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으니 빨리 말할게 - <길모어 걸스> 로런 그레이엄의 인생 스케치
로런 그레이엄 지음, 장현희 옮김 / 싱긋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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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작품은

(그것이 소설, 애니, TV 쇼 프로그램, 드라마나 영화든)

그 작품 자체의 세계관이라는 것이 형성된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보고, 그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있으며

세세한 포인트들을 기억하고 의식한다는 점에서

그 진가가 더욱 발휘된다.


여러 시즌을 반복하면서도

다시 또 제작될 수 있다는 것은

인기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작품이라는 범위를 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 온 작품들이 있다.

13년간 방송해온 무한도전이 그렇고

무려 22년 동안 1088회를 방송한 전원일기가 있다.

10년 이상 지속되온 작품들을 보다 보면

그만큼 오랜 시간을 품고 있어서인지

다양한 회차 안에 담겨있는 모습들은

시대의 유행이나 이슈를 반영하기도 하고,

그 내에서 형성된 캐릭터들이

제작을 통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의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인 듯 느껴지는

감정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도 우리나라의 이 작품들처럼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 있다.

길모어 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성장과 인생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드라마' 그 이상의 감동과 의미를 주었는데,

배우이자 작가로, 또 프로듀서로 다방면의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로런 그레이엄의 새 책이 나왔다.

길모어 걸스의 로렐라이로 익숙한

로런 그레이엄의 《인생은 짧으니 빨리 말할게》이다.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로운 이름과 나이로,

매번 다른 성격과 직업, 캐릭터로 변신을 하는 배우들.

연기라고는 하지만 그 역할을 맡을 때마다

온전히 그 인물이 되고 마는 모습을 볼 때면

배우들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마음은

하나의 역할과 하나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

많은 이에게 내 이름보다도 역할의 이름으로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겨준 배우라면

똑같이 작품을 대하는 마음도, 또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어쩐지 다를 것만 같고 말이다.


배우로 연기를 하면서도 소설을 집필하기도 했고,

끝끝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에세이를 써낸

로런 그레이엄이 전하는 이야기는

마치 그녀 그 자체로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로렐라이'처럼 빠르게 속사포처럼

책 속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배우로 연기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

길모어 걸스에 출연하고 촬영하면서 느꼈던 감정들,

많은 사랑을 받고 스타덤에 오르면서

가지게 되었던 생각과 패션에 대한 소회까지


로런 그레이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또 그녀가 맡았던 로렐라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투머치토커의 말에 중독되고,

그녀가 나온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만 말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생스러운 과거의 시간이 있고,

스타덤에 오르게 된 자신만의 노력이 있지만

이렇게 위트 있으면서도 솔직하게

그러면서도 T.M.I를 연발하는 배우가 있을까 싶었다.

배우라는 직업적 특징을 떠나서라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이토록 확신 있게

끌고 나가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너무나 솔직했고 자신에게 당당했던

여배우의 이야기는 그 어떤 기사나 가십보다도

훨씬 설득력이 있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나 드라마 길모어 걸스의 팬이라면

드라마가 종영되고 다시 후속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촬영 당시 썼던 일기장 내용까지 덧붙여져

제작 과정에 대한 뒷얘기를 듣는 것 같아

더욱 흥미진진할 것 같다.


어떤 마음으로 그녀가 다시 로렐라이를 맡고

다시 연기를 했는지 그 진심이 와닿아서

마지막 촬영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괜스레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울컥하곤 했다.


긴 시간 한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나와 그 캐릭터가 겹쳐지고 혼재된다.

때로는 나의 모습이 원래 나 자신의 모습인지,

내가 맡은 캐릭터의 모습인지 혼동스럽기도 하고

내가 곧 캐릭터로 일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에서 그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말이다.

로런 그레이엄과 로렐라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모습이었고,

그녀의 글을 통해서 바라보는 길모어 걸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울림 있게 다가오고 있었다.


할리우드라는 우리와는 다른 제작 환경과

배우라는 직업적 특징도 신선했지만,

자신의 일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자신을 무엇보다 살필 줄 아는

가장 솔직한 사람인 로런 그레이엄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가장 씩씩하고 근사한 목소리,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기꺼이 다른 사람 앞에

나를 있는 그대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

로런 그레이엄의 빠르지만 강한 메시지가 담긴

그런 책이었다.


