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능동적
노연경 지음 / 필름(Feelm)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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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다시 찾은 일상에서

이전과 달라진 가장 큰 점을 찾으라면

'행복의 역치가 낮아진 것'이다.

워낙 사소한 것에 쉬이 반응하고,

누구보다도 감성적이라 자부하는 나이기에

그동안 안되던 것이 허가가 되고

그런 것이 일탈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자

마치 굉장한 행운을 얻은 듯

즐겁기 그지없었다.


《트렌드 코리아 2025》의 키워드 중 하나인

'아보하'를 보면서도 "어머! 내 얘기야" 할 정도였는데,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 무탈하고 안온한 일상에서

감사를 느끼는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무료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단단한 힘이 되어주었다.

아보하의 연결선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성격은 어쩌면 정 반대이지만 성향은 비슷한

나와 일란성쌍둥이인 동생은 우리의 이런 포인트를 살려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라는 애니메이션의 제목에서

모티브를 따온 우리의 이 단체는

공인된 것도 어떤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체라기엔 그저 둘뿐이지만

사소한 작은 기쁨에 감사하며

무탈한 하루를 행복으로 채우며

'이만하면 만족스럽다'라는

삶의 모토를 이끌어 오고 있다.


그만큼 행복에 진심이고, 행복의 역치를 낮추어

최대한 잦은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내가 만난

행복에 관한 책이 있다.

나만큼이나 사소한 행복에 이토록 진심인

노연경 작가가 쓴 《행복은 능동적》이다.


20대의 나이에 맞이한 결혼과 이혼

그리고 학창 시절 내내 가지고 있었던 섭식장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쌍둥이에게서 느껴지는 비교 등

자신에게 주어지는 불안 앞에서

작가는 능동적 행복을 얘기한다.

우리는 흔히 행복이라고 하면 어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

행운이라는 것을 행복으로 오해하거나

누가 보기에도 부러운 상황이나 조건 등을

행복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작가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저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하다고 믿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는데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에너지처럼 느껴졌다면서

행복은 능동적이라고 말한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지만 가수가 될 실력은 아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래 그릴 수는 없다.

자신의 애매한 재능 앞에서

작가는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지? 하고

혼란스러워하다가

무언가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나 자신'이 되고자 했다.

조급해 할 것이 없이 이미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하기로 한다.

그렇게 쌓여온 글쓰기는 그녀에게 첫 책으로 다가왔고,

자신의 첫 책인 이번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가져온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라고 생각하면

거창하고 대단한 것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굉장히 일상적이고

사소하며 별것 아닌 것에서 시작되곤 한다.

주차장에 놓인 인형,

집 앞에서 발견한 허름한 책방,

마트에서 우연히 읽은 글귀,

아빠가 사다 둔 맥주 등

별것도 아닌 귀엽고 하잖은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더 많이 감상하고 감명하자고 작가는 말한다.

불안이 나를 잠식해도,

나를 뒤덮을 것 같은 파도 앞에서도

사소한 감상과 감명으로

오늘의 행복을 찾으며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작가가 말하는 능동적 행복이 아닐까?


미래가 불안하고 두려울 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주어지는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그저 주어지는 작은 행복들을 취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또 하루를 살아내는

힘을 얻어 가는 모습은

'커다랗지 않아도 돼, 행복은 믿는 만큼 주어지는 거야'

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불행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행복하고 싶다고 하면서

우리는 행복을 너무 멀고 크게만 생각하며

행복과의 격차를 이만큼 벌리고 쫓기 바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는 아주 작은 행복의 조각을 발견해

행복을 채워나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그래서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토록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가볍고 친근하게 생각한 이가 있을까?

작가의 솔직한 얘기들을 통해

내가 찾아온, 내가 바라온 행복의 역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 글은 필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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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코리아 2025
김상균 외 지음 / 파지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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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공지능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산업혁명 시대를 넘어 지능혁명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AI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일 수 있다.


AI 인공지능 하면 챗 GPT 정도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

나 역시 인공지능은 특정 분야나 한정된 서비스와

연관 지어 우리의 생활과는 '그래도 아직은 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농업, MICE, 철강, 의료, 교육, 영화, 제약을 비롯해

법률과 정책에 이르기까지 AI와 함께

어떻게 발전해 나가고 있는지

AI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 AI 트렌드 2025》를 만나보게 되었다.



