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철학 - 내가 나무로부터 배운 것들
강판권 지음 / 글항아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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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떨어진 꽃을 무심코 발로 밟아버리곤 하지만, 떨어진 꽃마저 사랑할 줄 알아야 진정 한 존재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떨어진 꽃을 하나하나 세어보라는 것도 한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함께하기보다 슬픔을 함께 하는자가 진정 좋은 벗이듯, 핀 꽃보다 진 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그 존재를 한층 더 사랑할 줄 아는 자다

소통과 관련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어둠과의 소통이다. 요즘 사람들은 빛과의 소통만 즐길 뿐 어둠과 소통하는 기회가 거의 없다. 특히 야간 생활에 익숙한 우리는 밝은 간판과 네온사인에 둘러싸인 탓에 어둠을 직접 마주하기 어렵다.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 조차도 가로등 때문에 어둠과 소통할 시간이 점차 줄고 있다. ....

어둠과의 소통은 곧 우주와의 소통이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만 별을 볼 수 있다. 이제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쏟아지는 별을 보기 어렵다. 어둠이 있어야 빛도 있는 법이다. 어둠과 통하지 못하면 결국 빛과도 소통할 수 없다. 소통은 어둠과 빛, 음과 양의 원활한 순환 속에서만 진정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봄을 즐긴다는 것은 곧 생명의 근원을 본다는 말이다. 매화가 꽃을 피우는 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후손을 남기기 위한 과정일뿐이며,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것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만약 인고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매화의 향기에 취하는 데 급급할 뿐 매화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꽃을 피우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치열하게 사는 자만이 다른 존재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인간이 나무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것도 나무의 치열한 삶 덕분이지만, 인간은 생각 없이 숲에서 무심코 나뭇가지를 꺾어버린다. 잡목은 나무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편견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다. 어떤 나무가 과연 잡목일까? 무슨 기준으로 나무를 잡목과 정목으로 나누는 것일까. 왜 인간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무를 차별하까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생명체이든 마찬가지인데, 왜 그런 존재의 일부를 낮게 평가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잡목을 비롯한 잡초, 잡어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고정생장형이든 자유생장형이든 각자의 특성을 잘 살려서 살아가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이 세상에 특성 없는 존재는 없다. 자신의 특성을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몸을 잘 살피는 일이다. 나무의 특성을 알려면 나무의 껍질, 잎, 꽃, 열매 등을 잘 살펴야 하듯이, 사람도 자신의 몸을 잘 살펴야만 스스로의 특성을 알 수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구체적으로 살피기보다는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인지 혹은 연예인과 자신을 비교해서 예쁜가를 판단하는데 그친다. 인간이든 다른 동식물이든 몸은 자신의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인고, 그 증거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한다. 인류의 역사를 진화론적으로 바로볼 경우, 현재 인간의 몸은 가장 확실한 진화론적 증거이며 그 몸속에 한 존재의 현재와 미래가 숨어 있다. 따라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자가 자신의 특성을 잘 알 수 있고, 그 특성을 잘 살려 살아가는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다.

대나무의 죽음이 끝이 아닌 시작인 것처럼 모든 생명체의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우리 일상 역시 매일 죽여야 할 것과 살려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끝과 시작은 반복된다. 그련데 중요한 건 두 가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죽여야 할 자리에 살려야 할 것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나무를 자른 자리에서 새순이 돋아나듯이, 인간의 삶도 일정하게 무언가를 죽여야만 새로운 것이 돋는다. 이를 굳이 욕망이라 부르지 않더라도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매 순간 어떤 것을 죽이지 않고서는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나무는 자신의 에너지를 가늠해서 해거리한다. 에너지를 가늠하지 않은 채 해마다 많은 열매를 만들어내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무는 잘 안다. 죽을 때까지 채워도 늘 부족한 게 욕망이거늘, 욕망을 죽이지 않고 계속 채우려 한다면 결국 욕망의 무게에 눌려 쓰러질 것이다. 욕망을 없애는 것을 마음을 비운다고 하지만 이를 비우려는 마음마저도 욕망인 것은 아닐까

나무는 나에게 약점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소위 콤플렉스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콤플렉스를 현상적으로 감춘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마음으로 감추는 것은 가능하다. 스스로 느끼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감춰지기 때문이다. 이는 아주 간단하다. 콤플렉스를 인정하면 그만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지 못하는것은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당하면 수많은 약점을 안고도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다. 자신에게 당당한 것은 결코 오만이 아니다. 스스로를 진정 사랑하는 자는 당당하다.

대부분의 나무는 흔적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고통의 흔적을 통해 살아간다. 흔적이 요란하지 않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게 아니듯이.
겉으로 보이는 흔적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기록의 여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삶마다 그만한 가치의 흔적을 반드시 남긴다는 점이다. 삶 자체가 아름다운 흔적이거늘 무엇을 보태고 덜겠는가.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성공의 아름다운 과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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