"이 글은 교유당으로부터 교유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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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
오가와 사토시 지음, 최현영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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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에 대한 시선은 직업이라기보다는

꿈이나 예술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무슨 일을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보편으로 나올 수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 내의 보기가 아닐뿐더러

어쩐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자에 가까운

소설가라는 것은 여느 직업과 같이 '직업'이라는 범주에

묶이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소설가에 대한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쓰기도 하고

매일 일정한 루틴에 맞추어 글쓰기를 행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써낸다"라는 소설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결국 애초에 소설이라는 것이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라는 점에서 굉장히 상반된 단어들을

끌어안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따금씩 이 허구인 fiction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사건이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에 그것을 의심하고 들여다보며,

실제로도 어느 소설가가 쓴 작품 속에

등장인물이며 그들이 나눈 대화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며

자신에 대한 내용이 담긴 글을 파기해달라는

소동까지 있으니 과연 소설을 어느 정도까지

'허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지에 대해서

복잡한 생각이 들곤 한다.


일본의 떠오르는 천재 SF 작가이자

2024년 일본 서점 대상 후보작에 오르고

제168회 나오키상 수상작가의 연작 단편집인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는

연작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소설가인 '나'를 통해 작가가 소설가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은 자전적으로 담아내고,

근본적으로 '소설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과 함께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이 연작 소설집은 크게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각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이자 이름마저도 '오가와'라

읽는 내내 "지금 읽고 있는 이 내용이 그래서

사실이야? 아니면 작가가 만든 허구의 얘기야?"라는

질문을 연신하게 했다.


〈프롤로그〉를 통해서는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어려움에 부딪친 주인공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듯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가

본격적인 소설을 쓰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질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작업인 독서와 글쓰기에 대해

또 작가라는 사람이 느끼는 근본적인 감정에 대해서

담아낸 이 작품은 제목인 '프롤로그'처럼

연작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원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월 10일〉은 대지진이 있었던

3월 11일의 기억을 친구들과 나누던 주인공이

똑같은 무게로 보냈던 하루 전날인 3월 10일의

기억을 잊고, 그날의 기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추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이 만들어낸 왜곡 같은 것이 아닐까?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그런 나의 생각과도

결이 이어지는 것 같은 작품이었다.

작가들이 자신이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이 허구의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왜곡이라는 점에서

인생과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소설가의 본보기〉를 통해서는

오라리딩점술가라는 존재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던 주인공이

실제로 점술가와 마주하고 대화하며

서로 겹쳐지고 감정을 나누게 되는 경험을 통해

사실은 소설가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자조적인 한숨이 담긴 작품이었다.


연작 소설집과 동명인 작품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는

가타기리라는 동창생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혹은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손에 쥐려 했던 황금(진짜)을 바라보며

그 허무와 공포를 통해

어쩌면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의미도

가짜로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전한다.

자신이 느끼는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글로 쓰려고 하는 소설가,

글로 완성한 순간 사라지는 그 기적은

가타기리가 그토록 쥐고 싶어 하던 황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소설 속 주인공은 말한다.


이런 가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가짜〉라는 작품에서 모조품 시계를 착용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표절 가공해 내는 만화가

바바와의 만남을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

타인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는 바바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설가인 내가 느끼는 이 '화끈거리는 감정',

그리고 그 만화마저도 다른 사람이 그렸다는

바바를 바라보며 들었던 '대체 뭘 했던 거지?'에

대한 질문은 바바라는 인물과 자신을 가르는

선을 느끼고 거기서 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작품이 타인의 소재에 의해 성립되는 점을

떳떳하게 비판할 수 없는 자조적인 감정까지

복잡하게 이어진다.


창작과 창작에 이르는 소재에 대하여

소설가는 어디까지 '사실'과 '진실'을 담아야 하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100% 순수한 허구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는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뾰족한 창과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수상 에세이〉에서는

쓰면 쓸수록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써 내려가는

자신의 매일을 담담하게 담는다.


스스로 소설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소설가다"라고

지칭하는 것이 찜찜하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그냥 쓰기 시작한다.

계속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가 만들어가는 소설의 큰 틀을 바탕으로

내가 만들어가는 주인공에 동화되어

그렇게 써 내려가면서 완성하는 소설의 세계.


