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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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책읽는고양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나와 다른 이들에게서 '배움'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직접 겪으며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책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언어와 종교, 성별을 넘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된다.
그것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배울지는
읽는 '나'에게 달려있으니
이렇게 '열려있는 선생'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많지만
대놓고 지식을 전달하는 학문을 다룬 책보다도
시간의 힘을 가진 인생 선배인 작가들의
넋두리 같은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대단한 지식이나 개념이 담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학교나 교육을 통해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늘 주변에 추천하는데다가
한 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닌 수시로 들춰보며
꺼내보고 싶은 작가의 책은 바로 소노 아야코이다.
1931년에 태어난 이 90대 작가는,
선천적 고도근시를 앓았을뿐더러
부모님의 불화 아래 자랐는데
이런 시간들은 그녀가 작가로 살아가는데
더욱 짙은 힘이 되어주었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함에서부터
일반적인 생활이 어렵기에 선택했던 글쓰기,
그리고 글 속에 묻어나는 깊은 성찰은
세대를 건너띄어 지금을 살고 있는 손녀 뻘의 나에게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깊은 위로로 다가왔다.
그래서 소노 아야코의 책들을 꾸준히 읽어왔고,
그런 그녀의 세계관에 푹 빠져 있었는데
최근에 소노 아야코 세계관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신간이 나와 기쁜 마음으로 만나보았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라는 제목으로
기존에 출간했던 책들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문장들을 모은 에세이이다.

소노 아야코는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서
타인과의 인간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를 비롯해
나이 듦,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한창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인간관계를 중시 여기는 젊은이들이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낄 때 공감할 수 있는
소노 아야코만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가볍게 툭툭 내뱉는 듯한 할머니 작가의 말은
때로는 잔소리같이 때로는 따스한 손길같이
그러면서도 재치 있는 유머를 느끼게 했는데,
이번에 만나 본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는
그녀의 책들 중에서 주요한 문장을 골라
'소노 아야코가 이런 말을 했다'라고 간단히 전하는
소노 아야코 세계관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관계, 삶, 인간, 신 4장으로 나누어
각 주제에 어울리는 문장들을
이전의 책들에서 골라내었다.
이미 읽어 알고 있던 문장들은 한 번 더 읽으며 반가웠고,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의 문장은 새로운 기쁨이 되었다.

관계와 삶을 통해서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인간 파트에서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어떤 종교적 이야기는
마지막 파트에 담으며 인생을 투과하는
소노 아야코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인간관계에 대한 그녀의 통찰은
언제나 마음에 남는다.
타인의 시선 아래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은
때로는 그 때문에 무리하거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소노 아야코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그대로"
"무엇을 부러 더 하지 않아도 되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평가나 측정이 아닌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대를 버릴 것"이라는
얘기가 참 마음을 놓이게 한다.

어쩌면 내놓지 못한 속마음을
그녀가 대신 얘기해 줘서 거기서 오는 후련함이
소노 아야코의 글에 빠지게 하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 앞에서 이토록 담백한 사람이 또 있을까?
이토록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호쾌할 수 있을까?
소노 아야코를 볼 때면 살아온 시간이 가져온
단단함이라는 뿌리가 얼마나 나 자신을
튼튼하게 만드는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관계에 지치고 기대에 벅찰 때면
소노 아야코의 얘기를 떠올리며 중심을 바로잡는다.
삶이라는 흐름에서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며
올바른 시선으로 '나'를 곧추세울 수 있게 말이다.
그런 심호흡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그녀의 글은
나를 중심으로 여기 되, 스스로를 타자화함으로써
오히려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늘 기대 그 이상의 깨달음을 주는 나의 영원한 선생,
소노 아야코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압축한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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