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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랍 속 작은 사치
이지수 지음 / 낮은산 / 2024년 8월
평점 :

인생의 근본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저런 조건을 따라 다다르는 결론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이다.
도달하고 싶은 어떤 부나 지위,
소유하고 싶은 물건이나 되고 싶은 사람,
그 많은 것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행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 행복과 관련되어
자신을 스스로 챙기는 이들이 많아지는데,
'행복'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명확하게 규정된 유형이 아니기에
행복에 다다른다는 것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만족도에 달려있다.
행복을 나타내는 말 중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소확행'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서 시작되었다.
소확행(일본어: 小確幸)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약칭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에서 따와 만든 말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수필집에서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등
대단하고 누가 봐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만족도를 주는 소소한 포인트를
그는 행복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 그의 책을 원서로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한 번역가이자,
사노 요코, 코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옮긴,
급기야 〈아무튼, 하루키〉를 쓴 이지수 작가가
고된 하루를 건너갈 징검돌이 되어 준
작은 사치들에 대해서 모아 쓴 글을 모아 책을 냈다.
《내 서랍 속 작은 사치》이다.
사치라는 것은 생존과는 별개로
필요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존재함으로 더 많은 만족감과
무언가를 버티는 힘이 될 수 있으며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한다는 사전적 정의 때문인지
뭔가 과소비의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사치'는
“오늘 하루의 생활 중 단 한 가지라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라며
그 자체의 절대적인 의미보다는
자신이 부여하는 가치에 '호사스러움, 사치'라는
의미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하루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작은 사치들을 소개하고 있다.
1장에서는 내 서랍 속 작은 호사들 이라는 이름으로
곁에 두고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여행지에서 구매한 재질과 모양이 마음에 드는 책갈피,
바르는 즉시 기분을 좋게 만들어줬던
사회 초년생 시절 사무실에 둔 핸드크림,
직접 고르고 달았던 집안의 조명,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듣기 위해 샀던 오디오 등
자신이 소유한 물건들에 대한 소개가 있다.
2장에서는 어떤 형태가 아닌
무형의 순간과 추억을 소개한다.
문을 걸어 잠그면 나만의 세상으로 변신하던 내 방,
뒤늦게 성인이 되어 다시 배운 피아노,
낯설고 방황했지만 뜻밖의 추억이 쌓였던 여행,
아이와 함께하는 짧은 산책길의 행복 등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을
'오늘의 기쁨'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3장에서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인생 속에서 마주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반려동물의 죽음, 유학 끝에 떠났던 여행에서 만난 사람,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환경에 대한 노력,
인터뷰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
독서 권태기를 극복한 계기,
불면증을 겪으며 들었던 생각 등
책의 시작은 어떤 '물건'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무형의 '순간'으로 연결되고
마지막에는 '사람'에게 다다르는 확장을 보여준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좋은 것,
그것이 물건이든 추억이든 사람이든
그 '작은 사치'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흘려버릴 수 있는 이 작은 알갱이들을
작가는 모으고 움켜쥐며 오늘의 기쁨이라 명명한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
좋은 것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마음,
그것이 꼭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누구나 '발견'을 한다면 기꺼이 얻을 수 있는
'사치'임을 작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나에게 기쁨과 힘이 되어주는
작은 사치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주는 순간이 있었는가?
'사소한 작은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크고 거대한 행복이 아닌
아주 보통의 하루 속에서도
작지만 사소한 기쁨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내 안의 '기쁨 주파수'를 더욱 세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