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힘껏 산다 - 식물로부터 배운 유연하고도 단단한 삶에 대하여
정재경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식집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물을 키우며 많은 힘과 위로를 얻는 사람들이 많다.

퍽퍽한 회색도시 보도블록 사이에서도

푸르른 모습을 드러내는 잡초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데

하물며 내가 내 손으로 직접 키우는 식물에게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설명치 않아도 모두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새 학기가 되면

각자 하나씩 자신이 키울 씨앗을 화분에 심어

학교에 가지고 갔었다.

각기 다른 씨앗을 심은 화분을 창가 쪽에

쪼르르 놓아두고는 물도 주고 관찰일기를 쓰며

오늘은 떡잎이 몇 개였는지,

어떤 꽃이 필지 기대를 하며

하루하루 학교 가는 또 다른 재미를 키워왔던 것 같다.


누군가는 손톱에 예쁜 물을 들일 수 있는 봉숭아를

누군가는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상추를 심었다.


나는 쉽게 잘 키울 수 있다는 나팔꽃을 키웠는데

아빠가 알려주신 대로 나무젓가락도 꽂아두고

창가에서 햇빛을 잘 쬐다 보니

덩굴이 너무나도 잘 자라 거의 교실의 벽을 타고

창문 저 끝까지 올라가 내 키를 훌쩍 넘어버렸고

앙증맞은 보라색 꽃은

'내가 엄청난 걸 키웠지 뭐야' 하는 뿌듯함까지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나팔꽃은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맞이하며

나에게 '좌절감' 또한 느끼게 해주었다.

방학 중에는 학교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져왔던 식물들을

'집으로 가져가 잘 키우다가

다시 개학이 되면 가져올 것'이라는 미션이 떨어진 것.

평범한 화분을 가져온 아이들은

그대로 들고 가면 그만이었지만

내 키보다도 더 큰 키를 가진 나팔꽃 화분은

창가에 눌어붙은 덩굴을 끊어내고

그것을 다시 수도꼭지에 꽂은 호스처럼 둘둘 말아

화분에 얹어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돌돌 말아 호스처럼 축 처져버린

나팔꽃은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끊긴 덩굴은 다시 벽에 이어붙일 수 없었고

그렇게 나는 식물을 키우며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런 나만큼이나 식물을 사랑한 이가 있다.

어린 시절의 나보다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식물을 통해서 기쁨, 슬픔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힘과 지혜까지도 얻는 사람

단단하고 유연함까지도 배우는 작가 정재경의

에세이 《있는 힘껏 산다》를 만났다.


책 속에는 작가가 키우고 만났던 36가지의

식물 이야기가 담겨있다.

'반려 식물 처방'이라는 주제로

33개월 동안 연재했던 이야기들을 모았는데,

작가는 식물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서 받은 사랑 덕분에

말라가던 생명력이 되살아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느낀 이 강인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독자들에게도 전달하고자 한 작가의 이야기는

소박하면서도 예쁘게, 그리고 계절감을 가득히 머금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식물이 주는 푸릇함은 상쾌한 기분을 들게 한다.

계절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화려한 꽃이나

향기로운 과일도 좋지만

흔히 우리가 '식물 색'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초록색과 연두색의 어귀쯤

푸릇푸릇하면서도 삐죽삐죽한 생명체는

'살아있다' '날 자연의 그대로'를 느끼게 하는

무언의 힘이 있는 것 같다.

투병을 하면서도 창밖의 풍경으로 보이는

마지막 잎새를 통해 삶의 의지를 다졌던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때로는 책상 한편에서 때로는 창밖에서

때로는 길이나 산속에서 만나는

그 푸릇한 식물들이 풍기는 에너지는

그 어떤 힘보다도 강인하고 단단하면서도

소박하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익숙했던 공기정화식물들의 이름을 넘어

계란프라이 꽃이라 불렀던 개망초의 유래까지

식물과 얽힌 다양한 사연들을 읽으며

나의 추억과 겹쳐 보았다.

무심코 지나쳤던 식물들이 가진 수많은 이야기는

몰랐기에 더 새로웠고,

익숙했기에 더 친숙하고 가벼워서 좋았다.


추운 겨울을 지나 메마른 잎이 죽은 듯싶었는데

포근해지는 날씨와 더불어 다시 빼꼼 고개를 드는

강인한 생명력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버텨내고 이겨내면

다시금 마주할 수 있는 따스한 봄이라는 시간을

우리 모두 가질 수 있다고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가장 유약한 존재, 소리도 낼 수 없고

그저 바람이 이끄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자라지고 길러진다는 느낌이었던 식물이

사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굳은 의지대로

묵묵하게 추위와 어려움, 위기를 이겨내는

성인군자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영웅담을 보는 것도 같았다.

이런 사소함을 발견하고 끄집어내어

우리 모두의 눈에 그것을 보여주는

작가의 마법이 고스란히 통했던 책이었다.


식물 하면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사람들이나

가만히 앉아서 들여다보기나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이 단단하고 유연한 존재가 보여주는

새로운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이제는 지나는 길가의 풀 한 포기,

선물로 받았던 화분 속 식물의 모습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이는 것 같다.

그들이 발을 담고 있는 흙을 살피고

잎을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전하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봐야겠노라고

다짐하게 된다.


가진 에너지를 발휘하여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강인한 식물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있는 힘껏 산다》와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글은 샘터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