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두려운가?

질병을 떠안은 그 몸을 하나님이 지으셨다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려운가?

그 미래를 살아나갈 호흡을 하나님이 주셨다.

 

인간관계가 두려운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이 지으셨다.

 

결혼을 못할까 봐 두려운가?

결혼 제도를 누가 만드셨는지 생각해보라

 

취직을 못할까 봐 두려운가?

                                       공중의 새, 땅의 꽃, 들의 풀 한 포기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신다

 

                                       동물이나 곤충이 두려운가?

                                       창조주의 호흡이 들어 있는 생물들이다

 

                                       식물이나 땅이나 하늘이나 바다나 계곡이 두려운가?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것들이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는가?

                                        보이지 않고 증명되지 않은 존재들조차 하나님보다 작은 존재이다.

                                        창조주의 위엄 앞에 두려워 떠는 미물일 뿐이다

모든 세계가 주께 속했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그러면 두려움으로 가쁘던 호흡이 잦아들고, 울렁이던 가슴도 고요해진다. 가장 크게 보이던 두려움도 결국 별것 아님을 알게 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들은 다른 어떤 것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요구한 적인 없다. 예수님께 전도나 축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다. 다만 그들이 뭔가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했다는 기록은 기도에 대해서만 나온다.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고 그 모습은 기도의 전형이자 전문가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예수님의 우선순위는 기도였고, 바쁠 때일수록 더 기도하셨으며, 그분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계셨던 데다가, 사역 때문에 기도할 시간이 없을 때는 억지로라도 기도의 시간과 장소를 만드셨다.
또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밤새워 기도하는 모습도 보여주셨다.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과제는 매일의 작은 숙제들로 쪼개졌다. 그 첫 번째는 6,3,10이었다. 매일 아침 6시, 오후 3시, 밤 10시에 기도하는 것, 또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또 읽는 것이었다.
"가르쳐 지키게"하려면 내가 먼저 알고 지켜야 하므로,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했다. 내일 증인이 되려면 오늘 증인으로 살고 있어야 했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한다.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으로 가득하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보다 더 많이 두려워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들어 있는 구절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부분들만 추려도 엄청나다.

아내가 개척을 선택한 근거는 오롯이 하나님이었다. 하나의 선택은 다른 것들에 대한 거절이라는 대가지불을 요구했다. 아내는 개척을 결정한 대가를 이미 지불했고, 그 안에는 경력에 대한 포기도 들어 있었다. 그 상급은 그녀가 받게 될 것이었다. 유혹은 진실이 아니었다
거짓이 탄로나자 두려움이 물러갔고, 그 빈자리에는 말씀과 확신이 들어찼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는 소명을 주셨음이 다시 감사하고 기뻤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을 다시 말씀으로 세우고, 눈앞에 있는 아내와 형제들에게 위로와 도전을 줄 시간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두려움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순간순간 말과 행위로 선포하라. 노래하고, 칭송하라, 두려움의 바다 위에서 예수님을 찬양하라.
나는 베드로였다. 물에 빠졌던 그 경험은 이후에 내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실패가 믿음을 키웠다. 얼마나 안전한 배를 만드는가,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그 배를 장식하고 꾸미는가 하는 것들은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물로 뛰어들 수 있는가?이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실 때, 안전한 배를 떠나 풍랑이 이는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것. 만약 내게 믿음이 부족해서 물 위를 걸을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수영이라도 해서 그 "오라"를 내 몸으로 경험해보고 싶다
수용을 하든지, 물 위를 걷든지, 적어도 나는 배 안에서 "안전히 죽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다. 배를 꾸미느라 정신이 팔려서 물로 뛰어들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어정쩡한 제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