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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평점 :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얘기가 하나 있다.
바로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
제 1 법칙 : 어느 직장에나 일정량의 또라이가 존재한다.
제 2 법칙 : 그래서 아무리 또라이를 피하려고
회사나 부서를 옮겨도 또 다른 또라이를
만날 수 밖에 없다.
제 3 법칙 : 만약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내 주변에는 또라이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당신이 그 또라이일 확률이 높다.
또라이 혹은 빌런이라고 불리는 이 인물들 덕분에
우리는 직장이나 집단에서
스트레스와 불편을 얼마나 느꼈는가?
'이상한 한 사람'이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듯
조용한 회사생활이 흙탕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법칙을 떠올리는건
나 한명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것이다.
전작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첫 소설을 발표한 후 150만부 이상의 판매를 올리며
전 세계에 번역되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자신만의 탄탄한 필력을 보여준 이미예 작가가
새로이 출간한 《탕비실》은
네 평 남짓한 회사안에 있는
탕비실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곳에 등장하는 여러 빌런의 얘기를 통해
잠시 스쳐지나가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미운털이 박혀 싫은소리를 들으며
이해받지도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는
현대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어딘가에나 있을 법한
등장인물들의 탕비실에서 행하는 행동들은
하이퍼리얼리즘을 넘어 사실 그 자체인가 싶었는데,
얄밉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며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그들의 행태 앞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지만,
내 소유가 아닌 회사 소유의 공간이기에
회사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월급이라는 대가를 받는 우리들은
회사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나, 불만 등을
탕비실에라는 공간에서 민낯을 드러내곤 한다.
소설 속에서 〈탕비실〉은
시작은 다큐멘터리 였으나
저조한 시청률과 출연자 논란으로 중도 폐지되고,
탕비실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술래를 찾는
게임을 하는 동명의 리얼리티쇼로 다시 등장한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이 리얼리티쇼에 출연하게 된
다섯명의 인물을 바탕으로
그 중에서 '얼음'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상금을 노리고 게임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얼음,
술래가 누구인지 서로를 의심하며
주어진 환경 내에서 힌트를 얻으며
추리를 이어가는데,
규칙을 깨면 주어지는 힌트 교환권을 통해서
출연하는 다섯명 중 원하는 인물을 선택하면
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여느 출연자와 달리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은
힌트 교환권이 2장이라 들어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힌트 교환권을 얻게된 얼음,
궁금했던 다른 출연진의 힌트를 열어보며
그에 대한 제보를 하는 출연진의 직장동료들의
뒷담화를 들으며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나에 대한 힌트를 듣는 다른 출연진에게는
나에 대한 어떤 얘기가 들어있을까?
나의 직장동료들은 나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했을까?
하고 말이다.
게임을 진행하며, 술래를 찾기 위해
서로가 자신의 진심과 진실을 숨긴 채
열심히 서로를 탐색하고 마음 속으로 평가하는 과정은
뒤집어 생각하면 자신을 향한 타인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더욱 씁쓸했다.
'사무실 빌런' '탕비실 빌런'이라 부르지만,
그들 역시 한편으로는
어떤 '나'의 모습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일주일간의 시간을 보내며
연합을 하는 출연진도
또 혼자서 묵묵히 헤쳐가는 이도 있는데,
과연 '방송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술래는 누구일지 얼음의 시선을 따라
술래를 함께 예측해 가는 재미도 있었다.
마지막에 다다라 밝혀지는 술래의 정체와
또 뒤이어 촬영했던 리얼리티쇼가 방송되고
사람들의 반응과 맞물려 알게된 불편한 진실까지,
이유없이 좋고 싫을 수밖에 없는
인간 관계라고 하지만
제대로 마주하는 기회가 아닌
스쳐지나는 탕비실이라는 공간 속에서도
미운털이 박혀버린 사람들에게
그들 각자에 대한 이해나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그저 '평가'되어지는 모습을 통해
싫어하는 대상의 기분을 상상해보는 기회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선의이자 배려였는데,
이런식으로 해석하다니' 하는 감정들,
눈살을 찌뿌리게 했던 행동들에는
숨겨진 다른 배려나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리고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으로 돌아가본다.
또라이는 정말 어느 집단에서나 일정 비율로
등장하는 이상한 사람일까?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평가한
우리들이 만들어낸 어떤 캐릭터 같은 건 아닐지,
그런 오해 같은것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 싫음의 감정을 소화시키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소설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글은 출판사 한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