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벽
다이구 겐쇼 지음, 지소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는 말이 있지만

마음을 다스리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인생이라는 파도 위에서

타인과 부딪치게 되는 여러 상황들,

그 속에서 방황하고 흔들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인데, 아무리 성인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자신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 "감정 문제"들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고,

겉으로 표를 낼 수는 없지만 타인에 대한

질투나 시샘, 비교를 하며 혼란스럽기도 했다.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싶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심을 잡고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불교, 부처의 말씀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세워져 있는 수많은 벽들을 넘어

괴로움의 원인을 타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며

감정의 변화를 분석하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감정과 마주하는 법을 다룬 책을 만났다.


73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고,

상담 대기자만 2500명이 넘는다는

일본 최고의 카운셀러로 꼽히는

다이소산 후쿠곤지의 주지 스님인

다이구 겐쇼가 지은 〈나라는 벽〉이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고민의 순간,

우리는 그 원인을 외부에서부터 찾는다.

나를 이렇게 고민하게 만든 원인을

나 아닌 타인이나, 외부의 문제로부터 찾으며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 그것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의 순간에 있어서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

외부가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


오해나 망상, 이기적인 기대나 타인과의 비교 등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벽'들이

이런 고민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문제에 있어서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바깥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왜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아닌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로

타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답을 찾으려고 하기에

더욱 풀리지 않고, 이런 맹독성 감정들은

나를 더욱 괴롭게 할 뿐이다.


고민 상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다이구 겐쇼 스님은

우리가 가진 감정 문제에

불교의 핵심 개념을 적용했는데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고,

내면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감정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나 슬픔, 질투,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은

사람인 이상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하다.

다이구 스님은 우리들을 괴롭히는 불필요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적당히 받아들이고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알면 지금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곧 '마음의 벽'을 뛰어넘는 작업이며,

고민을 해결하는 사고방식을 배우고

아주 조금이라도 실천하다 보면

자꾸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과 사고 습관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한다.


불교의 사고법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과 표현을 통해

고통을 제대로 마주하고 가뿐히 벗어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1장에서는 인간 내면의 세 가지 뿌리 감정인

'욕심', '분노', '무지'에 대해 설명하고,

이 감정들이 어떻게 고통의 근원이 되는지를

불교 경전과 함께 풀어낸다.


2장에서는 '분노', '질투' '슬픔' 등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들을 살피며,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은 어쩌면

내 마음속에 있는 벽을 낮춰주는 가장 기본적인

스킬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내 마음에 남았다.


3장에서는 '불안', '조바심', '절망' 등

마음이 현재가 아닌 미래와 과거에 매여 있는 이들에게

체념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

특히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편인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고 도움이 되었던 파트였다.


4장에서는 욕심과 경멸을 넘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타인에 대한 시선과 더불어 평가를 하는 게 익숙한

이들에게 따끔한 충고가 될 것 같다.


마지막 5장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고민과 괴로움에서 슬기롭게 벗어나는 비결을

담았는데, 그 방법으로써 '명상'을 소개한다.


이처럼 다이구 겐쇼 스님은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고민과 괴로움 앞에서

바깥을 향하던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가져오고,

내 마음을 제대로 직시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뿌리는 불교에 두고, 부처의 말씀을 덧붙였지만

종교를 떠나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이들에게

많은 울림으로 다가갈 그런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다.


타인에 대한 시선 그리고 그들을 향한 평가가

익숙한 오늘날의 우리들인데, 그런 감정 자체가

타인과 비교해 스스로 느끼는 우월감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은 속내를 들켰다는 생각에

화끈거리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고,

시작을 알 수 없는 '불안'이라는 감정 앞에서도

이 불안함을 제대로 분석하고 파악하며

나 자신이 만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 읽기 시작할 때는

'불교 얘기라 지루하지는 않을까?'

'뻔한 마음 찾기 류의 얘기가 아닐까?'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마음의 구석구석을

거울로 비추어 바라보는 것 같아서

속 시원하기도 하고 비로소 해답을 찾은 것 같은 느낌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비롯됨을 알고,

올바른 마음의 중심을 잡기 위해

내 마음과 마주하며 직시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기둥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 모두 마음의 주인인 '나'를 제대로 바라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옥상에서 기다릴게 넥스트
한세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자이언트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실은 알고 있지만 마주할 자신이 없어

외려 숨겨두었던 마음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의 흔들림은 큰 파장을 남긴다.

