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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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서는

사건사고의 소식이 쏟아져 나온다.

*명 사망 *명 부상 등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는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를 나누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몇 자리의 숫자로 함축된다.

이런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나면

우리는 사고의 원인에 대한 파악이나

앞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건 사고 속에서도 스토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

생전에 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그가 성인이라면 가진 직업적 사명의식이라든가

그가 학생이었다면 얼마나 꿈이 많은 아이였는지 등

우리는 사건사고 속에서도 사람과 스토리를 찾는다.


반면 살아남은 이들은 그저 살아갈 따름이다.

참사 속에서도 기적같이 살아난 이들,

누군가의 도움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사고 이후에 힘듦과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살아남았는데 더 잘 살아야지'

'남들보다 더 행복해야지' 하는 부담 같은 응원을 가지고

같은 사고로 혹은 비슷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의 몫까지 더 잘 살아주기를 바라는

많은 목소리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과연 그들이 원하는 목소리였는가,

그것이 과연 그들이 듣고 싶던 말이었는가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모두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그 사건사고 속에서도

그 어둠 속에서도 피어난 꽃처럼

이들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툭 털고 슈퍼맨처럼 일어나길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까지 그들이 얼마나 힘들지,

살아가는 내내 어떤 중압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은정동 화재사건

은정동 아파트 화재사건

은정동 11층 이불 아기 등으로 불리는 유 원.

열 살 차이 언니가 동생을 너무나 원해서

원할 願 영어로 불러도 want는 원하다는 뜻이라며

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이다.


위층 할아버지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가

집 베란다로 들어와, 베란다에 있던

언니의 상장, 책, 소설 등을 태우며

집은 순식간에 불에 휩싸이게 된다.

얇은 판자로 구분되어 있던

작은방의 베란다에서도 불을 피하기는 역부족.

유치원에 다녀온 동생과 낮잠을 자던 언니는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불을 피해

목욕탕에 가서 이불을 물에 적신 후

동생에게 말아 준 뒤,

동생이라도 살리기 위해 11층 창밖으로 던진다.

창밖으로 던져진 이불 아기는 40대 가장이 받아내며

그 충격을 모두 대신 흡수하고

끝내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되고,

이 화재사고로 동생을 아꼈던 언니는 세상을 떠난다.


소설 유원은 주인공이자 사건의 중심에 있는

유원의 시선에서 펼쳐진다.

사고가 발생한 후 10년 후,

사고가 있었던 때의 언니 나이 즈음이 되어

고등학생이 된 유원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연 때문인지

쉽사리 누구에게 마음을 열지도 못하고

또 알 수 없는 동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너는 그러면 안 된다'

'언니는 참 착한 아이였는데'

하는 사람들의 시선 아래

자신의 몫의 인생이 아닌

누군가의 몫을 대신하는 느낌,

자신을 통해 다른 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언니의 모습을

너스레를 떨며 시시콜콜 털어놓는 사람들 앞에

"그랬어요? 저는 몰랐어요"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부모님,

자신을 구하느라 평생 고칠 수 없는 장애를 갖게 된

아저씨 앞에서 부모님이 어떤 거절도 싫은 소리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살아남은 것이 과연 좋은 일이었을까?'

'내가 아니라 언니가 살았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용기 있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데

사고의 기억과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제대로 날개조차 펴기 힘든 유원은

그저 구석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자신을 점점 숨기게 된 것이다.


자신만의 아지트였던 옥상 입구 책상 사이에서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을 때우려던 유원 앞에

마치 비밀의 화원의 문을 열듯

마스터키로 옥상 문을 따고 들어가는 수현과의 만남.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수현의 모습 속에서

원은 '친구'라는 새로운 존재의 매력을 알게 된다.


다른 이들에게는 쉽사리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를 서툴지만 천천히 털어놓는 원.

언니에 대한 고마움과 원망,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원의 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뻥 뚫린 옥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수현은 원에게 점점 더 가까워진다.


알 수 없이 끌리던 서로에 대한 우정은

불꽃축제가 열리는 날 옥상에서 진실게임을 하던 중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무언가 말할 듯 말하지 않았던 수현이 가진 비밀과

그 비밀 앞에서 무너질듯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현을 믿고 싶었던 원의 마음.

나아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지만

끝내 이해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모습은

새로운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참고서처럼

그렇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원이 처한 상황과 반복되듯 마주하게 되는

아저씨와의 부딪침 속에서 속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어려웠고,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었고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오고 자라왔던 원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하게도 응원이라는 말로

'잘 살아야만 한다'는 압박을 주고 있었다.


실제 그 일을 겪은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

누군가의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그 압박감은

우리가 응원이라는 말로, 위로라는 말로

감히 건넬 수 없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까?

위로라는 말로 사실은 그의 상처에

더욱 깊은 생채기를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나의 시간을 돌아봤다.


누구의 동생, 어떤 사건의 피해자, 생존자가 아닌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새로이 태어나

높은 곳에서도 두려움 없이 훨훨 나는

원의 모습에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지금의 시간을 제대로 살 수 있기를,

그런 용기를 가진 원이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슬프며 적당히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고마우면서도 증오하는,

뒤엉킨 복잡한 마음을 부여잡고

단단하게 당당하게 일어서 나갈

유원의 내일을 기대한다.

불안함이 아닌 두근거림과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가진

평범하고 오롯이 나 자신인 유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번 작품을 읽으며,

이토록 섬세한 마음을 담은 작가의 필력에 놀랐고

93년생이라는 작가의 나이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전하는 위로,

용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더하는 힘,

소설 《유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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