상흔을 남긴다.

특히나 생과 사로 나뉘는 이별은 어떤 이별보다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은 후회와 그리움을 남기는데,

우리 가족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다.


치매를 앓게 되면서 요양센터에서 지내시다가

갑작스럽게 안 좋아진 컨디션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해 떠난 할머니와의 이별은,

가족들 각자 자신만이 가진

마음속 부채감이 더해져서인지

슬픔과 후회, 아쉬움으로 짙게 남는다.


하필 할머니의 마지막 시간 즈음에는

코로나가 종식되기 전이라, 면회도 한동안 못했었고

나의 마음속에 아직은 총명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마지막 시간의 잃어버린 기억으로 리셋된 듯한

흐린 모습이라서 많이 속상했었다.

할머니를 부르고 손 한번 잡는 것 외에는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허가가 되지 않아 그렇게 좋아하셨던

(우리가 만든) 국수를 끝내 해드리지 못했던 게

시간이 몇 년이 지났는데도 마음에 맺히니 말이다,


이렇듯 각자의 후회와 그리움,

짙은 슬픔을 가진 이들에게 추억 밥상과 함께

소중한 사람들 만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귀여운 고양이 '꼬마'가 있는 파란색 건물의

<고양이 식당>이 바로 그곳이다.


<고양이 식당, 행복을 요리합니다>,

<고양이 식당, 추억을 요리합니다>에 이어

새롭게 찾아온 이번 시리즈는

<고양이 식당, 사랑을 요리합니다>이다.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들은

각자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하고

그리운 소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이곳 고양이 식당을 찾는다.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 있는

'추억 밥상'을 받고 그것을 먹으면

세상을 떠난 이와 다시 조우할 수 있는데,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는 게 아니라 추억 밥상의

온기가 유지되는 동안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세상을 떠난 이와 다시 만난

등장인물들은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고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과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숨겨진 그들의 사연이 드러나며 뭉클한 감동과

따스한 사랑의 온기를 독자들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별이라는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늘 옆에 있을 거라고 믿고 곁을 지키는

소중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잊곤 한다.

투닥거리는 말다툼 후 자존심에 미처 하지 못했던 사과,

바쁘다는 핑계로 들여다보지 못한 부모님에 대한 관심,

약속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고 잠적해버린 잠수 이별,

고백 다운 고백도 하기 전 불치병이 갈라버린 이별 등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어쩜 이렇게....'라는 생각이 들게

갑자기 예고와 준비도 없이 찾아와버렸다.

준비된 이별이 있을 수 있을까?

다가올 거라 알고 있어도 슬프지 않은 이별이 있을까?

헤어짐의 아픔은 각기 다르지만

마음속 애타는 감정만큼은 온도가 같았다.


마지막 기회라는 이 시간은 그만큼 간절함으로

주인공들에게 다가왔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자신의 담아두었던 마음을 전하며

마지막 인사까지 제대로 마치게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난 후회는 매 순간 찾아온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혹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말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하루만 더' '한순간만이라도 더'의

간절함일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후회로 채우지 않도록

지금의 행복을 제대로 만끽하고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에게 그 사랑을 한껏

표현할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이런 고양이 식당이 있다면

다 같이 뜨끈한 국수를 먹으면서

할머니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전했겠지?

이룰 수 없는 아련한 마음을 잘 접어두고

주어진 오늘의 감정에 최선을 다해본다.


"이 글은 빈페이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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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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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과거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을 읽을 때면 시대를 거슬러가
그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잘 알고 있는 과거가 배경이라면 잘 알고 있어서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질 테지만,
지나온 시간과 그 배경이 낯선 경우에는
익숙지 않은 장소와 시간을 차분히 익혀가며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같은 땅덩어리 아래 오래전,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시간에 대한 소설은
'나의 뿌리'가 있어서 일까 유독 흥미진진함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따금씩 한국인, 한국계이지만 외국에서 자라,
'뿌리'외에는 너무 다른 생활을 해온 이주민 출신의
작가들이 그려내는 한국의 모습은 관찰자 같기도 하고
조금은 우리와는 다른 색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어서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으로
디아스포라 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허주은 작가의 첫 작품인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이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뒤에 나온 책들이 먼저 출간되고
독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다음에 뒤늦게 출간되다 보니
"어떻게 읽어줄지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기분"이라는
작가의 말을 듣고 만난 책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역사와 시대를 반영한 탄탄한 짜임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빛을 향해 나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는 작가만의 세계관이 그득하게
담겨있는 가장 시초적인 작품으로
산뜻하고 즐겁게 다가왔다.