자원을 바탕으로 발전시켰던 산업혁명 시대를 넘어
이제는 콘텐츠와 경험이 주를 이루는
지식혁명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기존에 지속해오던 다양한 산업들도
이런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포지셔닝이나
다양한 활용이 필수가 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혹은
'이런 산업에서도 AI를 활용할 수 있다니?'라는
궁금증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대표 저자를 포함해서 10인의 저자들은 각 산업별로
AI를 도입, 활용하고 있는 현황과 더불어
앞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각도의 방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한정적으로 생각하고 인식했던 AI 산업에서 벗어나
그나마 많이 들었던 부분은 농업이나, 교육, 영화였다.
이번에 《AI코리아 2025》를 통해서는
MICE나 철강, 의료, 제약에 대해서도 접할 수 있었고
법률이나 정책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활용도가 높다고 생각했던 것은
농업 분야나 법률 분야였다.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환경문제들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고스란히
가장 큰 피해를 초래한 것은 농업 분야였다.
수시로 변화는 기후 앞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농부들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키우는 작물에 대해서
보다 면밀하게 살필 수 있는 데이터의 필요성도 커졌고
이 밖에 기후나 환경에 관계없이 주어지는 공간에서
키울 수 있는 스마트팜의 선호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AI의 활용은 무궁무진하고
이를 통한 새로운 미래의 일자리나 창업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자급률이 그리 높지 않은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농업의 가능성을 키워주는
좋은 하나의 포인트가 될 것 같다.

법률에 대해서는 어렵게만 생각했던 이들에게
좀 더 쉬운 접근과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수단으로
AI를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미래에 없어질 수 있는
직업군으로 법률 쪽이 언급된 적이 있었다.
법률 서비스에서는 방대한 분량의 판례나 서류들,
또 어려운 용어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
AI 서비스 도입으로 인하여
시간 단축이나 해석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뿐더러,
정확성 강화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AI에 대해서
다양한 산업 군에서 활용하고 있는 현황을 살펴보며
지식혁명 시대에 다가가고 있는 오늘을 볼 수 있었다.
시장을 흔들고 있는 AI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활용해 잠재력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 글은 파지트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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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힘껏 산다 - 식물로부터 배운 유연하고도 단단한 삶에 대하여
정재경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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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식물이 전하는 소박하면서도 단단한 응원! 자연을 통해 배우는 인생이라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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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힘껏 산다 - 식물로부터 배운 유연하고도 단단한 삶에 대하여
정재경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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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집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물을 키우며 많은 힘과 위로를 얻는 사람들이 많다.

퍽퍽한 회색도시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푸르른 모습을 드러내는 잡초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데

하물며 내가 내 손으로 직접 키우는 식물에게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설명치 않아도 모두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새 학기가 되면

각자 하나씩 자신이 키울 씨앗을 화분에 심어

학교에 가지고 갔었다.

각기 다른 씨앗을 심은 화분을 창가 쪽에

쪼르르 놓아두고는 물도 주고 관찰일기를 쓰며

오늘은 떡잎이 몇 개였는지,

어떤 꽃이 필지 기대를 하며

하루하루 학교 가는 또 다른 재미를 키워왔던 것 같다.


누군가는 손톱에 예쁜 물을 들일 수 있는 봉숭아를

누군가는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상추를 심었다.


나는 쉽게 잘 키울 수 있다는 나팔꽃을 키웠는데

아빠가 알려주신 대로 나무젓가락도 꽂아두고

창가에서 햇빛을 잘 쬐다 보니

덩굴이 너무나도 잘 자라 거의 교실의 벽을 타고

창문 저 끝까지 올라가 내 키를 훌쩍 넘어버렸고

앙증맞은 보라색 꽃은

'내가 엄청난 걸 키웠지 뭐야' 하는 뿌듯함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나팔꽃은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맞이하며

나에게 '좌절감' 또한 느끼게 해주었다.

방학 중에는 학교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져왔던 식물들을

'집으로 가져가 잘 키우다가

다시 개학이 되면 가져올 것'이라는 미션이 떨어진 것.

평범한 화분을 가져온 아이들은

그대로 들고 가면 그만이었지만

내 키보다도 더 큰 키를 가진 나팔꽃 화분은

창가에 눌어붙은 덩굴을 끊어내고

그것을 다시 수도꼭지에 꽂은 호스처럼 둘둘 말아

화분에 얹어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돌돌 말아 호스처럼 축 처져버린

나팔꽃은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끊긴 덩굴은 다시 벽에 이어붙일 수 없었고

그렇게 나는 식물을 키우며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나만큼이나 식물을 사랑한 이가 있다.

