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운동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 10년 차 망원동 트레이너의 운동과 함께 사는 법
박정은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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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바디프로필' 유행이 그다음을 이었으며

이제는 비만을 치료할 수 있는

삭센다 위고비 등에 대한 인기가

SNS를 뜨겁게 하고 있다.


덜먹고 더 움직이면 자연스레 살이 빠지고

건강과 보기에도 좋은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건강'보다는 보이는 '미'에 대한

초점이 점점 강해져서 인지

몇 kg이고 하는 미용 몸무게나 치수,

보이는 근육이나 마름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건강이라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는데, 우리는 건강의 기준을

수치나 보이는 어떤 일정한 형태로 인식하고

정작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렵고 힘든 것' '귀찮고 잘하기 힘든 것'으로 생각하며

시작하기조차 어려운 높은 진입장벽으로

여기곤 한다.


나 역시 앓고 있는 질환의 치료로

(보다 건강해지기 위해)

약을 먹게 되면서, 그 약을 먹으면서

주요하게 발생하는 부작용 중 하나인

'살이 찌는' 것을 맞이하고 있다.

처음 1~2kg은 그럴 수 있다고 넘겼는데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꾸준하게 1~1.5kg씩 살이 찌다 보니

어느새 약을 먹기 전에 비해

6~7kg 정도 살이 쪄버리고 말았다.


투약 초반에는 살이 찔 수 있다는 얘기에도

'건강이 최우선이지, 살찌는 게 대수야' 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달라지는 옷 태나 겉으로 보이는

울퉁불퉁하게 붙는 살을 보고 있자니

어떤 날은 '그래도 건강은 찾고 있으니 다행이야' 싶다가

어떤 날은 붙어버린 살로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몸에 대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좋아 보이는 몸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것 같다.


특히나 건강한 몸을 위해서 하는 운동보다도

'먹는 걸 줄인다'던가 '보조제 등의 도움을 받는' 등

쉬운 방법을 선택하면서 오히려 비뚤어진

몸이 균형을 자초하곤 하는데,

한창 붙어버린 몸에 자신감이 떨어져갈 무렵

10년 차 망원동 트레이너이자

운동하는 사람인 박정은 작가의

《우리는 운동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를

만나보게 되었다.


구기 종목 위주의 운동을 하다가

대학교에 오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운동이나

신체 관련된 이론들을 배우면서

트레이너로 활동하게 된 작가는

자신이 운동을 하고 지도하면서 느낀

몸에 대한 올바른 시선이나

좋은 몸을 만드는 방법,

시작이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운동을 주저하는 이들에게

운동을 가볍고 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역시도 운동한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찍어봤다는 바디프로필을

찍어본 경험이 있고,

다양한 센터에서 근무하며 회원들과 마주하며

느꼈던 다양한 운동 관련된 생각들을

차분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전하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건강이나 운동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

무리하지 않고 회복할 수 있는 선에서 하는 것,

또 좋아 보이는 몸과 달리 비뚤어진 방법보다는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태도,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넘어가는

조금은 '힘을 빼는 방법' 등

어렵고 힘들어서 운동을 쉽게 포기하고

시작이 어려웠던 이들에게

운동에게 다가가는 진입장벽을 낮추고

오해했던 몸에 대한 시선을

다듬는 방법을 전하고 있었다.


몸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책의 후반부에서는

지금 일하는 센터의 공간을 마련하고 준비하기까지,

또 트레이너라는 직업으로 운동을 지도하면서

일과 휴식의 균형 사이에서 흔들렸던 경험까지

상세하게 담으며 '건강한 몸' '건강한 운동'이 무엇인지

제대로 일깨우는 기회를 제공했다.


'어떤 운동을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삶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또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지속하기 위해

저자는 쉽고 간단한 습관으로서의

운동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책의 각 챕터마다 한 가지씩

더 나은 삶을 위한 쉽고 간단한 운동 습관

만드는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일반적으로 '운동'에

가볍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


작가가 소개한 운동습관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블루라이트를 벗어나 햇빛 샤워하기

✅ 휴대폰을 꺼 두는 질 좋은 휴식 시간 늘리기

✅ 나만의 초록 팔레트 만들기

✅ '흠흠~' 허밍하기

✅ 방 청소하며 스트레칭하기

✅ 무기력한 날엔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기

✅ 충분히 오래 씹으며 천천히 먹기

✅ 유난히 피곤한 날엔 16시간 단식해보기

✅ 지구를 위해 한 끼는 채식 밥상으로 먹기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은

어떤 날씨나 상황에 관계없이 정말 꾸준히 하고 있는데,

막상 그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운동을 하세요?"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이들에게 쌓인 운동하는 습관은 사실 대단하거나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제대로 바라보고

또 건강을 생각해서 내딛는 한두 가지의

작은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이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 나머지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작가는 자신만의 섬세하면서도 따스한 말로

진지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설득한다.