조선 후기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천민에 속하는 노비 '설'이 포도청에서 근무하며
마주하게 된 판서 대감 딸의
살인사건을 마주하며 시작된다.
설은 노비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호기심과 생각들로
사건의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간다.
믿고 충성을 다하고 싶은 한 종사관과의 관계에서도
조심스러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보이기도 하는데,
특히나 신분이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이 큰
조선 후기 시대에 이런 높은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설의 용기 있는 발걸음은 사건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갑자기 발생한 살인 사건,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사건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믿었던 이들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도 하고 위기에 빠지는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지만
설은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믿고 그것을 사실로 확인하기 위해
달리고 또 나아가는 모습은 차별 앞에서 당당한
그녀의 확신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그녀와 함께 살펴보는 사건의 진실이 더욱 궁금해지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다모라는 직업, 신분의 한계를 소설을 통해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치정인가 싶었던 사건의 방향이 다각도로 펼쳐지며
사건의 진실, 진범에 대한 생각은 작가와 함께
무한한 생각의 날개를 펼치게 해주었다.

색다른 역사로의 접근,
역사 미스터리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차별을 넘어서는 여성의 모습!
허주은의 작품을 통해 보아왔던 가장 따뜻하고
용기 있는 연대를 이번 작품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작가의 첫 작품답게 그녀의 세계관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꼭 읽어보기를 강추하는 작품으로,
역사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현대 소설보다도 첨예한 허주은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은 창비교육으로부터 가제본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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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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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와 가짜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재되어 있는 시대다.

뉴스나 기사를 보아도 이것이 사실을 기반으로 한

'정보 전달'인지 '아니면 말고'식의 가짜 뉴스인지

팩트체크를 하지 않고는 구분할 수 없고,

대기업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브랜드 의류도

이른바 '짝퉁' 제품으로 밝혀지며 회수가 되기도 한다.

어디 뉴스나 물건뿐일까?

나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웃는 표정 속에 감춰진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진짜와 가짜 사이, 우리는 진짜가 무엇인지

제대로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그 경계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작가는 7개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진짜는 무엇입니까?" 하고 말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다양한 작품으로 한국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의

대열에 이름을 올린 성해나 작가의 작품을 모은

소설집이 '혼모노'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혼모노, '진짜'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작가는 7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통해

진짜와 가짜 사이 그 혼재된 어지러운 현실을 보여주며,

읽는 독자로 하여금 정말 중요한 진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한다.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에서는

영화감독 김곤에게 빠진 내가

일련의 사건으로 대중에게서 멀어진 그를

변함없이 좋아하면서도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그에 대한 불신이나 자신의 마음에 대한 진심을

그와 마주한 현실에서 깨닫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무한한 애정이라 생각했던 감정은

그에 대한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착각이고,

한순간 아무렇지 않게 사그라들 수 있는

가짜 감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스무드〉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을 미국인이라 생각하는 주인공이

일 때문에 방문한 한국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했던 고국에 대한 이야기나

애정을 '축제'를 하던 태극기 부대로부터 받으며

그들과의 시간으로 채운 하루를 블랙코미디로 담았다.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본

타인의 모습이 어떻게 묘사될 수 있는지,

씁쓸한 웃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혼모노〉는 모시던 신이 자신이 아닌

새로운 신애기에게로 가게 되며,

신력을 잃은 주인공이 질투와 분노 속에서

자신의 '가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진짜와 마주하면서 목적이나 타인으로부터의 의식을

벗어나 비로소 '진짜'로 거듭나는 모습을 담았다.

기괴한 희열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사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데

무엇이 그를 '진짜'로 이르게 했는지

그 '진짜' 마음을 생각해 보게 한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야망이 없고 물렁해서 오히려 자신의 뜻대로

다루기에 좋을 거라 생각했던 학생인 구보승을

수련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고문실을 설계하는데 투입하게 된 여재화가,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간적이었던 그의 설계에서 비인간성을 마주하며

혼란스러워하며 그곳에서 자신은 빠지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건물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소문만 파다해졌는데,

그 건물이 뜻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 아무도 관심이 없다.

희망과 인간성 그 어디쯤에 대하여 씁쓸함이 감돈다.


