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랜프 1 - 거룩한 땅의 수호자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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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생명체의 등장으로 파괴된 지구.

그 속에서 유일한 희망을 가진 존재가 태어났다.

바로 움스크린에서 였는데,

이는 여성의 자궁을 복제하여 만든 것으로

스크린 형태로 옮겨 보이게 한 후

그 속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그 속에서 태아를 키우고 태어나게 한다.

임신의 위험, 고통에서 벗어나

더 많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건강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프로젝트로

과연 폐허가 된 지구와 얼마 남지 않은 인류를

이 존재가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존재가 가지는 의미는 인간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홀랜프라는 외계 생명체의 침략으로

인류의 대부분이 사망하고

폐허가 된 지구에 남아있는 인간들은

연합하여 여전히 홀랜프와 싸우기도 하고,

일부는 홀랜프에 흡수되어 페카터모리가 되기도 한다.


위기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7명의 아이들이 준비되었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온 최 박사는

자신의 아들 내외에게서 얻은 두 명의 손녀와

자신이 만든 움스크린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아이들,

그리고 한때는 함께 일했던 제자인 선우민 사범의

아들인 선우필에게서 숨겨진 잠재력을 보고

그들을 통해 위기에 빠질 미래의 지구를 구하고자 한다.


낯선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소설은 많다.

파괴되어 황폐화된 지구, 생명을 위협받는

얼마 남지 않은 인류의 모습은

여느 영화나 소설에서도 종종 만나보았는데,

이번에 만나본 《홀랜프》는 미래를 예견하고

그것을 미리 대비하고 준비한 최 박사의

프로젝트와 그를 수행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보다 생생하면서도 차원이 다른 광범위한 스케일의

SF 소설을 선보이고 있었다.


홀랜프는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그들이 쏘는 빛 하나 만으로도 순식간에

사람들을 파괴할 수 있고, 그들의 엄청난 공격력은

순식간에 지구를 '다시는 인간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만들어 놓는다.

그 허물어져가는 와중에 미리 준비해둔 벙커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은

자신을 훈련시키고 노력하며 홀랜프에 대응해나갈

힘을 키워나간다.


평범한 학생처럼 보이는 이들에게는

각기 다른 능력이 있었는데,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아이들이 살고 있던

터전을 한순간에 잃고 고립된 공간에서

힘을 키워나가며 서로 힘이 되는 모습은

한 편의 성장 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5세대 한국계 미국인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하는 일을 했던 작가는

여러 단편영화를 촬영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영화를 제작하였고 이는 뉴욕 시네마 영화제에

초청받아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활성화된 SF 장르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자란 작가는 한국형 SF 소설을

개척하고자 했는데, 바로 그 첫 번째 장편소설이

바로 이번에 만나보게 된 《홀랜프》이다.


한국형 장르소설이라고 하면

좀비나 먼 미래의 공상과학을 배경으로

기억을 조작하거나 신체가 존재하지 않는 등의

제한된 소재가 대부분이었다.

외계 생명체의 등장과 더불어

이와 맞서는 인간들의 모습 또한

단순히 평범한 모습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고 키워진 움스크린의 아이들과

새로운 시대의 아담과 이브과 되어줄

'유일하고 온전한 인간'의 모습인

선우필과 리브라는 존재를 통해

더욱 그 차이를 부각시킨다.


움스크린으로 태어나긴 했지만,

선우희는 선우필과 리브의 아이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자, 희망으로 묘사되고 있다.


모든 것이 가공되고 만들어지고,

계획 아래 이루어진 이 시대.

가장 느리고 어쩌면 뒤처질 수 있었던

선우필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인물로

외계 생물체의 침공 이후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럼에도 결국 사람이 이긴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전하는 것도 같았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외계 괴생물체의 침공 이후,

벙커에서 시간을 보내며 능력을 키우는 아이들과

그 속에서 태어난 '선우희'라는 존재가 자라라는 과정은

홀랜프 1권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한

희망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낸

전초전으로 느껴졌다.