한동안 보이는 외적인 포인트에 치우쳐

건강이라는 제일 중요한 것에 대한 생각을

이만큼 뒤로 미루었다.

내 몸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미워만 하면서

변화를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던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을 찾을 수 있는 시각을

다시 찾아준 그런 책이었다.


작가의 얘기들을 읽고 나니,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다시 움직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인과의 비교나

겉으로 보이는 어떤 획일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스스로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을 가지는 게 제일 필요할 것 같다.


삶은 내 뜻대로 할 수 없지만,

내 인생에서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결심이자 움직임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바로 나타나는 변화를 줄 수 있는

가장 작지만 큰 원동력인 운동,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 글은 샘터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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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루코와 루이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윤은혜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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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줘"라는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내가 마주한 가장 난처하고 힘든 순간

친한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서주었던 친구를 위해

그 친구가 내민 구조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데루코와 루이의 새 출발은 바로 거기서부터였다.


일흔 살이라는 나이는 누가 봐도 노인.

인생의 정점을 지나 이제는 저물어가는 해처럼,

일상에 익숙하고 떨어져가는 체력에 순응하며

노-인이라 부르면 마치 두 팔을 허우적거리는

좀비를 떠올리곤 한다.


부인이라는 존재를 가정부처럼 생각하는

가부장적 남편을 둔 데루코.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고 있고

답답한 건 딱 질색인데

충동적으로 입소한 노인 아파트에서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아

따돌림을 받고 있던 루이.

그녀들은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는 공통점 외에는

외모도 성격도 정반대이지만,

비가 많이 오던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날

불어넘친 물 때문에 한 번의 스침이 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성인이 되어 마주한 동창회에서

난처한 상황에 빠진 데루코를 루이가 구출해 내며

지금처럼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새로움이 설렘보다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는 나이,

그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탈출을 감행한

데루코와 루이는 정해진 곳도 도움을 줄 이도 없는

낯선 곳으로 가게 된다.

탈출을 앞두고도 중간에 먹을 도시락을 챙기고,

옷과 식기류를 포함해 드라이버까지 가방에 넣은

데루코가 확신의 J라면

'도와줘'라는 요청 이후 자신을 괴롭히던

파벌의 당사자들 방문 앞에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라는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립스틱으로 엑스 자를 그리고 탈출한 루이는

만카(만화카페) 비즈호(비즈니스 호텔)라는

줄임말을 쓰는 요즘 스타일의 할머니이자

계획이라고는 조금도 세우지 않는 즉흥적인 P.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그녀들은

'함께한다'는 사실을 가장 큰 힘으로

그녀들의 새 출발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난다.


확신의 J인 줄 알았던 데루코가 이끈 곳은

휴가지로 많이 가는 유명한 휴양지의

산속에 있는 별장촌.

그녀는 인적이 드물고 한동안 방치된 듯한

별장의 문을 드라이버로 열어버린다.

맞다. 그녀들은 다른 사람의 별장을

무단으로 침입한 것이다.


두 여자의 우정과 일탈을 그린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오마주로 한 이 작품은

원작에서 두 여자가 일탈(범죄)를 저지르고,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 이야기를 담았다면

《데루코와 루이》의 두 여성은

조금은 귀엽고 조금은 통쾌하며

조금은 소심한 작은 행복을 그리고 있다.


휴게소에서 자리다툼이 일어나 말싸움을 벌이게 된

젊은 남자 앞에서 문신 모양의 팔 토시를 한 팔을

걷어 보이려다가 금세 들통이 난다던가,

호기롭게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간 다른 이의 별장에서는

5개월 동안 생활을 하지만

주인의 물건은 손대지 않고 집안 청소를 하며

그곳에서는 새로운 일을 하며 돈을 벌기도 한다.

자신을 파출부 취급한 남편에게

이별의 편지를 남기고 떠나왔지만

잠깐 물건을 찾으러 갔던 엉망이 된 집안에서

쓸쓸하게 사 온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려는 모습에

왈칵 눈물을 짓기도 한다.