어린 시절의 나보다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식물을 통해서 기쁨, 슬픔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힘과 지혜까지도 얻는 사람

단단하고 유연함까지도 배우는 작가 정재경의

에세이 《있는 힘껏 산다》를 만났다.


책 속에는 작가가 키우고 만났던 36가지의

식물 이야기가 담겨있다.

'반려 식물 처방'이라는 주제로

33개월 동안 연재했던 이야기들을 모았는데,

작가는 식물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서 받은 사랑 덕분에

말라가던 생명력이 되살아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느낀 이 강인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독자들에게도 전달하고자 한 작가의 이야기는

소박하면서도 예쁘게, 그리고 계절감을 가득히 머금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식물이 주는 푸릇함은 상쾌한 기분을 들게 한다.

계절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화려한 꽃이나

향기로운 과일도 좋지만

흔히 우리가 '식물 색'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초록색과 연두색의 어귀쯤

푸릇푸릇하면서도 삐죽삐죽한 생명체는

'살아있다' '날 자연의 그대로'를 느끼게 하는

무언의 힘이 있는 것 같다.

투병을 하면서도 창밖의 풍경으로 보이는

마지막 잎새를 통해 삶의 의지를 다졌던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때로는 책상 한편에서 때로는 창밖에서

때로는 길이나 산속에서 만나는

그 푸릇한 식물들이 풍기는 에너지는

그 어떤 힘보다도 강인하고 단단하면서도

소박하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익숙했던 공기정화식물들의 이름을 넘어

계란프라이 꽃이라 불렀던 개망초의 유래까지

식물과 얽힌 다양한 사연들을 읽으며

나의 추억과 겹쳐 보았다.

무심코 지나쳤던 식물들이 가진 수많은 이야기는

몰랐기에 더 새로웠고,

익숙했기에 더 친숙하고 가벼워서 좋았다.


추운 겨울을 지나 메마른 잎이 죽은 듯싶었는데

포근해지는 날씨와 더불어 다시 빼꼼 고개를 드는

강인한 생명력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버텨내고 이겨내면

다시금 마주할 수 있는 따스한 봄이라는 시간을

우리 모두 가질 수 있다고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장 유약한 존재, 소리도 낼 수 없고

그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자라지고 길러진다는 느낌이었던 식물이

사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굳은 의지대로

묵묵하게 추위와 어려움, 위기를 이겨내는

성인군자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영웅담을 보는 것도 같았다.

이런 사소함을 발견하고 끄집어내어

우리 모두의 눈에 그것을 보여주는

작가의 마법이 고스란히 통했던 책이었다.


식물 하면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사람들이나

가만히 앉아서 들여다보기나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이 단단하고 유연한 존재가 보여주는

새로운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이제는 지나는 길가의 풀 한 포기,

선물로 받았던 화분 속 식물의 모습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이 발을 담고 있는 흙을 살피고

잎을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전하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봐야겠노라고

다짐하게 된다.


가진 에너지를 발휘하여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강인한 식물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있는 힘껏 산다》와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글은 샘터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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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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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서는

사건사고의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명 사망 *명 부상 등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는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를 나누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몇 자리의 숫자로 함축된다.

이런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우리는 사고의 원인에 대한 파악이나

앞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건 사고 속에서도 스토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

생전에 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그가 성인이라면 가진 직업적 사명의식이라든가

그가 학생이었다면 얼마나 꿈이 많은 아이였는지 등

우리는 사건사고 속에서도 사람과 스토리를 찾는다.


반면 살아남은 이들은 그저 살아갈 따름이다.

참사 속에서도 기적같이 살아난 이들,

누군가의 도움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사고 이후에 힘듦과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살아남았는데 더 잘 살아야지'

'남들보다 더 행복해야지' 하는 부담 같은 응원을 가지고

같은 사고로 혹은 비슷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의 몫까지 더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많은 목소리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그들이 원하는 목소리였는가,

그것이 과연 그들이 듣고 싶던 말이었는가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모두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 사건사고 속에서도

그 어둠 속에서도 피어난 꽃처럼

이들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툭 털고 슈퍼맨처럼 일어나길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힘들지,

살아가는 내내 어떤 중압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은정동 화재사건

은정동 아파트 화재사건

은정동 11층 이불 아기 등으로 불리는 유 원.

