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 어느 심리학자의 물렁한 삶에 찾아온 작고 따스하고 산뜻한 골칫거리
닐스 우덴베리 지음, 신견식 옮김 / 샘터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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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고작 반년 알고 지낸 고양이 한 마리가 이틀 안 보여 그립다면 한심한 노인 양반이나 누릴 작은 특권처럼 보인다. 나는 아내와 자식들과 손주들이 있다. 친구들이 있고내 삶에 활력을 주는 일도 있다. 이봐! 고양이가 꼭 필요하면 한 마리 또 구하면 되잖아.
비록 내가 나비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지친 발걸음을 옮기고 있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만약 나비가 영영 내 삶에서 사라져버린다면 그것도 안심이라는 생각이드는 걸 부인할 수가 없다. 난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한적도 없고 이제 그 고양이도 떠나버렸다. 책임에서 자유로워졌다. 어쩌면 행복한 사랑 이야기란 양쪽 모두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에 고마워하며 서로에게 자유라는 선물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해 봐도상실감은 계속 그 자리에 있다. 마음을 갉아먹으면서. - P63

어쩌면 나비 덕에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녀석을 믿어야 한다. 자유의지로 머무르는 게 아니라면 난 싫다. 우리와 함께 있는 게 더 좋다면 머무를 테고 다른 곳에서 살고 싶다면 떠날 것이다. 나비는 스스로 삶을 선택해야하고 우리는 친절한 태도를 지키면서 함께 지내고 싶다는것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말로는 충분히 합리적인 이야기같지만 다들 잘 알다시피 이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다. 통제하려 들지 않고 나비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지 않기란 사실 내게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연락처가 적힌 목걸이를 달아주었다. 없는 편이 확실히 더 예쁘지만 임자가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 P72

결국 내가 우려했던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사랑하는 우리 집 기생 동물이 우리를 꽁꽁 묶어놓은 것이다. 여행을가자는 말이 나오면 곧장 이런 질문이 뒤따라온다. "나비는어쩌지?"
난 그런 것까지 헤아리게 될 줄은 상상도못했다. 하지만 인간은 모름지기 삶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비는 성공적으로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되었으니 나는 우아하게 나비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고양이 문 덕분에이런 상황은 나비와 우리 양쪽에게 조금 더 쉬워졌다. 나비는 우리가 없는 사이에 정원 창고에서 꽁꽁 얼지 않아도되고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덜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 P117

그런데 가끔은 나비가 너무 독립적인게 아닌가 싶을때 도 있다. 녀석은 잘 안 보이는 곳에 눕기를 좋아하고 내가앞에 있으면서 쓰다듬으려고 할 때 짜증을 부리거나 멀찌감치 가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퇴짜 맞은 기분이 든다. 어쨌든 우리가 개를 먹여 살리고 잠자리도 주는데 조금만 고분고분하면 어디 덧나나? - P161

고양이가 우리를 골랐지 우리가 고른 게 아니다. 고양이들은 수천 년 동안 그랬기 때문에 꼬리를 자랑스레 치켜들만하다. 이들은 계급을 부여받기 거부하는 자립적인 개인주의자들이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바로 그런 주체적인 모습이다. - P168

녀석은 청각이 극도로 예민하다. 녀석은 옆방에서 쥐가조용히 달그락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지만 말러가 그야말로 ‘나발불고북치듯‘ 사정없이 쿵쾅거려도 아무 상관도안 하고 얌전히 쭉 매무새 단장만 한다. 반면에 아래층 자물쇠에서 열쇠 돌리는 소리가 들리면 반응을 한다. 마치 녀석의 세모 귀가 시끌벅적한 소리는 다 걸러내어 마른 잎사귀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새라든가 자물쇠에서 돌아가는열쇠 소리를 더욱 잘 듣게 되는 것 같다.
시끄럽지만 안 중요한 것들을 개의치 않고 나지막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잽싸게 담아두는 능력이 나는 정말 부럽기만 할 따름이다. 나 같은 늙은이의 무딘 감각은 정반대로작동한다. 길거리의 소음은 새소리를 덮어버리고 배기가스는 꽃 내음을 쫓아낸다. - P176

우리와 나비는 서로서로 삶의 일부가 되었다. 서로를 이해해서라기보다는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녀석은 이제 전적으로 우리 서비스에 의존하고 우리를 생기롭게 만든다. 함께 놀거나 녀석을 찾아다니거나 잡아온 쥐를 치우다 보면 조금 운동도 된다. 그리고 특히 자주 웃음을 터뜨리니 수명도 늘어날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돌봐주고 배려해주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배려를 받는 것만큼 중요할 수 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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