거기다 바람을 피웠던 내연녀의 이니셜과 생일로

비밀번호를 설정한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끼다가도,

그의 연금 전부도 아닌 일부만 헐어내어 나오는

그녀들이 저지른 일탈은 델마와 루이스에 비하면

귀엽고 아기자기까지 할 정도이다.


더 이상 새로울 무언가가 없을 거라고

노인들에게는 즐거움이나 하고 싶은 일,

자존심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그녀들은 일흔 살도 얼마든지 새로운 무언가를 하며

반짝이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설레는 새로운 만남,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가슴속 부채의 해소,

처음으로 느끼는 육체노동의 어려움까지

힘들고 피곤함을 느끼지만

이 또한 살아있다는 즐거움으로 그녀들은 씩씩하게

인생 2회차의 새 출발을 받아들인 것이다.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서로를 위하고 이해해 주는 데루코와 루이는

새로운 한 가족으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자는 남자가 없으면 안 돼'

'나이 들어서 누구에게 기대려고' 하는

고정적인 시선을 통쾌하게 깨부숴버리는

반짝이는 언니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지루했던 일상에서 탈출을 고하면서도

맛있는 메뉴들로 자신들을 위한 도시락을 쌌던 것처럼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가장 소중한 나를 위해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여유를 가지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멋지게 나이들 수 있을까?

이렇게 과감하게 새 출발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들이 나이가 들었기에

그 인생의 쌓인 시간이 준 용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라는

말을 떠올리며 데루코와 루이가 펼쳐나가는

새로운 반짝임을 만끽해 본다.


"이 글은 필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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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심너울 지음 / 한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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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한국형 SF 문학의 시대이다.

알 수 없는 우주의 생명체,

파괴된 지구를 떠올리게 하는

막연한 '공상과학'과 다르게

오늘날 현대문학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오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한국형 SF 소설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SF소설 하면 배경이 되는 미래나 우주,

과학과 관련된 내용들 때문인지

실제 연구를 한 연구가 등이 조사를 기본으로 해서

거기에 소설적 요소를 더한 작품들이 많았다.


심너울 작가는 심리학을 전공한 이력답게

지난 작품인 《갈아만든 천국》에서도

현실보다 리얼하면서도 판타지를 가득 담은,

그러면서도 사회 풍자를 놓지 않았는데

그런 심너울 작가의 SF 단편을 모은 핸디북 소설집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를 만나보았다.


작가는 워낙 한국 SF 문학의 3세대 대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데다가

전작인 《갈아만든 천국》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단편집에 대한 기대도 컸다.

전작은 21세기 한국에 마력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그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면서

가지고 태어나는 '마력'이 또 다른 '권력'이 되며

그 욕심 앞에 변하고 망가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후회를 통해 지금의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과 풍자를 재미있게 풀어냈었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작가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쓴 단편들 중에서도

특히 SF 적인 작품을 모은 책으로,

심너울 작가의 SF를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한국형 SF 소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그 시작으로 만나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소설집에는 총 9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는

가볍게는 재미로만 보던 MBTI가

본격적인 일자리 지원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심리학을 전공해 오던

'마음'이 이에 대한 부정과 의심을 바탕으로

연구에 본격적으로 파고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아이러니한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는데

인공지능이 정치까지 확장이 되면서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졌던 A가

본격적으로 KCAI의 도움을 받아

영웅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영웅의 탄생〉은 인간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는 듯해

씁쓸하기까지 했다.


〈싹둑〉을 통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어

동기화되지 않는 타자를 두러워하던

올리브가 아이리스를 만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어떤 의미의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신처럼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이

진부함으로 다가왔을 때의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을 마주한 이야기

〈클리셰〉는 인간이 가지는 감정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내 손안의 영웅, 핸디히어로〉는

자신만의 능력이라 생각했던 자력이

그마저도 B-의 능력으로,

발현한 능력만으로도 먹고 살기 힘든

웃픈현실이 먼 미래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허탈한 웃을 짓게 했다.


〈달에서 온 불법체류자〉는 작가의 고향인

마산을 배경으로 멀리 달에서 내려온

월인들과의 만남을 다뤘는데,

서로 다른 모습과 능력을 가진

지구인과 월인들의 다음 이야기가 절로 궁금해졌다.