작가는 실제 이야기인지 아니면 소설인지

독자들을 갸웃거리게 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이끈다.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소설 속의 오가와를 만나며

소설가의 삶과 소설가의 고충, 소설가의 글 쓰는 방법,

소설가의 생각, 소설가가 생각하는 글 쓰는 직업 등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한다.


타인을 소재로 하든, 허구의 자신을 만들든

결국은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소설가는 훌륭하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낸 틀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세분화하며 보다 튼튼한 설계를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리면서도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어쩌면 이 연작 소설집을 읽으며 드는 이런 생각들은

작가가 완벽하게 설계한 그의 구성일지도 모른다.


연작 소설에서 등장하는 오가와는

실제 작가의 모습일지도 혹은 그가 자신을 바탕으로,

마주쳤던 타인을 소재로 하여 만든 허구의 인물로

실제 작가와는 전혀 다른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인물을 통해서 소설과 허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작가가 쓴 여러 작품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각 작품 속 인물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읽다 보니

각기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는 부분에만 치중을 했고,

다시 또 읽어보니 작가가 그리는 '소설가'라는 직업과

'허구'라는 것에 대해서 보다 선명한 윤곽이 그려졌다.


굉장히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작가의 필력에

쉴 틈 없이 작품을 넘겨보게 했다.

이것이 바로 다들 얘기하는

'오가와 사토시'의 천재성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에 대한 수많은 '물음'에 대한

제대로 전달되었던 그런 작품이었다.


"이 글은 소미미디어로부터 솜독자3기 활동을 위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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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사전 -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며 때로는 유머러스한 사물들의 이야기
홍성윤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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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야~" "그거 있잖아" "거기 가자"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는

'지시대명사'를 많이 쓰는대서 찾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제대로 명명하지 못하고

부르는 '그것'들이 정말 많다.


잊어버려서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있고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서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있다.

'그거'라는 이름이 때로는 얼마나 고마운지

지시대명사가 없었더라면 설명을 하며

'그거'를 유출해 내기 위해

대화의 시간이 길어졌을 것이다.


단순히 대화를 할 때면 '그거'라고 하거나

설명을 덧붙일 수 있지만

정확한 명칭이 필요한 순간에는 당황하게 된다.

설명을 덧붙여 검색을 하거나

풀어쓴 말로 '그거'를 알아내고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인터넷 세상 속을 표류하기도 하는데,

뭔지는 알지만 무어라 부르는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물들의 이야기와 이름을 담은

신선한 《그거 사전》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다.


그거 사전은 매일경제에서 편집 기자로 일하는

저자가 연재했던 '그거 사전'을 묶어서 낸 책이다.

저자는 의식주(먹고 마시고 걸치고 사는)와

생활을 하며 쓰고 거닐며 일하며 만나는

다양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무어라 부르는지 알지 못하고 '그거'라고 불리던

숨겨진 이름들을 발굴해 내며,

사물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숙제를 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백과사전을 찾아보곤 했다.

학문, 예술, 문화, 사회, 경제 따위의 과학과 자연 및

인간의 활동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압축하여

부문별 또는 자모순으로 배열하고 풀이한 책이라는

의미를 가진 백과사전은

일백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처럼

광대하고 넓은 범위의 모든 지식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발전과 더불어

많은 사물들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인쇄물 형태의 백과사전이

더 이상 전과 같은 의미를 가지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잘 정리된 사전을 떠올리는 걸 보면

'사전'이라는 것이 가진 의미 자체로도

충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연어를 먹을 때 곁들이는 동그란 그거

귤에 붙은 실같은 하얀 그거

테이크 아웃 컵에 씌우는 그거

양말 두 짝을 하나로 묶는 금속 집게 그거

군번줄로 쓰는 구슬 꿴 줄 그거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걸 방지하는 그거

결혼식에서 뿌리는 종잇조각 그거

신장개업 가게 앞에서 춤추는 풍선 그거

직장인들이 목에 걸고 다니는 그거

등 먹고 마시고 걸치고 살며

쓰고 거니고 일하며 마주치는

다양한 사물들의 쓰임이 담긴 이름들을

하나하나 쫓아가는 과정은

마치 어린 시절 백과사전을 펼쳐보며

처음 만난 '색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과 비슷했다.


비로소 이름을 불린 뒤에야 나에게 의미가 되는 것처럼

'그거'라고만 부르던 사물들의 이름을 깨우치고 나니

좀 더 나에게 비중 있는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알지 못했던

사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사물이 등장하게 된 배경까지 살피며

역사와 사회적인 시선까지 갖추게 되었다.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지혜와 교양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센스 같았고 말이다.


