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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잠자리 ㅣ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권정생 지음, 최석운 그림, 엄혜숙 해설 / 길벗어린이 / 2019년 9월
평점 :
"그러니까 말이지, 이 세상은 아주 예쁜 것도 있고, 아주 미운 것도 있고,
그리고 아주 무서운 것도 있는 거야.
...
그러니까 기쁘고 즐겁고, 또 무섭고 슬프기도 하단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가 싶다가,
마지막 순간에 어른을 위한 동화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이것이 권정생 선생님의 매직.
<<밀짚잠자리>>라는 동화는 1983년 월간 <기독교 교육>에 발표된 글이었다고 한다.
권정생 선생님은 2007년 하느님 나라에 가셨고, 그래서 남아있는 원고에 최석운 화가가 그림을 입혀서 다시 펴낸 1판 1쇄의 책.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구나. 그런데, 권정생 선생님은 천주교 였던 것도 같다.
일단, 두봉 주교님이 펌프를 선물했다니. 또, 대구 가톨릭대학병원에서 마지막을 지내셨다고 하니.
여튼, 나도 천주교이기에 아이에게 읽어줄 때는 하느님으로 읽게 되었다)

찾아보니, 밀짚잠자리는 실제 존재하지는 않던데. 권정생 선생님이 어릴적 꼬랑대기가 밀짚처럼 노란 잠자리를 보고 그렇게 불렀었나 싶다. 밀짚잠자리의 날개짓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인생의 희노애락이 보이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다. 인생의 희노애락이라니, 너무 거창하다, 그렇다면 아이에게는 못 읽어주겠다, 절대 아니다.
일단, 아이들의 시선.
아이들은 아마도 표지에서부터 자신이 밀짚잠자리가 되는 상상을 펼칠지도 모른다.
워낙 밀짚잠자리의 표정이 다채롭기 때문에 빠져들기가 아주 좋다.
엥? 잠자리가 표정이 있어봤자지 라고 생각한다면, 노노노노!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서 고민인 분들은 공감할만큼, 요 밀짚잠자리도 얼굴에 너무 감정을 드러낸다ㅋ
그리고, 아이들은 시원한 하늘색으로 칠해진 하늘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꽉 차지 않은 그림으로 인해 더욱 볼거리가 풍성해지는 이상한 그림.
아기 방아깨비를 만날 때에는, 그녀가 재잘되기 시작했다.
"엄마, 나도 어제 놀이터에서 여치를 잡아서 손에 들었는데, 휙 도망가버렸어"
(그렇게도 물어도 말을 잘안해주는 그녀의 유치원 생활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ㅋ)
버드나무, 미루나무, 감나무, 경운기, 여러 동물들 등등을 보며 나눌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꼬랑대기,무종다리, 방천둑, 울바자 등등 생소한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 수 있고.

특히나 너무나 반가웠던 우리의 강아지똥 민들레가 등장!
워낙 좋아하던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인데, 이렇게 여기서 오마주가 되어 나타나니 너무나 반갑고, 그림작가 센스 짱! 그녀도 덩달아 흥분하며 매우 반가워하고. 어느새 이야기는 절정에 이르게 된다.

"도깨비가 나와서 우릴 잡아먹는다"
이 문장에서 다시 한 번 그녀는 흥분하게 되다가,
"왜 내가 하루살이를 잡아먹었을까?"
이 문장에서는 밀짚잠자리와 같이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짓게 된다.
(나도 좀 시무룩하게 분위기좀 잡아보았지ㅋ)

달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잠이 든 밀짚잠자리를 볼때는,
아이들 또한 아기 밀짚잠자리의 힘겨운 하루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됨을 함께 느낄 것이다.
뭔가 한 권의 자장가를 읽은 듯한 기분.
이번엔 어른들의 시선.
처음 세상에 대한 따뜻함. “아이구나! 기분 좋다."
처음 공중으로 날아올랐을때 막막함.
별 것 아닌 자신의 행동에도 솟아오르는 자신감.
이루고 싶은 꿈을 멍하게 쳐다보던 날들.
이것저것을 보고 듣고 알고 경험하면서 주춤하기도 하던 날들.
그러다가 혼자 있게 되어 또다시 멍하게 되던 날들.
나를 생각하느라 돌아보지 못한 주위의 것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을 생각해보고 잠이 드는 시간.

아기 밀짚잠자리에게는 그냥 하루 동안의 일이었지만, 그 하루 안에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들이 이렇게나 가득하다.
어딘가로 올라가기 위해서, 원하는 무언가를 손에 넣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며 꿈을 향해 가는 것도 좋지만,
그 과정 속에서 다른 더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
또, 좌절이 온다 하더라도 이런 저런 일들이 다 있어야 인생이라는 것을 알고,
밀짚잠자리처럼 잠시 쉬었다 가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
나는 뭐, 그런 것이 느껴졌다.
이제 잠자리를 볼때마다 잠자리가 미루나무 꼭대기에 꼭 올라가게 되길 응원할 것 같다.

이 책은 작품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이라는 시리즈다.
그래서 동화의 끝부분에는 /작품해설 / 그림작가후기 / 권정생 선생님의 연보/ 가 부록처럼 달려 있다. 그러므로 5~7세의 아이들부터, 중고등학생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충분히 아우르고 있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다.
(왠지 이제 수능에도 등장할 수도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갑자기 그생각ㅋ)
일부러 작품해설은 아직 읽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읽고 나면, 그냥 그 해설이 나의 해설인양, 착각하게 되기 때문에 이 글을 마치는 순간 얼른 작품해설을 읽어서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더 알고 싶은 마음이다.

요건 책과 함께 도착한 너무 내 취향저격인 강아지똥 원고지 노트다.
알라딘에서 <<밀짚잠자리>> 책이나, 권정생 선생님의 다른 그림책, 혹은 작가앨범 시리즈 도서 중 아무거나 1권 이상을 주문하면 요 아기자기한 원고지 노트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무얼 해야 할까 행복한 상상을 더하면서.
작품해설을 읽으며 내 배를 빵그랗도록 채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