홀랜프와의 마지막 전쟁을 앞두고 준비하는 인류 연합과

벙커에서 나온 아이들이 과연 모두를

구원할 수 있을지를 더욱 기대하게 했다.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자랄지, 어떻게 변할지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그만큼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부분도 많은데,

유일한 보호자이자 이들을 지도하는 서 집사와 함께

벙커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스스로 탈피하고 성장하는

성장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한 단계 진화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움스크린에서 태어나 '나 자신'이라는

존재만이 있었던 아이들에게

선우희라는 아기를 키우는 과정은

나의 것을 나누는 법을 배우게 하기도 했다.

부모라는 존재가 없었던 아이들이

보호자의 역할을 하며 '남은 인류'로서의 몫을

충분히 다 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렇게 멋지게 성장한 아이들이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메시아가 될 수 있을까?

이들이 그리는 이야기가 새로운 창세기가 될 수 있을까?


작가가 펼치는 이야기를 따라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고 아이들의 발걸음에

시선을 꽂는다.


서로 다른 힘을 가진 아이들,

홀로 분리되었던 시간을 보낸 선우필과

그가 존재조차 알지 못한 자신의 아이

선우희와의 조우는 어떻게 이루어질지

2권도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영상을 만든 작가답게 장면 장면을 읽으며

그대로 영상화가 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광대한 스케일의 SF 소설이었다.


"이 글은 샘터사로부터 물방울서평단 활동을 위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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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프 1 - 거룩한 땅의 수호자
사이먼 케이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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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스크린에서 태어난 세상의 마지막 희망. 멸망된 지구와 인류를 벙커속의 아이들이 구할 수 있을까? 한층 광범위한 스케일을 느낄 수 있는 본격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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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가 - 멈춰버린 삶을 활력 있게 바꾸는 인생의 다섯 기둥
코리 키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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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바삐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번아웃 등

정신건강에 있어서 '지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정의하지 않는 이상 인식하지 않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에모리대학교의 사회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사람의 정신건강 수준을 설명하는

활력 Flourishing과 시들함 Languishing이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읽게 된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가》는

시들함 Languishing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우울증이나 번아웃과는 다른 시들함에 대한

정의와 함께 이를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

북극성처럼 이정표를 제시해 주는

다섯 가지 요소를 소개함으로써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한 새로운 정의,

'좋은 삶'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었다.


건강이라는 것이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듯

정신건강은 단지 정신질환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활력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며

저자는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인

활력과 시들함에 대해서 정의했다.

저자가 정의하는 활력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 우리를 좋은 정신건강으로

이끄는지 연구하면서

심리적·관계적·사회적 '기능'을 개선하면

근본적으로 웰빙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런 좋은 건강 상태를 '활력 Flourishing'으로

정의했는데 이런 정서적 웰빙이 제 기능을 하면

기분도 좋아지고 삶의 만족감이 깊어지게 된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다양한 연령대에서 '시들함'을 겪게 됐다.

내가 '시들함에 빠졌는지' 알지 못한 채

무기력함에 빠져있는 이들도 있는데,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시들함 체크리스트'를 제공하여

'나도 시들함에 빠져버렸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질문을 읽고 체크하며 시들함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는데,

우울증이나 번아웃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삶의 재미를 못 느끼고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면

나의 이 감정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는

과정이 될 수 있겠다.

(나도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체크해 봤다)


저자는 이 시들함에서 벗어나 활력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1부에서는 시들함에 대한 인식과

어떤 사람이 시들함에 빠지는지,

어쩌다가 시들함에 빠지게 되는지

시들함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한다.

1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한

재조명이었는데

'행복'이라는 것도 감정의 한 종류일 뿐

그것이 변함없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지나치게 행복에 주목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였다.


