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의 바다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3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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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오로지 나의 감과 바람에 의지한 채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모험은

인생이라는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운명'처럼 다가온 일련의 사건 앞에서

두렵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해온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며 성장해 나가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의미의 '용기'와

자신의 굳은 심지를 믿는 그 마음을 통해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돼!"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작품을 만났다.

팀 보울러의 《속삭임의 바다》이다.


외딴곳에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모라 섬.

이곳에서 나고 자란 헤티는 마을에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바로 바다유리를 통해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는

형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헤티를 보살피고 있는 할머니도,

또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친구인 탐도

헤티가 말하는 형상을 이해하고

보고 싶어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들과 다른' 헤티의 모습이

마치 '틀린'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오랜 시간 섬을 꾸려온 노인들을 비롯해

몇몇의 사람들에게 '이상한 아이'로

보이기 시작할 무렵

마을에서는 가장 의미 있었던 행사 날

뜻깊고 의미 있었던 '모라섬의 자랑'이

갑자기 찾아온 폭풍으로 인해 부서지고 만다.


모라섬의 자랑을 만들었던 이들의 일부이자,

현재까지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누구보다 입김이 센 퍼 노인은

자신이 며칠 전부터 꿔온 꿈이 있다며

'모라 섬을 향해 악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언 아닌 예언을 한다.


폭풍으로 아수라장이 된 섬 속에서

낯선 작은 배 한 척이 발견되고

그 속에서는 헤티가 바다유리를 통해서

본 모습을 한 노파가 나타난다.


퍼 노인을 비롯해 마을의 사람들은

발견된 노파를 구하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마을을 엉망으로 만들고 모라섬의 자랑을 부순

폭풍을 불러일으킨 것이 저 노파 탓이라며

그녀를 구하지 말자는 의견과

위험에 빠진 노파를 구해야 한다는 의견.


바다유리속에서 본 노파가 어쩐지

'자신을 찾기 위해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한 헤티는

반대 의견을 가진 마을의 노인들과 부딪치게 되고

상황은 악순환이 연속되듯 섬을 오랜 시간 지킨

노인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며

섬에 있는 주민들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고립된 섬이라는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았던 모라 섬.

폭풍으로 인해 그들과 외부를 유일하게 연결하고

섬을 위해 꼭 필요했던 배인 '모라섬의 자랑'이 파괴되고

이윽고 나타난 낯선 외지인의 등장 앞에서

사람들은 낯섦을 두려움으로 느끼며 배척하게 된다.


사고로 떠난 부모님의 사망 이후

줄곧 외로움을 느끼던 헤티는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은

바다유리를 통해 보았던 형상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궁금해하던 찰나에

등장한 낯선 노파에게서

어쩐지 알 수 없는 운명을 느끼고,

노파와 함께 자신의 작은 배인 '아기돌고래'를 타고

태어나 줄곧 벗어나지 않았던 모라섬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여정을 선택한다.


폭풍우가 가시지 않아, 파도는 연신

헤티의 작은 배를 흔들고 위협했지만

그 어려운 상황과 혼란스러운 심리상태에서도

헤티는 자신의 것을 낯선 노파에게 나누고

그녀를 보호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속삭임의 바다》를 쓴 팀 보울러는

리버보이로 잘 알려진 작가로,

성장소설을 다루며 많은 이들에게

따스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속삭임의 바다》를 통해서는

고립되고 폐쇄된 모라 섬이라는 공간에서

나고 자란 헤티라는 소녀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진정한 성장이란 무엇인지 감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바다유리를 통해 본 형상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헤티의 모습이나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노파를 위해

'이토록 헌신적인' 헤티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정하고 공감하는 무언의 룰이 있는

이 공간에서 타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을 당하는

헤티가 새로운 세상을 향한 마음을 키운 건

어쩌면 당연한 순리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어린 소녀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그 위험을 감수하고도 노파와 함께 모험을 떠나고

또 그 힘든 여정 속에서도

자신보다 유약한 존재를 지키며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것을 보며

진짜 운명을 향한 헤티의 뜨거운 열정 자체로도

얼마나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지 깨달았다.


