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아마존 인디오 형제들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고
불꽃처럼 타올라 끝까지 신실했던 하나님의 종
-허운석 선교사의 묘비명-

교회가 십자가의 메세지를 미련하게 보는 멸망하는 자가 되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가 십자가가 아닌 만사형통의 메시지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사람들도 `주님, 십자가 말고 부활만 주십시오. 고통은 말고 만사형통만 주십시오`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이나 고난은 크리스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가 아니라 만사형통을 기대하고 있다면 교회, 크리스천이라 할지라도 모두 멸망하는 자들입니다.
기도는 세상 것을 달라고 요구하는 청구서가 아닙니다 그런것은 주님이 주시는 사은품에 불과합니다. 한낱 부스러기 같은 사은품을 탐낼 게 아니라 주님이 내게 오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을 완벽하게 만나는 자리가 바로 기도의 자리인 것입니다.
긍휼이 구약적 개념이라면, 은혜는 신약적 개념입니다. 긍휼은 죄에 대해 용서받는다는 개념이고, 은혜는 죄를 극복하는 능력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 본능적으로 자기보호의 방에 가서 숨습니다. 이것이 자기 연민, 자기애입니다 이런 행동은 자기도 모르게 사탄을 비호하는 것입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했는데 죽으나 사나 같이해야지 이제와서 떠나면 되겠어?하며 사탄이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사탄의 속성이 절대 떠나지 못하도록 더 깊이 감추는 것입니다. 사탄의 속성이 도사린 자기애는 우리가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 화내고 분노하고 남 탓을 하고 자기를 변명하도록 만듭니다. 네가 왜 그런 수치를 당하느냐고 부추겨서 남을 미워하고 해코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한 사람도 결국엔 망하는 길로 빠지게 만듭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영적 전쟁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볼 줄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속에 숨어 있는 사탄의 궤계를 발견할 테니 그때 그것을 주님이 넘어뜨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고 주님, 요놈이 나를 이렇게 속이고 있었네요 그래야 주님이 그놈을 빼내십니다. 그래서 경건한 척하는 율법주의적 신앙은 사탄의 자식이 되기 쉽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은 주일 성수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금식과 철야기도 하는 것으로 자기 신앙생활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타락의 가장 큰 열매는 자존심입니다. 우리는언제든지 내가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내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상하고 화가 치밉니다. 자녀가 내 말을 무시하면 분노합니다.
진심으로 내 죄를 고백하면 더러운 것이 내 속에서 떠나갑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성령이 오십니다. 이제 제대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면 누가 싸움을 걸어와도 싸움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용서하고 싶지 않아도 용서하게 되니까 싸움이 되지 않는 것니다. 이렇듯 주님의 생명이 나를 점령하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주님의 성품이 우러나옵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새생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