2부에서는 활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인생의 다섯 가지 기둥을 상세하게 살펴보고 있는데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배움: 자기 성장의 이야기 만들기

💛관계: 따스하고 신뢰하는 유대 맺기

💛영성: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굴곡 받아들이기

💛목적: 타인과 세상에 의미 있게 기여하는 삶

💛놀이: 일상을 벗어난 시간


시들함을 개인적이자

전 세계적인 공중보건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활력으로 변화하기 위해

우리가 북극성처럼 이정표이자 베이스캠프로

삼을 수 있는 다섯 가지를 제시함으로써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다.


다섯 가지 요소 중에서 무엇보다

와닿았던 부분은 '배움과 놀이'였다.

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을 지나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나와는 먼 이야기라

인식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이 두 가지인데,

이것이 인생의 활력을 가져오는 요소가 된다니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흔히 우리가 뇌의 기능이 나이가 들수록

퇴화된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뇌는 사용할수록

(시간이 갈수록) 더욱 발달한다고 한다

40대 이후로도 충분히 뇌의 기능은 발달할 수 있고

그런 점을 생각했을 때 저자가 말한

'배움'이라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요소인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로 인한 자극이

새로운 활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인지도 모르겠다.


웰빙을 증진하고 자아 과잉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비체계적인 즐거움을 주는 '놀이'는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으로

'꼭 놀이를 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놀이를 통해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근육인

상상력과 다시 연결될 수 있고

아름다움의 진가를 다시 발견하도록 하며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높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그 필요성을 인식시켜주었다.

수동적 여가활동이 아닌

능동적인 여가활동은 특히나 강조했는데,

의미 있는 경험을 통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느낌으로써 진짜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추천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중요한가?

무엇이 진짜 행복이고,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했던 책이었다.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던 이 시들함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나아가 이를 활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정표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글은 더퀘스트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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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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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의 소설가이자 영화배우, 번역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천쓰홍의

새로운 작품이 출간되었다.

다섯 명의 누나를 둔 천톈홍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전작 《귀신들의 땅》은

천 씨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타이완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보여주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타이완 최고의

양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금정상 문학 부문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작품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12개 언어로 출간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작품 《67번째 천산갑》을 통해서는

동성애자인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었는데

단순히 동성애에 대한 인물들의 서사가 아닌

고통을 함께하는 주인공들의 나아가는 길을

보여줌으로써 함께 연대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만의 시선으로 따스하게 담아내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동성혼이 최초로 합법화된

타이완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향한 억압과 고난,

차가운 시선이 남겨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작 《귀신들의 땅》을 통해서도

자신의 고향을 배경으로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옮긴 듯한

자전적 느낌을 주었던 작가는

본격적으로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동지 문학을 추구하는 작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로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그'와 '그녀'는

어린 시절 매트리스 CF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인연이 이어지게 된다.

산속에 살던 수줍은 소년인 그와

CF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가 된 그녀는

자신들에게 던져지는 어떤 비뚤어진 시선과

현실에서 고통을 느끼지만 묵묵하게 걸어나간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가족으로부터도

상처를 받게 된 그가 홀로서기를 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은

상처 입은 이가 어떻게 일어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비참한 현실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었다.


CF에 출연하고 스타가 된 그녀 역시

그녀를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 앞에

많은 고통을 받아오고 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엄마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CF를 비롯해

방송일을 시작했던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의 이미지를 소모하는 사람들(특히 남자들) 앞에서

불편하고 노골적인 놀림과 시선을 받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남자라는 성별 아래

어쩌면 잔인하게 짓밟히면서도 부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꿋꿋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유약하지만 누구보다도 강하게 보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찍었던 CF를 찍기 위해

감독을 비롯해 그들은 산속에 있는

그의 집에 방문하게 되고,

고가에 천산갑 비늘을 팔기 위해 양식하던

그의 집에 있는 천산갑들이 수줍음을 굉장히

많이 타는 동물임에도 그에게는 주저 없이 붙는

기이한 모습을 보며 감독은 그와 그녀,

천산갑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찍었던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을 타고,

그때 당시에는 영화제에 가지는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소년과 소녀였던 그들이

나이가 지긋이 들었던 지금의 순간,

그 영화가 다시 고화질로 복원되어 재상영한다는 소식에

그와 그녀는 과거에도 방문하지 못했던

낭트로 발걸음을 향하게 된다.