열 살 차이 언니가 동생을 너무나 원해서

원할 願 영어로 불러도 want는 원하다는 뜻이라며

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이다.


위층 할아버지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집 베란다로 들어와, 베란다에 있던

언니의 상장, 책, 소설 등을 태우며

집은 순식간에 불에 휩싸이게 된다.

얇은 판자로 구분되어 있던

작은방의 베란다에서도 불을 피하기는 역부족.

유치원에 다녀온 동생과 낮잠을 자던 언니는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불을 피해

목욕탕에 가서 이불을 물에 적신 후

동생에게 말아 준 뒤,

동생이라도 살리기 위해 11층 창밖으로 던진다.

창밖으로 던져진 이불 아기는 40대 가장이 받아내며

그 충격을 모두 대신 흡수하고

끝내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되고,

이 화재사고로 동생을 아꼈던 언니는 세상을 떠난다.


소설 유원은 주인공이자 사건의 중심에 있는

유원의 시선에서 펼쳐진다.

사고가 발생한 후 10년 후,

사고가 있었던 때의 언니 나이 즈음이 되어

고등학생이 된 유원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연 때문인지

쉽사리 누구에게 마음을 열지도 못하고

또 알 수 없는 동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너는 그러면 안 된다'

'언니는 참 착한 아이였는데'

하는 사람들의 시선 아래

자신의 몫의 인생이 아닌

누군가의 몫을 대신하는 느낌,

자신을 통해 다른 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언니의 모습을

너스레를 떨며 시시콜콜 털어놓는 사람들 앞에

"그랬어요? 저는 몰랐어요"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부모님,

자신을 구하느라 평생 고칠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된

아저씨 앞에서 부모님이 어떤 거절도 싫은 소리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살아남은 것이 과연 좋은 일이었을까?'

'내가 아니라 언니가 살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용기 있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데

사고의 기억과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제대로 날개조차 펴기 힘든 유원은

그저 구석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자신을 점점 숨기게 된 것이다.


자신만의 아지트였던 옥상 입구 책상 사이에서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을 때우려던 유원 앞에

마치 비밀의 화원의 문을 열듯

마스터키로 옥상 문을 따고 들어가는 수현과의 만남.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수현의 모습 속에서

원은 '친구'라는 새로운 존재의 매력을 알게 된다.


다른 이들에게는 쉽사리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서툴지만 천천히 털어놓는 원.

언니에 대한 고마움과 원망,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원의 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뻥 뚫린 옥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수현은 원에게 점점 더 가까워진다.


알 수 없이 끌리던 서로에 대한 우정은

불꽃축제가 열리는 날 옥상에서 진실게임을 하던 중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무언가 말할 듯 말하지 않았던 수현이 가진 비밀과

그 비밀 앞에서 무너질듯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현을 믿고 싶었던 원의 마음.

나아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지만

끝내 이해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모습은

새로운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참고서처럼

그렇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원이 처한 상황과 반복되듯 마주하게 되는

아저씨와의 부딪침 속에서 속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어려웠고,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고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오고 자라왔던 원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하게도 응원이라는 말로

'잘 살아야만 한다'는 압박을 주고 있었다.


실제 그 일을 겪은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누군가의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그 압박감은

우리가 응원이라는 말로, 위로라는 말로

감히 건넬 수 없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까?

위로라는 말로 사실은 그의 상처에

더욱 깊은 생채기를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나의 시간을 돌아봤다.


누구의 동생, 어떤 사건의 피해자, 생존자가 아닌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새로이 태어나

높은 곳에서도 두려움 없이 훨훨 나는

원의 모습에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지금의 시간을 제대로 살 수 있기를,

그런 용기를 가진 원이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슬프며 적당히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고마우면서도 증오하는,

뒤엉킨 복잡한 마음을 부여잡고

단단하게 당당하게 일어서 나갈

유원의 내일을 기대한다.

불안함이 아닌 두근거림과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가진

평범하고 오롯이 나 자신인 유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번 작품을 읽으며,

이토록 섬세한 마음을 담은 작가의 필력에 놀랐고

93년생이라는 작가의 나이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전하는 위로,

용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더하는 힘,

소설 《유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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