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심너울 지음 / 한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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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한국형 SF 문학의 시대이다.

알 수 없는 우주의 생명체,

파괴된 지구를 떠올리게 하는

막연한 '공상과학'과 다르게

오늘날 현대문학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오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한국형 SF 소설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SF소설 하면 배경이 되는 미래나 우주,

과학과 관련된 내용들 때문인지

실제 연구를 한 연구가 등이 조사를 기본으로 해서

거기에 소설적 요소를 더한 작품들이 많았다.


심너울 작가는 심리학을 전공한 이력답게

지난 작품인 《갈아만든 천국》에서도

현실보다 리얼하면서도 판타지를 가득 담은,

그러면서도 사회 풍자를 놓지 않았는데

그런 심너울 작가의 SF 단편을 모은 핸디북 소설집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를 만나보았다.


작가는 워낙 한국 SF 문학의 3세대 대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데다가

전작인 《갈아만든 천국》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단편집에 대한 기대도 컸다.

전작은 21세기 한국에 마력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그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면서

가지고 태어나는 '마력'이 또 다른 '권력'이 되며

그 욕심 앞에 변하고 망가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후회를 통해 지금의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과 풍자를 재미있게 풀어냈었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작가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쓴 단편들 중에서도

특히 SF 적인 작품을 모은 책으로,

심너울 작가의 SF를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한국형 SF 소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그 시작으로 만나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소설집에는 총 9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는

가볍게는 재미로만 보던 MBTI가

본격적인 일자리 지원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심리학을 전공해 오던

'마음'이 이에 대한 부정과 의심을 바탕으로

연구에 본격적으로 파고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아이러니한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는데

인공지능이 정치까지 확장이 되면서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졌던 A가

본격적으로 KCAI의 도움을 받아

영웅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영웅의 탄생〉은 인간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는 듯해

씁쓸하기까지 했다.


〈싹둑〉을 통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어

동기화되지 않는 타자를 두러워하던

올리브가 아이리스를 만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어떤 의미의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신처럼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이

진부함으로 다가왔을 때의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을 마주한 이야기

〈클리셰〉는 인간이 가지는 감정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내 손안의 영웅, 핸디히어로〉는

자신만의 능력이라 생각했던 자력이

그마저도 B-의 능력으로,

발현한 능력만으로도 먹고 살기 힘든

웃픈현실이 먼 미래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허탈한 웃을 짓게 했다.


〈달에서 온 불법체류자〉는 작가의 고향인

마산을 배경으로 멀리 달에서 내려온

월인들과의 만남을 다뤘는데,

서로 다른 모습과 능력을 가진

지구인과 월인들의 다음 이야기가 절로 궁금해졌다.


〈키스의 기원〉은 서로 다른 연인이

외계인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끝내

사랑을 하는 해피엔딩을 보여주며

심너울 작가가 보여주는 SF 식 로맨스 같았다.


〈찰나의 기념비〉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어려웠는데,

모두가 찾아가는 어떤 목표 앞에서

기꺼이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료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을 하게 됐다.


마지막 단편은 소설집과 동명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였는데,

게임 개발과 게임 속에 심어진 주석을 따라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고

그 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 거듭난

두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IT업계에서 일을 했어서인지

일하는 이야기나 과정들이 예전을 떠올리게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편들을 통해서 작가는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시간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각각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과학'이나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사람들 간의 '상호 관계'에 맞춰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고 차가워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작가가 그린 미래에는

여전히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그것이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이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임을

잊지 말자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싶다.


심너울 작가답게 현실을 반영한 듯한

사회 풍자와 위트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전작에 이어서도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모습을 한 미래의 모습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다.


SF 장르는 어쩌면 지금도 과도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SF 작가들의 등장이,

그들이 그리는 먼 미래의 모습들이

우주에 있는 수많은 먼지 같은 별처럼

무수하게 많은 가능성과 다양성을 담고 있고

그 이야기들이 쌓이고 모이면

언젠가 한국형 SF라는 장르의 이야기라는

큰 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느리고 단단한 확장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키워가고 있는 작가의 저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SF 소설이었다.

단편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고,

각 이야기마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히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작가의 단편들이 앞으로도 이렇게 쌓여

또 다른 소실집으로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형 SF 소설의 탄탄한 기초가 될 작품을

다시 또 기대한다.


"이 글은 한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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