낭트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늘 조용히 듣기만 하고 말이 없던 그와

늘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던 그녀는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풀어가며 추억하고,

찾고자 했던 그녀의 소중한 이를 함께 추적해나간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그'와 '그녀'는

이름도 없이 등장한다.

답답할만치 수많은 고통들을

막연하게 받아들이는 그와 그녀는

다른 이들 앞에서는 솔직할 수 없지만

서로 앞에서는 솔직한 하나의 인간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내어 보여줄 수 있다.

서로의 가까이에서 서로의 고통을 나눠주며

함께 나아가는 길은 서로가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남성과 여성, 이성 사이의 감정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서로에 대한 호감과 집착, 소유 등

어떤 것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이 아닌데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굉장히 단편적인 표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와 그녀의 관계는 연인도 가족도 아니면서도

어쩌면 가족보다도 서로를 더 편해하고

자신을 누구보다 더 이해하는 관계로

이 또한 다른 종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늘 외로웠던 그와 그녀,

그들은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었고

지쳐도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그들이

서로 함께 눕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잠에 빠지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안락함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좁다란 그의 집, 무엇 하나 제대로 놓여 있지

않은 그 공간은 그를 집보다 밖으로 길로 내몰곤 한다.

세상이 그를 보는 시선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바르지 않다, 잘못되었다, 이상하다, 변태다 하는

그런 시선들이 가두는 답답함이 마치

쉴 곳 없는 '집'이라는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와 그녀가 낭트를 향해 가는 여정에서

수없이 시간은 과거의 그들에게로 향한다.

힘들고 방황했던 시간, 때로는 행복했던 시간들은

하나하나의 추억이 되어 그들이 걸어갈 길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었다.

끝내 대단한 '안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만의 작별을 할 수 있었던 그들의 여정이

끝에는 아름다운 마침표가 되기를 바랐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꺼냄으로써

소외되고 차별받았던 동지들에게 힘을 주고,

이들이 처한 현실을 대중들에게도

제대로 알리고자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천쓰홍의 소설은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각 인물들이 가진 이야기의 깊이가 있어서 좋다.

장이 진행될수록 펼쳐지는 이야기의 깊이가

그가 근본적으로 하고자 한 이야기를

더욱 진하게 알리는 것 같아서 더욱 좋았던 작품이었다.


동성애에 대해서 불편한 시선을 가진 이들에게는

'동성애'라는 어떤 틀에 갇힌 이미지보다는

'한 명의 사람'이야기로 고통을 이겨내가는 과정을

담았다는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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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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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2년 전이 되었다.

제법 긴 시간을 치매를 앓으며 요양센터에서

보내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없이 치러지는 장례절차 중

엄마와 삼촌, 이모를 비롯해

남매들의 가장 큰 화두는

아무래도 할머니를 '어떻게 모실지'였던 것 같다.


원래는 집안의 문중들이 모두 모인

가족묘가 선산에 있었는데

자식들의 나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아이들(후손) 대까지 책임을 물려줄 수 없다'라는

의견 아래 사촌 육촌들이 모두 모여

오래된 조상들을 파묘하여

선산과 가족묘를 정리한 뒤로는

'다 같이 모셔야 할 장소'가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남매들의 뜻을 모았던 것이었다.


그래도 한 번씩 가까이에 두고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한 번에 뿌리기엔 사라지는 게 싫어서

엄마와 삼촌, 이모가 선택한 방법은

집에서도 가까운 시에서 운영하는

연화장에 있는 '자연장' 이었다.

일정 기간 동안에 분골한 후 땅에 묻고

그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서 그 자리는 다시

비워지게 되는 방식이었는데


곁에 두고 싶어 했던 모두의 의견과

한 번씩 찾아가서 인사하고 기념할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자연장 장소에 모셔진 할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빈틈없이 빼곡하게 늘어나는

할머니의 동료(?) 분들을 보고 있자니

이 작은 땅덩이에서 앞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질 텐데

매장 형태의 장례풍습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제 이혼합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

《결혼상대는 추첨으로》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사회문제를 다뤄온

가키야 미우는 이번 신작

《파묘 대소동》을 통해 저출산과 노령화,

젠더 이슈까지를 아우르는 묫자리 이야기를 다루었다.