특히나 작은 일에도 인생은 흔드는 것 같은

청소년기에는 마주치는 사람 하나

마주치는 사건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고스란히 생채기를 남기기도 하는데,

그런 상처들을 들여다보고

내 안의 마음과 마주하며

우리는 비로소 '성장'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전하지 못한 진심,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각자가 가진 부채감으로 기억하는 한 사람.

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어찌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유서 대필'이라는 부탁을 계기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각자의 기억과 느낌으로 남아있던 일상들을

남겨진 일기장과 맞춰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심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면서

비로소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웃음이 스며든 하루를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작가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으로

상처를 가진 채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고등학생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내 안의 마음과 마주하는 시간,

나와 너를 넘어 '우리'라는 세계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단단한 힘이

되어주고 치열한 분투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기의 마음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따스한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 유신이

같은 반 지원에게 '유서 대필'을 의뢰받으면서 시작한다.

유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영원.

유신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그토록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에게 쌍둥이 형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과거의 사고 이후 도망치듯 벗어났던 유신은

끝끝내 알지 못했던 영원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대필 조건으로 '영원의 일기장'을 받기로 하고

지원의 유서 대필 의뢰를 받게 된다.


영원의 일기장을 읽으며,

유신은 영원과 만났던 과거의 시간을 회상한다.

늘 친구들에게 인기 많고 밝은 줄만 알았던

영원에게 꼬리표처럼 따라왔던 외로움과

때로는 벅찼던 부모님의 기대, 쌍둥이 형과의 비교,

그리고 유신과 영원이 서로 전지 못했던 진심까지

유신은 영원을 알기 위해 일기장을 펼치지만

오히려 일기를 읽으며

영원을 더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 옥상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나눴던 소중한 추억들,

다른 이들 앞에서 내보이진 않았지만

사실은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던 상대에 대한 마음,

그리고 영원이 세상을 떠나게 된

그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이야기 등

유신과 지원은 각자 가진 자신의 부채감을

영원의 일기를 통해 깨닫고

서로에게 상처를 꺼내 보이며

그동안 외면했던 마음과 마주한다.


떠난 영원이 남긴 일기장은

유신과 지원을 새로운 친구로 엮는 매개체이자,

그들이 영원을 넘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마주하게 되는 역할도 한다.

'내가 무얼 해야 할지' '타인과의 갈등' 아래

혼란스러워하는 청소년기의 방황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흔들리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주변의 속도에 관계없이 나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도 된다'라고 작가는

얘기하고 있었다.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 시기에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우리는 지극히 '다 그맘때 면 겪는 일이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답답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비뚤어진 반항으로

오히려 관계가 엇나가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마음속에 가진 자신만의 부채감을 이겨내고

주인공들은 마음속 진심과 마주하며

비로소 성장이라는 길에 이르른다.

충분히 흔들리고 방황한 만큼,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쏟아낸 만큼

후련해진 마음은 그들을 비로소 웃게 한다.


몽글몽글하고 아련한 첫사랑의 마음,

흔들리고 방황하며 아파하던 상처까지도

너무나 아름답고 씩씩하게 그려낸 작가만의 세상은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또 그 시기를 지나 마음의 굳은살이 생긴 어른들에게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 주자며 대화를 건다.


옥상에서 만나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힘이 되었던 유신과 영원처럼

이 작품도 읽는 독자들에게 그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유신의 성장기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마음에 솔직했던 영원의 단단함도,

미안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던 지원의 용기까지

하나하나 너무나 소중했던 작품이었다.


옥상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큰 세상을 작게 만들어 보이며,

내가 직면한 문제 역시 티끌처럼 작은 문제라며

씩씩하게 일어나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다.