〈키스의 기원〉은 서로 다른 연인이

외계인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끝내

사랑을 하는 해피엔딩을 보여주며

심너울 작가가 보여주는 SF 식 로맨스 같았다.


〈찰나의 기념비〉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어려웠는데,

모두가 찾아가는 어떤 목표 앞에서

기꺼이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료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을 하게 됐다.


마지막 단편은 소설집과 동명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였는데,

게임 개발과 게임 속에 심어진 주석을 따라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고

그 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 거듭난

두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IT업계에서 일을 했어서인지

일하는 이야기나 과정들이 예전을 떠올리게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편들을 통해서 작가는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시간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각각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과학'이나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사람들 간의 '상호 관계'에 맞춰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고 차가워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작가가 그린 미래에는

여전히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그것이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이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임을

잊지 말자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싶다.


심너울 작가답게 현실을 반영한 듯한

사회 풍자와 위트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전작에 이어서도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모습을 한 미래의 모습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다.


SF 장르는 어쩌면 지금도 과도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SF 작가들의 등장이,

그들이 그리는 먼 미래의 모습들이

우주에 있는 수많은 먼지 같은 별처럼

무수하게 많은 가능성과 다양성을 담고 있고

그 이야기들이 쌓이고 모이면

언젠가 한국형 SF라는 장르의 이야기라는

큰 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느리고 단단한 확장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키워가고 있는 작가의 저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SF 소설이었다.

단편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고,

각 이야기마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히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작가의 단편들이 앞으로도 이렇게 쌓여

또 다른 소실집으로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형 SF 소설의 탄탄한 기초가 될 작품을

다시 또 기대한다.


"이 글은 한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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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택배
히이라기 사나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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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활성화된 요즘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만큼

예상치 못한 선물이 왔을 때는

그 기쁨은 배가 되곤 한다.


무슨 물건인지 알지 못한 채 열어보는 과정은

선물한 사람이 나를 생각하며

시간을 할애하고 마음을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받게 되는 택배가

이미 세상을 떠난 죽은 이가 보낸

유품이 담겨있다면 어떨까?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보고 싶으면서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이 생전에 나를 위해

맡겨놓은 물건이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받아보게 될지

정말 그 마음이 상상만으로도 뭉클해진다.


천국택배가 있다.

원하는 대상과 장소, 원하는 물건을 맡기면

약속한 날짜에 원하는 대상에게

그 물건을 어떻게 해서든 전달을 해준다.

강 저편과 이쪽으로 나뉜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소중한 이에게 전하고픈 마음을 담은 물건을

전해주는 택배회사이다.


가벼운 미스터리부터 일상을 그린 따뜻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히이라기 사나카가 쓴 《천국에서 온 택배》는

세상을 떠난 이가 전하고픈 마음까지 배달해 주는

천국택배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일본에서는 3펀까지 출간되며 새로운 시리즈 소설로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번에 만나보게 된 작품은

이 천국택배의 첫 번째 이야기로

메마른 감정에 단비 같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따뜻한 힐링 소설이었다.


생과 사라는 갈림길은 정해져있지 않고

어느 날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날 수도

사고로 인해 회복이 어려워서 떠날 수도

또 불치병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다가

조용히 주변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다가 우연히 닿은 연락이

마지막 부고인 경우도 있고 말이다.


천국택배의 배달원 나나호시는

각기 사연을 가진 의뢰인의 물품을

대상자에게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무언가 녹음된 녹음테이프이기도 하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게임 기계도 있다.

어렸을 때의 장난스러운 숨바꼭질 같았던 편지,

무언가 미션을 지니고 준비물이 필요한

여러 명에게 보낸 편지도 있고 말이다.


각 사연을 가진 의뢰인들은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의 끝에서

세상을 떠난 자신을 알게 된 소중한 이를 위해

그를 위한 마음을 준비한 것이다.


무너지고 어긋나고 실망하고 무심했던 마음들은

의뢰인들이 남긴 편지, 물건들과 함께

택배 수령인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진짜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왜 사람은 떠나고 엇갈린 후에야

비로소 이렇게 진심이 가닿는 걸까?

안타깝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한껏 진심을 마음 가득히

표현하며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내가 맞이했던 이별은 고작해야

이사나 전학으로 인한 친구들 선생님과의 이별,

먼 친척의 작고 소식이었다.