이윽고 도착한 섬은 생각했던 곳보다 훨씬 먼,

노파가 떠나온 섬으로 그녀의 가족을 만나고

숨겨진 사연을 알게 되면서 풀리지 않았던

궁금증의 실마리가 해결되었는데,

이미 떠나올 때부터 마음먹었던 것처럼

헤티는 자신이 나고 자란 모라 섬으로 돌아가지 않고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이미 성장한 하나의 멋진 '운명체'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늘 가득했던 물음표를 섬을 떠나 바다를 모험하며

스스로 답을 찾은 듯해서 대견하기까지 했다.


용기 있는 한 소녀의 선택은 섬의 운명 또한 바꾸었고,

노파의 마지막과 헤티 자기 자신의

앞으로의 인생까지도 달라지게 했다.


무언가를 따르거나 정해진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가며

이윽고 다다른 헤티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소설을 따라가며 그려지는 바다의 풍경과 내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뜨겁게 피어오르는

헤티의 용기를 보고 있자니

흔들리는 현실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약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렬하면서도 신비로움을 그대로 담은

팀 보울러만의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청소년 소설 《속삭임의 바다》였다.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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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 소노 아야코 에세이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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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족들에게 던졌다.

나이와 성별, 혹은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이라는 것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가족들의 대답을 하나둘씩 모으다 보니

모두가 공감하는 포인트는 바로 '인간관계'였다.

서로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인간관계'란

풀어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 자신만의

담담한 생각을 전하는 소노 아야코가

자기 자신과 부모 자식 등 가족,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털어놓은 에세이

《인간관계》를 읽어보았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늘 마음에 와닿는

소노 아야코가 말하는 인간관계에는

내가 생각지 못했던 어떤 시각이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이전에 읽었던 이석원의 《2인조》를 읽으면서

타인과 세상이 아닌 나 자신에게로 돌리며

자신과 잘 지내는 법,

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이번에 읽은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먼저 다룬 '관계'는 다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평생 함께 해야 하는 사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나 마음, 시선은 신경 쓰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속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거나

자기 자신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결코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선천적인 고도근시로 인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젊은 날을 보내며, 자신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50대 중년층이 되어서였던 작가.

작가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시간의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며,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차별'이라든가 '배려'에 대한 부분에 대한 생각도

대다수의 여느 사람들과는

색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나'에게서 출발한 이야기는

이혼을 하게 된 부모님의 이야기를 거쳐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하더라도

온전히 이해하거나 잘 맞을 수 없는 부분,

서로 엇나갈 수밖에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점점 확대되어 전하는 이야기는

가족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로 이어지는데,

인간관계에 있어서 타인에게 기대하거나

내가 생각한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을 결정하고는

그 차이에서 관계의 서운함을 느낀다거나

돈이나 대가와 관련된 관계에 이르기까지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었다.


나 역시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완벽하게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관계를 곤란하게 하는 다양한 포인트를 이해하며

보다 겸허하게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들을

작가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큰 그림을 그렸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쉽지가 않았고

이로 인해 의도치 않은 단출한 관계,

누군가가 보기에는 한정되고 고립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지만

단출한 생활을 좋아하는 소노 아야코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성찰하며

작지만 단단하면서도 상처받지도 주지도 않는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인에게 기대하다가도 금세 실망하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다르게 받아들여진 내 모습에

속상해지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인간관계가 어떤 수치적인 것이나 절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맺고 끊음'에 모지지 못했던 것은

'많은 인간관계가 좋은 인간관계'라는 고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점점 나이가 갈수록 좁아지는 것 같은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내가 타인에게 그토록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타인에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님을 알고

시선과 평가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겠다는

마침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를 어느 위치에 세워둘 것인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잡아야 할