모두가 자신만의 옥상을 마주할 수 있기를,

그런 용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책읽는고양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나와 다른 이들에게서 '배움'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직접 겪으며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책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언어와 종교, 성별을 넘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된다.
그것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배울지는
읽는 '나'에게 달려있으니
이렇게 '열려있는 선생'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많지만
대놓고 지식을 전달하는 학문을 다룬 책보다도
시간의 힘을 가진 인생 선배인 작가들의
넋두리 같은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대단한 지식이나 개념이 담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학교나 교육을 통해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늘 주변에 추천하는데다가
한 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닌 수시로 들춰보며
꺼내보고 싶은 작가의 책은 바로 소노 아야코이다.
1931년에 태어난 이 90대 작가는,
선천적 고도근시를 앓았을뿐더러
부모님의 불화 아래 자랐는데
이런 시간들은 그녀가 작가로 살아가는데
더욱 짙은 힘이 되어주었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함에서부터
일반적인 생활이 어렵기에 선택했던 글쓰기,
그리고 글 속에 묻어나는 깊은 성찰은
세대를 건너띄어 지금을 살고 있는 손녀 뻘의 나에게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깊은 위로로 다가왔다.
그래서 소노 아야코의 책들을 꾸준히 읽어왔고,
그런 그녀의 세계관에 푹 빠져 있었는데
최근에 소노 아야코 세계관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신간이 나와 기쁜 마음으로 만나보았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라는 제목으로
기존에 출간했던 책들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문장들을 모은 에세이이다.

소노 아야코는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서
타인과의 인간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를 비롯해
나이 듦,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한창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인간관계를 중시 여기는 젊은이들이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낄 때 공감할 수 있는
소노 아야코만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가볍게 툭툭 내뱉는 듯한 할머니 작가의 말은
때로는 잔소리같이 때로는 따스한 손길같이
그러면서도 재치 있는 유머를 느끼게 했는데,
이번에 만나 본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는
그녀의 책들 중에서 주요한 문장을 골라
'소노 아야코가 이런 말을 했다'라고 간단히 전하는
소노 아야코 세계관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관계, 삶, 인간, 신 4장으로 나누어
각 주제에 어울리는 문장들을
이전의 책들에서 골라내었다.
이미 읽어 알고 있던 문장들은 한 번 더 읽으며 반가웠고,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의 문장은 새로운 기쁨이 되었다.

관계와 삶을 통해서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인간 파트에서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어떤 종교적 이야기는
마지막 파트에 담으며 인생을 투과하는
소노 아야코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인간관계에 대한 그녀의 통찰은
언제나 마음에 남는다.
타인의 시선 아래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은
때로는 그 때문에 무리하거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소노 아야코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그대로"
"무엇을 부러 더 하지 않아도 되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평가나 측정이 아닌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대를 버릴 것"이라는
얘기가 참 마음을 놓이게 한다.

어쩌면 내놓지 못한 속마음을
그녀가 대신 얘기해 줘서 거기서 오는 후련함이
소노 아야코의 글에 빠지게 하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 앞에서 이토록 담백한 사람이 또 있을까?
이토록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호쾌할 수 있을까?
소노 아야코를 볼 때면 살아온 시간이 가져온
단단함이라는 뿌리가 얼마나 나 자신을
튼튼하게 만드는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관계에 지치고 기대에 벅찰 때면
소노 아야코의 얘기를 떠올리며 중심을 바로잡는다.
삶이라는 흐름에서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며
올바른 시선으로 '나'를 곧추세울 수 있게 말이다.
그런 심호흡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그녀의 글은
나를 중심으로 여기 되, 스스로를 타자화함으로써
오히려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늘 기대 그 이상의 깨달음을 주는 나의 영원한 선생,
소노 아야코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압축한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정망상 달달북다 11
권혜영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달달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북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던 학창 시절

반 아이들은 세 분류로 나눌 수 있었다.

청소년기에도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는 요즘과 다르게

'이성친구를 사귄다 = 노는 느낌' 이 강해서인지

드물었던 '이성친구를 사귀는' 파,

그리고 미지의 존재 같은 '연예인에 열광하는'파,

이성친구에도 연예인에도 관심 없는 나머지 부류.


그래서인지 연애나 로맨스를 떠올릴 때면

이성친구가 있는 아이들은 소소한 투닥거림이나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나에게 실망도 주지 않고 완벽한 모습으로 있는

'우리 오빠'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마냥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들만의 로맨스를 이어갔다.


실제로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이 없는

미지의 존재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감정은

팬덤 내에서도 '유사 연애'라는 워딩으로

폄하되기도 하는데, 연예인을 상상 속 애인으로 삼고

연애 감정을 가지고, 상상 연애를 하는 것을 이르는

이 말은 무언가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느낌이라

타인 앞에서 쉬쉬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비슷한 느낌으로 2014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Her〉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담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실체가 없는 상대와의 사랑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을 이번에 만나보게 됐다.


달달북다의 로맨스X비일상 시리즈인

〈애정 망상〉이다.


과거의 연애를 계기로 남자 울렁증이 생긴

주인공 '지나'에게는 타인에게는 밝히지 못하는

고막 남자친구가 있다.