우리들의 일상 속에 숨겨진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물건에 담긴 역사 과학 경제 문화를 넘나든다.

물건이라는 것이 탄생하기까지 담긴

수많은 시간을 압축해서 볼 수 있었던

굉장히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거' 있잖아 가 아니라,

책을 통해 알게 된 사물의 '이름'으로 불러보고자 한다.

이름에 함축된 이야기를 기억하며

책에 미처 담기지 못한, 앞으로 새로 생길

사물들의 '이름'에는 또 어떤 시간이 묻어있을지

'그거 사전'의 업데이트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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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둘이 북클럽 - 우리 둘이 주고받은 마음의 기록
변혜진.연재인 지음 / 도토리책공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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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을 여럿이 읽는 것은

학교 다닐 때 이후로는 드문 것 같다.

학년 단위로 주어지는 권장도서라든가

교실에 있는 학급문고처럼 한정된 도서로만

책을 읽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읽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같은 책을 읽으며 의견을 나누는 행위 자체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최근에는 책을 읽는 사람의 수가 많이 줄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몇몇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책을 읽으며

모두의 평균치를 올려주고 있는 듯한데,

출판사에서 주관하거나 개인이 운영하는 북클럽도 있고

꼭 북클럽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특정 책에 대하여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북토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낯선 타인과 나의 '생각'을

나눈다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기지만

북클럽에 참여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궁금해서 책을 읽고 난 다음에는

책의 해시태그나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책 제목을 입력해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며

'아~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하는구나'

'나처럼 이 부분에 공감을 하기도 했구나' 하면서

책을 읽고 난 후 마침표를 찍기도 했다.


꼭 거창한 이름의 북클럽에 소속되거나

눈에 보이는 어떤 활동은 아니더라도

가장 가까이에서 늘 함께하는 가족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북클럽이 있다니,

'왜 나는 가족과는 북클럽을 꾸릴 생각을 하지 못했지?'

라는 혜안을 발견하게 한 책을 만났다.

엄마와 초등학교 3학년 딸이 함께 고전문학을 읽으며

마음을 주고받은 편지와 북클럽 이야기를 담은

《단둘이 북클럽》이다.


엄마에게는 다시 읽으며 예전의 추억과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아이에게는 작품을 통해 역사 공부와 작가 공부까지

할 수 있는 고전문학을 함께 읽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눈 과정이 굉장히 의미 있어 보였다.

엄마와 재인이가 함께 읽은 책은 다음과 같다.

하이디, 빨간 머리 앤, 80일간의 세계일주,

작은 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행복한 왕자,

비밀의 화원, 홍당무, 플랜더스의 개, 어린왕자,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로

11권의 책을 읽으며 엄마와 아이는

때로는 '재미있다'를 연발하며

때로는 책 읽기를 미루기도 했고,

때로는 등장인물들을 이해할 수 없다 하면서

어른과 아이의 시선에서 각자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감상들을 차분하게 주고받는다.


단 두 명뿐인데다가 가족으로 구성된 북클럽이지만

이 '단둘이 북클럽'에도 엄연한 규칙이 있다.


'단둘이 북클럽'의 규칙

1. 읽는 책은 고전문학 완역본으로 한정한다.

2. 하루에 40페이지 이상 읽는다.

3. 한 권 완독에 걸리는 시간은 2주를 넘기지 않는다.

4.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5. 먼저 읽은 사람에게 다음 책 선택권이 주어진다.

6. 정기모임일은 매주 수요일로 정한다.

7. 함께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은 수시로 나눈다.


꾸준하게 이어지기 위해 또 어느 정도 제한을 통해

엄마와 아이는 책 읽기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도 하고, 진지하게 임하면서

북클럽을 탄탄하게 이어나간다.


작가들처럼 가족들과 함께 혹은 친구, 연인과 함께

거창한 모임이 아니더라도 단둘이 북클럽을

운영하면서 참고할 수 있는 북클럽 운영 노하우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아이와 함께하는 독서활동을

기대하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책을 읽고 이따금씩 동생과 대화로 의견을

나누는 정도에 그치곤 했는데,

어렵다고 생각했던 북클럽을 둘이서도

충분히 이끌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었다.