나의 태도는 어떤 모습인지

관계에 대한 정의를 모호하게나마

내릴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나다움'에 대해서 집중하게 되는데,

인간관계라는 큰 틀에서

타인뿐 아니라 나에게서 출발하는

관계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그려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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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파워 - 팬덤이 흔드는 시장과 진정성 마케팅
최원준 지음 / 파지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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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오빠!'를 외치며 열광하던 오빠부대를 지나 본격적인 '팬클럽'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문화를 따르는 것을 넘어 소비하는 이들이 생긴 90년대부터가 아닐까 싶다.

팬클럽, 팬덤이라 불리는 이들은 처음에는 특정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팬'이라는 이름으로 있었지만 '팬클럽'이라는 제도가 생기고 본격적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주체가 생기기 시작하며 이들을 통해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고자 하는 스타의 담당 매니지먼트사에서 팬클럽을 모집하고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본격적으로 '소비자'로서의 팬덤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는 지갑을 아낌없이 열고 투자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마케팅이 도입되면서 팬덤이 가진 힘은 점점 커지게 되었고 이 막강한 힘을 가진 '팬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팬덤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회사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누군가의 팬이었을 것이고 현재도 누군가의 팬으로 ing 중인 사람들도 있다.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쏟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 팬덤이라는 집단이 가진 가치에 집중해 어떤 마케팅 전략을 펼쳐야 할지, 그리고 도대체 이 팬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팬덤파워》 이다.

충성 고객과는 또 다른 팬덤, 팬덤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왜 팬덤이어야 하는지 팬덤의 종류는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팬덤에 대한 개념을 익히고 팬덤이라는 것이 형성되고 이들이 어떤 단계를 밟아가는지 팬덤 프레임워크를 이해하며 이것을 이용해 팬덤 프로세스를 운영하는 방법까지도 다루고 있었다.

책을 통해서 저자가 지속적으로 강조한 팬덤 마케팅의 포인트는 '진정성' 이었는데 결국은 수익을 내기 위함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기에 진심을 담은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포인트였다.

모든 사업과 상품, 서비스 등에 같은 방법으로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팬아이콘으로 정하고, 그 팬아이콘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도록 바라고 돕고자 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팬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들 팬덤의 파워와 가치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팬덤이 가진 가치에 대해서 잘 몰랐다면, 혹은 팬덤의 가치는 알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키워나가고 활용해야 할지 몰랐다면 《팬덤파워》를 통해 새로운 원동력을 얻기를 바란다.

"이 글은 파지트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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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산책 - 사유하는 방랑자 헤르만 헤세의 여행 철학
헤르만 헤세 지음, 김원형 편역 / 지콜론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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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한 숙박 서비스의 광고 카피에

가슴이 동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바쁜 현대사회, 쳇바퀴 돌듯 밥벌이를 하며

잠시 낼 수 있는 며칠간의 연차를 그러모아

'여행'이라는 이름의 휴가를 떠날 때

과연 현지인처럼 '제대로 살아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싶다.


원하는 날짜가 아닌 연차를 쓸 수 있는 날짜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비용의

항공권과 숙소를 가진 곳으로 떠나

이왕이면 최대한 긴 일정을 소화하며

중요하다는 스팟을 찍고 유명하다는 음식을 먹으며,

필수품이라는 기념품을 그득하게 가지고 돌아오면

여행인지 극기훈련인지 알 수 없는 기분에

돌아오고 나서도 '정말 휴가를 다녀온 게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행지에서 만난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하루 이틀의 기간이 아닌

오래도록 머물며 제대로 여행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며

'언제쯤 나도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부러움에 가득 찬 적이 있었다.


