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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자의 사전
구구.서해인 지음 / 유유히 / 2024년 6월
평점 :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조직에 속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되면서
스스로 나를 다른 사람 앞에서
'무엇'이라고 소개해야 할지,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이렇게 정의되지 않는 나의 일 만큼이나
일에 있어서도 공식적인 표현이나
사전적 정의가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의미를 가진 단어가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명사이기도 했고,
어떤 때는 형용사이거나 동사이기도 했다.
홀로 혹은 소인원으로 일하는
(단체나 소속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작업을 하는 작업자들에게는
이런 은어 같은 표현들이 쌓이기 마련인 것 같다.
1인 작업자로써 자신을 먹여살리고 있는
30대 여성 두 명이 합심하여
자신들이 일을 하면서 만났던 단어들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린
《작업자의 사전》 이 나왔다.
기존에 2023년 언리밋 작업물의 확장판으로,
새로이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기존에 나왔던 단어에서 단어 50개를 추가하고
두 명의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까지도 담았다.
이들은 100개의 단어들을
4개의 큰 주제로 나누었다.
일을 하는 '과정'과 '결과',
또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관계'와
일을 하면서 사용하게 되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어들에 얽힌 자신들만의 정의와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작업자들을 위한
하나의 사전을 완성해 내고야 만다.
어떤 것에 대한 의미는 그것은 정의하고
명명하고 부르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이름이라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그 예가 아닐까?
일을 하면서 숱하게 마주했던 업무 관련 용어들이
사회 초년생 때에는 왜 그렇게 어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던지,
다들 너무 익숙히 사용하고 있어서
물어볼 용기는 내지 못하고
조용히 노트 구석에 적어두었다가
회의가 끝나고 검색하고 정리해두며
나만의 사전을 소리 없이 펼쳐보았던 기억이
새삼 책을 읽으며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들이 전하는 단어의 의미는
조직에 속하지 않고 홀로 일하는 1인 작업자의 입장에서
같은 길을 걸어갈 다른 이들을 위해 펼쳐주는
따스한 꽃길일 수도 있고,
작업자로서의 입장을 전하고 싶은
이들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일 수도 있겠다.
나를 향한 단어이기도
또 함께 일을 하는 다른 이들을 향한
단어이기도 한 사전 속의 말들은
하나둘씩 의미를 찾아가면서
그들에게 노하우라는 속된 말로
짬 바이브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단어들이 가지는
의미나 쓰임이 달라질 수도 있고
또 새로운 단어들이 계속해서 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일하는 단어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과 일에 대한
정의를 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그들을 이만큼 나아가게 하는
의미 있는 몸짓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꼭 어떤 기획자나 마케터, 프리랜서나
1인 사업자, 크리에이터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의 일을 하는 '작업자'들에게
자신만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정의함으로써
스스로 일에 대한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쌓이고 있는 단어들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뭉뚱그려 품고 있던 단어들을 꺼내어
제대로 정의하고 의미를 빛나게 하는
시간을 꼭 만들어야겠다.
"이 글은 유유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