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 김 위에 밥 위에 달걀지단 위에 당근 위에 시금치 위에 소소 2
남원상 지음 / 서해문집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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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김밥천국이라는 상호명은 천국에서나 먹음직한 환상적인 맛이 아니라 ‘한 줄에 단돈 1000원인 김밥‘을 떠올리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김밥천국이 아닌 김밥천국이었던 셈이다. 밥값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라면 진짜 천국이 맞았다고 봐도 무방하겠지만.
- P24

특이하게도 교리김밥에서는 김밥을 한 줄만 살 수 없었다. 기본이 두 줄 우리는 아예 넉넉하게 세 줄을 샀다. 차안에서 포장을 뜯어보니, 겉보기에는 집에서 싼 김밥체럼 울퉁불퉁 투박했다. 하나를 집어 단면을 살펴본 뒤에야 유명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노란 달걀지단이 엄나게 많이 빼곡하게 들어간 것이다. 지단의 모양도일반김밥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는데, 단무지처럼 통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아주 얇고 가늘게 손질해 다발로 넣었다. 전체적으로 달걀의 비중이 어마어마해서힘이나 단무지, 오이 같은 다른 재료는 일반 김밥만큼들어 있는데도 매우 적어 보였다. - P58

어느것하나 가지런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건 김밥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뜻 보기에는 작고 단순한 김밥인데, 단면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무질서하다. 속재료라고 들어간 건 당근 채와 단무지가 끝. 게다가 단무지는아주 가늘게 썰려 있다. 속재료 상황이 이러니 밥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커 보인다. 특별한 양념을 한 것 같지도 않다. 좋게 말하면 소탈하고 나쁘게 말하면 촌스러운 김밥에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다니, 보기만해서는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 P71

그런데 1995년, 식용 금이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다름아닌 김밥 때문이다. 서울 신촌의 한 김밥집에
‘금박을 두른 ‘골드 김밥‘이 등장한 것이다. 누드 김밥에금박지를 두들겨 밥에 금가루를 입히는 식이었는데,
한줄 가격이 6000원이었다. 일반 김밥에 비해 2~3배나 비쌌으니, 그야말로 금칠을 한 김밥이었다. 재밌는건 뉴스 속 인터뷰다. 기자가 손님에게 맛이 어떤지 물으니 손님이 멋쩍은 듯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답한다. "맛이요, 김밥맛하고 똑같아요."
속재료가 다르지 않고, 그렇다고 금가루가 특별한 맛을 내는 것도 아니니 당연히 똑같은 맛이었을 것이다.  - P133

우리가 흔히 김밥이라고 부르는 건 김으로 밥과 속재료를 꽁꽁 싼, 그래서 겉면에 까만 김이 둘러진 음식이다. 이 상식을 깨고 마치 옷을 벗어 속살을 드러내 듯김 대신 밥이 튀어나와 있는 게 누드김밥이다. 만드는 방식은, 우선 김 위에 밥을 고루 깔아준 뒤 그 위를비닐 랩으로 완전히 덮는다. 그 상태에서 그대로 뒤집으면 랩에 고정된 밥알이 흘러내리지 않고 김 아래에깔리게 된다. 뒤집혀 올라온 김 위에 속재료를 곧바로차곡차곡 올린 뒤 랩과 함께 돌돌 만다. 그러니까 겉면에 김 대신 랩이 둘러지는 것이다. 랩으로 싼 밥을 적당한 힘으로 눌러주면 밥알의 찰기 때문에 뭉쳐지면서모양이 잡힌다. 랩을 떼어낸 뒤 부서지지 않도록 도톰한 두께로 썰어서 완성한다.
그냥 김으로 한 번에 싸서 썰기만 하면 될 것을랩을 붙였다가 떼었다가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다.
김밥 자체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누드 김밥이 더 많이 간다. 김밥은 옆구리가 터질 때 재빨덧대어 응급조치라도 할 수 있지, 누드 김밥부스러지면 거기서 끝장이다. 그러니 칼길해야 한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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