바로 '세진'이라는 이름의 ASMR 콘텐츠가 그 상대인데,

실체도 상처도 없으면서도 연애의 감정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메리트이다.

퇴근을 하고 자신만의 루틴으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세진의 ASMR 콘텐츠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지나의 가장 큰 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나의 귓속으로 익숙했던

세진의 목소리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볼륨을 0으로 해놓고 재생도 일시 정지한 상태였는데

어리둥절한 지나에게 '세진'의 목소리를 한 그가 말하길,

자신은 지구로부터 2800만 광년 떨어진

다즐링이라는 소행성에서 온 왕자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지구라는 행성의

한국이라는 나라로 '아이돌'이라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떠났고, 그녀를 따라 여기에 오다

문제가 생겨 신체는 잃은 채 불시착했다는 것,

그래서 주파수를 이용해 세진의 목소리를 빌려

그녀에게 자신을 도와주기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지나를 무력화 시키는 '세진'의 목소리로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이 다즐링 왕자를 쫓아내기 위해선

그를 도와 이곳에서 보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인데,

하필 왕자의 요청은

'남자 염색체를 가진 신체의 일부를 구해달라는 것'

남자 울렁증을 가진 지나에게

가까이 지내는 남자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손톱, 타액, 터럭 같은 것이라 해도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던 와중에 지나의 유일한 친구인

가람에게서 남자친구와의 연애 상담이 들어오고,

지나의 집에 온 가람이 가지고 온

지난 연애의 기록 같던 티켓북에 있는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바탕으로 다즐링 왕자는 임시로 머물

신체 조각들을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들을 꼭 닮은 신체들을 보며

이것들을 결합시켜 만나고 싶어 하는 가람과 달리

자신이 무엇을 주지 않아도

상처도 주지 않고 실체도 없는 그래서 좋았던

언제나 곁에 있는 '세진'의 목소리를

미스터리한 다즐링 행성의 왕자에게

뺏기는 것이 싫었던 지나는

그들의 마지막 작전을 훼방놓기 시작한다.


과연 다즐링 행성의 왕자는 임시로 몸을 만들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지구를 떠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지난 연애를 오래도록 끌어안고 집착하던

가람은 자신이 원하던 과거 남자친구들의 결합체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 과정을 쫓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어떤 의미에서 애정은 망상과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지난 애정의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재 편집되고 기억되며,

이는 망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만남을 전제로 한 사랑하는 감정,

가장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로맨스에 대해

작가는 유난히 '리얼한' '누군가의 경험'이 담긴

애정 얘기 앞에 멈춰 서야 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

이 이야기의 시작을 써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이들에겐 가장 일상적인 사랑을

가장 비일상적이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과거의 연애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던 지나의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바램이

그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그저 상상과 망상으로도

채울 수 있는 '로맨스'적 포인트로 이끌었다.


자신과 비슷한 줄 알았지만 의외로 서로 다른 모습에

친해질 수 있었던 가람과의 관계처럼

연애에 있어서도 지나와 가람은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며

어떤 사랑이 더 나은가? 무엇이 더 옳은가?를

독자들에게 저울질하게 했다.


완벽히 혼자가 된 지나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낀다.

변함없이 자신의 곁을 채워주는 세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런 망상 또한 애정'이라고,

자신이 틀린 것은 아니라며 다시 일상을 되찾는다.


지나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일상적'이라 생각했던

애정이라는 것이 과연 정말 일상적인 게 맞는가?

어쩌면 연애 역시 망상과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로맨스 세상의 범위를 확장하며

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보편적이라 생각했던

애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했던

조금은 난해하지만 실험적이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시선으로 로맨스를 바라보고 싶다면,

〈애정망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보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0세 정신과 영수증 - 2만 장의 영수증 위에 쓴 삶과 사랑의 기록 정신과 영수증
정신 지음, 사이이다 사진, 공민선 디자인 / 이야기장수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지털카메라의 등장, 그리고 친구들과 연결되는

관계형SNS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싸이월드는

2000년대 초반을 시작으로 이른바

'핫하면서도 2000년대만의 감성'을 가득 담아내며

많은 이들에게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카드보다는 현금 사용이 대부분이었고,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감성이 혼재되던 그때에는

디지털 사진도 인화해서 보관을 하였으며

관계형 SNS에서는 자신만의 감성 가득한

글을 남기는 이들도 속속 등장하곤 했다.