〈우호적 감정〉은 처음에는 일로만 엮였을 뿐

서로 너무 달라 엇나가던 이들이,

점차 시간을 반복하며 가까워진 뒤

비로소 '이해'를 느끼며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진 순간,

쏟아진 사건으로 다시 벽이 생기고 말아버리는

세대 간의 갈등을 담았다.

회사 내에서 느낄 수 있는 우호적이지만 결코

가깝지 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잉태기〉는 흔한 시아버지-며느리 사이의 고부갈등을

넘어 서로 평행을 달리기만 하는 그들의 대치가

결국은 비뚤어진 애정으로 그들이 가장 아끼는

손녀, 딸을 두고도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만 키우는 비뚤어진 통제욕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메탈〉은 영원할 것 같았던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소중했던 포인트가 시간이 가고 자라면서

'중요한' 정도가 서로 달라지며 그들을 엇갈리게 하는

포인트로 작용을 하면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오늘날의 청년들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있는

현실(진짜) 속에서 자신과 반대되는 가짜를

배척하거나 혼란스러워한다.

추구하고자 하는 진짜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지만,

그렇게 움직이다 보면 자신이 진짜를 찾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를 찾는 행위 자체에 매달려 있는지

모호해지곤 한다. 그러다 현실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는

현실 자각 타임에 이르게 되는데,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가 치우쳐있는 시각의 전환을 가져오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현실을 반영한 날카로운 묘사는 작품 하나하나에

그대로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고,

작품들을 통해서는 각 작품들 속에 담긴

하나의 목소리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외치게 된다.

"이건..... 진짜다!"라고 말이다.

성해나만의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집

《혼모노》 이다.


"이 글은 창비로부터 이벤트를 통해 가제본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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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선물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송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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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라는 것은 참 어렵다.

매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말을 하지만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은 쏟고 주울 수 없다'는

옛 속담처럼 쉽게 내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어려운 것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꼭 소리 내어 나오는 말 만이 말의 전부는 아니다.

무언의 표정이나 눈빛, 고갯짓,

때로는 침묵이 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넘치는 이 '말' 속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나만의 말은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이 많은데 그런 말에 대한 본질을 발견하고

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일본의 젊은 비평가인 와카마쓰 에이스케가 쓴

〈말의 선물〉이다.


비평가인 작가가 쓴 글은 어쩐지 날카롭고

차가울 것 같은 편견이 있었다.

무언가를 평가하고 그것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다는 것은

말의 날을 날카롭게 세운다는 이미지가 박혀 있었는데,

그런 비평가가 말하는 '말'에 대한 것은

더욱이 각진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예상에서였다.


작가는 말과 관련된 고전과 명서에서 골라낸

글들과 자신이 직접 겪고 체화한 말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고 조용하게 펼쳐놓는다.

책은 '말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우리가 흔히 말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언어'적 형태에서 나아가

침묵이나 무언의 시선, 표현 등을 총괄하는

'말'을 정의하며 우리가 가지고 있던 말에 대한 편견을

부셔뜨리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말을 잘할 수 있을까요?"

"말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어떤 표현을 해야 할까요?" 같은

말에 대한 기술을 언급하기보다는

말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 집중해서

말의 근본으로 돌아가 말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집중한다.


하고자 하는 '말'을 쓰기를 통해 담고,

쓰기는 책 읽기로 확장되며 하나의 큰 세계를 완성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의 씨앗을 키워 쓰기를 통해 담고,

책 읽기를 통해 경험을 쌓는다.

말하기 - 쓰기 - 읽기로 이어지는 흐름은

결국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찾고 정리하다 보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막상 쓰려면 쓸 것이 없다는

사람에게도 일단 '쓸 말이 없다'로

시작해 보라고 작가는 말한다.

말할 수 없는 말을 쓰면서

내면의 숨겨진 보석을 발견하고,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말을 '읽어보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자

그것이 즉, 대화 자체가 되지 않을까?


자신의 회사 생활, 타인과의 관계도 언급하며

또 쓰기를 업으로 삼은 작가는 자신이 얻은

'말'에 대한 생각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정갈한 풍경화처럼 다가오는 이 선물은

작가가 침묵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가장 큰 목소리가 아닌다 싶다.


꼭 '말'이라는 언어적 표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인생이라는 것에 대한 큰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쓰고 읽어야 할지

가장 근본적인 배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가볍게 펼쳐보기에도 좋고,

두고 한 번씩 꺼내보며

선물 같은 말의 힘을 느끼면 좋겠다.


"이 글은 교유당으로부터 교유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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