소설은 마쓰오 가문과

나카바야시 가문의 묫자리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문의 여러 인물들의 시선에서 펼쳐지고 있다.

작품의 시작은 사쓰키의 시어머니인

요시코가 투병 끝에 사망하기 전

'자신은 가문의 묘가 아닌 수목장으로 해달라'라고

유언을 남기면서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의견 차에서부터 시작된다.


남편과의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고, 큰 문제도 없었는데

죽기 직전 남긴 유언이 '마쓰오 가문의 묘에는

죽어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니 말이다.

어머니의 장례를 준비하던 남매들은

서로 분분한 의견 속에서 어머니가 남긴

유언의 의미를 각기 입장에서 해석하기 시작한다.


사쓰키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또 한 사람의 여자의 입장에서

시어머니가 남긴 유언이 공감이 가기도 하는데,

때마침 결혼을 앞둔 딸의 '결혼 후 성 문제'로

인해서도 고민이 더해지며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사람의 유언이 아닌

세대와 성별에 따른 의견 차이로 그 문제를 확대해간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도 마찬가지이고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으로 바뀐다.

하물며 결혼한 여자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여권에 본인의 성 옆에 wife of ***라는 식으로

남편의 성을 함께 표기되고 있고 말이다.

아이를 낳고 나면 선택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당연하듯 아빠의 성을 따르기도 하며,

엄마의 성을 사용하는 아이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남성중심주의의 제도와 인식 아래에서

소설 속의 일본 사회는 묫자리 문제까지 대두하게 된다.

가문의 묘, 가족묘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뿐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관리 주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까지로 다양한 문제들이 펼쳐지며

저출생 고령화와 젠더 문제까지

다채롭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깨어있는 엄마의 모습인 사쓰키도

둘째 딸의 남자친구인 사토루 앞에서는

경우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가문의 분위기에서

노후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을 채

절에 구좌당 백만 엔씩도 주저 없이 내어놓으려는

사토루의 아버지도 있다.


아들이 아닌 딸이라서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없다거나,

그것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세대의 모습에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렇다 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은 소극적인 반항 같아 보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인 줄 알았던 남자친구가

사실은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로 인해 멀어지는 모습은 꼭 젠더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애초에 맞지 않았던 것이

젠더적인 문제를 계기로 폭발하기도 한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오래 지속되온 '그래왔었던' 불편함에 대해서

다시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결혼 후 바꾸는 성에 대한 문제'나

'가족묘에 들어갈지 나 관리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이런 문제들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인

저출생, 노령화에 대해서 찾아가게 하고 있다.


사쓰키의 딸인 마키바와 시호는

가문의 가장 어린 손녀대 인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세대와 젠더의 문제들을

자신의 입장에서 지혜롭게 돌파해 나간다.

그들의 세대가 바꾸어갈 모습은

앞으로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기대하게 했다.


현재는 대두되지 않는 문제들도

지금의 젊은 세대가 나이가 들어 노령세대가 되면

새로이 다른 문제들로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의 '상식'이 먼 시간이 지난 후에도

'상식'일 수 없는 것처럼

그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할이나 의미가 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로 이 포인트를 말하고자 한 것 같다.

마쓰오 가문과 나카바야시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시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하는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취해야 할 자세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

묫자리에 대한 것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과

그 '마음의 편안함'을 위한 산 자들의 욕심인 것 같다.

좁아져가는 땅덩이, 점차 늘어나는 망자들의 공간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엔딩노트를 나도 지금부터 꾸준히

업데이트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리얼리티 한 묘사와 설정으로

읽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가키야미우의 작품!

문화가 다르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고 가족들끼리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면 좋을 것 같은

그런 작품이었다.


"이 글은 문예춘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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