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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사전 -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며 때로는 유머러스한 사물들의 이야기
홍성윤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0월
평점 :

"저기야~" "그거 있잖아" "거기 가자"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는
'지시대명사'를 많이 쓰는대서 찾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제대로 명명하지 못하고
부르는 '그것'들이 정말 많다.
잊어버려서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있고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서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있다.
'그거'라는 이름이 때로는 얼마나 고마운지
지시대명사가 없었더라면 설명을 하며
'그거'를 유출해 내기 위해
대화의 시간이 길어졌을 것이다.
단순히 대화를 할 때면 '그거'라고 하거나
설명을 덧붙일 수 있지만
정확한 명칭이 필요한 순간에는 당황하게 된다.
설명을 덧붙여 검색을 하거나
풀어쓴 말로 '그거'를 알아내고 찾아내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인터넷 세상 속을 표류하기도 하는데,
뭔지는 알지만 무어라 부르는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사물들의 이야기와 이름을 담은
신선한 《그거 사전》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다.
그거 사전은 매일경제에서 편집 기자로 일하는
저자가 연재했던 '그거 사전'을 묶어서 낸 책이다.
저자는 의식주(먹고 마시고 걸치고 사는)와
생활을 하며 쓰고 거닐며 일하며 만나는
다양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무어라 부르는지 알지 못하고 '그거'라고 불리던
숨겨진 이름들을 발굴해 내며,
사물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숙제를 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백과사전을 찾아보곤 했다.
학문, 예술, 문화, 사회, 경제 따위의 과학과 자연 및
인간의 활동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압축하여
부문별 또는 자모순으로 배열하고 풀이한 책이라는
의미를 가진 백과사전은
일백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처럼
광대하고 넓은 범위의 모든 지식을
총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발전과 더불어
많은 사물들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인쇄물 형태의 백과사전이
더 이상 전과 같은 의미를 가지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잘 정리된 사전을 떠올리는 걸 보면
'사전'이라는 것이 가진 의미 자체로도
충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연어를 먹을 때 곁들이는 동그란 그거
귤에 붙은 실같은 하얀 그거
테이크 아웃 컵에 씌우는 그거
양말 두 짝을 하나로 묶는 금속 집게 그거
군번줄로 쓰는 구슬 꿴 줄 그거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걸 방지하는 그거
결혼식에서 뿌리는 종잇조각 그거
신장개업 가게 앞에서 춤추는 풍선 그거
직장인들이 목에 걸고 다니는 그거
등 먹고 마시고 걸치고 살며
쓰고 거니고 일하며 마주치는
다양한 사물들의 쓰임이 담긴 이름들을
하나하나 쫓아가는 과정은
마치 어린 시절 백과사전을 펼쳐보며
처음 만난 '색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과 비슷했다.
비로소 이름을 불린 뒤에야 나에게 의미가 되는 것처럼
'그거'라고만 부르던 사물들의 이름을 깨우치고 나니
좀 더 나에게 비중 있는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알지 못했던
사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사물이 등장하게 된 배경까지 살피며
역사와 사회적인 시선까지 갖추게 되었다.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지혜와 교양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센스 같았고 말이다.
우리들의 일상 속에 숨겨진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물건에 담긴 역사 과학 경제 문화를 넘나든다.
물건이라는 것이 탄생하기까지 담긴
수많은 시간을 압축해서 볼 수 있었던
굉장히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그거' 있잖아 가 아니라,
책을 통해 알게 된 사물의 '이름'으로 불러보고자 한다.
이름에 함축된 이야기를 기억하며
책에 미처 담기지 못한, 앞으로 새로 생길
사물들의 '이름'에는 또 어떤 시간이 묻어있을지
'그거 사전'의 업데이트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