당장 향하지 못하는 여행에 대한 아쉬움은

누군가의 여행기록이자 후기인 사진과 영상을 통해

달래고 있었고, 그를 통해 내가 다음으로 향할

목적지를 정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떤 '목적'이 아닌 방향만을 가진 '목적지'였고

"휴가에 목표랄 게 뭐가 있어? 그냥 쉬는 거지?"라는

생각에 여행책자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후기 속에서

다들 고만고만하게 보는 것을 보고

남들이 먹었던 것을 먹으며

남들이 사 온다는 것을 사는 평범한 여행을 하며

조금은 루즈한 여행을 했었던 나는 그런 여행자였다.


자신을 스스로 방랑자라 여기며,

1901년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으로

스위스, 남독일, 아시아 등 여러 곳을 방문하며

여행지에서 남긴 기록을 남기기도 하고

다른 이들처럼 여행상품이나 안내서의 전형적인

관광 대신에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를 방문하거나

풍경을 감사하는 등 독립적인 여행을 추구한 이가 있다.


바로 수많은 저서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가르침을 주었던 시인이자 소설가, 화가인

헤르만 헤세의 《무해한 산책》이다.


내가 생각하는 헤세의 이미지는 학자의 이미지였다.

무언가 고뇌하고 연구하는 사람,

글을 쓰면서 방안에만 박혀 있을 것 같은 그런 이미지.

그가 써 내려간 작품들의 울림은 그런 차분함 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보게 된 《무해한 산책》

속에 드러난 헤세의 모습은

평범하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여행을 즐기는

사유하는 방랑자 그 자체로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유쾌하며

특이하다 싶으면서도

좋은 것을 좋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요즘으로 치면

'흔치 않은 여행 브이로그'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탈리아를 방문한 여행자를 위해

안내서를 작성하는 헤세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자신이 다녀온 도시들의 모습과 풍경,

마음에 남았던 장소와 음식들을 음미하며

고르고 골라 추천하는 멋쟁이 작가.


1901년부터 1913년까지

헤르만 헤세가 방문한 도시들의 추억은

기록과 감상으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여행책자를 바쁘게 넘겨가며

비슷한 코스를 돌고 있는 여행자들을 뒤로하고

실제 그곳에서 주머니를 털어가며 생활을 하고,

때로는 숙소에서 쫓겨나기도

갑작스레 쏟아진 비를 피하기도 하고

잘못 먹은 음식에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하다가

어느 숙소의 푹신한 이불 덕분에

컨디션이 급상승하기도 한다.


구걸하는 아이들이나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배를 얻어타며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고

정원에서 만난 작은 금붕어 연못을

15분이나 들여다보며 관찰하는 등

여행지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보내는 헤세의 모습은

정말 유유자적하면서도 그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여행은 무릇 그런 게 아닐까?

어떤 정해진 무언가를 도장 찍듯 보고 지나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스스로 '여행의 목적'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여유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이라는 값진 가치이자,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변치 않을 진심일 것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담으려고만 하다 보니

진짜 여행에서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여행을 통해서 내 마음속에서 가장 그리워하던 낙원,

내 마음의 여유, 혹은 삶에 대한 고찰까지도 할 수 있고

그곳에서 살아봄으로써 다시 돌아간 후에도

되찾고 싶은 마음을 발견하는 것.

바로 헤세가 진정으로 말하고픈 여행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오랜 시간 전의 이탈리아로

헤르만 헤세와 함께 떠나 작은 소도시,

구석진 골목들을 돌아보며

조용히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여행은 대단한 것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기쁨이 곁드는 시간을 만드는 것임을

늘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여행을 다녀올 때면 사진이나 물건으로

그 순간을 남겨놓으려고 했는데,

나도 헤세처럼 느꼈던 감정이나

보았던 사소한 아름다움,

기록을 통해 마음속의 조각까지 털어놓을 수 있는

여행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글은 지콜론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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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운동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 10년 차 망원동 트레이너의 운동과 함께 사는 법
박정은 지음 / 샘터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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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작은 습관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운동을 쉽게 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다는걸 알게 해주는 책이에요 몸에 대한 올바른 시선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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