직접 와닿는 슬픈 이별이 없었기에

남긴 이가 준 '추억'이라는 선물에 대해서도

미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고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나고

곁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직접 겪어보니

'추억'이 가진 단단한 힘에 대해서

전과는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남아있는 이들은 떠난 이가 남겨놓은 추억을

야금야금 파먹으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당시에는 별 큰 의미가 아니었던 것 같았던

어떤 행동이나 말들은 남아있는 이가

어쩌면 평생을 살아갈 가장 큰 힘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 추억이 가진 힘을 이제 나는 믿고 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없고

언젠가는 정해진 운명이 다 한다면 떠나가게 될 텐데,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서 내가 남기고픈

나의 유품은 무엇인지, 누구에게 주고 싶은지

그리고 내가 함께 만들고픈 추억은 무엇인지

순간순간을 다시 곱씹는 시간도 되었다.


하루가 멀다가고 나를 찾아오는 택배 속

가장 의미 있는 택배가 되어줄 단 하나의 추억!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추억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모모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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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랍 속 작은 사치
이지수 지음 / 낮은산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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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근본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저런 조건을 따라 다다르는 결론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이다.

도달하고 싶은 어떤 부나 지위,

소유하고 싶은 물건이나 되고 싶은 사람,

그 많은 것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행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 행복과 관련되어

자신을 스스로 챙기는 이들이 많아지는데,

'행복'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명확하게 규정된 유형이 아니기에

행복에 다다른다는 것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만족도에 달려있다.


행복을 나타내는 말 중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소확행'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서 시작되었다.

소확행(일본어: 小確幸)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약칭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에서 따와 만든 말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수필집에서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등

대단하고 누가 봐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만족도를 주는 소소한 포인트를

그는 행복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 그의 책을 원서로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한 번역가이자,

사노 요코, 코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옮긴,

급기야 〈아무튼, 하루키〉를 쓴 이지수 작가가

고된 하루를 건너갈 징검돌이 되어 준

작은 사치들에 대해서 모아 쓴 글을 모아 책을 냈다.

《내 서랍 속 작은 사치》이다.


사치라는 것은 생존과는 별개로

필요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존재함으로 더 많은 만족감과

무언가를 버티는 힘이 될 수 있으며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한다는 사전적 정의 때문인지

뭔가 과소비의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사치'는

“오늘 하루의 생활 중 단 한 가지라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라며

그 자체의 절대적인 의미보다는

자신이 부여하는 가치에 '호사스러움, 사치'라는

의미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하루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작은 사치들을 소개하고 있다.


1장에서는 내 서랍 속 작은 호사들 이라는 이름으로

곁에 두고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여행지에서 구매한 재질과 모양이 마음에 드는 책갈피,

바르는 즉시 기분을 좋게 만들어줬던

사회 초년생 시절 사무실에 둔 핸드크림,

직접 고르고 달았던 집안의 조명,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듣기 위해 샀던 오디오 등

자신이 소유한 물건들에 대한 소개가 있다.


2장에서는 어떤 형태가 아닌

무형의 순간과 추억을 소개한다.

문을 걸어 잠그면 나만의 세상으로 변신하던 내 방,

뒤늦게 성인이 되어 다시 배운 피아노,

낯설고 방황했지만 뜻밖의 추억이 쌓였던 여행,

아이와 함께하는 짧은 산책길의 행복 등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을

'오늘의 기쁨'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3장에서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인생 속에서 마주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반려동물의 죽음, 유학 끝에 떠났던 여행에서 만난 사람,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환경에 대한 노력,

인터뷰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

독서 권태기를 극복한 계기,

불면증을 겪으며 들었던 생각 등


책의 시작은 어떤 '물건'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무형의 '순간'으로 연결되고

마지막에는 '사람'에게 다다르는 확장을 보여준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좋은 것,

그것이 물건이든 추억이든 사람이든

그 '작은 사치'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흘려버릴 수 있는 이 작은 알갱이들을

작가는 모으고 움켜쥐며 오늘의 기쁨이라 명명한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

좋은 것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마음,

그것이 꼭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누구나 '발견'을 한다면 기꺼이 얻을 수 있는

'사치'임을 작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나에게 기쁨과 힘이 되어주는

작은 사치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주는 순간이 있었는가?

'사소한 작은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크고 거대한 행복이 아닌

아주 보통의 하루 속에서도

작지만 사소한 기쁨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내 안의 '기쁨 주파수'를 더욱 세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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