단순히 읽고 넘어가는 독서가 아니라

의견을 나누고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더욱 그 '의미'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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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이름 - 우리가 몰랐던 독서법 125
엄윤숙 지음 / 사유와기록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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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며 책과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책을 비롯해 다양한 정보 자원의

생산, 가공, 검색, 수집, 유통, 활용과

관련된 학문으로 도서관과 책, 그리고 읽기는

빼놓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차 줄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고,

한 달에, 일 년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볼 때면

'나의 읽기는 어느 정도 와 있지?'

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독서에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질적인 부분을 수치로 나타낼 수 없기에

타인과의 비교를 할 필요는 없지만

어쩐지 나의 독서생활에 무언가 결과물로

도출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다니던 시간이 지나고

손을 떠났던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마지막 교양의 끈'으로써였다.

단순히 책을 읽고 덮기를 하다가,

읽었던 책을 모르고 다시 읽는다거나

읽기는 했지만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을 못 한다거나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독서기록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다 읽은 책의 표지나 구절들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한두 줄의 감상을 덧붙이던 나의 독서는

조금 더 나아가 마음에 남는 구절을 옮겨두고,

본격적인 독후기록을 남기면서 한 단계 나아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읽었던 책도 기억 못 해 다시 읽던 나는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 번 읽게 되기도 했고,

다양한 읽기 방법을 거치는 등

무어라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전보다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는 것.


'독서'라고 단순하게 명명하기에는

책을 읽는 방법이 너무나 많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혹은 내가 책을 읽는 방법을 무어라 하는지

제대로 된 이름을 정의하고 싶었던 이들에게도

추천하고픈 《독서의 이름》이다.


작가는 독서의 윤슬이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목격하는 책으로

이 책을 소개한다.

독서를 나타내는 다양한 이름을 통해

'독서란 무엇인가?' '읽기란 무엇인가?'를

독자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내가 독서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 주었다.


읽는 방법에 따라 106개의 이름으로 독서를 소개하고,

어떤 공부나 학문을 연구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외는 독서, 훑어보는 독서, 쓰는 독서를 소개함으로써

단순히 읽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독서에 이르는 방법까지 안내를 한다.


텍스트 읽기를 점차 귀찮아하고

사진이나 영상 등의 미디어 노출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오롯이 책과 함께하는 시간의 주는

안락함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기꺼이 흥미롭고 즐겁게 읽을만한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이토록 많은 읽기의 방법이 있었나 하며,

각 독서의 이름들의 의미를 깊게 들이마신다.

혼자 읽는 독서뿐 아니라, 여럿이 함께 읽는 독서나

혹은 외워 읽는다는 자체에도 얼마나

폭넓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지 독서의 이름들을 훑으며

새로운 독서방법을 익힐 수도 있었다.


책을 읽는 데에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한 번에 한 책을 읽고,

누군가는 동시에 여러 책을 병렬로 읽기도 한다.

누군가는 밑줄을 긋고 누군가는 책 귀퉁이를 접으며,

누군가는 흔적 하나 없이 소리 없이 조용히

마음속으로 따라 읽기도 한다.

책 자체에 생각을 적는 이도 있고,

누군가는 책의 구절을 손으로 옮기기도 하며,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마음속에만 담고

두고두고 한 번씩 꺼내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꼭 책에 대한 기록을 보이는 형태로

남겨두기도 하니 말이다.


독서에 정해진 옳은 방법이 있을까?

무엇이 맞고 틀리다고 할 수 있을까?

'읽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독서시간이

어떤 식으로든 각자에게는 '의미'로 남는 것 아닐까?

이토록 방대하고 넓게 반짝이는 독서의 윤슬을

같이 알아보고 바꿔보자고 나지막이

독서의 이름들을 불러주는 것 같았다.


한정된 방법으로 읽고 있던 나는

무언가 다른 방식의 읽기를 시도하고 싶었는데,

내가 하던 독서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정의하는 과정이었고

어떤 방법으로 읽어봐야 할지

흥미 또한 커지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오늘도 책을 읽는다.

책에 담긴 글자를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쓸며

마음속으로 부르고 들으며

의미를 흡수하고 내 것으로 소화해서

그것을 다시 독후기록으로 배출시킨다.

넓은 독서라는 세계에서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짜릿했던 시간!

'유레카!' 하고 빛나는 독서의 윤슬을 담은

《독서의 이름》이었다.


"이 글은 사유와기록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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