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시어를 산문으로 옮겨 놓은듯, 함축적이고도 의미있는 그러면서도 살이 되고 뼈가 될 말들을 엮은 듯하다. 어른의 꼰대성과 좁아듦의 단점이 굳지않고 어떻게 성숙하고 자유로운 풍성함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반디울 작가처럼 삶 속을 유영하면서 자연스레 옳음의 선택을 해 봐야겠다. 비록 작은 발걸음과 연대라도 그것이 아름다운 전진이고 어깨함일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고 맛깔스런 글이다. 젊음의 까칠함과 패기도 갖추고 있다. 인간존중에 바탕한 수평적 관계맺기를 자연스레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삶을 반듯하게 풍성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수필의 한꼭지 한꼭지마다 인간의 약함과 그 자신들을 따뜻하게 감싸는 품도 보인다. 정말 일간이란 것이 더구나 수필로 적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과슬이 현슬이를 딛고 나타날 미술인의 작품을 더욱 기대한다.
아몬드에 이어 손원평의 소설을 본다. “서른의 반격”이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의 고뇌를 담고 있기를 기대하고 읽었지만 꼭 그런지는 모르겠다. 김지혜의 고민, 일상에서 마주하는 부당함에 순응할 것인지 아니면 규옥과 같은 지사(?)처럼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작은 변화나 카타르시스라도 꾀할 것인가는 중요한 선택이다. 각종 편법과 착취, 부조리 속에 평범한 사람들이 달하는 부당한 처사에 굴하지 않고 일어나 당당하게 소신있는 목소리를 발하는 장면들이 새로운 삶의 희망을 보여준다.
“한국의 성매매 산업 규모가 6조7천원에 이른다”는 내용을 보고서 쇼크를 받는다. 과거 이강자 서장이 공창제를 제안한 것이 차라리 합리적이라 생각했지만 규모의 경제효과로 인신매매가 방지된 사회보다 더 심했다는 것을 보고 참 쉽지 않은 것이란 생각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처럼 성매매 속의 피해자들 또는 성 노동자들에게 돌을 던지기보다 거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헤아려봐야겠다. 그리고 너무나싶게 유료서비스라 하면서 인간관계의 부대낌없이 좋은 것만 챙기고 대상화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심각하게 기계적인 이기적 모습이다. 성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또하나의 시각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다.
김금희의 책을 세번째 만난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그녀의 글들이 마치 홍상수의 영화와 닮음이다. 한편 멀뚱하고 한편 생활 속의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조망하는 모습이 그렇다. 소년 로봇의 기억된 소히를 마주하는 것이나 마지막 글에서 현우와 은리가 교감하는 것도 그러하다. 리셋해 버리고 싶은 세상 속에 수현과 상준도 자신의 추억은 건져 올리고 싶은 작은 소망도 그러하다. 소설은 일상의 아름다움을 쫓는 것일까