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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
오가와 사토시 지음, 최현영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1월
평점 :

'소설가'에 대한 시선은 직업이라기보다는
꿈이나 예술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무슨 일을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보편으로 나올 수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 내의 보기가 아닐뿐더러
어쩐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자에 가까운
소설가라는 것은 여느 직업과 같이 '직업'이라는 범주에
묶이면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소설가에 대한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쓰기도 하고
매일 일정한 루틴에 맞추어 글쓰기를 행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써낸다"라는 소설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결국 애초에 소설이라는 것이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라는 점에서 굉장히 상반된 단어들을
끌어안는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따금씩 이 허구인 fiction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사건이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에 그것을 의심하고 들여다보며,
실제로도 어느 소설가가 쓴 작품 속에
등장인물이며 그들이 나눈 대화가
실제 있었던 일이라며
자신에 대한 내용이 담긴 글을 파기해달라는
소동까지 있으니 과연 소설을 어느 정도까지
'허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지에 대해서
복잡한 생각이 들곤 한다.
일본의 떠오르는 천재 SF 작가이자
2024년 일본 서점 대상 후보작에 오르고
제168회 나오키상 수상작가의 연작 단편집인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는
연작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소설가인 '나'를 통해 작가가 소설가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은 자전적으로 담아내고,
근본적으로 '소설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독자들과 함께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이 연작 소설집은 크게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각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이자 이름마저도 '오가와'라
읽는 내내 "지금 읽고 있는 이 내용이 그래서
사실이야? 아니면 작가가 만든 허구의 얘기야?"라는
질문을 연신하게 했다.
〈프롤로그〉를 통해서는 자기소개서를 쓰다가
어려움에 부딪친 주인공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듯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가
본격적인 소설을 쓰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질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작업인 독서와 글쓰기에 대해
또 작가라는 사람이 느끼는 근본적인 감정에 대해서
담아낸 이 작품은 제목인 '프롤로그'처럼
연작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원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월 10일〉은 대지진이 있었던
3월 11일의 기억을 친구들과 나누던 주인공이
똑같은 무게로 보냈던 하루 전날인 3월 10일의
기억을 잊고, 그날의 기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추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이 만들어낸 왜곡 같은 것이 아닐까?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그런 나의 생각과도
결이 이어지는 것 같은 작품이었다.
작가들이 자신이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이 허구의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왜곡이라는 점에서
인생과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소설가의 본보기〉를 통해서는
오라리딩점술가라는 존재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던 주인공이
실제로 점술가와 마주하고 대화하며
서로 겹쳐지고 감정을 나누게 되는 경험을 통해
사실은 소설가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자조적인 한숨이 담긴 작품이었다.
연작 소설집과 동명인 작품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는
가타기리라는 동창생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혹은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고
손에 쥐려 했던 황금(진짜)을 바라보며
그 허무와 공포를 통해
어쩌면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의미도
가짜로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전한다.
자신이 느끼는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글로 쓰려고 하는 소설가,
글로 완성한 순간 사라지는 그 기적은
가타기리가 그토록 쥐고 싶어 하던 황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소설 속 주인공은 말한다.
이런 가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가짜〉라는 작품에서 모조품 시계를 착용하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표절 가공해 내는 만화가
바바와의 만남을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
타인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는 바바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설가인 내가 느끼는 이 '화끈거리는 감정',
그리고 그 만화마저도 다른 사람이 그렸다는
바바를 바라보며 들었던 '대체 뭘 했던 거지?'에
대한 질문은 바바라는 인물과 자신을 가르는
선을 느끼고 거기서 오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작품이 타인의 소재에 의해 성립되는 점을
떳떳하게 비판할 수 없는 자조적인 감정까지
복잡하게 이어진다.
창작과 창작에 이르는 소재에 대하여
소설가는 어디까지 '사실'과 '진실'을 담아야 하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100% 순수한 허구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는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은
작가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뾰족한 창과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수상 에세이〉에서는
쓰면 쓸수록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써 내려가는
자신의 매일을 담담하게 담는다.
스스로 소설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소설가다"라고
지칭하는 것이 찜찜하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그냥 쓰기 시작한다.
계속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가 만들어가는 소설의 큰 틀을 바탕으로
내가 만들어가는 주인공에 동화되어
그렇게 써 내려가면서 완성하는 소설의 세계.
작가는 실제 이야기인지 아니면 소설인지
독자들을 갸웃거리게 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이끈다.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소설 속의 오가와를 만나며
소설가의 삶과 소설가의 고충, 소설가의 글 쓰는 방법,
소설가의 생각, 소설가가 생각하는 글 쓰는 직업 등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한다.
타인을 소재로 하든, 허구의 자신을 만들든
결국은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소설가는 훌륭하다.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낸 틀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세분화하며 보다 튼튼한 설계를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리면서도 계속 읽어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어쩌면 이 연작 소설집을 읽으며 드는 이런 생각들은
작가가 완벽하게 설계한 그의 구성일지도 모른다.
연작 소설에서 등장하는 오가와는
실제 작가의 모습일지도 혹은 그가 자신을 바탕으로,
마주쳤던 타인을 소재로 하여 만든 허구의 인물로
실제 작가와는 전혀 다른 인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인물을 통해서 소설과 허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작가가 쓴 여러 작품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각 작품 속 인물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읽다 보니
각기 다른 인물의 이야기로 생각을 했다.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는 부분에만 치중을 했고,
다시 또 읽어보니 작가가 그리는 '소설가'라는 직업과
'허구'라는 것에 대해서 보다 선명한 윤곽이 그려졌다.
굉장히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작가의 필력에
쉴 틈 없이 작품을 넘겨보게 했다.
이것이 바로 다들 얘기하는
'오가와 사토시'의 천재성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에 대한 수많은 '물음'에 대한
제대로 전달되었던 그런 작품이었다.
"이 글은 소미미디어로부터 솜독자3기 활동을 위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