한창 이맘때 도서관에서 만나

나를 푹 빠지게 한 책이 있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던지라 공강시간이나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오가며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골라보거나

발견하기 위해 채굴(?) 하는 게 또 다른 재미였는데

<정신과 영수증>이라는 다소 특이한 이 책은

제목부터 한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물건을 살 때면 자연스레 손에 쥐어지는 영수증을 모아

영수증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진과 함께

자신만의 감성 넘치는 글을 담아낸 이 책은

너무나 '싸이 감성'이었고,

따라 하고픈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


인터넷 사용이 익숙해졌다지만

무언가 손으로 기록하고 남기는 아날로그가

아직은 편했던 그때에 만났던 <정신과 영수증>은

너무나 따라 하기에 좋은 교습서 같은 느낌이랄까


24살의 정신이 자신의 영수증을 바탕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은 이 책은

한순간 내 마음에 들어왔고,

순식간에 책을 읽어버리고는 언니와 동생에게도

추천하게 했던 나의 20대의 추억 같은 책이었다.


그 뒤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 책은 절판되었다가

독자들의 요청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 한 번씩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정신과 영수증, 그 정신은 지금 뭐하고 살까?' 하는

궁금증을 해결해 줄 새 책이 나타났다.

무려 처음 책이 나왔던 2004년으로부터

11년 만에 찾아온, <40세 정신과 영수증>이다.


처음 <40세 정신과 영수증>의 출간 소식을 듣고는

"미쳤다"라고 외치며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더욱이 초판 작업을 함께했던 사이이다(사진),

공민선(디자인)도 이번 출간에 함께한다니

마치 무한도전 토토가를 통해 추억 속의 90년대 가수들

무대를 다시 보는 듯 설레는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40세 정신과 영수증은

2018년부터 2025년에 이르기까지

40대가 된 정신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24세였던 정신은 40대가 되었고,

여전히 글을 쓰고 기도를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고, 사랑하고 싶어 했다.


국내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범위에서

결혼할 사람을 찾겠다는 생각은

그녀를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하게 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이전에 쓴 <정신과 영수증>을

중학교 때 읽었다는 독자와 만남을 갖고,

그녀의 독자이자 연애 선생님이 되어준

아그네스의 조언에 따라 본격적으로

결혼 상대 찾기에 나선다.


미국에서 시간을 보내며 성경을 읽고 녹음하며

기도하던 순간들,

늘 한결같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 등

하루하루의 순간은 영수증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록으로 탄생하며 그녀의 인생에 쌓여간다.


지금도 여전히 영수증을 모은다는 정신은,

무려 2만 장의 영수증을 모았다고 한다.

그 영수증들은 그녀가 부지런히 살아내는

매 순간의 발자취이자 그녀 자신으로 남아있었다.

기록은 남기고 또다시 돌아볼 때 의미가 되는데,

남들은 가볍게 버리거나 혹은 아예 받지도 않는 영수증이

그녀에게는 인생의 전체를 이루는

소소하고 무수한 점이자, 하나의 특별함인 것이다.


포클랜드를 거쳐 뉴욕으로,

또 중간중간 한국에서의 기록으로

정신의 영수증을 따라 우리는 그때 그 시간의

그녀 곁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커피를 마시며,

아이스크림을 잊고 녹아버릴 정도로 빠져들게 된

남자와의 만남도 함께 바라본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마음에 새겨진 확신도,

가족이 되는 순간의 기록까지도 그녀는 정신답게

영수증과 글로 자신만의 발자취를 남긴다.


'그래,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이런 사소한 일상이었어'

'이런 담백한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지고 싶었어'

'그때도 이런 게 좋았어' 하며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정신' 그 모습 그대로인

그녀의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지금이야 기록하는 이들 사이에서 흔해져 버린

지출 기록이나 영수증 일기 등도 사실은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사람들은 알까?


퍽퍽해지고 차가워진 것만 같은 요즘의 감성에

여전한 자신만의 모습으로 그녀는 큰 파장을 던진다.

잊고 있던 그렇지만 그리웠던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나는 그녀의 책을 보며 그녀를 처음 봤던 그때의

나의 시간으로 돌아가 소녀처럼 기뻐하게 된다.


모두들 온통 흔들어놓을 정신의 이야기,

너무나 궁금했던 정신의 이야기.

11년 만에 만난 정신과 그의 영수증,

<40세 정신과 영수증> 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